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화성 발안산업단지에 있는 경기그린에너지 입구에 차를 대고 노란 중앙선을 따라 걷는다. 사무동으로 난 2차선 길이 유난히 넓다. 인적이 없는 그 길을 따라 포스코에너지의 MCFC(용융탄산염 연료전지)가 조용히 돌고 있다.
이곳 경기그린에너지는 ‘K-연료전지’ 산업의 상징과도 같다. 그 출발은 웨딩마치의 폭죽처럼 화려했다. 총 58.8메가와트(MW)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연료전지발전소로 2013년부터 발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연료전지 LTSA(Long Term Service Agreement, 장기유지보수) 비용 인상 문제로 잡음이 일었고, 결국 포스코에너지가 연료전지사업 부문을 분사해 한국퓨얼셀을 설립하면서 사실상 결별을 선언했다. 이에 미국 퓨얼셀에너지 사도 소송을 내고 법적 분쟁에 들어갔다.
이 소송은 양사의 원만한 합의(?)로 1년여 만에 일단락됐다. 퓨얼셀에너지 본사에 문의한 결과 “한국퓨얼셀과의 관계는 2021년에 마무리됐고, 이를 계기로 퓨얼셀에너지(FuelCell Energy, FCE)는 발전 및 탄소포집, 수소생산의 모든 부문에서 한국 시장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공식 답변을 받았다.

퓨얼셀에너지와 7년 장기계약 합의
‘할많하않’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경기그린에너지 김대영 대표가 맞잡은 손을 놓고 나서 딱 그 표정을 짓는다.
이혼은 주변에서 흔한 일이 됐다. ‘돌싱포맨’, ‘돌싱글즈’에 이어 ‘한 번쯤 이혼할 결심’, ‘이제 혼자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문제는 이혼 이후에 있다. 자립, 즉 어떻게 홀로서기를 할지가 관건이다.
경기그린에너지는 최근 FCE와 7년 장기유지보수(LTSA) 계약에 합의했다. 이곳 화성에는 FCE 원천기술의 연료전지 모듈 42기가 들어와 있다. 모듈 한 기당 1.4MW로, 400개의 직사각형 셀을 쌓아 만든 350kW급 스택 4개가 들어 있다. 모듈 2기가 한 세트로 묶인다. 즉 2.8MW짜리 연료전지 21개가 현장에 설치되어 총 58.8MW를 구성하고 있다.

“FCE의 용융탄산염 연료전지는 2개의 스택 모듈이 하나의 M-BOP(연료공급장치)와 E-BOP(전력변환장치)를 공유하는 심플한 구조를 하고 있죠. 상부에 열회수장치를 달아서 지역난방에 필요한 열에너지를 함께 공급해요. 전기와 열을 더한 종합효율로 보면 MCFC가 가장 높아요. 평균 80% 정도 됩니다.”
연료전지의 발전효율은 통상 PAFC(인산형 연료전지)가 42%, MCFC가 47%, SOFC(고체산화물 연료전지)가 56%다. 순서대로 1세대, 2세대, 3세대 연료전지로 불린다. 발전효율만 보면 SOFC가 가장 뛰어나지만, 열병합 발전을 더한 종합효율을 보면 MCFC의 경쟁력도 상당하다.
“FCE가 서울 상암에 있는 노을그린에너지와 작년 7월에 14년 장기계약을 맺었고, 인천에 있는 한국남부발전(신인천빛드림 수소연료전지 발전단지)과는 2018년에 20년 장기계약을 맺은 걸로 알아요. 실제로 한국이 가장 큰 시장이고, 이곳 화성이 세계 최대 규모의 MCFC 발전단지라는 걸 FCE도 잘 알고 있죠.”

김대영 대표는 노을그린, 남부발전의 사례를 확인했고, 회계법인과 사업성 검토를 마친 후 LTSA 계약을 추진했다. 또 미 코네티컷주 토링턴에 있는 FCE의 공장 견학도 다녀왔다. 경기그린에너지는 협의 과정에서 네 가지 보증 조건을 요구했고, FCE가 이를 수용하면서 합의에 이르렀다. 7년 계약금만 1억6,000만 달러(약 2,000억 원)에 이른다.
“발전량, 연료사용량, 열사용량, 물사용량 이렇게 네 가지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가 원하는 보증 조건을 요구했어요. 스택이나 설비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FCE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죠. 2.8MW 스택을 기준으로 1년에 43만MWh의 전기를 생산하게 됩니다. 스택의 열화율을 반영해서 해마다 발전량이 조금 떨어지긴 하겠지만,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게 되어 있어요.”
경기그린에너지의 최대주주는 62%의 지분을 보유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다. 경기그린에너지가 한수원의 자회사로 경영을 맡고 있다. 나머지 지분은 포스코에너지와 삼천리가 각각 19%씩 나눠 가지고 있다. 포스코에너지가 주기기 공급과 시공을 맡았으나 2020년 6월 28일을 기점으로 FCE와 모든 계약을 종료한 상태다. 삼천리는 연료(LNG) 공급과 열 판매를 맡고 있다.

