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혼입 연소가 비용만 높이고 탄소 감축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수소혼입 연소가 비용만 높이고 탄소 감축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수소(H2) 안에는 탄소(C)가 없다. 그래서 연소를 시켜도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탄소’ 연료다. 많은 전문가들이 수소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첫손에 꼽는 이유다.

하지만 이 수소를 태우지 않고 그냥 배출하는 건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값비싼 수소를 그냥 날려 보낼 일은 없겠지만, 누출이나 누설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수소충전소의 왕복동 압축기 실린더에서도 미량의 수소가 새어 나온다. 당연히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수소 취성(脆性)’이란 말이 있다. 수소가 금속 안에 흡수되어 금속의 기계적 성질을 악화시켜 부스러지게 하는 현상을 이른다. 수소 분자가 금속을 파고들 정도로 너무 작아서 생기는 일이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수소를 섞어 태우겠다고 도시가스 배관에 수소를 혼입하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도시가스 배관에 수소혼입 테스트 활발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지난 4월 중순 경기도 광주의 한 리조트에서 ‘도시가스 배관망 수소혼입 전주기 안전성 검증 기술개발·실증사업’에 대한 올해 첫 워크숍을 열었다.

수소혼입 안전성 검증 사업에서 중·저압 분야를 주관하는 가스안전공사, 배관 분야를 주관하는 예측진단기술이 주축이 되어 2차년도 사업 추진 일정을 공유했다.

올해는 수소혼입 시험장비나 설비를 평택 현장에 구축해 안전성 검증에 들어가는 단계로, 총 12종의 시험장치 구축이 예정되어 있다. 또 연소기·연료전지 등 일부 설비에 수소 5~20% 혼입에 대한 안정성 평가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가정에서 쓰는 화석연료(천연가스)를 무탄소 연료로 대체하기 위한 수소혼입 프로젝트가 그동안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활발하게 추진돼왔다. 영국의 ‘HyDeploy 프로젝트’, 프랑스의 ‘GRHYD 프로젝트’, 유럽연합이 주도한 ‘THyGA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THyGA 프로젝트에서는 100가지 주거용, 상업용 기기에 대한 수소농도별 안전성 확인을 위해 수소를 최대 60%까지 섞어서 연소하는 테스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소 20% 혼입은 가스시설이나 가스기기의 안전성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스터 보쉬에서 개발한 수소 호환 보일러.(사진=Worcester Bosch)
우스터 보쉬에서 개발한 수소 호환 보일러.(사진=Worcester Bosch)

그럼에도 환경단체, 일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기존 배관에 수소를 혼입하는 것이 탄소배출 감축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특히 새로운 연구들은 가스레인지나 가스보일러 같은 기기의 이상 여부와는 무관하게 “배관이나 기기에서 누출되는 수소가 이산화탄소보다 몇 배는 강력한 온실가스처럼 작동한다”고 경고한다. 탄소배출을 줄이려다 오히려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소혼합물은 CO2 30배 넘는 온실가스

최근에 나온 보고서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에너텍 인터내셔널(Enertek International, 이하 ‘에너텍’)이 지난 4월 11일에 발행한 ‘수소혼합물의 누출률 연구’ 보고서다. 에너텍은 가스·전기·석유 제품의 엔지니어링 연구, 설계·인증 등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로, 벨기에 브뤼셀에 본사를 둔 NGO 단체인 표준환경연합(Environmental Coalition on Standards, ECOS)의 의뢰를 받아 본 과제를 수행했다.

