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수소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나섬에 따라 청정수소를 중심으로 수소시장 규모가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IEA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연간 9,500만 톤으로 추정되는 세계 수소 시장규모(수요)가 2030년까지 매년 6%씩 성장해 연간 1억5,000만 톤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딜로이트는 2023년 보고서에서 2030년 청정수소 시장규모를 1억7,000만 톤(연간 6,420억 달러)으로 예측했으며, 이후 2050년까지 약 6억 톤(연간 1조4,000억 달러)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청정수소 수요도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가 2021년 11월에 발표한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서 2030년 국내 수소 수요가 390만 톤으로 추정되었는데,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198만 톤을 해외에서 생산해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3년 1월에 확정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0년 수소 29만 톤(6.1TWh), 암모니아 289만 톤(6.9TWh), 2036년 수소 126만 톤(26.5TWh), 암모니아 876만 톤(20.9TWh)의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발전용 수소 전량을 암모니아 형태로 해외에서 수입하면 2030년 청정암모니아 해외 도입 규모는 약 500만 톤 이상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확정한 ‘청정수소 생태계 조성방안’을 통해 암모니아·액화수소 인수기지 구축 등 해외 청정수소·암모니아 도입 인프라 구축 방향을 제시했다.
이처럼 전 세계의 수소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수소가 국가 간 교역상품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실제로 사우디 등 기존 중동 산유국뿐만 아니라 호주, 러시아, 캐나다, 칠레 등의 국가들이 수소 수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실 수소는 에너지원이라기보다는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된 다른 에너지를 전기나 열 등 최종에너지로 전달하는 에너지 전환과정의 에너지 운반체로서 구리전선, 배터리 등과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다”라며 “특히 전기나 열 등 최종에너지를 대규모로 저장해 장거리로 운송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국제 수소경제가 활성화되면 이러한 수소의 능력이 진가를 발휘해 새로운 에너지 교역상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장기적으로 에너지 교역 패턴이 석유나 천연가스 주산지인 중동 중심에서 호주나 사하라 내륙 사막 등 재생에너지 주산지 중심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에너지 교역 패러다임 변화 전망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는 배경이다. 국회에서 큰 관심을 보이는 사안이다.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논의 재점화
안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국회수소경제포럼은 2024년 12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제수소거래소 설립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실 수소거래소에 관한 국회 토론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1년 11월 이원욱 전 의원과 윤후덕·이학영 의원이 ‘국제수소거래소 구축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이원욱 전 의원이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2021년 11월 8일)했지만 제21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자동 폐기되었다.
이들 토론회에는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이종영 중앙대학교 교수가 발제자로 참석했다.
김재경 선임연구위원의 발제에 따르면 에너지 상품시장은 크게 ‘실물시장’과 ‘파생상품시장’으로 구분된다.
‘실물시장’은 시장참여자가 전화 등의 통신수단을 이용해 쌍방 간 계약을 체결하는 추상적 개념의 시장으로, ‘현물거래’와 ‘기간계약’이 있다.
‘파생상품시장’은 가격변동 위험을 회피하거나 투기적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데, ‘장내거래’와 ‘장외거래’로 구분된다. 장내거래는 구체적 장소(거래소)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장소적 개념으로, 석유의 경우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와 영국 대륙간거래소가 대표적이다. 장외거래는 실물시장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개념이다.
특히 장내 선물시장은 불확실한 미래 실제 가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헤저(hedger)를 통해 가격변동 위험을 투기적 거래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고평가 상품 매도 저평가 상품 매수 차익거래를 통해 가격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이미 석유와 천연가스의 국제거래시장은 성숙 단계에 있다.
1882년에 설립된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는 초기에 버터, 치즈, 달걀, 과일 등의 농산물을 거래한 이후 점차 거래품목을 확대해 1983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을 상장했다. 미주지역 기준 원유이자 대표적 저유황 경질유인 WTI 선물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거래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장내 원유선물로 인정받고 있다.
영국 대륙간거래소(ICE)는 1988년 브렌트유 선물을 상장한 국제석유거래소에서 출발했다. 대륙간거래소가 국제석유거래소를 인수한 것이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기준 원유이자 북해의 브렌트 유전에서 생산되는 저유황 경질유인 브렌트유 선물은 2000년대 들어 거래량이 큰 폭으로 증가해 WTI 선물과 더불어 세계적인 원유 선물계약으로 성장했다.
두바이상업거래소(DME)는 아랍에미리트 국영 두바이홀딩스와 뉴욕상업거래소가 각각 50%씩 출자해 2007년에 설립했다. 두바이유와 오만유 선물계약으로 중동과 아시아 선물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다. 아직은 글로벌 벤치마크 원유가 아닌 로컬 선물계약으로 인식되어 있다.
