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치훈 현대건설 책임연구원 | 한국수자원공사가 국내 최초 수력발전을 활용하는 성남 정수장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준공한 지 어느덧 1년이 되는 시점이다.
수자원공사는 올해 5월과 6월에도 충주댐 6MW 수력발전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협력과 밀양댐 1.3MW 소수력발전 연계 그린수소 생산 인프라 구축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수소생산에 수력발전 전기를 이용하는 소위 수력수소와 관련해 미국의 연방에너지규제기관(FERC)은 1985년에 ‘수력발전소의 수소생산(Hydrogen production at hydro-power plant)’을 발표한 바 있다. 요지는 수력발전의 잉여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한 후 가스터빈이나 연료전지에 활용해 경제성을 확보하는 개념으로, 이러한 잠재력을 통해 새로운 수소 시대의 문을 열 수 있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와 관련한 화두를 꼽자면 계통연계와 변동성이다. 탄소중립에 따른 전기화(Electrification) 트렌드 및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전력사용량 증가,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이 맞물려 오래된 ‘chicken-and-egg(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딜레마인 전력망 용량 문제에서부터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변압기 부족 사태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국내 기준으로 수력발전을 분류하면 정수장의 방류수 등을 이용하는 5MW 미만 소수력과 댐 등을 활용한 5MW 이상의 대수력을 포함하는 ‘(순수)수력발전’ 그리고 값싼 심야 전기 등을 활용해 전력수요변동에 대응함으로써 기계식 ESS(Energy Storage System)라고도 불리는 ‘양수발전’으로 나뉜다.
국제수력학회(IHA)의 2021년 발표자료에 따르면 수력은 하천 등 자연 유량을 활용할 경우 다른 재생에너지보다 날씨의 영향이 적어 그린수소 생산에 유리하며, 기존의 인프라 활용이 가능하다.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활용하기에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규 인프라 설치가 필요한 재생에너지원이 직면하는 계통망 문제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것은 덤이다. 또한 양수발전의 경우는 재생에너지의 태생적인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에너지 저장의 대표적 수단이다.
특히 수자원 수요와 전력 수요가 중첩되는 경우, 수력수소의 활용 잠재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올해 3월에 발표된 연구인 ‘하이브리드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통한 물 및 에너지 수요 충족을 위한 양수식 수력발전 및 수소저장(Pumped-storage hydropower and hydrogen storage for meeting water and energy demand through a hybrid renewable energy system)’에선 그리스 도서지역을 예로 들어서 풍력에너지를 양수발전과 그린수소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연계해 운영하는 시나리오가 단일 ESS 수단에 의존하는 시나리오에 비해 에너지 활용률에서 7~12% 차이가 발생해 더 효과적임을 고찰한 바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2023년 4월)인 ‘재생에너지의 계절·연차적 변동성 관리(Managing seasonal and interannual variability of renewables)’에서 언급됐듯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따라 지역별 기후조건, 계절차 그리고 시간 척도에 따른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선 그린수소와 양수발전이 (BESS도 포함해) 각각 역할을 할 분야가 있으며 공존이 필수적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수력발전은 설치용량 기준으로 1,360GW 규모의 설비가 운영되고 있고, 구축된 총 재생에너지 용량의 약 50%를 차지한다. 다만 앞서 말한 FERC의 내용과 같이 이상적인 그린수소 생산이 가능하기 위해선 잉여 수력발전 전력을 활용해야 한다.
국지적으로 살펴보면 중앙아시아 지역이 수력발전 기반 그린수소 잠재력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이미 구축된 전 세계 수력발전 설비의 약 42%가 집중되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량의 그린수소로 경제적인 전환이 가능한 잉여발전 잠재량이 풍부하고 향후 수자원 개발 여력 또한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네팔의 경우 총 2.3GW 수력발전 설비 중 약 40%인 0.9GW가 잉여 상태이며,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수력발전 개발률이 4~10%에 머물러 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올해 5월에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보면 지난 10차 전기본의 양수발전 우선·예비사업자 6개소(3.9GW)를 확정설비로 반영했고, 추가 3개소(1.8GW)를 포함하면 중장기적으로 5.7GW의 양수발전설비가 확충될 예정이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계통 안정성을 위한 ESS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올해 7월경 환경부가 신규 양수발전 3개소를 포함해 14개 신규 댐 후보지를 선정했는데, 용수 확보는 물론 전력 변동성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늘어나는 산업 수요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다만 이러한 수력인프라 확충이 국내 그린수소 생산 활성화를 위한 구원투수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일단 그린수소와 양수발전은 탄소중립 시대 에너지 저장매체로서 그 역할이 중첩되며 (수소를 거치지 않고 양수로 에너지를 바로 저장), 국내의 수력발전 비중이 적고(제11차 전기본 실무안에서 풍력 및 태양광을 제외한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4GW) 잠재 자원 또한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욱 큰 기회는 해외에 있다고 본다. 앞서 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대표적인데, 국내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여지가 높고, 경제발전과 국제적 탄소중립 동참을 위해선 수력수소가 이들 국가에 좋은 선택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해외 공사실적과 역량을 갖춘 국내 EPC 업체에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우선 시작은 국내부터다. 무탄소 신규전원 확대 및 전력계통망 안정성 유지를 위해 안정적인 연속 운영이 가능한 소수력, 댐 등의 기반시설을 활용한 대수력, ESS 역할이 가능한 양수발전이 모두 필요하다. 이들을 활용한 수력수소의 장기적 실증 및 안전성 평가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민간에서 사업화로 연결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중장기 프로젝트를 마련하기 위한 국가적 접근이 필요하고, 시기적으로도 적기라고 본다. 특히 국내 수전해 기술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출로 연결하기 위해 기술격차를 좁히고 운전실적을 확보하는 데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공사, 민간이 협업해 수력인프라, 수소생산 및 활용 , 도시계획을 연계한 종합적인 수출모델로 발전시키고, 정부 주도 민관협의체 등을 통한 외교력을 바탕으로 향후 K-수력수소가 해외시장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