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전 그리드에서 공급하는 전류는 교류(AC),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전자기기는 직류(DC)로 작동한다. 그래서 모든 전원장치나 전자제품에는 AC를 DC로 변환하는 정류기가 들어간다.
수전해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풍력이나 태양광에서 나온 전력을 받아 DC로 변환해 사용한다. 따라서 여기에 필요한 정류기와 변압기 등 산업용 전원공급장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크래프트파워콘(KraftPowercon)은 1935년에 설립된 스웨덴 기업으로 90년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죠. 한국지사는 2018년에 설립됐어요. 수전해 설비에 꼭 필요한 전원공급장치를 제공하고 있죠.”
스웨덴 하면 이케아, 볼보, H&M 같은 브랜드가 먼저 떠오른다.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그레타 툰베리의 나라답게 환경에 관심이 많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2015년부터 ‘Fossil Free Sweden’이라는 탈화석연료 프로젝트를 추진해왔고, 한국보다 5년 빠른 ‘2045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다. 스웨덴의 철강기업 SSAB는 지난 8월 하이브리트(Hybrit) 시범 플랜트에서 수소환원제철 실증도 완료했다.

“수소뿐만 아니라 조선해양, 발전, PCB 도금이나 표면처리, UPS라 부르는 AC 무정전전원장치 분야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죠. 현재 스웨덴, 중국, 인도에 5개의 생산시설이 있고, 미국과 멕시코에는 어셈블리 센터가 있어요. 강원도 평창, 전북 부안에 들어가는 PEM 수전해용 전원공급장치는 인도에 있는 푸네(Pune) 공장에서 만들었습니다.”
크래프트파워콘 코리아의 윤덕현 이사가 사진을 보여준다. 인도 공장의 한 직원이 AFE IGBT(Insulated Gate Bipolar Transistor, 절연 게이트 양극성 트랜지스터) 기반의 아이크래프트(I-Kraft) 정류기를 살펴보고 있다.

한화솔루션과 현대건설은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모한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화솔루션은 평창 대관령면 횡계리의 풍력발전과 연계해 수전해 시설을 구축하고 있고, 현대건설은 전북 부안의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에 태양광과 연계한 수전해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두 곳 다 프랑스 엘로젠의 2.5메가와트(MW)급 PEM 전해조가 들어가요. 여기에 필요한 능동형 IGBT 정류기를 우리 쪽에서 공급합니다. 컨테이너 솔루션으로 공급되는데 지자체 규정에 맞게 소화설비, 안전설비를 충족한 형태로 납품을 하게 되죠.”
한화솔루션과 현대건설은 내년 상반기 상업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주 행원리의 3.3MW 수소생산기지가 상업운전에 들어가 충전소에 수소를 공급하고 있지만, 내륙에서는 그린수소 상업화 소식이 잠잠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수전해 스택을 만드는 업체에서 전원공급장치 업무를 주관했어요. 전기 효율이나 역률 외에 계통과의 연계성에 대한 고려 없이 사업이 추진되다 보니 최적화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죠. 제주 행원리 현장에서 그 점을 많이 느꼈어요. 지금은 EPC(설계·조달·시공) 업체의 참여로 현장의 요구 사항이 좀 더 명확해졌죠.”
윤덕현 이사는 “수전해용 파워서플라이 관련해서 시장의 몇 가지 오해가 있다”라며 “최적화 관점에서 관련 기술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크래프트파워콘 코리아 사무실에서 윤덕현 이사, 김시열 부장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Q. 크래프트파워콘은 어떤 회사인가?
PCB, 반도체, 금속의 표면처리(도금)에 들어가는 산업용 정류기를 예전부터 많이 했다. 사이리스터 정류기라든지 IGBT 스위치 모드 파워서플라이 정류기 등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수전해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전원 솔루션 쪽으로 수요가 늘었다. 또 IMO(국제해사기구)에서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설치를 의무화한 것도 영향이 컸다. 전기분해 방식으로 해수를 살균하는데, 그 방식이 수전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발전소 굴뚝의 매연 저감장치, 즉 PM10, PM2.5 같은 미세먼지 전기집진장치에 들어가는 전원 솔루션을 비롯해 대형 발전소의 스팀·가스터빈에 들어가는 UMD(Uninterruptible Motor Drive, AC 무정전전원장치) 기술도 제공한다. 지금은 IGBT 정류기가 상용화되어 널리 쓰이지만, 이 제품을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한 회사이기도 하다.
Q. 수전해를 통한 수소생산에서 전원공급장치가 중요한 이유는?
수소생산비용(LCOH)을 보면 수전해 스택, BOP(주변장치), 전원공급장치 등에 들어가는 설비비용이 21% 정도이고 나머지 79%가 전기사용 비용으로 잡힌다. 전기세가 차지하는 부분이 정말 크다. 수전해 시스템만 놓고 보면 스택 비용이 절반이고, 나머지 25%가 전원공급장치, 25%가 BOP라 할 수 있다.
전원공급장치가 수소생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의 4분의 1, 그러니까 5% 남짓으로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수소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스택 자체의 퍼포먼스나 효율과는 별개로 전력변환장치를 통해 최적화할 수 있는 구간이 분명히 있다.

