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경제자유구역 평택 포승(BIX)지구에 들어서자 파란 색유리를 단 반듯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든다. 딱 봐도 새 건물이다. 수소의 원자량 1.0079, 헬륨의 원자량 4.0026이 담긴 정사각형 로고 앞에서 주종흥 총괄부사장이 인사를 한다.
“지난해 9월에 준공식을 했어요. 따끈따끈한 새 건물이죠. ‘하이리움(Hylium)’이 영하 253℃가 넘는 극저온 환경에서 액체가 되는 대표 물질인 수소(Hydrogen)와 헬륨(Helium)의 합성어예요. 회사의 정체성을 담은 로고라 할 수 있죠.”
본사 건물 뒤로 2개의 공장동이 보인다. 하나는 액화수소탱크를 만드는 곳이고, 하나는 액화수소 운반용 탱크트레일러와 관련이 있다. 2공장 옆으로 툭 튀어나온 세미 갠트리 크레인 밑에는 액화수소탱크와 액화질소탱크가 우뚝 서 있다.

평택에 들어선 신사옥과 새 공장
하이리움산업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책임연구원이었던 김서영 대표가 2014년 8월에 설립한 벤처기업으로 올해 10주년을 앞두고 있다. 2017년에 세계 최초로 액화수소드론 비행에 성공했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세계 최초로 이동식 액화수소충전소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서영 대표는 이날 자리에 없었다. 미국에서 열린 ‘ACT 엑스포’에 맞춰 라스베이거스로 출장을 가 있었다. 대신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수소트럭용으로 이번에 새로 개발한 액화수소탱크(HYFT 600) 옆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600리터 용적으로 약 40kg의 액체수소를 채울 수 있다.

“포스코에서 액화수소 전용으로 개발한 고강도 스테인리스강인 316LH를 소재로 하고 있죠. 무게 배분을 위해 수소트럭 양쪽에 하나씩 장착해서 총 80kg의 수소를 저장하게 됩니다. 고강도 소재라 두께를 더 얇게 가져갈 수 있어요. 같은 용량의 탱크를 15% 이상 더 가볍게 만들 수 있죠.”
하이리움은 포스코와 STS316LH, 티타늄(Ti)을 적용한 액화수소 저장탱크 개발에 나서기로 지난 4월 24일에 업무협약을 맺었다. 올해는 액화수소탱크 제작, 실증실험을 추진하고 내년부터 선박용 액화수소 화물창 실물모형 제작에 나서, 오는 2027년에는 선박용 액화수소 화물창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게 된다.
“포스코에서 티타늄도 생산하고 있어요. 티타늄은 무게가 스테인리스의 절반으로 가볍기 때문에 비행용 액화수소드론에 이점이 크죠. 내식성도 좋고 강도도 높아서 항공용으로 적합합니다. 다만 소재에 맞춘 부품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죠.”
하이리움은 액화수소탱크 전문 제작사다. 창업 이후 꾸준히 모빌리티용 액화수소탱크 개발에 매진해왔다. 미국 UAM(도심항공교통) 기체 개발사인 알라카이(Alakai), 프랑스 툴루즈의 국립고등항공우주학교인 ISAE Supaero, 영국의 무인선박 개발사인 아쿠아오션(Acua Ocean), 이스라엘의 무인기 개발사인 IAI 등에 액화수소탱크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

“세계 최고의 항공우주학교로 통하는 ISAE의 액화수소드론 개발에 참여하고 있어요. 이 기체로 세네갈 다카르에서 브라질 나탈까지 남대서양을 횡단하게 되죠.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와도 인연이 깊었던 장 메르모즈(Jean Mermoz)가 처음 개통한 길입니다. 바로 이 3,300km의 하늘길을 연료전지드론으로 횡단하게 되죠.”
대서양 횡단 100주년을 기념한 액화수소드론 비행 이벤트라 할 수 있다. 드론의 운항거리를 이 정도로 늘리려면 액화수소를 쓸 수밖에 없다. H3 Dynamics의 연료전지에 하이리움의 액화수소탱크와 연료공급시스템을 통합하게 된다.
“프랑스 현지에서 액화수소 시험을 할 수 없다 보니 ISAE Supaero의 연구원 두 명이 본사를 찾아서 제반 테스트를 진행하고 논문까지 작성했죠. 현재 3리터에서 8만4,000리터 규모의 다양한 액화수소탱크를 이곳 평택에서 제작하고 있어요. 8만4,000리터면 6톤의 액체수소를 담을 수 있죠.”
주종흥 부사장을 따라 1공장을 돌아본다. 탱크의 절단 부위를 그라인더로 다듬는 소리가 공장 안에 울려 퍼진다. 다양한 크기의 탱크가 곳곳에 놓여 있다. 중앙에 세로로 걸린 커다란 태극기도 인상적이다.