가정에서 흔히 쓰는 요리용 4구 가스레인지와 가스보일러 모델 3개를 테스트했으며, 저온·고온 환경으로 나눠 메탄에 수소를 20% 혼합해서 연소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가스레인지에 20% 수소혼합 가스를 공급했을 때 기체 누출이 평균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고, 가정용 보일러 테스트에서도 기체 누출량이 평균 2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텍의 ‘수소혼합물의 누출률 연구’ 보고서에 실린 사진으로, 가정에서 흔히 쓰는 4구 가스레인지로 메탄과 수소 누출 테스트를 진행했다.(사진=Enertek International)
에너텍의 ‘수소혼합물의 누출률 연구’ 보고서에 실린 사진으로, 가정에서 흔히 쓰는 4구 가스레인지로 메탄과 수소 누출 테스트를 진행했다.(사진=Enertek International)

이는 가스기기의 연소 안전성과는 별개로 기존 배관이나 밸브, 가스기기 자체에서 상당량의 수소가 누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수소가 메탄보다 약 8배나 분자 크기가 작아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번 테스트를 수행한 에너텍은 “가전제품과 마찬가지로 가스 유통망은 수소에 대응하기 위해 구축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가스 공급업체들은 균열 부위나 잘 밀봉되지 않은 접합부를 통한 기체 누출 위험을 포함해 20%의 수소혼합을 수용하기 위한 업그레이드 비용이 스페인에서만 7억 유로(약 1조 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혼입 수소를 전량 수전해 수소로 사용할 경우 탄소배출량을 7% 정도 낮출 순 있지만, 수소의 경우 20년 동안 지구온난화지수(GWP) 잠재력이 이산화탄소보다 30배 이상 높기 때문에 혼합 수소의 0.3~0.7%만 대기로 누출되어도 기후의 이점은 사라진다”고 지적한다.

이 주장은 노르웨이 국제기후환경연구센터(CICERO)에 속한 4개 나라, 6개 기관의 기후 과학자들이 ‘네이처’ 지에 발표한 2012년 학술 논문에 근거하고 있다.

수소는 그 자체로 온난화 효과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하이드록실 라디칼이라고 불리는 공기 중 분자와 상호작용을 통해 강력한 온실가스인 대기 중 메탄의 수명을 연장하고 또 다른 온실가스인 오존의 생산을 늘리게 된다.

연구진은 다섯 가지 모델링 기법을 적용해 결론에 도달했다. 논문에 따르면, 20년간 수소의 지구온난화지수(GWP)는 무려 37.3(±15.1)으로 나타났다.

100년이 지나야 지구온난화지수 잠재량은 11.6(±2.8)으로 떨어진다.

英 수소혼입 사업, 주민 반대로 무산

영국은 지난 2022년 HyDeploy 2차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는 영국의 윈라톤(Winlaton), 게이츠헤드(Gateshead)에 있는 668개의 주택, 교회, 학교에 11개월간 최대 20%의 수소를 혼합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시범사업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기존의 가스기기를 바꾸지 않고 연료를 그대로 사용했다. 영국의 가스기기는 최대 23%의 수소혼합에도 작동되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따라서 가스보일러나 가스레인지, 가스배관을 교체하지 않고 진행했다.

영국 윈라톤의 HyDeploy 2차 사업 현장으로, 노던가스에서 구축한 수소 20% 혼입 시설을 갖추고 있다.(사진=Sonae UK Ltd)
영국 윈라톤의 HyDeploy 2차 사업 현장으로, 노던가스에서 구축한 수소 20% 혼입 시설을 갖추고 있다.(사진=Sonae UK Ltd)

하지만 후속 사업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영국 북서부 휘트비(Whitby)와 북동부 레드카(Redcar)의 ‘수소마을’ 시범사업 후보 지역 주민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휘트비 주민은 “정부와 가스회사(Cadent Gas)가 안전에 대한 우려를 완화할 만한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라며, “가스회사들이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수소혼합이 에너지 비용과 탄소배출량을 모두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말 2,000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휘트비, 레드카의 수소마을 시범사업을 취소했다. 또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주거용 난방, 요리에 수소를 사용하는 시범사업을 최소 2026년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의 이 사례는 우리에게도 좋은 본보기일 수 있다.

