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소법 국회 통과를 3년 앞둔 시점의 일이다. 2017년 3월 창원에서 팔용 수소충전소가 문을 열었다.
국내에서 상업용으로 구축된 최초의 수소충전소로 에스지티(SGT)가 시공을 맡았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에스지티는 이엠솔루션, 넬코리아, 범한퓨엘셀 등 파트너사와 손을 잡고 전국 30여 곳의 수소충전소 구축에 참여했다.
“2018 동계올림픽에 맞춰서 준공한 평창과 강릉의 수소충전소가 도화선 역할을 했어요. 그해에 현대차 넥쏘가 출시되면서 국내에 수소충전소가 본격적으로 구축되는 계기가 됐죠. 또 린데와 손을 잡고 음성, 망향, 화성, 입장 등 고속도로 휴게소에 충전소를 구축한 일도 기억이 납니다.”
경기도 오산에서 만난 신옥철 대표의 말이다.
에스지티는 일찌감치 2021년에 수소전문기업에 지정됐다. 국내 수소충전소, 고압수소 시험장비, 수소장비 구축 분야에서 이만큼 널리 활약한 회사가 없다. 수소충전 업계에서는 그 존재를 공기처럼 의식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소 저장·압축 시스템 공급
에스지티는 2016년에 설립됐지만, 실상 회사는 2012년부터 ‘에스지티기술’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영위했다. 수소충전 사업에 나선 배경은 CNG(압축천연가스), LNG(액화천연가스) 버스에서 찾을 수 있다.
“전국 곳곳에 있는 버스 차고지에 이동식 충전소를 구축하는 일을 했어요. 고압가스 분야에서 쌓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수소충전 시장에 누구보다 일찍 발을 들이게 됐죠. 지금도 CNG버스에 들어가는 가스용기와 관련된 AS(사후서비스), 노후 용기 교체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에스지티는 2016년에 현대자동차 천연가스 차량 AS 협력사에 지정되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수소전문기업 지정을 앞두고 충전소 구축에 꼭 필요한 수소 저장·압축 시스템을 공급하는 ‘토탈 솔루션’ 업체로 성장했고, 이를 기반으로 지자체나 연구소, 평가기관에 수소부품 평가시스템을 납품해왔다.

