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수소 시장이 열리면서 수소경제 전환 가속화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기체수소 대비 부피를 800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 유통과정에서의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운송 중 유의미한 양의 로스(누출)가 확인되며 액화수소 유통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액화수소는 영하 253℃라는 극저온 환경에서 운송되는데 온도가 낮아지면 운송 중 증발량이 많아진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 액화수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 관계자들이 “운송 과정에서 로스가 기체수소보다 많은 게 체감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단열이 중요하다. 현재 액화수소 저장 시 단열효과를 높이기 위해 진공단열, 다층박막단열, 증기냉각복사차단막 등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열에 의한 액화수소 증발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단열 기술이 부재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선급(KR)은 극저온 환경에서의 단열시스템을 설계·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극저온 단열소재 열적 물성 선정 가이드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선박에 적용되는 LNG용 단열시스템과 액화수소용 단열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담겼다.
LNG 운송에 적용되는 단열재 및 관련 기술들의 경우 60년 이상 발전해왔는데 액화수소는 아직 초입이다. 심지어 액화수소의 운송 온도는 영하 253℃로 LNG(영하 162℃)보다 90℃가량 낮아 단열이 더 어렵다. 이 때문에 극저온 구조설계, 증발가스 발생량을 줄이기 위한 단열층 설계·제작 관련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는 게 한국선급의 설명이다.
액화수소 단열, 까다로워
액화수소는 영하 253℃로 저장·운송해야 해 높은 수준의 단열성능이 요구된다. 대게 열전달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공 단열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으며 종종 비진공 단열시스템도 사용한다.
진공 단열시스템은 공간에 진공을 생성해 전도·대류로 발생하는 열전달을 줄이는 방식이다. 복사를 통해 열전달이 발생하며 복사열을 차단하기 위해 특수 단열재가 사용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스 침투, 가스 분자 확산, 가스 배출 등의 요인으로 진공이 손실되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시스템 내의 진공 압력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인 유지보수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게 한국선급의 주장이다.
특히 진공단열을 사용할 경우 액화수소의 예상 운반 온도에서 진공 풀림현상 등 단열 특성의 약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 화물 내용물 운반 시스템 혹은 배관 설계·시험 시 진공 압력의 영향도 계산해야 한다. 지지구조와 인접한 선체 구조는 진공단열 손실로 인한 냉각을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하며 빠른 온도 상승과 과도한 기화로 생기는 단열 악화에 대한 안전 조치도 수반될 필요가 있다.
비진공 단열시스템은 진공을 사용하지 않고 열전달을 줄인다. 빈 공간에 단열재를 배치해 대류 열전달을 억제하는 식이다. 복잡한 진공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유지보수와 운영이 상대적으로 간단하나 단열재의 두께가 증가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 때문에 단열재의 특성을 파악한 후 적절한 소재를 선택하고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열시스템 방식에 상관없이 액화수소의 저장 온도가 매우 낮다 보니 이와 관련한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설계 온도가 영하 165℃보다 낮으면 관리 기관과 재료에 대한 요구사항을 협의해야 하며 표준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설계 최저 온도가 영하 196℃보다 낮은 경우, 예상된 설계 온도에 대해 적절한 열적 물성 획득을 위한 시험을 수행해야 한다.
또 단열재는 저온에서의 응축·농축으로 인한 고농도 산소에 대한 저항성이 필요하다. 액화수소와 차가운 수소증기를 포함하는 화물 파이프의 경우 노출된 표면이 영하 183°C에 도달하지 않아야 하며 공기에 노출되는 액화수소 배관 시스템의 단열재는 불연성 재료로 구성해야 한다.
바닷길로 액화수소 들여오는 가와사키중공업
현재 액화수소운반선은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이 개발한 Suiso Frontier호가 유일하다. 이 운반선은 LNG 화물창 대비 단열성능이 10배가량 높다. 단열성을 높이기 위해 이중벽 구조를 채택한 덕분이다. 수소를 적재하는 탱크가 제일 안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고진공 상태인 내외부 벽 사이 공간이 열전달을 최소화하고 수소탱크 온도를 유지해 준다. 지지구조는 경량성과 강도를 두루 갖춘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GFRP)으로 제작됐다.
