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화학 용연2공장에서 부생수소로 발전 중인 효성중공업의 1MW급 수소엔진발전기.
효성화학 용연2공장에서 부생수소로 발전 중인 효성중공업의 1MW급 수소엔진발전기.

울산에 있는 효성화학 용연2공장을 찾는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 냉각탑을 지나자 녹색 페인트칠이 된 40피트 컨테이너가 눈에 든다. 오른쪽에 연결된 가느다란 수소배관은 인근의 용연1공장과 연결돼 있다. 

“1메가와트(MW) 수소엔진발전기가 안에서 돌고 있죠. 내부에 흡음재를 시공해서 소음 차단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85데시벨 미만에 맞췄죠. 지난 4월에 현장 설치를 완료하고 1,300시간 넘게 운전 중입니다.”

효성중공업 기전PU 발전기영업팀의 김정환 프로가 현장을 안내한다. 엔진실 뒤에는 전기실에 해당하는 서브스테이션이 있다. 에어컨의 냉기로 내부는 서늘하다. 발전기용 차단기, 변압기, UPS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다. 

“엔진을 끄고 나서 열을 조금 내린 다음에 안을 둘러보시죠.”

수소엔진은 수소연료전지와 달리 끄고 켜는 일이 수월하다. 차량 시동 버튼을 누르듯 엔진을 구동하게 된다. 

엔진실 옆에 붙은 제어반으로 수소엔진의 운전을 제어한다. 
엔진실 옆에 붙은 제어반으로 수소엔진의 운전을 제어한다. 

울산 액화수소플랜트 시운전 앞둬

효성그룹은 지난 7월 1일부로 존속회사인 ㈜효성, 신설회사인 HS효성으로 재편됐다. 효성가 장남인 조현준 회장과 삼남인 조현상 부회장의 독립경영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그룹 운영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조현준 회장이 이끄는 ㈜효성에는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효성ITX, FMK, 효성TNS가 속해 있다. 또 조현상 부회장이 이끄는 HS효성에는 HS효성첨단소재, HS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HS효성홀딩스USA, HS효성더클래스, HS효성토요타, HS효성비나물류법인, 광주일보 등이 속해 있다. 

이들 계열사 중 수소사업의 핵심은 효성중공업이 맡고 있다. 일찌감치 수소충전소 사업에 뛰어들어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08년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700바(bar) 200N㎥/h급 수소충전소를 처음으로 구축했고, 2010년에는 현대차 양재동 수소충전소(350bar)를 열었다.

현대차 양재동 수소충전소는 지난 2021년에 서울 양재 그린카스테이션으로 거듭났다.
현대차 양재동 수소충전소는 지난 2021년에 서울 양재 그린카스테이션으로 거듭났다.

2019년에 준공한 국회 수소충전소를 비롯해 한국도로공사의 안성(하), 백양사, 성주, 언양 휴게소 등 고속도로 수소충전소 구축에도 힘을 보탰다. 2020년에 준공된 H강동수소충전소, 하이넷 정부세종청사 충전소도 기억에 남아 있다. 2022년부터는 바이오가스로 수소를 생산하는 충주바이오그린수소충전소, 도시가스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인천그린수소충전소, 대전낭월수소충전소를 구축했다.

효성중공업은 국내 1위 수소충전소 공급을 기반으로 액화수소플랜트 건립, 액화수소충전소 구축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21년 린데와 손을 잡고 용연3공장에 연산 1만1,000톤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를 구축하고 있다. 

효성의 관계자는 “수소모빌리티 수요에 맞춰 하루 15톤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차후 수요에 맞춰 추가로 하루 15톤 증설을 계획 중”이라며 “현재 플랜트 시운전을 준비하고 있다. 상업운전은 10월 말 이후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효성중공업은 액화수소 사업을 위해 린데와 2개의 합작법인을 세웠다. 린데수소에너지(생산법인)가 생산한 액화수소를 효성하이드로젠(판매법인)이 국내 충전소에 공급할 예정이며, 일부는 반도체 생산공장이나 기타 산업체에 공급할 방침이다.