액화수소탱크는 통상 내·외조 2개의 탱크로 이뤄진다. 안에 들어가는 내조탱크에 다층단열(Multi Layer Insulation, MLI) 필름을 두껍게 감아 외조탱크와 결합한 후 진공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일종의 보온병처럼 탱크를 이중으로 만들어 단열 성능을 확보한다. 공장 안쪽에 진공을 잡는 공간을 따로 갖추고 있다.
하이리움차트 통해 탱크트레일러 납품
SK E&S가 인천에 액화수소플랜트를 완공하고 최근 준공식을 열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액화수소 운송을 CJ대한통운이 맡고 있다. 바로 이 CJ대한통운에 3대의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납품한 회사가 하이리움차트다.

“하이리움차트는 하이리움산업과 미국 차트인더스트리스(Chart Industries)의 합작회사입니다. 차트 사는 극저온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글로벌 선도기업이죠. 2021년부터 합작 이야기가 나왔어요. 법률 검토에 1년 정도 시간이 걸렸고, 2022년 10월에 공동출자를 통해 하이리움차트가 공식 출범했죠.”
이곳 평택 포승지구에 새 공장이 들어선 계기는 이와 관련이 있다. 평택 신사옥과 별도로 기존 오산 공장에는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을 위한 생산라인을 비롯해, 액화수소드론의 조립과 시험에 필요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2공장에 들어서자 효성 로고를 단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가 첫눈에 든다. 효성은 린데와 손을 잡고 울산 용연3공장에 연 1만3,000톤 규모의 액화수소플랜트를 짓고 있다.

“효성하이드로젠에서 발주한 두 기의 탱크트레일러가 이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분으로 세 기가 더 들어와 있죠. SK E&S, 효성중공업, 두산모빌리티(하이창원) 이렇게 세 곳에서 액화수소플랜트를 구축하기로 했는데, SK와 효성은 레퍼런스, 즉 납품과 운영 실적이 있는 탱크트레일러 업체만 받기로 했어요. 차트 사가 마침 액화수소를 다룬 경험이 있는 국내 파트너를 찾고 있던 터라 서로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셈이죠.”
미국에서 운영하는 차트 사의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는 4톤급이지만, 국내는 3톤급이다. 국내 도로교통법에 따라 탱크의 길이와 폭을 제한하면서 크기가 조금 줄었다. 탱크트레일러의 길이는 13m, 폭은 2.5m, 전고는 4m 이내로 맞춰야 한다.
“탱크트레일러의 섀시, 쇼크업소버, 브레이크는 국내 구성품을 반영했어요. 국내에서 운영이 되는 만큼 유지보수를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 외에는 차트 사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차트인더스트리스에서 제작한 탱크트레일러를 살펴본다. 지난 수십 년간 현장 운행 경험에서 나온 문제점을 보완한 최적의 설비라 할 수 있다. 녹색의 긴급차단밸브만 해도 2개가 장착되어 있다. 밸브, 배관 하나하나마다 잔류 수소를 내보낼 수 있는 퍼징(purging)·벤팅(venting) 라인, 안전밸브를 별도로 갖추고 있다.