2016년부터 원유 선물거래를 시작한 상하이선물거래소(SHFE)는 고유황 중질유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있고, 거래통화를 달러화가 아닌 위안화를 채택한 게 특징이다.

천연가스의 경우 미국과 유럽의 가스허브가 대표적이다. 1990년 뉴욕상업거래소에 헨리허브(HH) 가격 기준 선물시장이 개설되었다. 약 40개의 가스허브 가스시장 지표를 근거로 다양한 금융 파생상품(선물거래, 스왑, 옵션 등)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유동성이 높은 헨리허브(루이지애나) 가격 벤치마크를 가격지표로 활용한다.
유럽은 북서지역에 영국 NBP 등 8개의 가스허브가 운영 중인데, 영국 NBP와 네덜란드 TTF가 유럽 내 가스허브의 중심이다. 아직 선물거래는 영국 NBP에 한정해 영국 대륙간거래소에 상장되어 NBP 가격이 유럽 천연가스 가격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석유와 천연가스는 국제거래소를 통해 적정 벤치마크 가격(WTI, 브렌트 등)까지 도출해 국제거래에 활용되는 체계에 이미 도달했다”라며 “특히 석유 국제거래소를 보유한 지역은 단순한 거래소를 넘어 석유와 석유제품의 저장·거래와 관련된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오일허브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 청정수소발전 입장 시장이 개설됨에 따라 발전사업자들은 청정수소·암모니아 공급자들과 최대 15년 정도의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석유·석탄·천연가스 등 기존 발전용 연료 거래시장과 달리 국제적인 청정수소·암모니아 거래시장이 아직 미성숙 단계라는 점이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밝혔다.
청정수소·암모니아의 상업적 국제거래 사례가 매우 드물고, 향후 거래에 참여하게 될 시장참여자들의 숫자도 제한적이라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발전사업자는 청정수소·암모니아 조달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최대 15년까지 장기계약에 묶이는 위험을, 청정수소·암모니아 공급자는 전력시장에서 계획대로 청정수소·암모니아가 다 팔리지 않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라며 “근본적으로는 청정수소·암모니아의 국제 거래가격이 불명확해질 수 있다. 아직은 충분치 않은 시장기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제도화를 통한 정식 거래소를 구축해 가격 책정에 참고할 기준가격을 산출, 공표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제적으로 국제수소거래소 설립해야”
이미 해외에서는 발 빠르게 수소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에너지거래소(EEX) 에 세계 최초로 수소거래소를 개설할 예정이다. 수소 거래시장에는 철강, 금융 등 유럽 내 50여 개 회사가 참여한다. 독일은 수소전략 개정을 통해 수소 수요의 50~60%를 수입하기 위한 수소거래소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2028년부터 수소 거래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EX는 2022년에 수소 인텍스(HYDRIX)를 개발하고, 2023년 5월부터 최초로 글로벌 시장 기반 수소 인텍스(기준가격 지수)를 매주 발표 중이다.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와 가스유통공사 Gasunie, 로테르담 항만공사 등이 참여하는 ‘HyXchange 프로젝트’를 통해 수소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네덜란드 내 수소 거래 플랫폼에 적용할 수소 인증 시스템 구축 작업을 진행 중이며, 향후 정식 수소거래소로 확대해 비유럽 국가를 아우르는 글로벌 거래소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다.
중국은 2022년 8월에 발표한 ‘상해 자유무역시험구 린강신구 수소에너지 산업 발전 지원에 관한 정책’을 통해 린강신구에 수소 거래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천명했다. 상해시에 해외 수소 수입·운송 전용 부두를 건설하고 동아시아 수소무역거래센터를 설립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김재경 선임연구위원은 “시작 단계인 청정수소 국제교역도 석유·천연가스 국제교역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기에 국내에 수소·암모니아 국제거래소 설립을 추진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며 “국제수소거래소 설립은 한국이 수소 국제거래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으로, 이를 통해 탄소중립 시대 새로운 에너지교역 중심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수소·암모니아를 포함한 국제 상품거래소는 대규모 자본을 가진 국제 트레이딩 업체를 모을 수 있는 항만, 금융기관 등이 집적화될 수 있는 입지와 국제비즈니스센터와 같은 랜드마크 내 입주가 필요하다”라며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가능지역을 국제비즈니스 특구로 전환해 서비스형 외국인 투자지역으로 지정하고 국제수소거래소법을 다시 발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른 전문가와 유관기관 관계자도 국제수소거래소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체계적인 준비를 당부했다.
