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은 공정사회실천연대 사무총장 | AI 시대는 3차 산업혁명 이후 인류에게 가장 큰 산업혁명이 될 것이다. 보통 인간의 상상으로는 쫓아갈 수 없는 속도와 내용의 변화가 시시각각 가시화, 구체화 되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AI), AI 반도체칩, 자율주행, 로봇 분야 정도가 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전 산업 분야에 이들 기술이 적용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 기술에 어마어마한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구글 검색에 평균 0.3Wh를 사용하지만 ‘생성형 AI 챗GPT’는 그 10배인 2.9Wh를 소모한다. 이들 전력수요를 못 맞추는 국가의 기업은 AI 시대에 낙오할 수밖에 없다. 메타, 테슬라, 엔디비아, MS, Open AI, 아마존 등의 선도기업 총수들이 하나같이 규제가 가장 심한 에너지 시장에서 사활을 걸고 세계 전력설비 확보에 천문학적 자금투자에 착수한 이유다.
AI 시대 필수 인프라인 데이터센터의 사용전력은 앞으로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사용전력이 일본 전체 전력사용량과 맞먹을 것으로 전망한다. 보스턴컨설팅은 2030년 미국 내 데이터센터 전력사용량이 2022년보다 3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로이터에 따르면 연평균 7%의 괄목할 경제성장을 보인 인도가 AI 시대에 대응하기도 전인 현재 약 14GW(원전 14개)의 전력 부족에 직면했고, 결국 석탄발전소 건설을 결정했지만 이마저도 최소 5~6년이 걸리는 난감한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국내 SK, 한화, 현대차 등이 투자를 한 미국 조지아주(한국의 1.3배 면적)의 경우 10년 뒤 전기소비량이 현재보다 17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전력공급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전력수요가 가장 큰 수도권은 현재로선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해법이 없는 상태이다. 강원도 동해안의 대부분 발전소와 남해안 일부 신재생 발전소는 송전선 문제로 전력공급이 제한되고 있는 상태다. 이는 전국의 송전망이 이미 거의 포화상태이고, 당장 수요증가에 맞춰 대규모 신규 발전소 및 송변전설비 건설에 착수한다 해도 최소 5~6년의 장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200조 원 부채를 안고 있는 한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들 세계 최고 수준의 민원으로 이들 설비의 준공시기를 기약할 수도 없다. 밀양 송전선의 경우 60km 송전철탑 건설에 9년이나 소요됐다.
AI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용인반도체클러스터(10GW 전력 수요)가 필요한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플랜트 건설이 전력공급 문제로 진통을 앓고 있다. 수도권에 수요가 가장 많은 데이터센터는 올해부터 정부가 수도권에 짓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정부의 국내 전력공급 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인 신재생발전의 경우 생산량에 변동성이 크고, 막대한 보조금 없이는 누구도 투자하지 않는 사업이다. SMR(소형모듈원전)은 상용화 시기가 2050년경으로 예측되어 도입 시기가 너무 늦고, 원전은 고준위방폐장 건설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지금 운전 중인 원전도 2030년부터 매년 줄줄이 가동을 중단해야 할 판이다.
정부가 검토 중인 남해안의 남아도는 전력을 서해안 해저로 인천 앞바다까지 끌고 온들 수도권에 어떻게 내륙 송전선을 건설한단 말인가. 최근 윤 대통령이 AI 반도체 생태계 확보에 26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가장 중요한 생태계인 ‘대규모 전력공급 인프라 확보’는 내용에 없었다.
정부가 청정수소·암모니아를 대규모 수입해 혼소 발전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 역시 송전선, 발전소 증설 문제에 답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혼소발전 계획(암모니아 50% 혼소, 수소 30% 혼소)은 EU의 텍소노미(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 미국의 탄소감축기준(2030~2040년경 90% CCS를 하지 않으면 화력발전소 폐쇄), 유엔 IPCC의 CCS 인정기준(95% CCS만 인정) 등을 하나도 맞출 수 없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2026년부터 본격화되는 국경탄소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미국과 EU는 전원의 60%가 화력발전인 중국의 탄소감축 취약성을 너무 잘 알고 있어 탄소중립 규제를 계속 강화할 것이며, 우리만 적용 예외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되면 해외기업의 국내 투자유치는 고사하고 국내기업조차 대규모 전력공급이 안 되고 국경탄소세 부담도 큰 한국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도 AI 시대 판도를 뒤집고 시장을 선도할 비장의 인프라가 있다. 수명이 도래하면 어차피 폐지해야 할 전국에 산재한 58기의 석탄발전소와 그물망처럼 설치되어 있는 5,000km의 전국 도시가스망을 활용하는 것이다.
석탄발전소 부지가 매우 넓고, 이미 인프라(도로, 항만, 송전설비, 공용 발전설비 등)도 잘 갖추고 있어 이들 발전단지에서 연 2,000만 톤의 수소(2050년 국내 소요량의 3/4)를 생산하고, 청정 수소발전을 하고 남는 대규모 수소는 다시 도시가스망을 통해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수요처의 대형 연료전지발전소에 공급해 청정발전을 하는 것이다. 수십 년 검증된 기존부지에서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면 건설기간과 예산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정부가 이미 2026년 준공 목표로 ‘기존 도시가스망에 수소 20% 혼소(약 700만 톤/연) 공급’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니 정부가 결심만 하면 두 사업을 연계해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석탄발전소 부지마다 있는 수만 평의 회사장(Bottom Ash 야적장)에 AI 시대 필수인 데이터센터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AI & 반도체 플랜트를 짓고, 세계 유수의 AI 선도기업도 유치하면 세계 최고의 ‘AI+수소전력 생태계’를 마련할 수가 있다.
대규모 수소생산과 CO2 포집·운송·액화·지중(해양) 저장은 이미 수십 개의 프로젝트가 상업운전 중이고, 우리나라의 포스코, SK E&S 등의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다. 수소생산의 원료로는 해외 다수의 기업처럼 국내 4개 정유사에서 나오는 패트콕(정유찌꺼기)과 하수슬러지, 축산물폐기물, 잡목바이오매스 등 국내에서 발생한 준폐기물을 사용해 수소생산가격을 최대한 낮출 수 있다. 이렇게 되면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현재의 전기요금이 유지되어 한국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우선 인천의 영흥발전단지와 충남의 3개 발전단지(태안, 당진, 보령)를 이렇게 ‘수소발전융복합클러스터’로 전환하면 수도권 일대 대규모 전력공급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곧 나올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전력증가율이 정부가 얼마나 AI 시대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 바로미터가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의 나침판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만 가리킨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물속 빙산을 보지 못하고 돌진하는 타이타닉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방향을 잘 잡는다면 저렴한 대규모 청정전력(수소)을 전국에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국내기업은 탄소감축 및 국경탄소세 부담에서 벗어나 국제경쟁력을 크게 높이게 되고, AI 및 수소발전융복합플랜트 관련 전후방 산업도 발전할 것이다. 지방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한편 해외에서 AI 기지 및 수소발전융복합플랜트 건설을 요청하거나 사업협력, 공동 R&D, 한국지사 설립, 투자 등을 위해 한국에 줄을 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