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에도 ‘남방한계선’이라는 말이 있다. 휴전선의 남쪽 한계선을 취업 시장에 빗댄 말이다. 취준생들은 수도권의 특정 지역 남쪽을 선호하지 않는다. “사무직은 성남의 판교신도시, 기술직은 용인시 기흥구를 남방한계선으로 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수소 기업은 채용 수요가 있지만, 마땅한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구직자들은 수소산업에 어떤 업체들이 들어와 있는지 뚜렷한 상이 잡히지 않아 고민이다. 해결책은 결국 이 둘을 한자리에 초대하는 일이다.
한국수소연합은 지난 2월 27일, 28일 이틀에 걸쳐 ‘제1회 수소산업 채용박람회’를 열었다. 서울 서초구 aT센터 5층 그랜드홀에서 열린 채용박람회 현장을 찾았다.

20개 기업 부스 열고 ‘다이렉트’ 취업 상담
이번 행사는 수소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국내 우수인력의 수소 시장 채용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됐다. 오전에는 인재양성포럼이 포함된 수소 세미나가 열렸고, 오후에는 기업(기관)의 담당자가 나와 회사 홍보에 이어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홀의 중심에는 채용기업 부스도 마련했다. 동아퓨얼셀, 미코파워, 범한퓨얼셀, 빈센, 제아이엔지, 지필로스, 하이리움산업 등 20개 부스를 마련해 대학생, 취준생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수전해시스템 제작사인 하이젠테크솔루션, 수소산업 인증기관인 에스지유 한국지사, 수소충전소용 냉각기 전문회사인 삼정이엔씨도 이름을 올렸다. 항공용 수소연료전지 개발사인 ‘하이드로젠 버터플라이’도 참가했다. 경남 김해의 차량용 수소발생기 제작사인 캠프티는 부스에 제품을 설치해서 구동 모습을 시연하기도 했다.

수소 기업들은 전문인력 채용을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소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재가 필요하다. 한국수소연합은 지역별 수소 기업의 기초인력 및 산업맞춤 전문인력 육성을 위해 총 13개 대학에 67억6,000만 원을 지원했다.
한국수소연합의 황윤주 실장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교육부, 산업부와 함께 13개 대학에 지역맞춤형 인재양성을 위한 수소교육과정 개설을 지원했다”라며 “올해까지 총 358명의 학사, 석·박사 수소인력이 양성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게 된다. 이번 박람회는 이런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국내 수소 기업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국내 최초 수소분야 특성화고인 수소에너지고등학교의 송현진 교장이 참석했다. 완주지역 공업계 고등학교인 전북하이텍고가 올해부터 수소에너지고로 운영된다. 수소융합과 실습동에 연료전지스택 제조실, 수전해·수소추출실, 수소공급설비실 등을 마련하고 관련 수업을 진행한다.

전주와 완주에는 현대차, 일진하이솔루스, 덕산에테르씨티, 비나텍, 오피모빌리티 등 연관 기업이 많고, 지난 2008년부터 ‘수소연료전지 지역혁신센터(RIC)’를 운영하고 있는 우석대학교도 자리하고 있다. 취업과 연계한 수소전문인력 양성에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신입 대 경력’ 비율은 7대 3
한국수소연합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위탁을 받아 수행한 ‘2024년 수소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별 사업체 수는 경기도(27.3%)가 가장 많고 서울특별시(9.0%), 경상남도(7.9%), 부산광역시(7.1%), 울산광역시(6.8%)가 그 뒤를 이었다.
기업체 규모 면에서는 중소기업 비중이 70%로 가장 높았고 중견기업(14.8%), 기타(7.8%), 대기업(7.5%) 순으로 나타났다. 또 수소산업 매출액은 1억 미만이 41.4%로 가장 많고, 1억~10억 미만(33.2%), 10억~100억 미만(18.3%), 100억 이상(7.2%) 순으로 조사됐다.

