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가 급증하면서 ‘출력제한’ 횟수가 크게 늘었다. 바로 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변동성에 따른 출력제한은 결코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를 저장해서 활용하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다. 이는 제주가 ‘그린수소 사업’에 집중하는 구실이자 당위이다. ‘토토 사이트’는 한창 가동 중인 3.3MW 행원 그린수소 실증단지, 내년 착공 예정인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의 12.5MW 그린수소 실증 예정지를 찾아 ‘그린수소 테스트베드 제주’의 현주소를 담았다. <편집자 주>
딱 1년 만이다. 제주 월정리 해변에 발을 들인다. 변치 않는 풍경 안에 달라진 모습들이 하나둘 눈에 잡힌다. 셀카 촬영에 바쁜 중국인 관광객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린다. 수소승용차 넥쏘가 준치(반건조 오징어) 굽는 냄새를 흩트리며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1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초보 서퍼들이 방파제를 피해 밀려드는 얕은 파도 위를 미끄러진다. 그 왼편으로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아슬아슬한 균형 감각과 대비되는 단단한 심지가 기둥에서 느껴진다. 그곳 행원리 그린수소 생산시설에서 출발한 튜브트레일러 트럭이 포구를 돌아 나온다. 볕에 그을린 주황색 탱크는 막 손질을 마친 노란 멍게 빛을 하고 있다.

제주의 일몰 명소인 오저여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과거 ‘신재생에너지 홍보관’으로 불리던 곳을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Carbon Free Island(CFI), 즉 ‘탄소 없는 섬’ 제주의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풍력,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여러 재생에너지원이 한곳에 모여 있어 각종 교육이나 실습이 이뤄진다. 또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형 휴게실이 1층에 따로 마련돼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로 운영되며, 주말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플러스DR’ 등 활용, 수소생산가격 낮춰야
제주에너지공사에서 운영하는 CFI에너지미래관에 차를 대고 3.3MW(메가와트)급 그린수소 생산단지를 둘러본다. 제주에너지공사 강병찬 청정수소운영부장이 앞장을 선다. ‘H2 Green Hydrogen’이란 문구가 수소출하장 방호벽에 큼직하게 칠해져 있다.
“앞쪽에 콘크리트로 바닥공사를 했어요. 현대차가 이동형 수소충전소를 운영할 계획인데, 이 자리에 트럭을 세운 다음 수소를 탱크에 바로 충전하게 되죠. 충전 부지는 정해진 걸로 알아요. 제주공항 서쪽에 붙어 있는 이호이동이 유력합니다.”

제주에너지공사가 운영하는 튜브트레일러는 총 4기다. 2기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함덕 그린수소충전소에 들어가 있다. 제주 내 수소 활용처는 함덕 충전소가 유일하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수전해로 생산한 수소는 7바(bar)로 공급이 되는데, 이걸 압축기로 180바로 튜브트레일러에 저장해서 내보내고 있죠. 200바 기준으로 340kg까지 저장할 수 있지만, 지금은 수요가 한정돼 있다 보니 무리하지 않고 180바로 저장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에 들어와 있는 수소버스 총 9대 중 5대가 운행 중이다. 버스 한 대 기준 하루 수소소비량은 10kg대 초반이다. 총 5대가 하루에 55kg 정도를 소비하다 보니 튜브트레일러 운행 횟수는 일주일에 2회꼴이다.

“제주에너지공사는 제주도에서 설립한 지방공기업으로 도에서 수립한 에너지 정책에 따라 그린수소 사업을 이행하고 있죠. 제주도는 단기, 중기 사업으로 수소모빌리티 분야에 집중하고 있어요. 올해 상반기에 버스 9대가 모두 운행될 예정이고, 하반기에 추가로 버스 10대, 청소차 1대를 들여오게 됩니다.”
2025년에도 추가로 수소버스 10대를 들여온다. 제주도는 내년에 총 30대 정도의 수소상용차를 운행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수소를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그린수소로 충당하게 된다.
“3.3MW 현장은 수전해 용량 기준으로 하루 최대 수소생산량이 1.3톤 정도 됩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간헐성 때문에 수요를 맞추기 힘든 상황이 생기게 마련이죠. 어제만 해도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오늘은 또 잠잠하니까요. 이럴 때를 대비해서 공사는 PPA 계약을 준비하고 있어요.”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즉 전력수급계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시민의 발’인 버스를 임의로 멈출 순 없다. 모자란 전기를 한전에서 구입해서라도 수전해 설비를 돌려야 한다. 역으로 출력제한에 걸려 풍력발전기를 멈춰 세워야 하는 상황이 오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전기를 평소보다 싸게 공급받아 수소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러스DR 제도가 제주도에서 시행되고 있어요. 재생에너지가 많이 보급된 지역에 전력수요관리 차원에서 시행된 제도인데, 재생에너지 소비전력(수요)이 적고 발전량(공급)이 많을 때 시행되죠. 잉여전기를 많이 쓰게 해서 전력의 과잉공급을 해소하게 됩니다. 추가로 쓴 전력량에 SMP(계통한계가격)를 적용해서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수소생산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낮출 수 있죠.”