하이리움차트에서 효성하이드로젠에 공급할 예정인 3톤급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
하이리움차트에서 효성하이드로젠에 공급할 예정인 3톤급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

액화수소충전소의 경우 환경부 민간 공모를 통해 2022년에 4개소(광양, 경산, 거제, 울산), 2023년에 2개소(전주, 김포), 2024년에 2개소(진주, 포천)가 선정되어 한창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그룹의 계열사 중에서는 효성티앤씨가 타입4 수소탱크에 들어가는 나일론 라이너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고, 이번에 계열이 분리된 HS효성첨단소재가 수소탱크 외부에 적용되는 탄소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효성티앤씨의 나일론 라이너에 HS효성첨단소재의 탄소섬유를 감아 만든 타입4 수소고압용기.(사진=효성)
효성티앤씨의 나일론 라이너에 HS효성첨단소재의 탄소섬유를 감아 만든 타입4 수소고압용기.(사진=효성)

효성티앤씨가 개발한 나일론 라이너 소재의 경우 기존 금속 소재 대비 70%,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소재 대비 50%나 무게가 가볍고, 수소의 누출을 막는 기체 차단성도 기존 금속 소재 대비 30% 이상, HDPE 소재 대비 50%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니오 옌바허의 1MW 수소엔진 

컨테이너박스 문을 열자 후끈한 열기가 끼친다. 발전기의 모터를 돌리는 심장은 오스트리아의 가스엔진 기업인 이니오(INNIO)의 옌바허(Jenbacher) 제품이다. 옌바허 엔진은 100여 개국에 2만5,000대 이상 공급됐다. 

“이니오 옌바허는 가스엔진발전기 분야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라 할 수 있죠. 독일 함부르크에 설치된 제품은 500kW급으로 수소와 천연가스 혼소 테스트를 위한 개발품입니다. 옌바허 가스엔진을 수소전소 방식으로 현장에 설치해서 운용을 하는 건 효성중공업이 세계 최초라 할 수 있죠.” 

효성중공업은 지난해 7월 이니오 옌바허를 찾아 ‘수소엔진발전기 실증 사업을 위한 MOA(합의각서)’를 체결했다. 울산 현장에 놓인 1MW급 수소엔진은 그 성과물이다. 

컨테이너박스 패키지로 제공되기 때문에 현장 설치는 매우 간단하다. 크레인으로 들어서 내린 후 수소배관과 질소배관을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지난 4월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안전검사를 통과하자마자 운전에 들어갔다.

효성중공업 기전PU 김정환 프로가 엔진과 연결된 수소공급부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효성중공업 기전PU 김정환 프로가 엔진과 연결된 수소공급부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엔진 앞단에 수소가스를 제어하는 컨트롤밸브를 갖춘 수소정압시스템이 붙어 되죠. 용연1공장에서 11.5바(bar)로 들어오는 수소가스를 4바로 낮춰서 엔진에 공급해요. 이렇게 들어온 수소를 공기와 섞어서 연소를 하게 되죠. 그 비율을 얼마나 잘 제어해서 연소 효율을 높이느냐가 내연기관 엔진의 핵심기술입니다.”

실린더로 들어가는 수소공급량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포트인젝션(PI) 컨트롤러, 실린더 내부에서 불꽃을 터뜨리는 점화플러그가 엔진 위에 설치돼 있다. 이 엔진으로 바로 뒤에 붙은 발전기 모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발전기는 효성중공업 제품이다.

김정환 프로가 반대편으로 넘어가 엔진 상부를 손으로 가리킨다. 옌바허 엔진은 수소혼소가 가능한 ‘Ready for H2’ 가스엔진으로 개발됐다. 

천연가스 배관을 엔진에 연결해 수소를 혼소하는 것도 가능하다. 
천연가스 배관을 엔진에 연결해 수소를 혼소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가 천연가스 배관 연결부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막혀 있죠. 청정수소발전제도에 맞춰 100% 수소전소 엔진의 상용화를 준비해왔고, 그 첫 번째 모델을 부생수소로 운전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울산을 찾기 하루 전 서울 마포에 있는 효성빌딩에서 만난 이만섭 효성중공업 기전PU장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혼소 비율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수소의 순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수소엔진은 수소와 천연가스를 구분하지 않고 연료로 쓸 수 있어요. 청정수소 가격에 따라 혼소 비율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죠. 글로벌 기업들은 RE100에서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고, 지난 6월에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기본적으로 수소전소가 가능해야 합니다.”

