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여수공장 전경.(사진=GS칼텍스)
GS칼텍스 여수공장 전경.(사진=GS칼텍스)

 도로·항공·해운을 망라한 전 수송 분야의 탈 탄소화를 위한 국제 환경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전기차·수소차, 탄소중립연료(e-Fuel, 바이오연료, 암모니아 등), 수소엔진 등 다양한 수단이 제시되고 있다.  

그 중 그린수소를 원료로 하는 재생합성연료(e-fuel) 등 친환경 석유대체연료의 생산과 사용을 확대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됨으로써 국내 석유업계의 관련 투자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 같은 목적으로 발의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이하 석유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석유사업법 개정안은 홍정민 의원 등 총 5명의 의원 발의안을 토대로 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대안이다. 5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할 정도면 친환경 석유대체연료 생산·사용 활성화의 시급성을 말해준다.

친환경 석유대체연료는 기존 내연기관의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50년 이후에도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연기관 차량(대형 상용차, 군용차 등)과 전동화가 어려운 항공·선박의 탄소중립을 위해 친환경 연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친환경 석유대체연료 명시

이번 개정의 주요 내용을 보면 먼저 법 목적에 ‘탄소중립화 기여’ 및 ‘관련 사업의 건전한 발전 지원’을 추가해 친환경 연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목표를 구체화했다. 

또 산업부 장관이 지정한 ‘친환경 정제원료’를 석유정제공정에 투입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하위법령(시행규칙)에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폐윤활유, 바이오매스 등을 친환경 정제원료로 규정할 예정이다.

글로벌 해운사인 머스크(Maersk)의 메탄올추진선에 메탄올 연료를 주입하고 있다.

석유대체연료의 정의도 변경했다. 기존에는 친환경 여부와 관계없이 석유를 대체하는 모든 연료를 포함했지만 화석원료 기반 석유대체연료와 바이오연료, 재생합성연료(e-fuel) 등의 친환경 연료를 명시적으로 구분했다.

지원사업의 근거도 마련했다. 친환경 연료의 개발·이용·보급 확대, 원료 확보 지원 등 국내 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정을 신설하고, 친환경 연료 관련 지원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담기관(석유대체연료센터) 설치·운영 근거를 명시한 것이다.

품질 확보와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친환경 정제원료 투입 시 산업부 장관에게 사용계획·내역을 보고토록 하고, 석유제품 제조의 원료로 석유 또는 친환경 정제원료가 아닌 물질 사용을 금지토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석유사업법 개정을 통해 정부는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글로벌 친환경 연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강력한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수요 확대 등을 기반으로 친환경 연료 산업생태계도 고도화시켜 나갈 예정”이라며 “아울러 그간 정유업계가 우려를 제기했던 법·제도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친환경 연료 전환에 대한 민간의 과감한 투자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정부 이송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될 예정이며, 공포 6개월 후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산업부는 법 시행에 맞춰 하위법령을 차질없이 준비하고, 관계부처와 함께 친환경 연료 활성화를 위해 신재생연료혼합의무화제도(RFS) 비율 상향과 같은 제도적 지원과 세액공제 등의 인센티브를 마련할 계획이다.

정유사, 친환경 연료 투자 가속화 전망

쉐브론, 엑슨모빌 등 해외 메이저 석유 기업들은 이미 원유 정제공정을 일부 바이오원료 정제공정으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석유계 원료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등 재활용원료를 혼합 정제하는 혼합 투입(Co-Processing)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3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및 에어로젤 생산시설 착공식을 개최했다.(사진=LG화학)
LG화학은 지난해 3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및 에어로젤 생산시설 착공식을 개최했다.(사진=LG화학)

석유화학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3월 충남 당진 석문산업단지에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및 에어로젤 생산시설 착공식을 열고, 열분해유 생산시설 등의 건설에 총 3,1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LG화학은 연간 2만 톤 규모의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생산할 예정이다. 

SK지오센트릭은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 폐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 울산ARC 착공식을 개최했다. 1조8,000억 원이 투입되는 울산ARC는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열분해, 고순도 폴리프로필렌 추출, 해중합)을 모두 구현하는 종합 재활용 산업단지로, 준공 이후 연간 32만 톤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기존 항공유에 재생합성연료(e-fuel), 바이오연료 등을 혼합한 SAF(지속가능 항공연료)는 전 세계 항공유의 0.2% 생산 수준이다. 프랑스는 이미 2022년부터 항공유에 SAF 1% 혼합의무를 시작했다. EU는 오는 2025년부터 모든 항공유에 SAF 2% 혼합의무를 시작해 2050년에는 그 비율을 63%로 확대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SAF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산업부, 국토부)와 대한항공, GS칼텍스, 한국석유관리원 등은 지난해 9월 5일부터 3개월간 인천 → LA 노선(대한항공 화물기)에 바이오항공유(SAF)를 급유해 시범 운항을 했다. 바이오항공유는 폐식용유, 생활폐기물 등을 원료로 만든 친환경 항공유로, 기존 화석연료 기반의 항공유 대비 최대 80%까지 탄소배출 감축이 가능하다.