“국내 도로교통법에 맞게 제작한 제품이죠. 탱크에 실을 수 있는 액화수소의 최대용량이 3.1톤입니다. 튜브트레일러로 운송하는 기체수소의 양은 많아야 250kg이죠. 액화로 가면 회당 운송할 수 있는 수소량이 열 배 이상으로 확 늘어나요. 저장 공간, 설비 충전에 드는 효율도 무시할 수 없죠. 기체수소에서 액체수소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국내는 SK E&S(IGE), 효성중공업(효성하이드로젠), 두산에너빌리티(하이창원)를 합쳐 하루 120톤 정도의 액화수소를 생산하게 된다. 이 정도 물량을 운송하려면 최소 80대의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가 필요하다.
디앨, 크리오스 같은 국내 업체가 하이창원과 연계한 기술개발 과제로 3톤급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개발하고 있지만, 실제로 액화수소를 채워서 운송하고 문제점을 보완해서 선진 기술을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국산화로 가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액화수소 사업, 선제적 규제완화가 관건”
하이리움은 기체수소충전소 구축사업도 벌이고 있다. 2021년부터 평택의 평화 수소충전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제주도 1호 충전소로 유명한 함덕 그린수소충전소를 구축하기도 했다. 특히 제주 도내 가스공급 업체로 유명한 ‘천마’와 업무협약을 맺고 LPG충전소 부지에 복합으로 수소충전소 2기를 구축할 예정이다.
“그동안 대전, 부산 등 네 곳에 기체수소충전소를 수주해서 구축을 완료했어요. 하지만 액화수소충전소 같은 경우에는 니키소(Nikkiso CE&IG)와 린데라는 외국계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죠. 충전소에 들어가는 액화수소탱크는 4톤급입니다. 이 기술은 우리가 확보하고 있죠. 가장 중요한 액화수소펌프가 문제입니다. 시간당 30kg 정도의 유량으로 800바(bar) 과압에는 성공했어요. 하지만 상업용으로 가려면 시간당 100kg, 150kg의 유량이 기본입니다.”
지난 4월 인천에 정식으로 개장한 ‘가좌 액화수소충전소’는 시간당 120kg의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하루 평균 120대의 수소버스를 충전할 수 있는 시설로 ‘니키소 씨이앤드아이지코리아’에서 구축했다.
이 충전소 구축에 들어간 돈만 70억 원이다. 이중 60%인 42억 원을 국비에서 지원받았다. 주종흥 부사장은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액화수소펌프의 국산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하이리움 하면 수소드론이 맨 먼저 떠오른다. 지난해 8월 독일 에센(Essen)시에서 열린 ‘제22회 독일 에너지의 날’에 초청을 받아 수소드론 시험 비행을 진행했다. 시연 장소의 제약 때문에 기체수소를 활용해 2시간을 비행했다.

“유럽에서 수소드론을 처음 비행한 사례라고 들었어요. 같은 기체라도 액화수소탱크를 달면 비행시간을 서너 배로 크게 늘릴 수 있습니다. 4월 5일에 공인인증기관인 KCL(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입회 하에 이곳 평택에서 6시간 44분 비행 인증에 성공했죠.”
주종흥 부사장이 당시 찍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준다. 타이머는 6시간 38분을 가리키고 있다. 하이리움의 드론은 HyliumX라는 브랜드를 달고 있다. 6개의 프로펠러를 단 헥사(Hexa) 모델인 HyliumX-H로 이뤄낸 성과였다. 이 모델은 우리나라 육군의 아미타이거(Army TIGER)에도 납품이 됐다.

하이리움은 상하에 6개씩 총 12개의 프로펠러를 단 도데카(Dodeca) 모델도 생산한다. 12개의 프로펠러를 단 HyliumX-D는 바람에 강해 해상풍력단지 같은 곳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드론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티타늄탱크를 적용하고 있다.

하이리움은 드론의 비행 관제, 회수, 충전 기능 등을 갖춘 이동관제센터 차량도 개발했다. 두 직원이 공장 앞마당에 검은색 밴 차량을 세워놓고 관제 모습을 시연한다. 드론의 위치를 담은 지도, 카메라에 잡힌 영상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뜬다.

“방폭 시설이 된 짐칸에 액화수소탱크를 넣고 다니며 수소를 충전할 수 있어요. 아직은 법규 미비로 사용이 어렵지만, 인증이나 제도가 서둘러 정비가 되어서 사업화에 나서는 기반이 빨리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해는 액화수소가 상업 규모로 국내에 처음 유통되는 ‘액화수소 원년’이다. 규제 앞에는 장사가 없다. 액화수소용 안전밸브 승인만 해도 대기업이 액화수소플랜트 사업에 진출하면서 빠르게 풀린 셈이다.
“규제자유특구 사업을 통해 검증하려고 했던 액화수소에 대한 안전관리 규정 제정이 계속 미뤄지다 대기업의 액화수소플랜트 사업 진출로 제정이 됐어요. 대기업의 참여 덕에 일이 빠르게 풀린 게 사실이죠. 반대로 힘든 점은 사업 실적이 없는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하지 않다 보니 액화수소플랜트나 충전소, 관련 저장용기, 탱크트레일러 사업에 국내 기업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분을 앞으로 풀어야 하는 숙제로 안고 있죠.”
국내 액화수소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수소충전 분야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하이리움산업도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신사옥 본관동은 다시 봐도 반듯하다. 선로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기차의 앞머리를 닮았다. ‘액화수소 원년’에 하이리움은 다시 출발선에 섰다. 미래의 10년을 어떻게 그려갈지가 새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