ESS, 수전해 접목한 ‘하이브리드 스마트그리드’

효성중공업 산하에는 전력, 기전, 건설 3개 사업부(PU, Performance Unit)가 있고, 이 중에서도 기전PU가 수소사업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만섭 기전PU장은 전날 인터뷰에서 “효성중공업은 EPC 전문회사로 그동안 전력기기를 비롯해 수소충전소 구축과 운영, 액화수소플랜트 건립 등 수소사업 분야에서 쌓은 기술력과 노하우가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수소엔진발전 시장에 누구보다 빠르게 진입한 것도 이 경험 덕분이라는 것이다. 

수소엔진을 스마트그리드에 넣어 청정수소발전에 활용할 수 있다.
수소엔진을 스마트그리드에 넣어 청정수소발전에 활용할 수 있다.

청정수소발전제도는 수소법과 상위법령인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수소발전원이 목표 탄소저감량을 얼마나 경제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가 사업화의 관건이다.

“수소엔진은 전기사업자를 위한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 분산에너지법에서 요구하는 자가발전시장 모두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분산에너지법에 따라 의무 자가발전량 비율을 만족해야 하고, 그 비율은 해가 갈수록 오르게 되죠. RE100에 참여한 기업이라면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수소혼소 비율을 높여가야 해요. 수소엔진발전은 신규 투자 없이도 이 부분이 가능합니다.”

수소엔진발전기는 기동과 정지가 자유롭고, 출력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이는 연료전지와 비교되는 엔진의 큰 장점이기도 하다. 연료전지의 경우 빈번한 기동과 정지, 출력 변화가 스택의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수소엔진은 향후 VPP(Virtual Power Plant, 가상발전소) 등과 연계해서 전력보조서비스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너무 낮거나 전력 수요가 최대치일 때 전기를 만들어 공급하면 추가 수익을 낼 수 있죠. 또 전력계통을 보완하는 분산전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됩니다.”

엔진에서 수소를 연소하고 배출되는 400℃ 이상의 배기가스 열을 활용하면 지역난방에 적합한 90℃ 이상의 중온수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열원까지 활용하면 종합효율은 86% 정도 된다. 이런 장점을 살려 재생에너지가 포함된 스마트그리드와 섹터 커플링하는 것도 가능하다.

“재생에너지가 많이 보급된 제주, 전남 지역은 전력의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해 출력제한에 나서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잉여전력을 그냥 버리게 되는 셈이죠. 이런 지역에 ESS(에너지저장장치), 전해조, 수소 압축·저장 설비, 수소엔진 등을 조합해서 일명 ‘하이브리드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요.”

효성중공업은 근 15년간 ESS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사업 초기 프론트 엔지니어링(Front Engineering) 단계에서 경제성을 분석해 최적의 배터리 용량을 설계하고, 설비의 운영과 유지보수(O&M)를 더한 통합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이 경험은 수소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수소는 재생에너지 전력의 저장을 위해 스마트그리드에 그대로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만섭 기전PU장은 “청정수소발전제도, 분산에너지법에 대응하기 위한 하이브리드 스마트그리드 모델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사진=효성)
이만섭 기전PU장은 “청정수소발전제도, 분산에너지법에 대응하기 위한 하이브리드 스마트그리드 모델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사진=효성)

“제주의 유리온실 같은 곳에 수소엔진발전기를 적용하는 안을 생각해볼 수 있죠. 풍력, 태양광에서 나온 잉여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만들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전기와 열을 만들어 쓰는 거죠. 농작물의 생장이 왕성한 시기에는 천연가스를 섞어서 발전하고, 여기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온실에 그대로 투입하는 스마트팜 방식도 가능합니다.”

‘하이브리드 스마트그리드’에는 수전해를 통한 청정수소 생산, CCU(탄소 포집·활용), 청정수소발전 등 수소와 관련된 핵심 사업이 모두 통합될 수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경제성도 잡아내는 청정수소 사업모델을 시장에 적극적으로 제안할 방침입니다. 수소엔진발전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먹구름이 엷게 흩어진 자리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그 밑에서 스테인리스 환기구가 은빛을 띠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수소사업에 필요한 제반 기술을 가장 오랫동안 들여다본 기업 중 한 곳이다. “청정수소발전으로 한 걸음 도약하겠다”는 말의 의미를 이곳 울산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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