2016년 한국가스안전공사(KGS)의 수소 기반구축 사업을 시작으로 2019년 수소충전소 부품시험 기반설비 및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2021년 한국가스공사의 수소정량검사 측정장비 도입, 2022년 일진하이솔루의 수소충전소 반복시험장치 및 제어시스템 구축, 2023년 동아대 수소부품시험센터 구축에 참여했다.
올해 실적도 눈에 띈다. 김해의 자동차부품 회사인 유니크(UNICK)에 수소시험설비를 구축했고, 부산의 밸브 제조사인 태광후지킨에 수소 ES 시험설비를 설치했다. 또 액화수소 분야로 발을 넓혀 KGS가 충북 음성군 금왕 테크노밸리 산단에 짓고 있는 ‘액화수소 검사지원센터’ 구축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가스는 운송 효율을 높이기 위해 그대로 압축을 하거나 액체로 만들게 되죠. 천연가스만 해도 CNG로 압축하거나 LNG로 냉각을 하잖아요. 한번에 많은 양을 저장해서 활용하려면 액화로 가는 수밖에 없어요. 액화 기술을 들여다보면서 공부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액화수소 저장탱크의 진공단열 검사, 극저온에서 작동하는 밸브류 검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시험장비 개발, 설비 구축에 참여하고 있어요.”
액화수소 인프라 확대
에스지티는 KGS의 액화수소 검사지원센터를 수주해 2025년 6월 완공을 목표로 극저온 분야의 설계, 시공을 진행하고 있다. LNG 관련 초저온 분야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극저온을 활용하는 액화수소 장비 개발과 시공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이는 액화수소 기술의 내재화, 안전한 기술 인프라 보급과 관련이 있다.
에스지티는 지난 9월에 열린 H2 MEET 전시회에 액화수소 저장탱크 성능을 평가하는 ‘이동식 BOG(Boil-off Gas, 증발가스) 측정장치’와 측정된 가스를 외부로 방출하는 ‘벤트 스택(Vent Stack)’ 등 관련 장치를 선보였다.
액화수소는 해외 선진 업체가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신옥철 대표는 “그럼에도 기존 기술을 더 편리하게 개선할 점이 분명히 있다”고 한다. “새로운 시스템 개발에 대한 도전정신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성장할수 있다”는 것이 신 대표의 지론이다.
에스지티는 기체수소를 다시 액체로 만드는 재액화 기술에 관심이 많다. KGS에 넣기로 한 제품도 ‘재액화 시스템’이다. 액화수소를 사용한 후에 다시 영하 253℃로 액화를 해서 탱크에 넣는 방식으로 운영이 된다.
“두산, SK, 효성에서 액화수소 플랜트 사업을 하고 있지만, 모두 외국의 선진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올해 문을 열기 시작한 액화수소충전소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죠. 재액화 장비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열 손실을 최대한 줄여서 재액화기로 수소를 보내는 배관 등의 구성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쪽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옥철 대표는 소탈하고 겉치레가 없다. 회사 유니폼을 입고 현장을 누비며 직원들과 의견을 나눈다. 그 열정에는 이유가 있다. 누구보다 일찍 수소충전소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국내 기술력은 독일, 일본 등 해외 선진사에 크게 뒤처져 있는 ‘후발주자’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열심히 해서 따라잡아야죠. 우리가 못할 것도 없고요. 수소산업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분명하고 많은 기업이 본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 탄소중립의 방향성과도 결이 잘 맞고요. 여러 난관이 있겠지만, 결국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수소시험장비, 설비 구축에 집중
에스지티는 2017년 경남 창원 팔용동의 수소충전소 구축을 시작으로 평창 강릉 수소충전소, 광주 동곡 융복합충전소, 창원 성주동, 진해 죽곡, 충북 음성삼환, 청주 오창, 도원, 충주 연수 등 수소충전소 시공에 참여했다.
또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국내 최초 철도차량용 충전시설인 ‘K-수소철도 오송충전소’를 2022년에 구축했고, 창원 상복동에 있는 한국자동차연구원의 미래차전환 종합지원센터에 연구용 수소충전소도 구축했다. 부산, 창원 등 경남 쪽에 일이 많아 부산글로벌테크비즈센터에 부산지사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수소충전소 구축사업은 2022년이 피크였다고 생각해요. 충전인프라 확충이 힘든 이유가 차량 운행이 많은 도심에 충전소를 짓기가 너무 어려워요. 수요지 인근에 충전소가 들어서야 하는데, 수도권만 해도 땅값이 워낙 비싸고 주민 반대가 너무 심하죠. 상황이 이런 데다 시공사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와서 입찰 경쟁을 세게 벌이고 있죠.”
에스지티는 충전소 구축사업을 기반으로 기업이나 기관의 요구를 반영한 수소시험장비, 설비 구축 쪽으로 사업을 다변화했다. 또 고압수소용 핵심 부품이나 장비 유통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노바 스위스(Nova Swiss)의 공압밸브, 니들밸브, 튜브피팅을 비롯해 독일 드래거(Drager) 사의 가스감지기와 검지기, 스피어 스타(SPIR STAR)의 디스펜서용 고압호스, CIMC ENRIC과 파버(Faber) 사의 수소저장용기 등을 유통하거나 장비 제작에 활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검증이 된 제품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설치를 마치면 손을 떼는 게 아니라 이제 시작입니다. 충전소 유지보수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장비의 내구성이 정말 중요해요. 여러 회사 제품을 현장에 적용해보고 브랜드 인지도 등을 고려해서 문제가 없는 제품을 쓰고 있죠.”
에스지티는 한국가스안전공사가 3년 만에 개발한 한국형 수소충전소 성능평가장치인 Hy-PAS(Hydrogen station-Performance Assessment System) 제작에 참여했다. 또 현대차의 이동식 수소충전소인 ‘H 무빙 스테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공장 안쪽에 현대차 엑시언트 윙박스 트럭 한 대가 주차되어 있다. 트럭 적재함에 수소 충방전 시험장치를 설치한 차량으로, 한국자동차연구원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것이다. 수소를 충전하거나 사용할 때 탱크 내 수소 압력이나 온도 변화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가 이슈가 된 적이 있죠. 차량의 안전은 판매와 직결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수소는 초기 시장이라 부품이나 장비 개발이 활발하고 이를 위한 테스트 설비, 인증을 위한 검사장비에 대한 수요가 많아요. 경쟁이 치열한 충전소 시장보다는 시험장비 분야에 더 집중하고 있죠.”
이번엔 공장 안을 돌아본다. 수소 부품의 최대 유량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장치가 한쪽에 놓여 있다. 하스켈(Haskel) 사의 왕복동 압축기에 파버 사의 중압, 고압 저장용기를 적용했다.