이홍기 한국수소및신에너지학회 회장(우석대학교 교수)은 “거래소의 위험성과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가격지표를 유지하기 위해 청정수소의 공급량을 지속 확대하고 거래량에 대한 가격지표의 신뢰성과 기술적 우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 제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희두 한국석유관리원 수소유통관리센터장은 “안정적인 수소공급망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수소 가격 투명성과 거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소거래플랫폼 운영이 필요하다”라며 “수소거래소의 안정적인 정착과 운영을 위해선 수소거래량 활성화가 필수적이고, 관련 인프라 구축, 정책지원, 규제개선 등이 선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유관기관 협력체계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수송용 수소유통전담기관인 한국석유관리원은 전자상거래 기반의 온라인 수소거래플랫폼을 구축 중으로, 올해 베타테스트를 실시할 예정이다. 수소 거래시장 확대에 대비한 시스템 개발로 미래 시장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서 처음으로 국제수소거래소 설립을 언급한 바 있다. 2023년에 국제수소거래소를 설립해 수소 기준가격으로서 역할이 가능한 물량 확보를 위해 국내 생산자-구매자 간 거래가격(2023년)과 해외수소 국내 도착기준 가격을 공시(2027년 이후)하고, 2030년부터는 글로벌 주요 경로 거래가격, 수송수단(액화수소·암모니아·메탄올·메탄 등) 등에 따른 다양한 수소종류별 공시를 통해 글로벌 인덱스화해 국제 거래플랫폼을 운영한다는 계획이었다.
완주군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최적지”
현재 전북 완주군이 국제수소거래소 설립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 완주군은 대규모 재생에너지단지가 구축되는 새만금을 수소허브로 하고, 전북혁신도시 완주군 일원에 국제수소거래소를 설립한다는 계획으로, 한국전력거래소, 국제금융센터, 한국석유관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거래소 등의 관계자들과 수소거래소 설립 방안을 논의해왔다. 올해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구상 본용역을 실시하는 한편 정부와 국회를 대상으로 건의 활동을 지속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지난 2022년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50년 수소무역 구도(수입·수출·자급자족) 전망에서 한국을 독일, 일본과 함께 최대 수입국 중 하나로 분류했다. 청정수소의 국제교역과 거래가 본격화되면 청정수소 국제 인증 분야 선점과 금융상품 개발 등을 통해 수소의 현물·선물거래를 위한 국제수소거래소의 필요성은 더욱 대두될 것”이라며 “수소경제 선도국을 표방하는 한국이 글로벌 수소무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국제수소거래소 설립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송민호 완주군 수소신산업팀 정책관은 “완주군은 새만금 신항과 공항 등이 건설되고 금융도시 재지정과 국제금융센터 건립 등이 추진되면 수소의 현물거래를 할 수 있는 수소무역 활성화의 최적지”라며 “우선 국제수소거래소법을 제정하고, 국내 수소생산량과 청정수소 인증제에 따른 인센티브를 확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제수소거래소 재입법 가능성
국제수소거래소 설립을 위해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이원욱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제21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자동 폐기됨에 따라 제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될지 주목된다.
세계 최초의 수소법 제정을 주도한 이종영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입법 전략으로 ‘수소법 개정’과 ‘독립입법’을 제시했다.
현행 수소법은 수소경제 육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수소거래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전력거래소가 전기사업법, 한국거래소가 자본시장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는 것처럼 수소법 개정을 통해 수소거래소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특수법인으로 설립하는 방안이다.
독립입법은 이원욱 전 의원이 발의한 것처럼 국제수소거래소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제정하는 방안으로, 국가가 선도적으로 국제수소거래소 설립·운영을 주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종영 교수는 “독립입법 방안은 수소거래를 활성화하고 국제적으로 위상을 정립하는 단계이기에 초기 국제수소거래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해 일정 기간 예산 투입 등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입법 주요 내용으로 △설립 목적 △법인격 △유사명칭 사용금지 △국제수소거래소 사업 △국제수소거래소 개설·운영 △수소시장 운영규칙 △거래소의 손해배상책임 △시세 공표 △수소시장 운영경비 등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화석에너지 역사에서 국제에너지거래소 개설자의 영향력이 지대했다”라며 “수소 국제교역이 활성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국제수소거래소를 설립해 수소 국제가격기준 가격결정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수소경제 선도국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전북 완주군이 국제수소거래소 설립에 강한 의지를 보이기에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입법은 전북 완주·진안·무주군이 지역구인 안호영 의원(환경노동위원장)이 추진하고, 이종영 중앙대 교수가 법안 초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