진공 단열시스템 내부에는 ‘고반사율 금속 코팅 필름(MLI)’이라는 단열재가 적용됐다. 이는 금속박막층을 통해 진공환경에서 복사열 전달을 차폐·반사시켜 액화수소 화물창 단열시스템의 외부로 열에너지를 방출한다. 다시 말해 외부 열이 내부로 이동하는 것을 막아준다는 뜻이다.
이러한 단열재와 구조를 통해 온도 변화 없이 액화수소를 운송할 수 있는 것이다. 수소탱크 용량은 1,250m3으로 약 75톤의 수소를 운송할 수 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16만m3의 수소탱크를 탑재한 새로운 액화수소운반선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약 1만 톤의 액화수소를 한번에 수송할 수 있게 된다.
MLI의 경우 육상용 액화수소 저장용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MLI의 단열성능의 조성과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육상용 저장용기는 대부분 대용량의 액화수소를 저장하기에 단열공간의 부피가 매우 크며, 이러한 공간에서 최대 진공도를 구현하기 어려운 게 원인이다.
따라서 육상용 액화수소 저장용기에는 보통 파우더 타입의 단열시스템이 적용된다. 파우더 타입 단열재의 경우 펄라이트, 글라스버블 등이 있다.
또 가와사키중공업은 고베 LH2터미널 액화수소 화물창을 개발했다. 이 역시 운반선과 마찬가지로 내외부 탱크 등 이중구조로 구성됐다. 내부탱크는 액화수소 누출을 방지하며 외부탱크는 내부탱크를 보호한다.
내외부 탱크 사이 공간은 경량 단열재 ‘펄라이트’로 충진된 진공 단열시스템이 적용됐다. 일반적으로 진공 상태에서의 열전달은 주로 복사를 통해 일어나는데 펄라이트를 투입하면 다공성 구조와 물성으로 열전달 메커니즘이 전도로 변화한다. 결국 진공 공간 내에서 주요 열전달 경로는 펄라이트 내부를 통한 전도 열전달 방식이 된다. 열전도는 물질 간 직접적으로 열을 전달하는 메커니즘인데 펄라이트 충진은 내부의 열전달을 방해하고 단열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실린더형 액화수소 화물창’도 고안 중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평평한 바닥을 가진 실린더 형태로 기존 구형 화물창에 비해 체적 효율이 더 좋다. 고베 LH2터미널 화물창과는 다르게 비진공 단열시스템을 적용한 게 특징이다. 이중구조 형태는 동일하나 내외부 탱크 사이는 대기압 상태의 수소가스가 있는 비진공 구조다. 마찬가지로 내부 탱크에 수소가 담기고 외부 탱크는 이를 감싼다. 이 구조는 내외부 간 압력 차를 줄여 안정성을 보장한다. 다만 내외부 탱크 사이에 수소가스가 들어가 안전설계 기준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내부탱크에는 열전달을 최소화해 내부 액화수소의 온도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폴리우레탄 폼 등 폴리머 폼 계열의 단열재가 적용된다. 문제는 폴리머 폼 계열의 단열재 표면에 수소가스가 침투해 단열성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단열재 표면에 가스 차단재를 적용하는 등 단열성능 유지를 위한 프로젝트가 동반되고 있다.
액화수소 저장 기술은 탄소중립을 갈망하는 선박업계에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산업은 세계 무역의 약 90%를 담당하는데 현재 선박 연료는 대부분 화석연료다. IMO도 지난해 7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50%에서 100%로 수정하면서 더 많은 수소, 암모니아 등 무탄소연료 운송·추진 선박이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액화수소 저장 시장도 성장할 전망이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 따르면 액화수소 저장 시장의 규모는 2019년부터 연평균 8.4%씩 증가해 2025년 7,593억 달러(약 1,05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플랜트(육상)에서 충전소(육상)로 액화수소를 공급하는 단계이나 액화수소 화물창에 대한 연구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선급은 “액화수소 저장기술을 확보하면 선박을 이용해 해외에서 수소를 도입해 국내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라며 “이를 위해선 선박에 적용되는 액화수소용 단열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