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 시내를 나서 차로 20여 분을 더 달리자 ‘건설기계부품연구원’ 간판이 눈에 든다. 5만 평이 넘는 부지에 연구동과 시험장이 들어서 있다. 수소충전소는 부지 맨 안쪽에 있다. 야트막한 절개지를 배경으로 컨테이너형 수소충전소가 보인다. 그 앞에 마련된 시험장 트랙을 눈에 익은 지게차 한 대가 먼지를 폴폴 날리며 달리고 있다.
두산밥캣에서 만든 3톤급 수소지게차다. 넉 달 전 인천에서 처음 본 기억이 난다. 에어컨을 달기 위해 두산밥캣의 협력업체 공장에 맡겨져 있었다. 바로 그 차량이 프라이팬처럼 달아오른 콘크리트 트랙을 달리고 있다.

“3톤급 두산밥캣 차량은 한창 테스트가 진행 중이죠. 보시다시피 5톤급 HD현대사이트솔루션 차량은 4대가 들어와 있어요. 이렇게 총 5대를 우선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 투입할 예정이죠. 실증 투입 전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소충전 후 실차 운행 테스트
이곳의 정식 명칭은 ‘건설기계부품연구원 시험평가인증센터’다. 국내 유일의 건설기계 전문생산연구소인 건설기계부품연구원(이하 ‘건품연’)이 지난 2015년 3월에 ‘건품연 종합시험센터’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6개의 시험동, 13종의 시험시설을 갖춘 곳으로 건설기계 완성차의 내구시험, 새 부품을 장착한 실차 시험 등을 수행한다.
두산밥캣의 수소지게차가 이번에는 1톤 무게의 노란 팔레트를 포크로 들고 속도를 낸다. 주행로를 크게 한 바퀴 돌아 경사로 앞에 멈춰 서더니 팔레트를 마스트 끝까지 들었다 내리는 작업을 되풀이한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미끄럼틀 모양의 완성차 성능 시험장이 보인다. 차량의 견인, 굴착, 등판 능력 등을 알아보는 시험장이다. 옆에 보이는 연두색 지붕 건물은 연비·성능 시험장이다. 언뜻 보면 택지지구 조성작업을 마친 공사장 같다. 건설기계나 농기계의 성능 평가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김준석 그린연료동력연구그룹장이 5톤급 차량의 뒷부분에 새롭게 추가한 무게추, 즉 카운터웨이트를 손으로 가리킨다.

“연료전지 모듈이 배터리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에 여기에 무게추를 추가했어요. 최대 5톤의 무게를 들어 올리려면 차제가 그보다 무거워야 균형이 맞으니까요. HD현대 차량에는 50kW, 두산밥캣 차량에는 30kW 연료전지가 들어가 있죠. 둘 다 현대모비스에서 개발한 제품이에요. 넥쏘에 들어가는 연료전지 기술을 적용한 만큼 사실상 현대차 연료전지 기술이 적용된 차량으로 볼 수 있죠.”
현대차는 지난 5월 현대모비스의 수소연료전지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R&D본부 수소연료전지개발센터 안에 ‘수소연료전지 공정품질실’을 신설했다. 연료전지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과정을 일원화한 만큼 연료전지 사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5톤급 차량은 현대글로비스 울산 KD센터에서 실증사업을 진행했어요. 현장 작업에서 나온 문제점을 보완해서 개발이 됐고, 한 달 전에 차량 4대를 받아서 점검을 완료한 상태죠. 두산밥캣의 3톤급 차량은 실증 데이터가 부족해서 현재 시험 주행을 계속하고 있어요. 수소법에서 수소전기차만 충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여기서 실증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5톤급 수소지게차 모니터 밑에 ‘운용 매뉴얼’ 판이 걸려 있다. 시동을 걸기 전에 우선 빨간색 연료전지 버튼을 위로 당겨 작동시킨다. 그런 다음 시동 키를 돌린다. 시동을 끌 때는 정확히 반대다. 시동 키를 먼저 돌려 끄고 나서 연료전지 버튼을 아래로 누르게 된다.

바로 뒤 연두색 펜스 안에 수소충전소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14톤급 건설 중장비용 수소연료전지 파워시스템 개발·실증’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구축된 시설이다. 현대로템이 참여했고, 13억 원을 들여 컨테이너 패키지형으로 지었다.
“HD현대건설기계에서 14톤급 수소굴착기를 개발했고, HD현대인프라코어에서 14톤급 휠로더를 개발했어요. 모두 연료전지가 적용돼 있죠. 7월에 굴착기가 들어오고, 8월에는 휠로더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14톤 휠로더는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인터마트 2024)에 출품했다 배로 들여오느라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들었어요.”