강병찬 부장은 “플러스DR의 발동 기준, 즉 예상발전량의 기준을 정하는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서 제도의 완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수소생산에 재생에너지 전기가 투입되는 만큼 한 푼이라도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받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어쨌든 내년에 운행되는 30여 대의 차량에 필요한 수소연료 공급을 이곳 3.3MW 수전해 시설에서 모두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완성체로 거듭난 3.3MW 수소생산단지
수소생산의 핵심인 수전해 설비를 둘러본다. 수소에너젠의 2MW급 알칼라인 전해조 2기가 안쪽에 나란히 놓여 있다. 현재 생산된 수소는 모두 여기서 나온다. 방호벽 너머에 2MWh(메가와트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놓여 있다. 알칼라인 전해조 운전에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설비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중앙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바로 그곳에 2단 높이의 컨테이너박스가 들어섰다. 빠져 있던 퍼즐 조각 하나가 딱 맞춰진 기분이다.
“플러그파워 사의 1MW PEM(고분자전해질막) 수전해 설비가 현장에 들어온 건 작년 10월 중순입니다. 최근에 인허가를 받았고, 자체 시운전을 마무리한 상태죠. 별문제가 없으면 5월 안에는 수소생산에 나설 예정입니다.”

SK E&S는 플러그파워와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공동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2022년 1월 SK플러그하이버스(SK Plug Hyverse)를 설립했다. 2단으로 쌓은 컨테이너박스는 공식적으로 SK플러그하이버스의 PEM 수전해 설비다. KGS(한국가스안전공사) 인증 문제로 국내 도입 일정이 미뤄지면서 애를 태웠다.
그 옆에 놓인 건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발주한 0.3MW급 PEM 수전해 설비다. 엘켐텍의 스택을 기반으로 선보유니텍에서 만든 제품이다.
“국내 업체 기술로 만든 PEM 전해조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죠. 사업 초기다 보니 전기 품질 등 몇 가지 이슈가 있었지만 해결이 된 상태고요, 실증 단계의 현장 운영을 통해서 이런 문제들을 잡아가면서 기술을 개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SK플러그하이버스의 PEM 전해조만 해도 실제 운전에 들어가기 전이라 알칼라인과 비교해서 장단점을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조만간 운영에 들어가는 만큼 좀 더 여유를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도시가스를 개질한 그레이수소를 유통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지만, 이 방법으로는 ‘무탄소 섬’을 향한 제주의 꿈을 실현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부하변동에 대응해서 수소를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다. 시간에 쫓기며 각종 인증과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민원과 비판여론도 감내해야 한다.

제주도는 지난 5월 1일 한라수목원 잔디광장에서 ‘에너지 대전환을 통한 2035 탄소중립 비전’을 선포했다. 제주의 비전은 명확하다. 재생에너지와 청정수소에 기반해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린수소 글로벌 허브 아일랜드’. 제주가 그리는 비전은 이 네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제주도는 ‘2035 탄소중립’을 위해 가정‧상업용 난방에너지를 비롯해 대중교통과 대형 운송수단, 도심항공교통(UAM), 선박에 이르기까지 지역사회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2035년에 제주지역의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맞추려면 재생에너지 7GW(기가와트) 이상, 그린수소 연 6만 톤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즉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7GW 규모로 확대해 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이고, 그린수소를 6만 톤 이상 생산해 화력발전 연료를 전면 수소로 바꿔야 한다.
이 원대한 목표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현장이 바로 행원의 그린수소 실증단지다.

