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와 연계될 한울 원자력발전소.(사진=한국수력원자력)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와 연계될 한울 원자력발전소.(사진=한국수력원자력)

수소는 생산과정에서 사용되는 원료와 생산기술에 따라 색깔로 구분한다.

원자력으로 생산하는 수소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하는 핑크수소(Pink Hydrogen) △원자력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로 물을 열화학분해해 생산하는 레드수소(Red Hydrogen) △원자력의 열과 전기로 물을 열화학+전기분해해 생산하는 퍼플수소(Purple Hydrogen)다.

이같이 원자력수소는 원전에서 생산되는 열과 전기를 동시에 이용하기 때문에 전기만 이용하는 방식보다 30% 정도 효율이 높다.

여기에 전원별 생산단가 중 가장 저렴해 가동률을 100%까지 높이면 수소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는 데다 1GW급 대형원전 1기가 생산하는 연간 수소생산량이 15만 톤에 달하는 만큼 저렴한 수소를 공급할 수 있다. 업계는 원전으로 생산된 수소의 단가를 1kg당 1.7~2.5달러(2,360~3,450원)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거의 없어 청정수소로 분류될 수 있다. UN 유럽경제위원회의(UNECE)의 발전원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대한 보고자료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은 생산전력 1kWh당 6.4gCO2eq으로, 태양광(48.2gCO2eq), 풍력(20gCO2eq) 등의 재생에너지보다 CO2 배출량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원전을 활용한 수소생산기술이 상용화되면 청정수소를 대규모로 확보할 수 있어 국가 탄소중립 목표와 에너지안보 확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전 해외수출 시 원전 수입국의 수소정책에 특화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가능해 원전 수출경쟁력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청정수소 활용을 앞당길 원자력수소를 활성화하기 위한 잰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원자력수소 전주기 일러스트.(이미지=AZO머터리얼스)
원자력수소 전주기 일러스트.(이미지=AZO머터리얼스)

원자력수소 생산기술 개발
지난 6월 19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삼성물산,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한국전력기술,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가스기술공사, 전력거래소와 ‘원자력 청정수소 생산·활용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협약에 따라 △원자력수소 생산 대용량 상용 플랜트 구축·운영 △국내 및 해외 수출형 원자력수소 생산 사업모델 개발 △국내 청정수소 생산·활용을 위한 사업 기반 조성 등 원자력수소 생산 실증의 성공적인 수행과 적기 사업화 추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

이를 통해 국내 최초로 원전 전력을 사용하는 저온 수전해 시스템을 기반으로 수소생산플랜트를 오는 2027년까지 구축한다. 이 플랜트는 10MW급 저온 수전해 시스템을 통해 하루 4톤 이상의 청정수소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저장·출하하는 인프라까지 갖춘다. 

이와 함께 △원전·재생에너지 환경을 고려한 수전해 시스템 설계 △원전 안전성 평가, 관련 규정 분석 등을 통해 원전 활용을 위한 인허가 취득 △10MW급 수전해 플랜트 구축 및 실증을 통해 무탄소 전원 연계 저온 수전해 운영 기술 확보 등 여러 과제를 수행한다.

참여기업 중 현대건설은 원자력 연계 전력시스템과 용수‧압축공기‧질소 등을 공급하기 위한 공용설비 설계 및 구축을, 한국가스안전공사는 대전력 연계 수전해 설비‧시설 안전기준 개발과 제도적 장치 마련을, 한국가스기술공사는 청정수소 출하품질 확보 및 수소출하센터 운영 최적화 기술개발을 각각 담당한다.

플랜트는 한수원이 운영하는 사업소 중 1곳에 구축될 예정이다. 현재 한수원은 △고리(부산) △새울(울산) △월성(경주) △한빛(영광) △한울(울진) 등 총 5개 사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5개 원전 사업소 중 타당한 수소 수요계획을 가진 지자체가 있는 사업소 1곳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은 한수원이 지난 2022년부터 2년간 수행한 ‘원자력수소 생산·저장 플랜트 설계 및 안전성 분석’을 바탕으로 추진한다.

‘원자력수소 생산·저장 플랜트 설계 및 안전성 분석’은 산업부의 2022년도 제1차 에너지기술개발사업 중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용량 청정수소 생산·저장 플랜트 설계 및 인허가 대비 기반 연구’ 과제로, 원전 연계 계통 안전‧경제성을 분석해 청정수소 생산 플랜트 설계 실현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이다.

지난 6월 원자력 청정수소 생산·활용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한국수력원자력)
지난 6월 원자력 청정수소 생산·활용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한국수력원자력)

해당 과제는 한수원이 주관하고 한전기술, 두산에너빌리티, RIST 등이 참여했으며 사업비는 총 48억7,000만 원이 투입됐다. 참여기관들은 △원자력수소 실증 타당성 조사 및 기초연구 △원자력수소 생산‧저장 플랜트 설계 및 인허가 대비 안전성 분석 등을 수행했다.

한수원은 이번 10MW급 원전 수전해 수소생산플랜트 실증사업을 통해 원전 잉여전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원전은 처음 보일러에 불을 붙인 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제 능력을 발휘하는 만큼 가동을 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운전해야 한다. 그래서 낮 시간대는 수요가 많아 생산한 전기를 모두 사용하나 수요가 적은 심야에는 생산된 전기가 남는다. 