계통과 연계한 전력망 전체의 조화를 고려해서 효율과 역률 등을 따져봐야 한다. 이는 얼마나 양질의 전력을 공급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스택만 따로 떼어서 볼 게 아니라 전력망 전체의 최적화 관점에서 폭넓게 대응해야 한다. 단순히 수소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회사의 이익 문제로 국한할 게 아니라, 한 국가의 수소경쟁력 차원에서 그 영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Q. ‘최적화’라는 말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가 뭔가?
국내 수전해 시장으로 한정해서 보면, 지난 2018년부터 킬로와트(kW) 규모의 파일럿 프로젝트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스택 업체가 전원공급장치를 받아서 납품하다 보니 꼭 필요한 부분을 놓칠 때가 많았다. 현장에 수전해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고 시운전에 들어가서야 그 문제를 인지하게 되는 셈이다.
정류기의 효율, 역률, 정격전압 등과 같은 제품 사양만 보고 주문을 한다. ‘고조파는 안 보세요? 풍력발전기와 바로 연결이 되나요?’ 이런 질문을 해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고조파의 원인은 전문가도 잘 알기가 어렵다. 현장에서 측정을 해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국내 주파수인 60Hz의 정수배에 해당하는 주파수 차수에 따라 전기량이 발생하는 걸 고조파라 하는데, 이런 고조파는 설비 고장이나 오작동의 원인이 되고, 심하면 정전을 유발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AC로 받은 전기를 DC로 전환해서 수전해 설비를 돌리게 되는데, 이 전력 컨버팅 과정에서 발생한 고조파 전류가 계통의 임피던스(Impedance)와 결합해 계통 전압에 왜곡을 일으킨다.
계통이 약하면 왜곡은 더 커진다. 한전에서 나오는 배전 계통 규정상 고조파 전압을 규제하고 있다. 그 왜형률(THDv)을 5%로 제한하는 것이다. 계통이 충분히 튼튼하면 고조파 전류(THDi) 제한 설정을 높게 잡아도 배전 계통의 고조파 전압 규정을 만족할 수 있다. 국제 규정(IEEE519)도 같은 권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배전 계통 규정과 무관하게 고조파 전류 발생량도 그냥 5%로 맞춰주세요, 하는데 이렇게 되면 비싼 돈을 내고 큰 용량의 제품을 현장에 넣게 된다.
실증단계에서는 어떻게 넘어갈수 있겠지만, 상업화로 가면 이런 비용이 다 수소생산 원가에 반영이 된다. 수전해 산업의 경쟁력 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2년 전부터 EPC가 현장에 들어와 견적 작업이 이뤄지면서 이런 부분은 많이 해소가 됐다.
Q. 고조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달라.
입력단에서 전압이나 전류를 측정하면 사인 곡선이 부드럽게 나와야 하는데, 이게 찌그러지거나 튈 때가 있다. 국내 PEM 수전해 설치 사업에 참여했을 때 이런 문제를 겪었다.
시운전 단계에서 우리 쪽 정류기에 ‘웅’ 하는 진동음이 크게 났는데, 원인을 알아보니 계통에서 오는 공진이 영향을 미쳐 하모닉(harmonics), 즉 고조파를 발생시킨 것으로 나왔다. 계통 자체도 약해서 공명하면서 작은 진동이 더 커졌다.

