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시 진량공단에 있는 티포엘 본사 전경.
경북 경산시 진량공단에 있는 티포엘 본사 전경.

수소차 공간 활용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업계가 공간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차체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수소탱크에 그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혼다는 세단 수소차 클래리티 생산 중단 후 수소전기하이브리드 SUV ‘CR-V e:FCEV’를 출시했다. 부피가 큰 수소탱크 적재로 부족했던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SUV를 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포르쉐도 공간 확보를 위한 수소탱크 저장 기술을 독일 특허청에 출원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포착됐다. 탄소복합소재 기업 티포엘(T4L)이 주인공이다. 티포엘은 ‘Textile For Life’란 뜻으로 2001년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다. 2015년에 래디얼 브레이딩 RTM 설비 라인을 구축했으며, 이듬해에는 차량용 프로펠러 샤프트·드라이브 샤프트 선행부품 개발, 브레이딩 기반 RTM 공법을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복합재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9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현재 항공, 스포츠, 방위, 운송, 산업, 소재 등 다양한 산업에서 기술력을 뽐내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인 천진성 대표의 지휘 아래 많은 연구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양산보다는 연구개발에 초점을 둬 대중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대차, 삼성, KCC 등 국내 대기업과 소통하며 탄소복합소재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브레이딩 선두주자
티포엘이 자랑하는 기술은 ‘Braiding(브레이딩)’이다. 3차원의 일체형 복합 강화 구조를 제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머리를 땋고, 매듭·로프 등을 묶는 데서 유래됐다. 좁은 직물 구조를 갖는 브레이딩은 3개 이상의 각도를 가지는 유리섬유, 탄소섬유 등 원사를 오버랩핑하는 방식으로 엮어 만든다. 

티포엘 유호욱 책임연구원이 브레이딩 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티포엘 유호욱 책임연구원이 브레이딩 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티포엘은 이 브레이딩 기술을 장비에 접목했다. 세계적으로 봐도 브레이딩 장비를 제조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중국 정도다. 미국은 A&P, 독일에는 HERZOG가 있다.

브레이딩 장비는 방산용으로 사용될 수 있어 수출이 적법하다고 인정하는 수출승인서가 필요한 ‘E/L’품목으로 지정된다. 이 때문에 해외 수출입이 제한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 티포엘도 기술 개발부터 장비 구축까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수행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2D·3D 브레이딩 장비·공정기술을 자체 보유하고 있습니다. 브레이딩 복합재료는 전단충격 특성이 우수하고 브레이딩 편도조각 제어를 통한 물성 설계가 가능해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항공, 우주, 방산 부품 등에 활용되고 있죠.”

티포엘 유호욱 책임연구원의 말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유호욱 책임연구원이 기업부설연구소 입구에 서 있다.
유호욱 책임연구원이 기업부설연구소 입구에 서 있다.

티포엘 브레이딩 장비의 전신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브레이딩 장비는 현재 모습과 사뭇 다르다. 초창기 모델의 경우 중심에서 돌출된 곳에서 원사가 감기는 형태였으나 현재는 원주 방향에서 감기는 래디얼 방식으로 진화했다. 원사들이 스쳐 깨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 제품의 곡률·직경을 변경하기에 유리하다는 게 티포엘의 설명이다. 

티포엘이 초창기에 개발한 브레이딩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티포엘이 초창기에 개발한 브레이딩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이후 브레이딩 장비 개발의 외길을 걸은 결과 48, 72, 144, 192, 288추 등 모든 사이즈의 브레이딩 장비 라인업을 구축했다. 여기서 숫자는 원사가 장착된 개수를 의미한다. 즉 48추 브레이딩 장비는 48개 원사가 장착되는 것이다.

특히 288추 브레이딩 장비의 경우 세계적으로도 몇 대뿐이다. 대게 항공용 부품 생산에 사용된다.

티포엘이 자랑하는 288추 브레이딩 머신으로 한번에 288가닥의 원사를 감을 수 있다.
티포엘이 자랑하는 288추 브레이딩 머신으로 한번에 288가닥의 원사를 감을 수 있다.

RCB 공정 앞세운 수소탱크
티포엘은 브레이딩 장비를 포함해 자체 개발한 ‘RCB 공정’으로 굴곡 구조의 비정형 수소탱크를 개발했다. 공정의 명칭은 래디얼 와인딩(Radial winding), 크로스 와인딩(Cross winding), 브레이딩(Braiding)의 각 앞글자에서 따왔다. 래디얼 와인딩 4대, 크로스 와인딩 1대, 브레이딩 1대로 구성된다. 

수소탱크 개발은 2020년도 국책과제인 ‘친환경 자동차 분야(전기자동차,수소전기차) 기술개발사업’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티포엘은 1세부 과제 ‘전기차 플랫폼 공동활용을 위한 수소전기차용 비정형 수소저장장치 기술 개발’을 주관한다. 이 과제는 올해 말 종료된다.