노바 스위스 사의 자주색 공압밸브가 맨 먼저 눈에 든다. 자세히 보니 튜브피팅에 들어간 밸브 브랜드가 제각각이다. 하이플럭스, 태광후지킨(TKF), 스웨즈락 등 다른 회사 제품이 연결돼 있다.

“여러 회사 밸브를 써봐야 어느 제품이 좋은지 알 수가 있죠. 작은 부품 하나만 고장이 나도 장비를 멈춰야 해요. 이런 일로 자주 충전을 못하면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고 소비자 신뢰도 잃게 되죠. 유지보수 업무를 맡은 직원들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고요.”
신옥철 대표는 “수소충전소 구축 시장이 단가 경쟁으로 치달으면 많은 걸 잃게 된다”고 지적한다. 30억, 60억 원에 맞춰 수주 경쟁을 벌이고, 이윤을 보기 위해 검증이 덜 된 저렴한 제품을 시중에 유통하면서 설비에 문제를 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유지보수 업무는 24시간 대기 상태로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죠. 그 비용이나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충전소 구축 단계에 조금 비싸더라도 검증이 된 제품을 쓰는 게 맞아요. 단가에 맞춰서 가는 틀에 박힌 방식으로는 충전소 사업을 정상화하기가 요원하다고 봅니다. 충전량에 맞춰서 용기 숫자도 더 늘리고 해서 사이트마다 유연하게 가는 게 맞아요.”
충전인프라 구축, 다 같이 노력해야
에스지티는 2022년을 기점으로 수소충전소 구축보다는 수소충전 관련 설비나 시험평가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에 주력해왔다.
린데의 수소충전소 구축을 담당하면서 인정받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수소충전 설비의 시공 기술을 활용해 수소충전 시 적용되는 부품 낙하시험장치, 수소충전소에 들어가는 장비와 부품의 충전량 측정 장비, 수소충전소용 용기의 내구성 평가장치 등 각종 시험장비를 제작했다.
수소 제품의 인증과 관련이 있는 가스안전공사, 가스기술공사에 이들 시험장비를 납품했고 한국자동차연구원, 동아대학교, 부산테크노파크 등 관련 연구기관을 위한 맞춤형 장비를 개발했다. 또 일진하이솔루스, 현대로템, 유니크, 테크윈 등 수소 관련 업체에 테스트 설비를 구축했다.

“테스트 장비를 의뢰하는 연구소나 기업이 늘었어요. 인증과 관련한 수소시험장비 개발에 대응하면서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노력해왔죠. 단순히 압축기, 냉각기, 저장용기, 인입패널 등을 조합해서 시공하는 업체들과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스지티만의 기술력을 잘 살려서 특화해가야죠.”
에스지티는 반도체용 특수가스 충전시설과 관련한 시공 실적도 확보하고 있다. 프렉스에어코리아(현 린데코리아), 켐가스코리아 등의 업무를 진행했고, 전국 소방서 80여 곳에 공기호흡기 충전실을 설치하기도 했다.
소화시스템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2017년에 린데코리아로부터 소공간 소화시스템 대리점으로 지정받았고, 국내 유수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사, 완성차 제작사 등에도 소공간 소화시스템을 납품했다. 또 소방관이나 잠수사가 쓰는 공기호흡기 재검사설비도 별도로 갖추고 있다.
“2, 3년 전과 비교해서 수소 붐이 꺼졌다고 하는 분들이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어떤 사업이든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클이 있고, 언제 또 바람이 불면 치고 올라갈 거라고 봐요. 그전에 우리가 불합리한 규제는 없는지, 가격 때문에 안전이나 내구성이 떨어지는 제품을 그냥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잘 따져보고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또 되풀이될 겁니다.”

신옥철 대표는 “수소는 가벼워서 밀폐된 공간이 아니면 바로 날아가기 때문에 잘관리하면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LPG가 위험하다.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에 가라앉기 때문이다.
“국내 고압가스법만 해도 다시 들여다볼 점이 많아요. 법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사고가 워낙 많으니까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이격거리라든가 하는 부분을 그렇게 정했겠지만, 콘크리트 방호벽만 해도 20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가 좋아졌죠. 그런데도 여전히 그대로 간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이런 부분을 좀 합리적으로 고쳐서 가야 도심에 수소충전소를 들이기가 쉬워집니다.”
픽업트럭, 밴, 화물 등 다양한 수소전기차가 출시되고 충전 접근성만 확보된다면 수소차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업계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신대표의 생각이다.
“인프라 구축이라는 것이 혼자 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다 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충전소에 들어가는 제품의 국산화율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요. 후발주자라는 인식으로 더 노력해서 선발진에 들어야죠.” 그 말에 남다른 각오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