
지난 2018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수소전기차 넥쏘는 전 세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해 3월 넥쏘는 국내에 정식 출시되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판매량이 급속도로 증가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수소차 넥쏘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수소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수소전기차 기술로 글로벌 친환경 자동차 시장을 대한민국이 선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한 것이다.
수소산업 육성 본격화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수소산업 육성에 나섰다.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이후 수소경제 표준화기술개발 로드맵, 수소안전관리 종합대책 등 다양한 후속 계획과 대책을 내놓았고,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제정하는 등 법·제도 기반을 만들어 나갔다.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수소생산기지, 수소충전소 등의 인프라 구축과 수소추출기, 압축기 등의 기술·제품 국산화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SK·현대차·포스코·한화·효성·롯데 등 주요 기업들은 수소 분야에 총 50조 원 이상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들어 창원, 인천 등에서 액화수소플랜트가 가동되고 액체수소충전소도 구축되면서 수소산업 시장 규모가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가 ‘청정수소’를 수소정책의 핵심으로 하고 청정수소 인증제와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을 도입함에 따라 청정수소 산업 활성화도 기대되고 있다.
특히 윤 정부는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를 통해 ‘수소산업 글로벌 선도국가 도약’을 비전으로 한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수전해·액화수소 운송선 등 7대 전략 분야 기술 수준(선진국 대비) 100%, 글로벌시장 점유율 1위 품목 10개, 수소전문기업 600개사 육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수소모빌리티, 발전용 연료전지, 수소충전소 등 5대 분야를 해외 진출 유망분야로 선정하고 수출산업화를 추진키로 했다.
‘제6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는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소산업 소부장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수전해·수소터빈 등 10대 전략 분야 소부장 국산화율 80% 달성, 글로벌 수소 소부장 기업 20개사 육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처럼 수소산업 글로벌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선 결국 수소산업 시장의 플레이어인 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소산업 기술과 제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하고, 국제 비즈니스 플랫폼 역할을 하는 수소산업 전문 전시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수소 전문전시회, 수소산업 성장 견인차
국내 수소 전문전시회로는 H2WORLD와 H2 MEET가 대표적이다.
수소지식서비스 제공 플랫폼 ‘수소지식그룹’이 2018년 11월 국내 최초로 론칭한 H2WORLD는 2021년까지 4년 연속 개최되었다. 이후 수소지식그룹은 브랜드 CI를 전격 리뉴얼하고 조직위원회를 재구성해 2023년 6월 수원에서 ‘H2WORLD 리뉴얼 전시회’를 론칭한 바 있다.
국내 최대 규모 수소 전문전시회 H2 MEET는 2020년을 시작으로 올해 5회차를 맞이했다. 특히 2023년에 열린 H2 MEET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8개국 300개 기업·기관이 참여하고, 참관객이 사흘간 약 3만여 명에 달하는 등 명실상부 세계 최대 규모의 수소산업 전시회로 자리매김했다.
H2 MEET 조직위원회는 수소밸류체인 전반 기술 중심의 전시회라는 소기의 목적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기존 수소모빌리티, 수소에너지, 수소충전인프라 등의 전시범위가 기술 고도화로 점차 확장되고, 유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수소산업 생태계를 아우르기 위해 2022년부터는 행사 명칭을 기존 ‘수소모빌리티+쇼’에서 ‘H2 MEET(Mobility + Energy + Environment + Technology)’으로 변경해 개최하고 있다.
전시회를 수소 밸류체인을 포괄할 수 있는 생산, 저장·운송, 활용으로 구분해 수소와 신재생에너지, 탄소중립(CCUS 등) 관련 신제품과 기술 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전시장 레이아웃을 구성하고, 참가기업 유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 두 전시회는 국내 수소기업들의 기술·제품을 홍보하고 해외수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수소에너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적 수용성 제고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수소산업 정체…해외 수소전시회 급성장
최근 국내 수소산업이 정체 현상을 보인다. 우선 수소차 시장이 심상치 않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그간 글로벌 판매 1위 자리를 유지하던 현대차는 올해 1분기(1~3월)에 전년 동기보다 66.2% 감소해 29%의 점유율로 3위로 내려앉았다. 도요타는 4.2% 줄었으나 36.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글로벌 판매 1위 자리에 올랐다. 2위는 상용차를 중심으로 한 중국 업체들이 차지했다.