또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 중 일부는 송전선로가 없어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진다. 예를 들어 울진 원전의 발전용량 12.54GW(기가와트) 중 0.94GW가 비송전 전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한울 원전 3‧4호기가 가동되면 송전선로를 개설하더라도 0.28GW는 비송전 전력으로 남는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3%까지 늘릴 계획이어서 비송전(잉여) 전력이 상시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며 “여기에 송전 제약 지역 내 전기로 사업할 수 있는 관련법이 만들어지는 등 잉여전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오는 8월 7일부터 송전제약에 걸려 발전하지 못하는 사업자가 인근 지역 신규 부하에 직접 전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시행한다.

우리나라는 전력생산처가 동해안 등 해안 지역에, 소비처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그런데 수도권 연계선로 부족, 재생에너지 발전원 밀집 및 수요 부족 등으로 송전제약이 발생해 생산되는 전력 중 일부는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진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신규 송전선로를 구축해야 하나 막대한 재정투입, 주민수용성 문제 등의 제약이 많다. 

이에 ‘송전제약발생지역전기공급사업자’라는 이름의 전기 신사업자로 등록하면 발전용량과 송전용량의 불일치로 인해 전력시장을 통해 전기판매사업자에게 공급하지 못하게 된 전기를 발전설비의 인접한 지역에 있는 전기사용자의 신규 시설에 공급할 수 있다.

한수원 그린수소 실증연구센터. 이곳에서는 수소 전주기 실증과 각종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수원 그린수소 실증연구센터. 이곳에서는 수소 전주기 실증과 각종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원자력수소산업단지 조성 속도
이같이 한수원이 원전을 활용한 청정수소 생산플랜트 실증 사업에 나선 가운데 지난 6월 28일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이하 예타면제)가 최종 확정됐다. 

이번 예타면제 확정으로 산단 사업비가 확정돼 산단 조성계획과 산단 개발을 위한 각종 행정절차가 진행된다. 또 진입도로 4차선 개설 등 산단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울진군 죽변면 일원 158만㎡(약 48만 평)에 조성되는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는 울진군에 세워진 원전 10기에서 생산되는 전기(2GW)와 원자력의 고온 열을 활용해 연간 30만 톤의 청정수소를 생산, 저장, 운송, 활용하는 산업단지로, 총사업비는 3,996억 원이다.

울진군은 해당 산단을 중심으로 수소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위해 여러 업체와 협의했고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롯데케미칼 △GS에너지 △삼성E&A △SK에코플랜트 △효성중공업 △DL E&C △BHI △SK D&D △삼성물산이 입주할 예정이다. 

또 경북도와 울진군은 원전 잉여전력을 국가산단에 직접 공급할 수 있도록 여러 기관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지난 4월 이철우 경북지사는 울진군청에서 열린 ‘공공주도 지역상생 풍력발전단지 조성 업무협약식’에서 “한울원전에서 발생하는 비송전 전력을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입주 기업에 kW당 40~50원 수준으로 직접 공급하면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관련 설계단계에서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입주 기업에 바로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수소를 첨단전략산업에 추가해 해당 산단을 ‘첨단전력산업 수소특화단지’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첨단전력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기업유치 인센티브 확보 △R&D 정비·확충 △인력양성 △추진체계에 대한 협력적 장비 등이 범정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또 △첨단산업 발전의 다양성 확보 △노동시장의 질적 구조고도화 △특성화고부터 대학원에 이르는 인력양성 체계 구축 운영의 내실화 등을 추진할 수 있다.

아울러 △원자력수소 운송 방법 △액체수소 도입 및 출하를 위한 해상터미널 구축 △육로 운송을 위한 죽변역에서 산단까지 철로 연결 △국도 36호선 확장 △고속도로 건설 △수소운송용 파이프라인 건설 등을 검토하고 있다.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조감도.(이미지=경상북도)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 조감도.(이미지=경상북도)

차세대 원자력 산업 확보
지난 6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8회 심의회의에서 ‘차세대 원자력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 및 실증 추진방안’이 심의·의결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의 핵심기술을 신속 확보해 2025년까지 표준설계를 완료하고 2030년대 글로벌 SMR 시장진입을 목표로 국내·외 사업화를 준비해 나간다. 

중장기적으로 차세대 원자로 확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술개발 목표, 달성 시점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로드맵을 올해 하반기에 수립·발표한다. 로드맵에는 경쟁력 및 파급성, 상용화 가능성 등을 종합해 지원할 노형을 선정하고 민·관 역할 분담, 인허가 대응방안 등을 포함할 예정이다.

또 ‘한국형 차세대 원자로 기술개발 및 실증 프로그램(K-ARDP, Korea-Advanced Reactor Demonstration Program)’ 도입을 추진한다. K-ARDP는 차세대 원자로 설계 역량을 보유한 민간기업을 육성하고 신속 상용화를 위해 민-관 합동으로 기술개발 및 실증까지 지원하는 약 2조5,000억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2030년대 초 개화될 세계 차세대 원자로 시장에 대응해 기술 및 시장 주도권을 적기에 확보하고 전력공급뿐만 아니라 열공급, 수소생산, 신재생에너지 연계, 해양·우주 등 다양한 부문에서 신산업을 창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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