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업계는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해법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와 재정적 한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수소 수요 증가에 대비한 대규모 수소저장 인프라와 수소생산 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저장·활용하는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지만 그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수소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제시됐다. 광산, 지하 등 땅속을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 7월 2일 한국자원공학회는 서울대학교에서 ‘제2회 하계특별심포지엄’을 열고 지질학을 기반으로 수소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해법을 공유했다.
대량 수소, 지하에 저장
먼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대용량 수소 지하저장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대량의 수소를 지하에 안전하게 저장하는 기술을 확보하고 한계를 보이는 지상저장기술을 대체하기 위함이다.
정부가 지난 2019년 1월에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르면 2040년 국내 수소 수요량은 약 526만 톤이며 이 중 약 260만~300만 톤은 수입에 의존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국가 에너지 수요의 20~30%(약 85만~130만 톤)을 비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량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박의섭 방폐물심층처분연구센터장은 “국내에서 생산된 수소나 수입된 수소를 실제 전환 수요가 발생할 때까지 저장할 수 있는 대용량 저장기술이 필요하다. 대용량 저장기술을 보유하면 공급 안정성, 변동성 제한, 에너지 안보 확립 등을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대용량 저장인프라를 지상에 구축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유류비축기지처럼 땅속에 구축하면 대량의 수소를 충분히 저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지하저장 인프라는 초기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요되나 원하는 만큼의 저장용량을 확보할 수 있어 경제성이 우수하고 지상 면적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부지 활용성이 높다.
예를 들어 원유는 저장규모가 약 89만m³ 이상일 경우 지하에 저장하는 것이 유리하며 저장규모가 320만m³이면 경제성이 지상저장 인프라보다 15%가 더 높다. 여기에 재난, 재해 등 외부 위험요인으로부터 보호하기가 쉽고 예기치 못한 사고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 영향이 적기 때문에 액체수소 등 초저온 액체물질의 BOG를 관리하기가 지상저장 인프라보다 훨씬 수월하다. LNG의 경우 지상저장 인프라와 반지하저장 인프라의 하루 기화율은 0.1%다. 이를 지하저장 인프라로 옮기면 하루 기화율은 0.05%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미국, 네덜란드, 스웨덴,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대용량 수소 지하저장기술을 국가 수소기술 로드맵이나 전략정책에 포함해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웨덴에서 추진되고 있는 ‘HYBRIT 프로젝트’다. 이는 기존 암석동굴을 수소환원제철에 사용될 수소를 저장하는 인프라로 개조하는 것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올해부터 대용량 수소 지하저장기술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하 공동 안정성, 시스템 성능·효율, 장기 재난·안전 대응 등 총 3가지 중점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지하 공동 안정성은 액체수소용 컨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컨테인먼트 시스템은 지하 암반 공동 저장시설에 초저온 액체 상태의 물질을 안전하게 저장하기 위한 핵심 기술로, 암반의 온도 변화로 인한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고 저장물질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격리하는 역할을 한다.
박의섭 센터장은 “LNG용 컨테인먼트 시스템 개발 시 영하 50℃까지 내렸을 때 안전했다. 온도를 영하 150℃까지 낮췄을 때 안정성을 평가하고 T(Thermal, 열)·H(Hydraulic, 수리)·M(Mechanical, 역학) 복합거동 특성화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동 주변부 열전파 특성을 고려한 최적 단열성능 확보기술을 개발하고 설계조건에 따른 BOG 발생량 평가를 통한 최적 효율 설계안을 도출해 시스템의 성능과 효율을 확보한다. 기밀성 유지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시스템 생애주기에 따른 재난안전성 평가과 대응 기술도 개발한다.
이를 통해 대용량 수소 지하저장기술 개발 사업이 완료되는 2030년에 파일럿 플랜트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폐광산, 탄소저장소로 활용
한국광해광업공단은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고체 광물인 탄산염으로 만든 후 이를 폐광산에 넣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공단에 따르면 국내 폐광산은 약 5,000곳이다. 폐광산 1곳당 50만~100만 톤의 탄산염을 주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25억 톤의 제강슬래그를 처리하면 2.5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성광업소, 도계광업소, 화순광업소, 경동광업소, 태백광업소 등 총 5개 석탄광산의 총 지하공간 규모는 1억2,201만m³이며 탄산염을 저장할 수 있는 양은 4,000만 톤이다. 여기에 300여 개의 석회석 광산을 활용하면 총 4억2,250만 톤의 탄산염을 저장할 수 있다. 국내 유일 이산화탄소 저장소인 동해가스전(1,200만 톤)보다 35배가량 큰 규모다.
공단은 이산화탄소로 탄산염을 만들어 폐광산에 주입하면 폐광산 지반침하 방지와 국가 이산화탄소 저장능력 확대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 이산화탄소를 고체 광물인 탄산염으로 만들어 폐광산에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공단이 개발 중인 기술은 수소, 시멘트, 생석회 등을 생산할 때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제철소에서 나오는 제강슬래그, 광산에서 나오는 폐소석회, 소각장에서 나오는 소각재 등 알칼리 폐기물을 반응시켜 탄산염 광물을 만드는 것이다. 만들어진 광물은 폐갱도를 채우는 갱도채움재나 건설자재, 골재의 원료로 사용된다.
