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참여국들은 선진국과 개도국이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에 따라 각자의 능력에 맞게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을 약속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유엔기후변화협약 의사결정기구인 당사국총회(COP)를 설치하고 지난 1995년 독일
베를린을 시작으로 매년 COP를 개최해왔다. 올해엔 11월 11일부터 24일까지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렸다.
국제사회는 COP을 통해 전지구적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여러 합의안을 채택했다. 지난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COP에서 채택된 교토의정서와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COP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이 대표적이다.
이 COP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COP
지난달 11일부터 24일까지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제29차 COP(이하 COP29)가 개최됐다. 이번 COP29에선 2025년 이후 신규재원목표(NCQG)를 수립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선진국은 지난 2009년 총회에서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끝내 지키지 못했다. 이에 2021년 총회에서 목표기간을 2025년으로 연장하고 새로운 목표를 2024년 총회에서 합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도국은 선진국의 NCQG 부담률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선진국이 부담률로 연 2,500억 달러를 제시하자 개도국은 최소 5,000억 달러여야 한다며 맞섰다. 심지어 소규모 도서국 및 최빈국 그룹은 선진국의 부담이 지나치게 적다며 회의장을 떠나기도 했다.
또 선진국이 NCQG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모두 참여하는 세계적 기후 행동 투자 목표라고 주장하자 개도국은 기존 연 1,000억 달러를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대체하는 동시에 선진국이 개도국의 기후 행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COP29에 참여한 김태훈 기획재정부 녹색기후기획과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COP29 결과 공유 대국민 포럼’에서 “이번 NCQG를 논의할 때 1주차엔 개도국이 원하는 내용이 많이 들어갔으나 2주차엔 선진국이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상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무산되는 듯했으나 폐막 전날인 21일에 선진국의 부담비율을 연 2,500억 달러로 한다는 합의문 초안이 나왔다. 이에 개도국이 크게 반발하자 밤샘 협상을 진행, 선진국의 부담비율을 연 3,000억 달러로 늘려 최종 합의했다. 이는 기존 NCQG의 선진국 부담률인 연 1,000억 달러보다 3배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사국들은 세계적 기후 투자를 2035년까지 연간 1조3,00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해 개도국의 기후 행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중 연 3,000억 달러는 선진국 주도로 조성하고 개도국은 남남협력(선발개도국이 후발개도국을 지원하는 국제개발협력체제) 등을 통한 자발적인 공여를 장려했다.
진통 끝에 합의했지만 갈등은 여전했다. 개도국은 재원 규모가 턱없이 적은 데다 지원 내용도 보조금과 대출이 섞여 있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찬드니 라이나 인도 대표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선진국 당사자들이 그들의 책임을 다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 결과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번 NCQG 합의문의 표현이 기존 NCQG 합의문보다 약해졌다고 평가한다.
김태훈 과장은 “이전 합의문엔 ‘선진국이 부담금에 대해서 약속한다’라는 표현이 들어갔는데 이번 합의문엔 ‘선진국이 앞장선다’라며 표현이 약화된 측면이 있다”며 “‘또 NCQG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당사자가 합의하고 모든 힘을 합친다. 공공 및 민간 재원까지 모두 동원한다’는 절박한 표현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떠나려는 미국
선진국이 소극적이었던 것은 미국이 파리협정을 재탈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20년에 파리협정을 공식 탈퇴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는 없다. 파리협약이 미국에 부당한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다”며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하고 3년이 지나야 탈퇴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2019년 11월 탈퇴를 통보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협약에 재가입하면서 미국은 2021년에 복귀했다.
파리협정을 탈퇴할 정도로 기후변화 회의론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0일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다. 그는 지난해 선거운동 과정에서 파리협정을 탈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증명하듯 대통령 인수위는 취임 즉시 파리협정 탈퇴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이 파리협정에 재가입한 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즉시 행정명령을 내리면 이르면 2026년에 공식 탈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번 COP29에서 합의한 대로 재원을 제공할 가능성이 낮다.
이 때문인지 미국은 이번 COP29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김태훈 과장은 “이번 COP29에서 미국은 상당히 약화된 입장을 보인 반면 개도국은 현재 일어나는 기후위기 때문에 기후재원의 필요성을 크게 역설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아르헨티나, 파푸아뉴기니, 아르메니아 등 일부 국가가 COP29에 참여하지 않았다.
