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체기에 빠진 연료전지가 인공지능(AI) 때문에 활짝 웃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수소 테마 ETF(상장지수펀드)인 ‘ARIRANG 글로벌수소&차세대연료전지MV’은 5월 한 달 동안(5월 3일~6월 3일) 23.2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 ETF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익률이다.
해당 상품은 미국 수소에너지 관련 기업 ETF인 ‘HDRO’를 비롯해 블룸에너지, 두산퓨얼셀, 플러그파워 등 수소 분야 글로벌 기업 25개 종목에 투자한다.
같은 기간 △KBSTAR 글로벌수소경제Indxx(21.38%) △TIGER Fn신재생에너지(17.79%) △KoAct 글로벌기후테크인프라액티브(17.21%)도 수익률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시장은 AI 경쟁 심화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자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연료전지가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AI의 이면
빅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늘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에서 처리해야 할 세계 연간 데이터 규모는 2021년부터 연평균 20% 증가해 2026년 200.1제타바이트(ZB, 1ZB는 1,024만 테라바이트)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AI 연산처리를 지원할 수 있는 AI 특화형 데이터센터 수요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AI 특화형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와 달리 AI 서비스에 필요한 고속의 대량 데이터 처리를 위한 슈퍼컴퓨팅 자원을 지원한다.
AI 시장은 대형멀티모달모델(LMM, Large Multimodal Model)이 등장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LMM은 챗GPT4처럼 텍스트 기반의 LLM(Large Language Model) AI 서비스에 더해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등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를 복합적으로 제공하는 차세대 인공지능 모델이다.
업계는 글로벌 AI 시장 규모가 2022년 108억 달러(약 15조 원)에서 연평균 27% 성장해 2032년 1,181억 달러(약 16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 때문에 AI 특화형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세계적으로 현재 1조 달러 규모인 AI 데이터센터 시장 규모가 5년 뒤엔 2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대표적인 대규모 전력 소비 시설이라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는 단 1초라도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 수치화할 수 없을 만큼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 24시간 365일 연중무휴로 계속 가동될 수 있도록 2개 이상의 발전소 또는 변전소로부터 전기 공급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서버와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한 냉방설비도 멈춰서면 안 된다.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는 엄청난 열기를 내뿜지만 정작 열에 매우 취약해 온도가 일정 이상으로 높아지면 성능이 저하되거나 고장이 난다. 아울러 습도조절장치, 보안·관제시스템 등 각종 전자장비도 상시 가동되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460TWh로, 전세계 전력 사용량의 2%를 차지했다. 2026년에 이르면 최대 전력 사용량이 독일 전체 사용량과 맞먹는 1,050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생성형 AI 서비스가 점차 확대되면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더욱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국립은행에 따르면 구글이 모든 검색에 생성형 AI 기술을 적용하면 연간 전력 소비량이 약 290억k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케냐, 콰테말라, 크로아티아의 1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다.
이같이 엄청난 전력 사용량을 보이는 데이터센터가 계속 늘어날 예정이나 석탄, 가스 등 화력발전 비중이 높은 국가가 많아 데이터센터 증가에 따른 전력 사용량 증가로 탄소배출량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여기에 정전을 대비해 설치하는 비상발전기가 대부분 디젤, 가스 등을 원료로 사용하고 열을 식히는 냉각시스템에서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되며 냉각되지 않고 배출되는 폐열 등도 데이터센터를 온난화 주범으로 지목하게 한다.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면서 탄소배출량을 저감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연료전지를 주목하고 있다.
연료전지는 기존의 발전 방식보다 배출가스와 소음이 현저히 낮고 수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무공해 발전이 가능하다. 또 낮은 에너지 손실과 높은 효율로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고 작은 설치 면적과 다양한 설치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 초기 투자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연재해 또는 계통 문제로 정전 발생 시 즉시 독립운전 모드로 전환되어 안정적으로 전력과 열을 공급할 수 있고 발전과정에서 높은 압력과 연소과정이 필요 없다.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가 많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연료전지를 비상발전원으로 많이 활용하는 이유다.

연료전지 활용 데이터 축적 중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발라드파워, 카터필라(Caterpillar)와 미국 와이오밍주 샤이엔에 있는 데이터센터에서 1.5MW급 연료전지와 2개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구축해 48시간 연속 가동하는 실증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밝혔다.
MS는 이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주 라탐 클라우드 전용 데이터센터에서 진행된 3MW급 비상전원용 연료전지 실증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연구소에서 진행된 250kW급 비상전원용 연료전지 실증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바 있다.
최근엔 브래드 스미스 부회장 등 MS 임원진들이 스웨덴, 프랑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일본 등을 방문하며 데이터센터 관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총투자금액만 200억 달러(약 28조 원)에 달한다. 투자 계획의 핵심은 기존 데이터센터 용량 확대와 탄소배출량을 저감하기 위한 프로젝트 개발이다.
예를 들어 MS는 2년 동안 32억 달러(4조3,910억 원)를 투자해 스웨덴에 있는 3개의 데이터센터를 확장한다. 이 데이터센터들이 배출하는 탄소는 포집해 바이오매스 생산에 활용한다. 이에 MS는 최근 스웨덴의 CCUS 전문기업과 관련 계약을 맺었다. 아울러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전력은 스웨덴의 무탄소에너지로 만들 계획이다.
MS는 또 43억 달러(약 5조8,987억 원)를 투입해 프랑스 동부 뮐루즈에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파리와 마르세유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확충할 계획이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프랑스 정부와 전력수급계약(PPA)을 체결했다. 그 일환으로 올해 말까지 프랑스에서 약 100MW급 신재생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엔 블룸에너지와 인텔이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인텔의 고성능 컴퓨팅 데이터센터에 구축된 연료전지 발전소 규모를 확대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블룸에너지는 지난 2014년 해당 데이터센터에 발전용 연료전지를 공급한 바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추가로 설치되는 연료전지 설비용량은 MW(메가와트)급이다. 이를 통해 해당 데이터센터는 실리콘밸리에서 단일 최대 규모의 연료전지 발전소를 보유하게 된다.