그 일환으로 공단은 포스코홀딩스, 카본코, 테크로스 환경서비스, 삼척시 등과 지난해 6월부터 제강슬래그를 이산화탄소와 반응시킨 탄산화 슬래그로 만든 후 이를 폐광산에 충전하는 사업인 ‘이산화탄소 육상저장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강원도 삼척에 있는 도계광업소에 하루 3톤의 이산화탄소를 처리할 수 있는 300톤 규모의 탄산화 슬래그 실증 플랜트를 구축·운영하고 탄산화 슬래그의 유해성과 독성 등을 평가해 장기 안전성을 예측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폐갱도를 활용한 이산화탄소 육상저장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다. 사업 기간은 오는 2027년 12월까지, 사업비는 총 68억 원이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의 박제현 박사는 “이산화탄소를 저감할 수 있는 데다 폐광산 빈 곳이 채워지기 때문에 지반침하방지와 지진취약성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중금속 성분 용출 억제로 지하 수질이 개선되고 침하유도를 막기 때문에 지하수 수위가 상승해 함양율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사업은 환경성 분석, 갱도 공간 분석, 주입 시스템 실증이 완료된 상태다.
박제현 박사는 “탄산화 제강슬래그에 대한 환경성 분석을 먼저 수행했다. 토양오염 기준의 경우 비소, 카드뮴, 아연 등 중금속 배출량이 일반 제강슬래그보다 낮거나 비슷했다. 폐기물오염기준에서는 중금속이 검출되지 않거나 낮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탄산염을 주입할 갱도의 공간을 분석했다. 특수장비로 갱도를 스캔한 후 데이터를 분석·결합·수정해 매칭한 데이터로 3D 캐드를 제작해 체적량을 산출했다. 그 결과 갱도 길이는 총 4.9km로, 체적량은 24만7,000㎥로 나타났다. 이 중 탄산화 슬래그 충전소로 선정된 구역의 체적량은 500㎥로, 목표 충전량인 300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름이 75mm인 PE배관을 500m 설치한 후 슬래그를 물과 혼합해 압송했다. 그 결과 1분당 토출량은 230L이며 10bar로 약 1.5km까지 압송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천연수소 매장 가능성 확인
한국석유공사는 천연수소가 국내에 있는지 탐사하고 있다.
천연수소는 지구 지각 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수소로, 지난 1888년부터 천연수소를 발견했다는 기록이 여럿 나왔으나 정보, 기대감, 관심이 전혀 없어 천연수소인지 몰랐던 데다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를 채굴하기 위한 개발과 연구에 집중하고 있어 소수의 과학자를 중심으로 연구됐을 뿐 개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12년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천연수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천연수소를 찾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석유공사가 지하에 부존된 천연수소를 탐사하기 위해 2022년부터 관련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국내 지질자원 정보를 제공하는 ‘지오빅데이터 오픈 플랫폼’을 활용해 지질도/단층, 지열류량, 지온경사, 열전도도, 광산정보 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표, 지하수 관측공, 온천수 취수공 등 3개 장소에서 직접 개발한 ‘천연수소 탐침장치’로 천연수소 탐사를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천연수소가 △지각과 맨틀에서 나오는 심층수소의 탈가스화 △물과 초염기성 암석의 반응 △지구 맨틀에서 환원제와 물의 접촉 △새로 노출된 암석 표면과 물의 상호작용 △광물 구조 내 하이드록실 이온의 분해 △물의 자연 방사선 분해 등을 통해 생성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 물과 초염기성 암석의 반응은 지구 맨틀을 구성하는 감람석 등 철분이 풍부한 광물과 물이 일련의 고온 반응을 통해 수소를 생성하고 수소는 지각을 통해 침투해 일부는 지표면 아래에 축적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표의 경우 전국 266개 지점에서 천연수소를 탐사, 8개 지점(1m 이내 심도)에서 이상신호가 나타남에 따라 1주일 이상 모니터링했으나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이어 충청, 강원, 경북 등에 있는 26곳의 지하수 관측공(10m 내외 심도)과 15곳의 온천수 취수공(50~100m 심도)에서도 탐사를 진행, 3곳의 온천수 취수공에서 최대 400ppm 농도의 천연수소가 감지됐다.
한국석유공사의 이태국 박사는 “400ppm이 측정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농도가 유지되는 것이다. 1시간 동안 측정한 결과 400ppm이 유지됐다”라며 “400ppm이 측정된 충주지역엔 철광상(40% 이상의 철분을 함유한 광상)이 다수 있다. 철이 물과 반응해 산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괴산-보은-옥천-대전 서남부를 잇는 옥천누층군엔 탄질 흑색 점판암(금속광물이 농집된 암석)이 있다. 점판암 내부에 있는 우라늄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석유공사는 이를 바탕으로 국내 천연수소 탐사 초기모델을 정립하고 관심 있는 산학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국책 연구과제로 선정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이어 정밀탐사를 통해 시추 대상을 선정하고 시추를 진행한다. 시추를 통해 경제성 등을 평가해 시범사업을 제안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