파푸아뉴기니는 “기후변화 피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이 없다”며 참석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COP29만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줄곧 COP 탈퇴를 밝혀온 만큼 COP 탈퇴를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은 이번 COP29에서 NCQG의 부담금 규모를 확대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기회 잡으려는 중국
반대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국가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파리협정 재탈퇴 가능성으로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리더십이 약화될 것으로 보고 글로벌 기후 정책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COP29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영국 BBC에 “중국의 역할은 예년과 현저히 달랐다. 비정상적으로 협력적이었다”고 밝혔다.
COP29 고위급 회담 개막식에서 딩쉐샹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중국은 2016년부터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1,770억 위안(약 35조 원) 이상의 프로젝트 자금을 제공하고 동원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해외 원조를 제공했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기후변화 적응 조기 경보에 관한 행동 계획(2025~2027)’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향후 2년간 정지궤도위성 기반 재난감시 시스템과 조기경보 기술을 아시아·태평양·아프리카 지역에 제공하고 개도국과 클라우드 기반 조기경보 시스템을 함께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중국은 NCQG에 자발적으로 더 많은 재원을 기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기후재원 의무 공여국 전환 주장을 일축하는 동시에 향후 글로벌 기후 정책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개도국으로 분류돼 선진국처럼 기후재원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선진국은 중국이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만큼 기후재원 의무 공여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안은 이번 COP29에서 논의됐다. 이에 중국은 “기여할 의무가 없다”며 기후재원 의무 공여국 전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도 “NCQG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것에만 동의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면서 중국은 일부 국가의 보호주의 무역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한 움직임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47대 미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인 11월 6일 BASIC(브라질·남아공·인도·중국)은 COP29 의장국과 유엔기후변화사무국에 이번 COP29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일방적인 제한적 무역 조치에 대한 우려와 첫 번째 GST 결과에 따라 국제 협력을 촉진하는 방법을 식별하는 것’이라는 의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끝내 제외됐다.
그런데 2026~2030년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4개년 업무계획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취한 조치’의 ‘국경 간 영향’에 대한 항목이 포함됐다. 이는 CBAM 등 무역 관련 기후 조치가 향후 유엔기후회담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중국이 주최한 남남협력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녹색 무역 장벽이 더 나은 국제 협력을 방해한다”고 입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다.

더 중요한 문제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번 COP29에서 국제탄소시장의 세부이행규칙이 최종 합의된 만큼 실질적 감축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국제탄소시장은 국가, 기업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체가 해외에서 산림 조성, 재생에너지 투자 등으로 얻은 감축 실적을 배출권으로 인정해 국제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제도로, 파리협정 제6조에 규정돼 있다.
당사국들은 치열한 협상을 통해 2021년 COP26에서 국제탄소시장 지침을 타결하고 세부이행규칙을 완성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세부이행규칙을 추가해 2023년 COP28에서 최종 합의할 계획이었으나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결렬됐다.
그러나 국제탄소시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당사국들은 이번 COP29에서 세부이행규칙에 최종 합의했다. 세부이행규칙 개발에 착수한 지 9년 만이다.
오대균 서울대학교 객원교수는 ‘COP29 결과 공유 대국민 포럼’에서 “이번 최종합의로 파리협정 정신에 맞는 감축사업이 진행되는 기반이 마련됐다. 특히 교토체제 때 영향을 받지 않던 민간 부문이 이제는 모든 나라의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영역에 들어간다. 즉 민간의 모든 행위가 NDC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며 “따라서 복잡해진 매커니즘과 시장형태를 ‘NDC 달성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고 고민할 때 파리협정에 따라 탄소시장을 해석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정책적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승직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모든 당사국은 늦어도 2025년 말까지 2035년 NDC를 제출해야 한다. NDC를 수립할 때 어떠한 목표를 제시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또 국가별 NDC와 이행수준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고착화되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거기에 맞는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일관성 있게 지원하고 국제감축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우선협력대상국과 구축해온 협력체계가 더욱 탄력받아 전지구적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또 2023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목표 대비 6% 초과 달성하는 등 최근 2년 연속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한 성과를 바탕으로 과학에 기반해 더욱 진전된 2035 NDC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