“행원은 1998년에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 상업화에 성공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죠. 풍력, 태양광에서 나온 전력은 기본적으로 ESS에 저장했다 한전에 올리게 됩니다. 제주는 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이 전국 1위인 데다, 해가 갈수록 그 비율이 크게 오르고 있죠. ESS 용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고, 이 전기를 오래 저장해서 유통하기 위해서는 전기를 가스로 바꾸는 P2G(Power to Gas) 사업이 꼭 필요합니다. 제주의 그리드 안에 수전해 그린수소가 들어온 계기라 할 수 있죠.”
민간에서 추진 중인 해상풍력 사업이 본격화되면 출력제한의 압박은 더 거세질 수 있다.
제주는 후속 사업으로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에 12.5MW 규모의 그린수소 실증단지를 설치할 예정이다. 행원 그린수소 실증단지는 그 본보기이자 시험대인 셈이다.
함덕 충전소, 상반기 수소버스 9대 운행 예정
함덕 그린수소충전소에 들어서자 입구에 주차된 312번 수소버스가 눈에 든다. 삼화여객에서 운영하는 차량으로, 이곳 함덕리 버스회차지에서 출발해 중앙로와 시청, 도청을 지나 한라수목원까지 운행한다.

함덕 충전소는 시간당 100kg의 수소를 충전할 수 있다. 버스로는 4대, 승용은 20대까지 충전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한국가스기술공사가 시행사로 참여해 운영까지 맡고 있다. 설비 공급은 하이리움산업이 맡았다.
“작년 5월에 부임해서 근 1년 정도 근무를 했습니다. 이달(5월)에 버스 한 대가 더 투입되면서 총 5대가 운행되고 있죠. 보통 오후에 충전을 해요. 하루에 쓰는 수소량이 10kg 초반대로 그렇게 많지 않아서 85% 충전에 맞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압축기 효율을 높이면서 충전시간도 단축할 수 있죠.”
함덕 그린수소충전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현정헌 소장의 말이다.
제주에 들어온 9대의 수소버스 중 5대가 운행 중이다. 차량의 내구연한을 늘리는 방향으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현행법에서 정한 차량의 내구연한은 기본 9년으로, 도로교통공단 검사에 합격한 차량에 한해 2년이라는 범위 안에서 운행 기간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반기에 9대가 모두 들어올 걸로 보고 있어요. 도에서 관용차 10대를 넥쏘 차량으로 교체한 것도 있고, 수소충전소가 개장하고 나서 넥쏘 차량을 구매한 주민분도 있죠. 외지에서 넥쏘를 몰고 제주로 여행을 온 분도 있어요. 어림잡아 하루 5대는 일반 이용객이 이용하고 있죠. 오늘도 오전에 넥쏘 3대가 충전을 하고 갔네요.”
현정헌 소장이 기록지를 손으로 가리킨다.
진도항이나 녹동항에서 넥쏘 차량을 배에 싣고 제주로 건너온 여행자 후기를 블로그에서 본 기억이 난다. 성산으로 난 동쪽 해안이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좋다. 오가는 길에 함덕에 들러 수소를 충전하면 된다.
“관용차는 허가를 받아서 운행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이용객이 많지가 않아요. 대부분 일반 고객이라 할 수 있죠. 육지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는 분들의 전화 문의가 부쩍 늘었어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운영하는지, 주말에 가도 바로 충전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죠. 현재 저를 포함해서 세 명의 안전관리원이 상주하고 있고, 운영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입니다.”
수소차 보급을 늘리려면 수소충전소부터 지어야 한다. 해안도로를 타고 김녕을 지나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넥쏘 차량을 보고 환호한 적이 있다. 내년에 넥쏘 후속 차량이 출시되고, 제주에 수소충전망이 더 갖춰지면 제주 렌터카 시장에 수소차가 들어오는 것도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도는 ‘제주 수소경제 육성 기본계획 수립(2025~2035년) 연구용역’ 입찰에 나섰다. 올해 말까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번 용역에 수소생산시설과 수소연료공급시설 인프라 구축 계획, 충전 편의를 위한 거점별 충전소 구축 계획이 포함됐다.
또 한국자동차환경협회가 공모한 ‘2024년 수소전기차 충전소 설치 민간자본 보조사업’에 도내 가스기업인 천마가 선정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제주 LPG충전소 업체인 천마는 화북동, 한림읍에 그린수소충전소 2기를 구축할 예정이다. LPG충전소와 복합 수소충전소로 운영할 경우 안전관리원 인력을 공유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지난해 환경부 공모에 선정된 민간기업 하이스원이 애월읍에 설치 중인 충전소를 포함해 총 3곳의 그린수소충전소가 더 들어서면 도내 수소차 보급과 운행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