취업 시장도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매출액 10억 미만 사업체 비중이 75% 정도로 높다는 것은 수소산업이 여전히 초기 단계라는 점을 대변한다. 일정 규모를 갖추고 산업적인 성장을 이루려면 민간의 꾸준한 기술개발, 투자가 요구된다. 또 인프라 확보를 위한 제도적인 기반, 정부의 정책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수소산업실태조사에 응한 2,302개 사업장의 업무분야별 종사자 수를 보면, 기술기능직이 2만4,377명으로 가장 많고 관리직(5,014명), 연구개발직(4,105명)이 그 뒤를 이었다. 또 2023년 한 해 수소분야 신규채용 인원은 900명이었고, 이 중 신입직은 604명(67.1%), 경력직은 296명(32.9%)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만난 안종석 취업컨설턴트는 “수소산업의 경우 실제로 중소기업 구인 비율이 높고 신입을 뽑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태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3년 신규채용자 중 ‘신입 대 경력’의 비율은 7대 3에 가깝다.

안종석 컨설턴트는 “대기업, 중소기업, 공기업 중에서 선호하는 업종을 먼저 정하고, 유형별로 5개 정도의 업체 리스트를 뽑아볼 것”을 권했다. 이런 방식으로 범위를 좁혀가야 본인에게 맞는 일자리를 빨리 구할 수 있다.
“중소기업 인사담당자의 경우 학과 성적보다는 구직자의 태도나 자세를 높게 볼 때가 많아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사표시, 태도가 매우 중요하죠. 그에 반해 대기업은 전문성을 갖춘 경력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용규 E1 수소팀장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채용설명회 자리에서 “수소산업은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라 당장의 성과보다는 꾸준한 열정을 강조하는 구직자가 더 매력적”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은 ‘수소기술 사관학교’
이틀 동안 열린 채용박람회 기간 동안 5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일대일 취업컨설팅을 비롯해 AI 기술을 접목한 모의면접, 전문 강사의 취업특강이 열렸다. 또 네컷사진 부스, ‘수소’ 2행시 짓기 이벤트도 인기를 끌었다.

둘째 날인 2월 28일에 열린 채용설명회에는 현대자동차가 참여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모든 계열사의 수소에너지 사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인 에너지수소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이는 수소전기차 개발·생산과는 별개로 수소의 생산과 저장·운송 등 수소산업 생태계 전반을 활성화기 위한 총괄 조직이라 할 수 있다. 현대제철이 수소생산을 맡고, 현대글로비스가 운송부문을 맡는 등 계열사 간 수소사업 조정자라는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밖에도 수소연료전지, 수소엔진을 건설기계 분야에 접목하고 있는 한국건설기계연구원, 수소 연구개발(R&D) 사업에 특화된 고등기술연구원, 수소안전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가스안전공사도 채용설명회에 나섰다.
실제 기업의 채용 수요는 대기업, 연구소보다 중소기업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린수소 생산에 최적화된 P2G(Power to Gas) 솔루션 전문기업 지필로스의 부스를 찾았다. 엄규문 상무는 “수소 실증 과제를 마치고 나면 연구 인력은 다른 프로젝트로 투입되고, 이 현장을 운영하기 위한 서비스 인력이 필요해진다”라며 “채용 수요는 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턴 제도는 비정규직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구직자들이 선호하지 않아요.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신입을 뽑고 교육을 통해 전문인력을 길러내게 되는데, 일이 손에 익은 2, 3년 차 경력직 직원들이 대기업이나 경쟁 업체로 빠져나가면 또다시 인력을 충원해서 교육하는 일을 되풀이하게 되죠. 중소기업이 ‘수소기술 사관학교’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이런 부분에 도움이 되는 별도의 (기업용) 교육비 지원사업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한국수소연합도 이 점에 대응하고 있다. 채용박람회 행사에 맞춰 국내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수소인적자원개발협의체’를 발족하고 의견을 모아갈 생각이다. 수소산업 인력수급분석, 수소교육 프로그램 개발, 수소산업 분야 국가직무능력표준 NCS 과정 설계, 자격개발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