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소 정책의 허점을 찌르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공격적인 수소보급 목표를 지양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논점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유재국 입법조사관은 지난 5일 ‘기존 수소 정책의 점검과 정책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최신 국내외 동향 및 현안에 대해 수시로 발간하는 정보 소식지 ‘이슈와 논점’을 통해 공개됐다. 국회 공식입장이 아닌 국회입법조사처의 조사분석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유 조사관은 무탄소 연료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 정책을 점검했다.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 일환으로 탄소 감축 차원에서 수소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월에는 최초로 수소발전이 담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을 수립했다.
10차 전기본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 총발전량의 2.1%에 해당하는 13TWh를 수소·암모니아로 발전할 계획이다. 2023년 12월에는 ‘청정수소 인증제 운영방안’을 발표하고 수소·암모니아 혼소용 수소 80만tH2(수소톤)을 공급할 목표를 세웠다.
이밖에도 2030년까지 △수소차 30만 대 보급 △수소충전소 660기 이상 구축 △수소특화단지 지정 △소재·부품·장비 기술투자 확대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유 조사관은 수소 정책의 맹점을 꼬집었다.
먼저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기술개발 수준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수소 공급망 확충에 대한 명확한 경로 설정 없이 목표량을 제시했다는 지적이다.
수소 관련 전력 목표 예측이 크게 바뀌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밝혔다. 2021년 이행계획에서는 2030년 발전용 수소 수요를 353만tH2(48TWh 발전)으로 잡았으나 2023년 청정수소 인증제 운영방안에서는 수소 수요를 80만tH2(13TWh 발전)으로 설정했다.
또 정부의 수소기술 정책이 성공을 전제로 수립됐다고 설명한다. 수소기술은 첨단 기술로 이용·운송·저장 면에서 성공이 불확실하다. 이에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2023년 해외 그린수소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정부가 수소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상업화라는 벽에 가로막히고 있다. 이처럼 정부 정책에 허점이 생기는 원인도 상업화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수소 상업화 쟁점은 크게 △기술개발 성공의 불확실성 △청정수소 생산 시스템의 구축 가능성 △수소의 경제적 생산 가능성 등 3가지다.
현재로서는 수소 관련 기술 중 연료전지 이외에는 뚜렷한 성과를 낸 기술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천연가스와 수소 등 이질적 연료를 혼합해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연소과정에서 온도 변화 및 열 분포 변동으로 터빈·보일러 물성에 영향이 가기에 수소 혼소에 대한 충분한 실증과 수소 전용 연소장치 개발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수소산업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청정수소 생산 시스템이 구축되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2023년 수소경제위원회는 수소 1kg당 탄소배출량 4kg 이하를 청정수소 기준으로 의결했다. 국내 액화천연가스(LNG) 개질 연료전지 배출계수는 약 12.47kgCO2e/kgH2으로 탄소포집 장치(CCS) 없는 천연가스 개질 수소의 경우 청정수소로 인증받기 어렵다. 국내 수전해 수소도 청정수소로 인증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2021년 승인 국가 온실가스 배출·흡수계수의 배출계수는 443gCO2e/kWh로 EU 청정 전력 기준 65gCO2e/kWh보다 크다.
2030년까지 청정수소 공급량 80만tH2을 태양광으로 수전해해 공급하려면 10차 전기본 태양광(4만6,500MW) 계획과 별도로 3만5,312MW의 설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아 경제성 있는 청정수소 생산 가능성은 희박하다.
유 조사관은 정책 당국이 △전력수급 안정 △효율성 확보 △기후변화 대응 △국내 기술 축적 및 연관 산업 육성 △공급망 안정성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소 정책을 추진할 것을 당부하며 4가지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촉매 개발 등 그린수소 생산, 수소 혼소(연소), 수소 배관망, 탄소포집, 철강의 수소환원 등 청정수소 관련 연구개발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고, 연구개발의 결과와 타당성 있는 예측 등을 기초로 수소발전 및 수소 이용 기술 도입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으로 충분한 양의 청정수소 생산이 가능한 전력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조사관은 “국내에서 적정 원자력 발전량을 확보하고, 풍력발전이 여의치 못한 현실을 감안할 때 영농형 태양광을 포함한 태양광 발전 보급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제도도 명확하게 청정수소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태양광 설비 수출, 해외 현지 태양광 발전사업 추진, 청정수소 생산 시설 구축, 국내 반입 등 사업성이 높은 인바운드 청정수소 공급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정수소의 경제성을 제고시키고, 이를 거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력수요가 적을 때 전력이 과잉 공급돼 출력 저하 지시 또는 인위적 공급 차단 시 원자력과 태양광의 과잉 전기를 수소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소의 추가성을 인정해 이를 우선 거래하는 시장도 있어야 한다는 게 유 조사관의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수소차, 수소선박 등의 보급은 소비자 선호도, 공급자의 기술개발 속도, 친환경 운송수단의 세계적 보급 흐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른 정책 변화, 수소의 친환경성 여부에 대한 체계적 분석 및 청정수소 인증 체계 구축에 대한 평가 등을 기초로 현실적 관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유 조사관은 “청정수소의 생산과 이용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되 연관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라며 “기술적 불확실성을 반영하지 않은 공격적 보급목표 설정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