계통 자체가 약하면 추가로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현장에서 이런 부분을 잘 모르는 분들이 태반이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시키기도 어렵다. 여기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게 우리 일이다.
해당 현장에 고조파 필터를 무상으로 설치해서 고조파(THDi)를 10% 미만으로 낮췄다. 반대파를 쏴서 상쇄시키는 방식이다. 헤드폰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떠올리면 된다.
Q. 수전해용 전력변환장치에 DC-DC 컨버터를 넣을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왜 그런가?
DC-DC 컨버터가 필요한 정류 방식을 쓰는 제품이 있다. 시장에는 다양한 정류 방식이 있으며, 어떤 토폴로지(Topology, 위상구조)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DC-DC 컨버터가 필요한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컨버팅 과정을 한 번 더 거치는 것만으로도 전체 정류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격경쟁력 확보가 필수 과제인 수전해 수소생산 분야에서는 재고해야 할 부분이다.
제품을 만든 업체에서 DC-DC 컨버터가 꼭 필요하다고 하면 시장의 구매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인다. 정보가 한 곳에서만 나오면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 우리 제품은 AC에서 DC로 한 번에 바로 가는 방식이다. 이렇게 가면 설비비용을 줄이면서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시장에 경쟁이 필요한 이유다.

이와 별개로 DC-DC 컨버터 모듈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 선박에 들어가는 연료전지용으로 수요가 있고, 수전해 쪽으로도 메가와트 단위의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또 연료전지 발전소에서 나오는 DC 배전반용 컨버터로도 유용하다.
크래프트파워콘은 갈바닉 절연(Galvanic Isolation)이 된 200kW 대용량 DC-DC 컨버터 모듈 제품을 개발 중이다. 갈바닉 절연 제품은 독립형 차폐 설계를 적용해 노이즈, 접지, 전원 문제로 인한 전기적 충돌을 회피할 수 있다. 이 제품은 내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Q. 대용량 정류기 제품에 파워크래프트(PowerKraft)와 아이크래프트(I-Kraft)가 있다. 두 제품은 어떤 차이가 있나?
반도체 정류 소자가 다르다. 파워크래프트는 사이리스터 기반의 정류기로 흔히 SCR(Silicon Controlled Rectifier), 즉 실리콘 제어 정류기를 의미한다. 사이리스터(Thyristor)는 반도체 소자의 일종으로 스위치 역할을 한다. IGBT 기반의 능동형 AFE(Active Front End) 기술이 적용된 아이크래프트 정류기 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강원도 평창, 전북 부안에 들어간다.

두 가지 반도체 소자 간에는 장단점이 있다. IGBT 기반 제품이 뒤에 나왔다고 무조건 더 나은 제품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이리스터 정류기가 효율 면에서는 더 낫다. SCR이 견고하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다만 고조파, 역률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별도의 장치가 필요할 수 있다. 이런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IGBT 방식은 트랜지스터를 사용해 스위칭 타임이 빠르다.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스위칭 과정에서 손실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IGBT 정류기를 쓰면 고조파나 역률은 무조건 해결된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IGBT 정류기도 같은 보완이 필요할 수 있다. 능동형 AFE 기능이 포함된 아이크래프트는 그 자체로 보완 기능을 갖춘 제품이다.
이렇게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운영비용, 현장의 공간 가용성, 전력 품질 등을 보고 제안을 하게 된다. 보정장치가 얼마나 들어가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일반적인 상황에서 보정장치가 필요 없으면 SCR이 더 저렴하다. 대신 장비는 좀 더 큰 편이다.
스위스에서 하이드로스파이더(Hydrospider)라는 합작법인이 수력발전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바로 이 수력발전소에 사이리스터 기반의 파워크래프트가 들어갔다. 이 수소를 충전소에 공급해 현대차 엑시언트 수소트럭 충전에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국내 시장도 이렇게 변해갈 것으로 본다.
Q. 한화솔루션, 현대건설 같은 대기업이 수전해 시장에 진출하면서 어떤 변화가 일고 있나?
EPC가 시장에 들어오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세세한 요구사항에 맞는 기술 논의를 이어가고 있고, 그에 맞는 최적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EPC는 기본적으로 계통이나 그리드에 대한 경험이 많다. 전문 인력이 있고 전기 쪽 기술자가 많아 설계를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수전해 업체는 스택과 관련한 퍼포먼스에 집중하고, 우리는 전원공급 업무에 집중하는 게 맞다. 서로 자기 영역에 전문성을 더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지금은 이렇게 가고 있다.
저온 수전해, 고온 수전해 쪽으로 기업의 진출이 늘면 전문성이 더해질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