블룸에너지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SK에코플랜트는 싱가포르와 아일랜드에 구축되는 데이터센터에 연료전지를 공급한다.
지난해 9월 SK에코플랜트는 중국 최대 데이터센터 개발·운영 기업인 GDS와 데이터센터 전력공급원용 연료전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GDS는 싱가포르의 신규 데이터센터 구축사업을 수주했는데 이곳에 SK에코플랜트의 연료전지가 설치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로 만든 그린수소를 해당 연료전지의 연료로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두 달 후인 11월엔 아일랜드 발전 및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인 럼클룬에너지(Lumcloon Energy)와 데이터센터 전력공급원용 연료전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럼클룬에너지는 아일랜드 중부에 있는 캐슬로스트(Castlelost)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곳에 SK에코플랜트의 연료전지가 설치된다. 이뿐만 아니라 태양광, 수소, ESS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협력도 추진한다.
플러그파워는 구글, 아마존, MS에 데이터센터 전력공급원용 연료전지를 공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앤드류 마쉬(Andrew Marsh) 플러그파워 CEO는 지난 3월에 열린 실적발표회에서 “제품을 시험하기 위해 가장 큰 하이퍼스케일러(10만 대 이상의 서버 갖춘 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구글, 아마존, MS와 협력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데이터센터 전력공급원용 연료전지 판매가 2025년 말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실례로 플러그파워는 지난 2022년 미국 뉴욕주 라탐 클라우드 전용 데이터센터에서 진행된 비상전원용 연료전지 실증에 참여했다. 이 실증에 사용된 3MW급 연료전지를 공급했다. 또 아마존과는 하루 30톤의 액화그린수소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아울러 일본의 혼다와 미쓰비시는 지난 3월부터 차량용 연료전지를 데이터센터 전력공급원용으로 활용하는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실증은 혼다가 개발하고 있는 고정형 연료전지 발전설비에 생산된 전력을 미쓰비시가 운영하는 분산형 데이터센터에 공급해 해당 데이터센터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해당 실증은 2년간 진행되며 수소는 일본 화학업체인 도쿠야마 코퍼레이션이 생산‧공급한다.
이를 통해 폐기되는 차량용 연료전지를 재사용하는 방법과 연료전지가 데이터센터의 탄소배출 저감에 효과가 있는지 연구할 계획이다.

수소와 AI 공존 시대
지난해 11월 기초과학연구원의 나노입자연구단은 촉매의 성능을 예측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그린수소 생산 성능을 갖춘 페로브스카이트 산화물 촉매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페로브스카이트 촉매는 전기화학적 특성이 우수하고, 다양한 원소를 조합해 만들 수 있어 촉매 반응에 필요한 특성을 개선해 나갈 수 있으나 조합 가능성이 많은 만큼 최적의 성능을 내는 조합을 골라내기가 어렵다.
연구팀은 기존 연구를 참고해 40개의 페로브스카이트 산화물 촉매를 합성하고, 실험적으로 성능을 측정해 데이터세트를 구축했다. 이어 비교적 작은 규모의 데이터세트로도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동 학습 기반 AI에 구축한 데이터세트를 학습시켰다. 학습을 마친 뒤 AI로 1만 가지 페로브스카이트 산화물 촉매 후보 성능을 예측, 가장 성능이 우수한 페로브스카이트 산화물 촉매를 발견했다.
지난 5월 1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2024년 상반기 수소 분야 연구개발(R&D) 지원과제 10개를 선정‧발표했다. 여기에 AI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연료전지 셀 및 핵심 부품의 고속 자동검사기술을 개발하는 과제가 포함됐다.
해당 과제는 특수 광학 장치를 사용해 연료전지 제조공정에서 낮은 수율과 미세 결함을 검사하고 불량 여부를 스스로 판별할 수 있는 AI 검사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다. 불량률 감소에 따른 연료전지 제조원가 인하 등을 통해 연료전지 산업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
AI는 수소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AI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데이터센터 운영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빅테크 기업들은 연료전지를 찾고 있다.
이같이 수소와 AI가 공존하는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