이곳 충전소는 700바(bar)가 아닌 350바 충전을 지원한다. 수소지게차에는 넥쏘에 들어가는 일진하이솔루스의 타입4 탱크 하나가 들어간다. 이는 두산밥캣, HD현대사이트솔루션 모두 동일하다. 2.1kg 용량의 수소탱크에 350바 압력으로 절반에 해당하는 1kg 정도의 수소를 채우게 된다. 충전시간은 3분이면 충분하다.
수소연료전지 이어 수소엔진 적용
건품연 시험평가인증센터는 폭 8m, 길이 1km에 이르는 온오프로드 주행성능 시험장을 갖추고 있다. 온로드 주행성능 시험장의 경우 바퀴식(Wheel type) 건설기계 외에도 특장차, 방산차량, 농기계 등 완성차의 주행성능과 최고 속도, 발진 가속성, 연료 소모량 측정 등을 진행한다.
오프로드 주행성능 시험장에서는 궤도식(Crawler type) 건설기계를 비롯해 상용차와 특장차 등 완성차의 주행성능과 노면부하, 4륜구동 성능 등 험지 주행성능을 시험하게 된다.
김현호 센터장, 김희수 친환경동력연구실장을 따라 시험동을 돌아본다. 최대 120톤급 굴착기 시험이 가능한 ‘완성차 가혹 환경챔버’를 비롯해 빗물 테스트를 위한 살수장비, 강우시험장비를 갖추고 있다. 또 모래먼지 시험설비, 폭발성이 강한 연소 계통 핵심 부품의 위험성을 검사하는 폭발시험장비를 갖추고 있다.

건품연 본원이 있는 군산 새만금산단에는 HD현대인프라코어, HD현대건설기계, 타타대우상용차 등 완성차 업체 공장이 모여 있다. 건설기계가 전동화, 지능화되면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실증시험이 요구되고 있고, 시험법 개발이나 표준화를 위해 머리를 맞댈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가까이 모여 있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김희수 실장은 “최근 산업부의 산업혁신기반구축사업에 주관기관으로 선정되면서 연료전지 평가장비, 수소엔진 평가장비를 새롭게 구축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정확한 사업명은 ‘건설기계용 수소기반 파워트레인 상용화를 위한 신뢰성평가 기반구축사업’이다. 오는 2028년까지 국비와 도비를 합쳐 약 160억 원을 들여 수소기반 파워트레인 시험·인증 평가장비와 시험·연구동을 구축하게 된다. 센터 안에 연료전지 평가장비, 수소엔진 평가장비를 새로 들이게 된다.

이 시설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모빌리티용 수소연료전지 사업이 수소전기차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산업계의 탈탄소화에 대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연료전지시스템과 스택을 평가할 수 있는 테스트 장비는 1kW, 20kW, 50kW, 100kW 해서 총 4종이 들어옵니다. 건설기계는 자동차와는 전력을 사용하는 동력 패턴이 달라요. 지속적으로 강한 힘을 요구하고, 또 유압을 쓰면서 높은 부하로 계속 운전이 되기 때문에 가혹 조건에서 연료전지를 테스트할 필요가 있죠. 건설기계는 그 종류만 해도 30개가 넘고 운영 패턴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연료전지 모듈 평가를 따로 하는 게 맞아요.”
수소엔진 평가장비도 새로 들인다. HD현대인프라코어만 해도 미래동력시스템 개발팀에서 만든 11리터(300kW급) 수소엔진을 타타대우상용차의 맥쎈 카고트럭에 장착해 현재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이 엔진은 향후 HD현대인프라코어의 30톤급 크롤러 굴착기에 장착해 실증에 나서게 된다.
“500kW급 수소엔진 평가장비를 새로 구축하게 돼요. 수소엔진의 경우 기존 내연기관 산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전기, 수소를 적용한 전동화로 넘어가면 기존 기계식 부품의 산업 구조가 확 바뀌게 되니까요. 또 연료전지는 고순도 수소를 써야 하지만, 수소엔진은 그렇지가 않죠. 이런 점에서 수소엔진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규제와 인증
회의실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화제의 초점은 수소지게차 실증과제에 있다. 산업부가 지원하는 ‘수소지게차 상용화를 위한 실증기반 신뢰성 검증 기술개발’ 시범사업은 지난 2022년 4월에 처음 시작됐다. 사업 기간은 총 4년으로 2026년 3월에 끝난다.
건품연은 이 과제의 주관기관이다. 수소연료전지 인증을 받은 지게차를 받아 내부 테스트와 점검을 거친 후 수요기업인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 공급하게 된다.