“두산퓨얼셀의 PAFC 작동온도가 150에서 200℃ 정도 될 겁니다. 온수를 얻어봐야 50~60℃ 정도 되겠죠. MCFC는 600℃ 이상에서 운전이 되기 때문에 중온수(100~170℃)가 나와요. 휴세스(삼천리의 자회사)를 통해 지역난방에도 온수를 공급하고 있는데, 겨울철 성수기에는 그 수익이 꽤 됩니다. 지금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가 안 되지만, 향후 기대수익을 높게 보고 있죠.”
국내 발전용 연료전지 시장이 크게 성장한 건 2012년에 시작된 RPS(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덕분이다. 미국만 해도 SMP(계통한계가격)만 받고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는 없다. 주정부나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는 이상 연료전지 사업을 크게 벌이기가 어렵다. 경기그린에너지는 연료전지 발전으로 2.0의 REC를 적용받고 있다.
“8월부터 내년 5월까지 순차적으로 스택 교체”
경기그린에너지에는 MCFC 총 21호기가 설치되어 있다. 그중 1호기에서 모듈 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모듈 한 기의 무게는 50톤에 이른다. 기존 모듈을 크레인으로 들어 트레일러로 옮기고 나서 새 모듈을 그 자리에 내려놓게 된다.

경기그린에너지는 포스코에너지와 호기당 5년짜리 LTSA 계약을 맺었다. 4년 전 2차 연장 계약의 당사자는 포스코에너지였지만, 포스코에너지가 2019년 11월에 자회사인 한국퓨얼셀을 설립한 후로 현재는 한국퓨얼셀에 LTSA 계약이 이전된 상황이다.
“한국퓨얼셀에서 공급한 제품이에요. 오전에 원모듈로 운전 중이던 11호기의 수리모듈 하나를 교체했고, 오후에 역시 원모듈 운전 중이던 1호기 수리모듈을 교체하고 있죠. 기존 유지보수 계약은 호기별로 기간이 다르게 잡혀 있어요. 오는 8월 말에 한국퓨얼셀과 맺은 4개 호기의 계약이 끝이 납니다. 이를 시작으로 내년 초부터 다달이 순차적으로 계약이 끝나게 되는데, 21개 호기의 계약이 모두 종료되는 시점은 내년 5월로 잡혀 있죠.”
기술운영실 권순영 대리의 말이다. 올해 8월부터 시작해 내년 5월 말까지 FCE의 연료전지 모듈이 순차적으로 현장에 깔린다는 뜻이다.
권순영 대리가 MCFC 설비의 작동 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먼저 탈황기로 도시가스에 섞인 부취제의 황 성분을 제거한 후 연료를 공급하게 된다. 두 기의 모듈 사이에는 예비개질기가 설치되어 있다.

“모듈 내부에서 95% 정도 수소를 개질하지만, 5% 정도는 외부에서 개질한 수소를 공급하고 있어요. A, B 모듈에서 생산된 직류 전기는 인버터, 변압기를 거쳐 전기실로 보낸 다음 지하에 매설된 송전선로를 통해 한전에 공급하게 되죠. 상부에 가습기 뒤로 보이는 건 열교환기예요. 연돌이 2개가 있는데, 앞단에서는 400℃에 이르는 고온의 수증기가 빠져나가고, 후단에서는 열교환기를 거친 후라 80℃ 정도로 떨어진 수증기가 빠져나가죠.”

그래서인지 연돌의 색이 다르다. 고온의 수증기가 빠지는 앞단의 연돌은 녹이 난 듯 붉은빛을 띠고 있다. 12호기 같은 경우는 작년 11월에 한국퓨얼셀에서 FCE를 통해 사전에 구매해둔 제품을 설치했다. 그래서 12호기는 스택 교체 없이 유지관리 서비스만 받기로 FCE와 별도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경기그린에너지와 맺은 이번 계약을 두고 FCE는 한껏 고무되어 있다. 이날도 FCE의 한영규 사장이 사무실을 찾아 김대영 대표를 만났다.
“2세대 연료전지인 MCFC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열을 포함한 에너지의 가치를 고려할 때 전기와 스팀을 모두 필요로 하는 곳에 최적의 선택지가 될 수 있죠. MCFC는 온수 외에도 상위등급의 스팀 또는 흡수 냉각을 제공해요. 또 탄소와 수소를 직접 회수하는 기술을 입증했고, 바이오가스를 연료로 쓸 수 있어 발전사업자에 큰 이점을 제공하죠.”
FCE는 지난 20년간 바이오가스로 작동하는 20MW 이상의 연료전지 설비를 시장에 배포했다. 캘리포니아 툴라레에 있는 폐수처리장을 위한 2.8MW 바이오가스 전력 설비,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에 있는 폐수처리장을 위한 1.4MW 설비가 여기에 든다.
또 도요타와 함께 LA 롱비치항에 구축한 트라이젠(Tri-gen) 시설도 주목할 만하다. 재생 가능한 바이오가스로 수소와 전기, 물을 생산하는 시설로 FCE가 운영한다. 하루 최대 수소생산량은 1.2톤으로 항구를 드나드는 대형 수소트럭 등이 이용하는 인근의 수소충전소에 공급된다. 또 수소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온수는 도요타의 고객 인도 차량 세차 등에 활용된다.