올해 상반기(1~6월)를 놓고 보면 업체별로는 현대차가 총 1,836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보다 42.6% 역성장했으나 32.7%의 점유율로 도요타(22.8%)를 제치고 다시 1위를 차지했다. 업체들을 합산하면 중국 업체들이 상용차 중심으로 1위(점유율 44.1%)를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44.5%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고, 한국이 전년 동기보다 41.8% 감소하며 2위(점유율 31.0%)로 하락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업체별 글로벌 판매에서 현대차와 도요타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업체들도 수소차 시장 점유율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선정한 수출산업화 5대 분야 중 하나인 ‘수소모빌리티’ 업계가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또 수소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한국가스공사가 재정 상태 악화로 하이넷에 대한 추가 출자를 하지 않는 등 수소사업 투자를 보류한 상태다. 현대차, 포스코, SK 등의 기업들로 구성된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은 국내 기업과 외부 투자자의 출자 등을 통해 5,000억 원 규모의 수소펀드를 조성해 2023년 초부터 수소 분야에 본격 투자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이렇게 국내 수소산업이 위축된 가운데 미국·EU·일본·중국 등 해외 주요국은 수소산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며, 이에 맞춰 민간투자도 지속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에 근거한 그린수소 생산 및 친환경차 구매 세액공제 등 수소산업 활성화 정책을 통해 청정수소 생태계 기반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EU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발생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수소 비중을 확대하기 위한 ‘RePowerEU’ 등의 정책을 통해 2030년까지 수전해 40GW를 설치할 계획이다.
일본도 2030년까지 수전해 15GW를 설치하는 등 국내 청정수소 생산을 확대하는 한편 2050년 수소 수요 2,000만 톤 확보를 위해 대규모 수소공급망 및 활용처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은 ‘수소에너지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에서 수소차 보급, 그린수소 생산 등 2035년까지 전 산업 영역에서 수소 활용을 가속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해외 수소 전문전시회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세계 최대·최고의 수소 전문전시회로 꼽히는 일본의 ‘국제수소·연료전지 박람회’가 올해로 20회를 맞이했다. 아시아 최대 에너지 전시회 ‘월드 스마트 에너지 위크(World Smart Energy Week)’의 일환으로 개최되며, 수소 외에도 태양광·배터리·스마트그리드·풍력·바이오매스·화력·자원 재활용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테마로 하는 게 특징이다.
캐나다의 ‘f-cell+HFC 밴쿠버’는 수소·연료전지 행사인 ‘f-cell’과 ‘HFC’를 결합한 전시회로, 캐나다 수소·연료전지 협회인 CHFCA와 독일 f-cell 슈투트가르트를 개최하는 페터 자우버 아겐투어(Peter Sauber Agentur)의 주최로 열린다.
독일의 ‘수소+연료전지 유럽(Hydrogen+Fuel Cells EUROPE)’은 유럽의 대표적인 수소산업 전시회로, 토비아스 렌즈 페어(Tobias Renz FAIR)가 주최하고 세계 최대 산업 박람회인 ‘하노버메세(Hannover Messe)’의 일환으로 열린다.
중국의 국제수소·연료전지차량 콩그레스(Hydrogen Fuel Cell Vehicle Congress)는 중국자동차공학회·국제수소연료전지협회 등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회로, 상용차·트럭 등 많은 수소전기차가 출품되는 것이 특징이다.
H2 MEET 조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올해 네덜란드, 중국 등의 수소 전문전시회를 다녀왔는데 해외 수소산업과 전문전시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며 “그간 해외에서 한국의 수소정책과 수소산업 시장이 큰 관심을 받아왔고, H2 MEET가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한 수소 전문전시회로 인식되고 있지만 지금 상태로 안주하면 한국이 수소경제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 수소 전문전시회 통합
H2 MEET 조직위원회와 H2WORLD 조직위원회는 지난 8월 9일 자동차회관 회의실에서 양 전시회 통합을 위한 ‘상호협력약정’을 체결하고 글로벌 최고의 수소산업 전시회로 성장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소산업 전시회로 ‘H2 MEET’ 브랜드를 유지하고 ‘H2WORLD’ 브랜드는 앞으로 사용하지 않게 된다. 올해 전시회부터 통합 개최한다.
양 전시회 조직위원회는 국내 기반의 수소 전문전시회가 가진 규모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글로벌 최고의 수소산업 전시회로 도약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번 통합에 합의했다. 프랑스, 네덜란드, 중국, 일본 등 해외 수소전시회도 최근 급격히 성장하는 추세를 감안해 국내시장에서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하나의 대표브랜드로 힘을 합치는 것이 수소산업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강남훈 H2 MEET 조직위원장은 “수소가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수소산업 정보와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수소전시회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국내 대표적인 수소전시회인 H2 MEET와 H2WORLD의 통합으로 수소산업 국제협력을 위한 비즈니스 플랫폼 역할은 물론 글로벌 대표 수소전시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장성혁 H2WORLD 조직위원장은 “국내 수소산업 특성상 해외기업의 국내시장 직접 진출보다는 기술홍보 및 협력 파트너십 등에 관심이 높아 국내 기반 수소전문전시회의 규모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하고 “해외 주요국에서도 다양한 수소전시회가 생겨나는 등 전시회에서도 글로벌 수소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국내 전시회의 통합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주력해야 할 때”라고 통합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