이번 시범운항에서는 GS칼텍스가 SAF를 공급했고, 인천공항 급유시설에서 일반항공유와 SAF를 혼합해 최종 2%로 희석한 바이오항공유를 화물기에 급유해 총 6차례 운항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에 국내 최초로 바이오항공유를 국적 항공기에 투입, 시범 운항해 얻은 데이터는 2024년 상반기까지 품질기준 마련 등에 활용하는 등 향후 관련 법·제도를 조속히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15일부터 국제 컨테이너 선박에 바이오선박유를 급유해 시범 운항하는 실증 연구도 진행 중이다. 바이오선박유(선박용 바이오디젤, 바이오중유)는 동·식물성 유지를 원료로 만든 친환경 선박유로, 기존 화석연료 기반의 선박유 대비 65% 이상 탄소배출 감축이 가능하다.

첫 시범 운항 선박(HMM의 현대타코마호)은 GS칼텍스에서 공급한 선박용 바이오디젤 30%가 혼합된 선박유로 운항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선박용 바이오디젤뿐만 아니라 선박용 바이오중유가 혼합된 선박유 등을 연료로 사용해 총 5차례 이상의 시범 운항이 진행될 예정이다.

산업부는 이번 시범 운항에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 올 하반기까지 바이오선박유 품질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린수소 품은 e-fuel 활성화 기대

재생합성연료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재생합성연료(e-fuel)는 재생에너지 전기로 만든 그린수소와 탄소자원(CO2 등)을 합성한 연료로, 청정메탄올(e-메탄올), e-가솔린, e-디젤, e-메탄(NG), e-항공등유, e-암모니아 등이 있다.

이미 지난 2021년 4월 ‘재생합성연료(e-fuel) 연구회’가 발족한 바 있다. 연구회는 2022년 1월에 6차 연구회(최종)에서 e-Fuel 관련 기술·경제성을 분석하고, e-Fuel 활용을 위한 정책·기술적 과제를 제시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국내는 수소·CO2 생산 및 합성 공정 등 제조공정의 원천기술은 다수 확보 중이나 상용화를 위한 실증 연구가 필요한 단계다. 경제성 확보가 핵심이며, 수소와 CO2 가격을 낮추기 위한 CO2 흡착제 효율 향상, 합성 촉매 개발 등이 주요 과제이다. NEDO 보고서(2020년) 등에 따르면 e-Fuel 제조 시 필요한 에너지는 수소 생산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CO2  포집, 연료합성 순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다.

또 e-fuel 연구회는 전기·수소차의 높은 차량 가격, 인프라 구축 비용 등을 고려하면 향후 e-Fuel도 전기·수소차 수준의 경제성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e-fuel 연구회에 SK에너지,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S-OIL 등 국내 4대 정유사들이 참여함에 따라 이들은 향후 e-fuel 생산·판매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3일 ‘청정메탄올 신산업 창출 추진전략’을 발표했다.(사진=탄녹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3일 ‘청정메탄올 신산업 창출 추진전략’을 발표했다.(사진=탄녹위)

산업부는 e-Fuel 보급 활성화를 위해 수송부문 탄소중립연료 워킹그룹을 구성해 단계별 연료·대상차종 선정, 혼합비율 및 배출가스 측면의 엔진 적용성 검증, 연료 성능 표준 수립 등 e-Fuel 기술개발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이행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CCU 실증 R&D(탄소순환형 정유제품 생산을 위한 CCU 통합공정 기술개발, 2022~2025년)를 통해 정유 공정에서 발생하는 CO2를 포집·활용해 항공유 등의 석유제품을 개발·생산하고, 품질기준 개발 등의 상용화 전략도 수립할 예정이다.

아울러 급격한 전동화가 어려운 군용 차량·함정 등에서도 e-Fuel 활용이 가능하도록 민·군 협력 e-Fuel 실증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무탄소 합성에너지원 관련 제도 수립 방향, 기술개발 추진방안, 기업 지원 방안 등의 설정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메탄올 추진선 발주가 확대됨에 따라 청정메탄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청정메탄올 신산업 창출 추진전략’을 발표한 이유다. 이번 추진전략을 통해 청정메탄올 생산 규모를 오는 2027년 20만 톤에서 2030년 50만 톤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장성광업소(폐탄광) 일원을 청정메탄올 생산지로 전환하는 시범사업이 추진된다.

이번 석유사업법 개정을 통해 그린수소를 품은 재생합성연료의 중요성과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됨에 따라 수소업계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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