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소가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수소제품은 넥쏘(수소 승용차)라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수소버스 보급이 확대되고 있긴 하나 아직 넥쏘 수량에 비해 미미하다. 또 대중교통 이용 시 수소버스를 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전원으로서의 입지도 좁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발전용으로 공급되고 있는 14만8,088MW(6월 24일 기준)의 설비용량 중 연료전지는 1,033.03MW에 불과하다.
유럽도 큰 차이가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수소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이를 국민이 인식할 순 있으나 체감하긴 쉽지 않다. 경제성 있는 수소 생산·운송, 그린수소 프로젝트 등 상업화 토대를 구축할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 속 실생활에서 수소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상품이 등장했다. 바로 자전거, 카고바이크, 스쿠터 등 ‘소형 수소모빌리티’다. 현재 유럽에서는 이면도로에 트럭 출입이 금지되면서 택배차량이 카고바이크로 대체되고 있는 추세다. 유럽 지역 특성상 이면도로가 많아 앞으로 카고바이크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2023년 약 2만 대 보급됐던 카고바이크는 올해 10만 대 이상 거리에 나올 예정이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자전거가 산업 한 축을 이루고 있을 만큼 수요가 높다. 코로나로 대중교통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전기자전거 시장도 한껏 성장했다. 자전거 도로망이 잘 구축돼 있고 보조금 등의 인센티브가 있어 매력적인 선택지다.
중동과 동남아에서도 수소모빌리티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더운 날씨 탓에 배터리 가동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스쿠터 수요가 높아 수소스쿠터 전망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모빌리티 핵심 이동 유연성…연료전지가 적합
국내 소형 수소모빌리티 기업 이플로우는 이 틈을 노렸다. 우선 현재 유럽에서 보급되고 있는 카고바이크 동력인 배터리 대신 연료전지를 탑재한 모빌리티를 양산할 목표다. 배터리는 친환경 발전원으로 각광받고 있으나 1년 남짓한 수명, 10시간에 이르는 충전시간, 40~50km의 짧은 주행거리 등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기자전거의 규정속도는 시속 25km인데 이 속도로 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더 빠르게 달리죠. 이렇게 되면 배터리 특성상 목표 주행거리에 도달하기 이전에 전원이 죽습니다. 실제 전기자전거 동호회에서도 배터리를 추가로 2~3개 사서 달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플로우 윤수한 대표의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주행거리에 대한 높은 수요를 확인했다.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찾던 중 수소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수소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1회 충전으로 전기 대비 3~4배를 이동할 수 있다. 충전시간도 5분 안쪽으로 매우 짧은 편이다.
소형 모빌리티에 탑재되는 만큼 부품의 부피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수소용기가 특히 문제다. 기존 수소용기는 부피가 크고 무거워 자전거에 적합하지 않아 모빌리티용을 개발하고 있다. 타입3를 주로 활용한다. 타입4로 개발할 수 있긴 하나 경제적 부담을 떨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승호 기술이사는 “자동차, 비행기와 같은 제품에는 타입4를 쓰는 게 적합하지만 수소자전거 상업화를 위해서는 가격이 낮아질 필요가 있어 타입3 수소용기를 사용했다”라며 “밸브까지 개발할 계획으로 현재 타입3 업체와 협력 중이다”고 말했다.

연료전지는 수소용기에 비해 부피가 작긴 하나 마이크로 모빌리티에 탑재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 작아질 필요가 있다. 이에 이플로우는 소형 연료전지를 탐색하고 있다. 이전에는 프랑스 모빌리티 기업 프라그마의 PEM 연료전지를 주로 사용했으며 현재는 국내기업들의 연료전지를 어떻게 모빌리티에 최적화해 활용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범한퓨얼셀,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으로부터 각각 500W, 1.5kW 연료전지를 공급받는다. 프라그마의 3kW 연료전지를 포함해 최종적으로 500W, 1.5kW, 3kW의 소형 수소모빌리티용 연료전지 라인업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플로우는 우선 수소전기 카고바이크(이하 수소 카고바이크) 양산에 주력한다. 유럽의 카고바이크 수요를 바탕으로 가장 빠른 기간 내 상업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이플로우의 유럽 시장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전에 유럽·미국 등에 수소 자전거를 수출한 바 있다.
국내에도 수소 카고바이크를 만나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플로우는 경남도의 ‘생활밀착형 수소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 사업자로 선정됐다. 해당 사업의 골자는 소형 수소 모빌리티 제품 제작 및 실증이다. 수소 카고바이크가 첫 번째 대상이다. 또 안전기준 법령을 개정해 전체 수소 생활제품으로 확대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윤 대표는 “이 분야는 초기 시장이다 보니 데이터가 많이 부족해서 그간 만들어낸 제품의 기술적인 문제나 보완점을 찾기가 어려웠다”라며 “이번에 경남규제자유특구 지정으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실증하는 게 한결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개발했던 제품의 기술력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플로우는 20인치 휠 4개로 달리는 수소 카고바이크를 개발 중이다. PEM 연료전지 480W를 기준으로 제작 중이나 피크치를 1,5kW로 만든 후 평균 1.5kW, 최대 3kW 출력을 구현할 계획이다. 아웃풋 토크는 120Nm다. 수소용기의 경우 3.2L 2기가 결합된 6.4L, 6.8L, 9.4L 등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수소탱크 저장압력은 300바 정도다. 현재는 6.4L 용기 2기를 카고박스 하부에 부착한 형태의 카고바이크를 개발하고 있다. 1회 충전으로 300km 이상 달릴 수 있다. 적재 하중은 300kg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오는 7월 3일부터 7일까지 개최되는 유럽자전거박람회 ‘유로바이크’에서 해당 상품 샘플을 공개한다.
수소전기 자전거(이하 수소자전거)의 경우 수소 42g 충전으로 최대 150km 주행이 가능하다. 충전시간은 2분이면 충분하다. 수소용기 용량은 조정 가능한데 수소자전거 ‘알파’ 모델의 경우 2L다. 프랑스에서 개발 중인 수소자전거 ‘감마’에는 3L의 수소용기가 탑재된다.
안전성도 꽉 잡았다. 수소자전거에는 연료전지, 수소용기 등이 들어가 전기자전거 대비 높은 내구성이 필요하다. 특히 고압으로 수소를 저장해 사고 시 크게 충돌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 이플로우의 수소자전거는 충격, 진동 등에서 유럽 안전기준을 모두 충족했다.

