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마이크로파로 음식만 데우는 게 아니다.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오승수·강병우 교수, 통합과정 천수민 씨 연구팀이 간단한 마이크로파 처리를 통해 초고속으로 3D 그래핀 폼(foam)의 표면 특성을 가역적으로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핀(Graphene)은 탄소 원자가 2차원 평면에서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구조를 가진다. 그 결과 강도, 유연성, 전기전도성, 이온 이동성이 우수해 ‘꿈의 신소재’로 불리기도 한다.
3D 그래핀 폼은 3차원 다공성 구조로 인해 표면적이 매우 커 배터리나 슈퍼커패시터 등 다양한 전기 저장장치에 활용된다. 이러한 물질의 응용 분야를 넓히고,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물을 흡수하거나 튕겨내는 등 표면의 특성을 자유롭게 조절해 전자와 이온의 활발한 이동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POSTECH 연구팀은 일반 가정용 전자레인지 수준의 마이크로파로 이를 해결했다. 마이크로파를 3D 그래핀 폼에 초단시간(5~10초) 쏘면 고온(2,600°C)과 플라즈마가 2초 이내로 형성되면서 용매에 따라 표면 작용기가 변하는 개질이 일어났다.
친수성인 수증기는 친수성인 수산 라디칼을, 소수성인 아세톤은 소수성인 메틸 라디칼을 형성해 그래핀 표면에 화학적으로 붙어 각각 초친수성·초소수성 특성을 나타냈다. 여기서 ‘라디칼(radical)’은 짝지어지지 않은 홀전자를 가진 원자나 분자를 뜻한다.
슈퍼커패시터‧연료전지 제작에 적용 가능
연구팀은 이 기술을 이용하여 초친수성(수접촉각 0°)의 3D 그래핀 폼을 아세톤 환경에서 5초 이내로 초소수성(수접촉각 168°)으로, 수증기 환경에서는 10초 만에 다시 초친수성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반응은 수십 번 반복할 수 있을 정도로 가역적이고, 재현성이 높았다.
특히 마이크로파를 사용해 그래핀 표면 특성을 바꾸는 과정에서 메탄올이라는 간단한 중간체 물질이 형성되는데, 연구팀은 그로 인해 가역적인 반응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표면 특성을 가진 3D 그래핀 폼을 사용해 새로운 이중층 슈퍼커패시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표면의 초소수성·초친수성 특성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슈퍼커패시터로, 이온과 전자 수송을 촉진해 용량이 최대 548배 증가했으며, 성능과 수명도 향상됐다.
이번 연구를 이끈 오승수 교수는 “마이크로파를 사용해 저렴한 산화 그래핀으로 고품질 개질된 3D 그래핀 폼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라며, “하나의 장비로 원하는 다공성 구조와 젖음성을 제어하는 올인원(all-in-one) 기술은 산업적으로 큰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젖음성’은 액체가 고체 표면 위에 퍼지기 쉬운 정도를 의미한다. 젖음성이 높을수록 액체가 고체 표면에 더 잘 퍼지면서 물방울이 이루는 수접촉각이 낮아진다.
또 천수민 씨는 “3D 그래핀 폼을 포함해 2D 그래핀, 카본블랙, 탄소나노튜브처럼 탄소 재료가 사용되는 연료전지나 미세 유체 수송 시스템 등에도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연구 의의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