“쿠팡이나 이마트가 운영하는 물류창고 수요를 보고 기획한 사업인데 실내 수소충전 불가로 이 부분은 어렵게 됐고, 2순위로 공항을 수요처로 봤는데 활주로 문제도 그렇고 워낙 여러 기관이 엮여 있다 보니 법적으로 풀어야 문제가 산적해 있었어요. 그래서 3순위로 공단 지역의 수요를 보고 추진하게 된 과제라 할 수 있죠.”
국내는 2.5톤 지게차의 수요가 가장 높다. 물류창고 등에서 짐을 나를 때 가장 많이 쓰는 장비다. 그에 반해 공단 지역은 3톤과 5톤 지게차에 대한 수요가 높다. 그래서 이를 기반으로 실증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고려아연은 무거운 금속 괴를 들고 나르는 데 5톤급 지게차를 활용한다.
“시장의 수요보다는 법적 요건이나 규제에 맞출 수밖에 없어요. 공단에 수소충전소를 짓는 일도 쉽지가 않죠. 이곳 시험평가인증센터에 수소충전소를 짓는 데만 2년이 걸렸으니까요. 같은 회사에서 만든 동일한 용량의 수소탱크가 들어간 지게차인데도 수소충전을 하려면 규제에 맞춰서 하나하나 인증을 다 받은 다음에 일을 진행하게 되어 있어요. 부품 하나만 바꿔도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죠. 이 작업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듭니다.”

상용화 직전에 있는 수소건설기계는 규정이 매우 중요하다. 연료전지는 수소법을 다루는 산업부 소관이지만, 도로를 다니는 완성차의 관할은 국토부 소관이다. 산업부의 수소법과 고압가스안전관리법, 국토부의 건설기계관리법을 모두 지켜야 하고,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 정한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규제샌드박스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모래놀이터를 의미한다. 이곳 시험평가인증센터에는 모래와 흙이 넘쳐난다. 굴착기와 휠로더로 모래언덕 하나 쌓는 건 일도 아니다. ‘샌드박스’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연구시설이자 시험장에서마저 ‘규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니 기업의 담당자들이 느끼는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산밥캣만 해도 SK플러그하이버스와 손을 잡고 2톤급 수소지게차 개발을 완료했지만, 국내 연료전지 인증 문제에 막혀 출시를 미뤄야 했다. 플러그파워의 젠드라이브 연료전지시스템 인증이 발목을 잡았다.
플러그파워는 미국에서 연간 6만 대 이상의 수소지게차를 판매하는 업계 선두주자다. 이미 수만 대가 현장에 돌아다니고 있지만, 아직은 국내 안전기준을 맞추지 못해 사업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2톤급 수소지게차가 시중에 출시되어도 실내 충전이 안 되면 무용지물이다. 산 넘어 산이다.

“국내 법규를 만들 때 이게 국내 기술 보호라는 면이 사실 좀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두고 사업을 하잖아요. 저는 서로가 경쟁을 통해 기술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연료전지 기술만 해도 미국보다 우리가 앞서 있죠. 연료전지, 수소충전 등 규제와 인증이 빠르게 풀려야 수소건설기계 산업이 성장할 수 있어요.”

건품연이 주관하는 ‘수소지게차 상용화를 위한 시범사업’은 3년 차인 올해 정부지원금이 16억 원 정도 삭감됐다. 이에 따라 납품 차량 대수도 30대 정도로 줄었다.
“총 30대 규모로 운영해서 운전 데이터를 수집하게 됩니다. 핵심 부품 10종을 선정해서 부품평가 방법을 개발하고, 수소연료전지 파워팩 성능 해석 모델을 구축하게 되죠. 또 서울대에서 경제성 분석을 해서 보조금 안을 만들고, H2KOREA가 보험수가를 책정하게 되죠. 이런 데이터를 모두 취합해서 수소지게차 보급 방안을 내놓게 됩니다.”
수소지게차는 차량으로 치면 수소승용차 넥쏘에 해당한다. 일단 가장 낮은 단에서 매듭이 풀려야 윗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
두산밥캣의 3톤급 지게차가 먼지를 폴폴 날리며 트랙을 달린다. ‘규제’ 자체가 ‘규제’로 작동하도록 그냥 둬선 안 된다. 절차를 간소화해서 풀어줄 건 풀어주고 문제가 생기면 확실하게 책임을 묻는 통 큰 규제로 나아가야 한다. 어떤 제도든 ‘운용의 묘(妙)’가 발휘될 때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