수소스쿠터의 경우 중국산 완제품에 수소용기와 연료전지를 탑재하는 등 제품 출시를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출력은 약 3kW급이며 8L 수소용기를 적용했다. 1회 5분 충전으로 100km 이동이 가능하다.
해결과제, ‘충전’
수소모빌리티의 문제라면 역시 충전이다. 차량용 충전소도 충분치 않은데 자전거용 충전소는 말할 것도 없다. 이에 이플로우는 마이크로 수소모빌리티용 충전소 ‘호아시스’를 자체 개발했다. 가로 80cm, 세로 120cm, 높이 180cm로 공중전화 부스 정도 크기다.

호아시스는 하루 1kg의 그린수소를 자체 생산해 공급할 수 있다. 수소는 일반 전기와 태양광 전기로 만들 수 있다. 1회 주입하는 수소의 양이 40g이라고 가정하면 자체생산하는 수소로 매일 25대 충전이 가능한 셈이다.
호아시스는 초순수 수소 저장 탱크, 수소 생산기(수전해), 드라이어 등으로 구성됐다. 독일 인앱터의 AEM(음이온 교환막) 수전해기를 사용했다. 드라이어는 수분을 날려 99.9% 순도의 수소를 만들어주는 기기다.
호아시스 디스펜서 압력은 200~350바다. 대게 250바로 2분 정도 충전하면 완충된다.
이플로우는 이 호아시스를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설치해 수소자전거용 스테이션을 구축할 계획이다. 혹은 작은 부피를 이용해 산발적으로 퍼뜨려 충전소 접근성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수소탱크를 통한 차압 충전도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수소용기를 갈아끼우는 탈부착식 충전도 고려 중이다. 한마디로 출장 충전방식이다. 가정, 식당에 LP가스를 배달해주던 방식과 비슷하다. 이를 위해 0.7L, 0.9L, 1L 등 메탈하이드라이드 수소용기를 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메탈하이드라이드 특성상 저온에서 충전이 어려운 점인데 필름을 붙이는 등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AFPM 모터로 성능 최대화
수소자전거의 주요 구성 부품 중 모터를 빼놓을 수 없다. 윤 대표는 “모빌리티의 심장은 모터다. 수소자전거 역시 모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플로우는 ‘축방향 자속형(AFPM) 모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전기자전거의 출력을 250W 이하로 제한하고 있어 이 범위 내에서 성능을 최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높은 효율의 모터다. AFPM 모터는 다른 모터 대비 2~3배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다.
일반 모터는 자석과 전자석이 축의 수직 방향(Radial)으로 배열된다. 반면 AFPM 모터는 축 방향(Axial)으로 자석과 전자석이 놓여져 큰 직경을 갖는다. 토크는 힘 곱하기 반지름으로 직경이 커지면 크기가 증가한다. 즉, 일반 모터와 동일한 출력을 낼 때 크기는 압도적으로 작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AFPM 모터는 같은 출력을 내는 방사형 모터 대비 사이즈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또 기존 방사형 모터와 달리 회전판이 2개라 전력 손실을 줄이면서 강한 출력을 낼 수 있다.

AFPM 모터는 독일의 쉴러(Schile)가 개발했다. 특허만료 이전 비행기, 자동차 등 대형 모터는 영국기업 야라에, 마이크로 모빌리티용 모터는 이플로우에 특허 권한이 이전됐다. 이후 이플로우는 양산형 AFPM 모터 개발을 목표로 연구에 매진해 2017년에 시제품을 공급한 바 있다.
이플로우는 현재 수소자전거 ‘감마’ 모델에 AFPM 모터를 적용하려고 준비 중이다. 최대한 얇게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형상과 부품은 완성됐다. 완제품이 나오면 필드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승호 기술이사는 “테스트 전까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