티포엘이 개발한 굴곡 구조의 수소탱크. 탱크 크기를 줄이고 모양을 유연하게 바꿔 향후 다양한 모빌리티에 적용할 수 있다.(사진=티포엘)
티포엘이 개발한 굴곡 구조의 수소탱크. 탱크 크기를 줄이고 모양을 유연하게 바꿔 향후 다양한 모빌리티에 적용할 수 있다.(사진=티포엘)

티포엘은 부피를 줄이기 위해 수소탱크를 구부리는 시도를 했다. 직경이 작은 여러 개의 용기를 전기차 플랫폼의 배터리 공간에 탑재하기 위해 실린더부와 곡관부가 연속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진 세장비가 높은 수소저장용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일반적으로 수소탱크를 제작할 때는 연속된 섬유를 실린더 상에 와인딩하는 방식으로 레이업(Lay-up)이 진행되고 라이너의 회전 방향으로 제조되기에 필라멘트 와인딩 공정을 주로 적용한다. 

필라멘트 와인딩이란 레진에 함침된 원사는 가이드를 따라 움직이고 제품이 회전함에 따라 제품 표면에 원사를 감아서 성형하는 공법이다. 일진하이솔루스, 플라스틱옴니엄, 롯데케미칼 등 수소탱크를 개발하는 기업 대부분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정 특성상 각도를 주기 어려워 굴곡 구조의 용기를 제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 연구원은 “RCB 공정을 이용해 직경이 작은 실린더부와 곡관부가 연속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진 수소용기를 개발하고자 한다”라며 “이에 브레이딩 기술과 와인딩 기술을 접목해 수소용기를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RCB 공정 장비의 전면부.
RCB 공정 장비의 전면부.

RCB 공정은 굴곡 구조에도 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브레이딩 공정만을 적용할 경우 사선방향(±45°), 직선방향(0°)으로만 보강이 이루어지기에 내압특성 발현을 위해서 래디얼 와인딩과 크로스 와인딩을 접목했다. 래디얼 와인딩은 나선형 방향으로 와인딩이 가능하며 고강도의 복합재료를 제조할 수 있다. 

또 크로스 와인딩은 △종래 공정에서 구현할 수 없는 주름관 굴곡 구조 보강 △고리(hoop) 방향의 와인딩을 통한 90°방향의 제품 보강 △곡관형 수소용기의 양끝단 금속부위와 결합되는 부위 보강 등이 가능하다. 

RCB 공정 장비의 후면부.
RCB 공정 장비의 후면부.

아울러 하나의 원사를 사용하는 필라멘트 와인딩과는 다르게 RCB 공정은 4축 이상의 각도로 원사를 보강해 높은 강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브레이딩 공정의 특성상 섬유를 다양한 각도로 와인딩해 물성을 설계할 수 있다.

그러나 곡관부 제작에 어려움이 있다. 수소탱크를 구부리게 되면 바깥면과 안쪽면의 직경이 달라져 응력을 설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첫 번째 레이어에서는 터지지 않고 제작됐다 하더라도 공정이 반복될수록 두꺼워지다 보니 꺾이는 부분을 구현하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일자형 수소탱크의 경우 제작에 어려운 점이 없으나 굽혀진 부분이 변수라는 게 티포엘의 입장이다. 꺾이는 형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초 틀이 되는 라이너인데 라이너는 국책과제의 컨소시엄 내 참여기관에서 개발을 담당하고 있어 여기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유 연구원은 “기존 원통형 수소저장용기의 형상과 달리 형태의 자유도가 높은 비정형 수소저장용기 제조기술 개발로 공간 활용도가 높아지고 전기자동차 플랫폼과 호환이 가능한 수소전기차 제작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전성 확보도 박차
수소탱크는 고압으로 가열된 수소의 반복 사이클, 저장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물리적 누적으로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파열압, 수압반복, 내압테스트 등 여러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티포엘 수소탱크의 일자형 부분은 수소산업 전주기제품 안전성지원센터에서 10만 사이클의 수압반복 테스트를 마친 바 있다. 2만5,000사이클을 반복하는 게 일반적이다. 

RCB 공정으로 제작한 수소탱크는 1,900바(bar)까지 압력을 견딜 수 있다. 사용압 700바 기준으로 파열압은 2.25배인 1,575바 정도다. 유 연구원은 “1,600바나 1,700바에 터질 수 있게 해석을 해 만들고 있으며 이 정도 기술력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지속적으로 사용할수록 파열압이 올라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차에 탑재되는 만큼 무게가 중요한데 파열압이 높아질수록 원사 레이업이 증가해 용기가 무거워진다.

유 연구원은 “현재 RCB 공정을 이용한 용기의 경우 파열압과 내압, 수압반복 테스트의 기본 조건은 만족하고 있다. 10번 이상 굽힌 최종 제품 형상의 용기 제조 조건을 확립할 것”이라고 전했다. 

티포엘이 새롭게 개발 중인 RCB 공정 머신.
티포엘이 새롭게 개발 중인 RCB 공정 머신.

한편, 티포엘은 현재 RCB 공정 장비는 부피가 커 장비 간 간격을 줄인 신형 RCB 공정 장비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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