가스안전공사가 추진 중인 ‘도시가스 배관망 수소혼입 전주기 안전성 검증 기술개발·실증사업’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더라도, 이것이 실제 사업으로 추진되는 과정에 상당한 잡음과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

“환경을 위해 기꺼이 비싼 수소를 쓰겠다”는 가정을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세금(보조금)으로 부족분을 메워야 하는데, 여기에 수소 누출 문제까지 불거지면 사업을 지속할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초기에는 분산형 수소생산기지 사업을 위해 과도기 기술로 수소추출기 사업에 힘을 실어줬지만, 그레이수소 문제가 불거지자 바이오가스 개질 쪽으로 방향을 튼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환경의 이점이나 경제성을 확보하기 힘든 과도기 기술은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탄소포집 기술을 적용한 수소추출기도 여기에 든다고 할 수 있다. RE100 등재생에너지 사용을 핵심으로 하는 글로벌 기업의 대응 전략에 따라 언제든 정책의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청정수소 수요 확대 위한 수소배관 인프라

가정용 난방이나 조리기구의 탈탄소화는 기존 천연가스 배관을 이용한 수소혼입보다는 그리드에 새로운 수소배관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인 파이프(Fife) 지역에서 스코샤 가스 네트웍스(Scotia Gas Networks, SGN)가 진행 중인 ‘H100 Fife’ 프로젝트도 여기에 든다. 해상풍력 전력을 기반으로 한 그린수소 공급망 문제로 사업이 1년 정도 지연됐지만, 탈탄소화에 대한 의지나 방향성만큼은 명확하다.

스코틀랜드의 가스유통회사 SGN 임원들이 풍력발전과 연계한 ‘H100 Fife’ 프로젝트 현장을 찾았다.(사진=SGN)
스코틀랜드의 가스유통회사 SGN 임원들이 풍력발전과 연계한 ‘H100 Fife’ 프로젝트 현장을 찾았다.(사진=SGN)

해상 풍력터빈에서 나온 전기로 5MW급 알칼라인 수전해 2기를 돌려 하루 최대 2톤의 그린수소를 생산, 약 300가구의 지역 주택에 이 수소를 공급해 난방을 해결하게 된다. 주택마다 우스터 보쉬(Worcester Bosch)의 수소 호환 보일러가 제공되며, 내년 여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 2027년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네덜란드에서도 12채의 주택에 그린수소를 공급하는 시범사업이 1년의 지연 끝에 최근 네덜란드 소비자시장청(ACM)으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았다. 호헤번(Hoogeveen) 시에서 진행되는 사업으로 에르플란덴(Erflanden)에 설치된 수소배관을 인접한 니스타드 오스트(Nijstad-Oost)에 들어서는 신축 주택의 배관과 연결해 수소 난방에 나서게 된다.

네덜란드 정부는 2050년까지 모든 가구의 천연가스 난방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계획이다. 2026년부터는 천연가스 보일러 구입이 금지되고,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히트펌프 구입을 늘리기 위해 30%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 국토교통부가 중심이 되어 추진 중인 수소도시 사업의 핵심 인프라도 수소배관에 있다. 수소생산기지에서 나온 수소를 배관으로 이송해 수소충전소, 주택단지 등에 공급하게 된다.

안산 수소생산기지는 300Nm3/h급 수소추출기에서 생산한 수소를 버퍼탱크를 통해 주황색 수소배관으로 공급한다.
안산 수소생산기지는 300Nm3/h급 수소추출기에서 생산한 수소를 버퍼탱크를 통해 주황색 수소배관으로 공급한다.

다만 수소 생산, 수소 활용 방식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도심에서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기 힘든 국내 여건상 수전해보다는 바이오가스 개질에 집중하고 있다. 또 수소보일러보다는 연료전지의 활용(전기 생산, 온수 활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올해 액화수소플랜트가 개장하면서 수소 유통에도 큰변화가 일고 있다. 충전 인프라만 해도 기존 기체수소충전소가 아닌 액화수소충전소를 중심으로 한 확장세가 두드러진다. 기체수소 압축기보다는 액화수소 펌프, 튜브트레일러보다는 탱크트레일러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는 예견된 변화라 할 수 있다. 시장의 이런 변화를 예측해서 그에 걸맞은 기술개발과 실증을 이어가야 시장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려면 그 변화의 중심에 내가 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제의 해결책은 늘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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