“탄소포집에 대한 이슈도 있습니다. FCE가 새로 개발한 MCFC 모듈은 기본적으로 CO2를 포집할 수 있는 라인이 설계에 반영돼 있어요. 다만 이 부분을 살려서 탄소포집을 진행하려면 여러 가지 설비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사전에 수요처 확보가 매우 중요합니다. 인근에 스마트팜 같은 활용처가 있으면 배관으로 공급하는 일도 가능하죠.”
CO2 포집을 위해서는 정제를 위한 PSA 설비, 액화 설비, 액화탄산 저장탱크 등이 필요하다. 천연가스 개질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순도가 높아 음료용으로도 수요가 높다. 한영규 사장은 “MCFC 시스템은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90% 이상의 탄소를 포집할 수 있다”고 한다.
새 도약을 위한 발판
퓨얼셀에너지는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번 LTSA 계약을 계기로 MCFC 기술에 대한 불확실성을 말끔히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FCE 본사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미국의 FCE 관계자는 지난해 노을그린에너지와 맺은 LTSA 계약을 언급하며 “한국 시장 내 연료전지 발전소의 중단 없는 가동, 탄소배출 감소 및 서비스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LA 롱비치항에서 운영 중인 트라이젠 사례에서 보듯 당사의 MCFC 플랫폼은 바이오가스로 수소와 전기, 물을 생산해 공급할 수 있다. MCFC는 전력 출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50%까지 수소를 혼소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탄소집약도를 줄이는 길을 열어준다. 또 FCE는 순수수소로 전기를 생산하고 전기분해를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고체산화물 플랫폼을 상업화한 바 있다. 또한 고체산화물 전해조(SOEC)의 높은 효율은 한국의 원전 기술과 이상적인 결합을 이룰 수 있다.”

FCE의 SOFC·SOEC 시스템은 250kW급을 기반으로 하며, 캐나다 캘거리와 미 코네티컷주 댄버리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블룸에너지와는 다른 관형 스택을 채택하고 있으며, 운전 온도도 블룸에너지보다 100℃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진다. SOEC 제품의 경우 1.1MW 전력으로 하루에 600kg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탄소포집 기술도 눈여겨봐야 한다. FCE는 엑슨모빌과 손을 잡고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CCS 시범사업을 벌인다. MCFC 설비를 활용해 90% 이상의 탄소를 포집하는 사업으로 2026년부터 엑슨모빌의 제조공장에서 운영될 예정이다.
이는 북해의 로테르담항에서 진행 중인 ‘포르토스(Porthos) 프로젝트’와도 관련이 있다. 포집한 탄소는 해안에서 20km 남짓 떨어진 해상의 폐가스전에 주입된다. 포르토스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정부가 20억 유로(약 2조9,700억 원)를 투자하는 사업으로 엑슨모빌 외에도 로열더치쉘, 에어리퀴드, 에어프로덕츠 등이 참여하고 있다.
노을그린에너지, 신인천빛드림 연료전지단지에는 20MW급 MCFC 모듈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제품은 모두 FCE에서 새로 개발한 7년짜리 제품이다. FCE는 서비스팀을 꾸리고 2018년 6월부터 한국남부발전이 1단계 사업으로 조성한 신인천빛드림 연료전지단지의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해왔다.
“우리(경기그린에너지) 쪽 기술운영팀 직원들이 가서 점검을 다 했어요. 발전용 연료전지는 운전 온도가 높을수록 효율이 좋죠. FCE가 스택의 열화 문제를 잡아서 보증만 제대로 한다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습니다. 이번 계약이 FCE에도 큰 도움이 되고, 내년을 기점으로 경기그린에너지가 적자를 딛고 재도약하는 전환점이 될 겁니다.”
한 회사를 이끄는 수장에게 ‘적자’라는 말보다 무서운 말은 없다. 경기그린에너지는 한수원의 자회사다. 김대영 대표는 “솔직히 손해도 많이 봤고 지금도 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새 모듈이 들어오면 발전량이 늘면서 사업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스팀을 필요로 하면서 바이오가스를 연료로 쓰고 싶어하는 발전사업자에 MCFC는 분명한 이점을 제공한다. 포스코에너지와 법적 공방을 벌이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은 측면이 있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노란 페인트칠이 된 철제 난간을 잡고 연돌이 비쭉 솟은 발전단지를 바라본다. 단조로운 패턴이 상념을 부른다. FCE는 포스코에너지와 갈라섰고, 그동안 자립을 모색해왔다. 경기그린에너지와 맺은 이번 계약은 그 홀로서기의 자신감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계기가 된다.
시장의 신뢰를 얻는 길은 스스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FCE가 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