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공기기라는 ‘본업’을 기반으로 수소 ‘신사업’에 도전하는 케이아이비플러그에너지를 찾았다.(사진=케이아이비플러그에너지)
화공기기라는 ‘본업’을 기반으로 수소 ‘신사업’에 도전하는 케이아이비플러그에너지를 찾았다.(사진=케이아이비플러그에너지)

고래박물관이 있는 장생포항에서 멀지 않다. ‘케이아이비플러그에너지’ 본사는 산업도시 울산을 대표하는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에 자리하고 있다. 한데 이름이 낯설다. 인근에 있는 대한유화, 태광산업, 금호석유화학과는 다른 MZ세대의 세련미가 있다. 

울산 본사는 1공장에 붙어 있다. 1981년 ‘대경정비용역’으로 창업해 40년이 넘는 업력을 갖춘 곳이다. 대경기계기술로 사명을 바꿔 사업을 이어가다 2007년 큐캐피탈에 인수되면서 ‘큐로’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다 지난 2023년 7월 13일 큐로그룹에서 KIB PE(Private Equity, 사모펀드) 계열로 최대주주가 변경되면서 ‘케이아이비플러그에너지’로 거듭났다. 또 KIB PE는 수소계열 밸류체인 구성을 위한 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KIB에너지인프라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회사 인수에 맞춰서 정관에 신사업을 명시했어요. 연료전지·신재생에너지 제조업, 수소연료 생산·공급·판매업, 2차전지 제조업 등을 넣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죠. 본업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린데 블루수소 공장에 열교환기 공급

허성호 대표를 따라 1공장을 돌아본다. 아파트 3층 높이의 난간에서 내려다본 공장동 내부는 한창 제작 중인 열교환기로 빼곡하다. 

케이아이비플러그에너지(이하 ‘KIB’)는 화공장치 제조기업으로 통한다.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한 대형 EPC(설계·조달·시공) 기업으로부터 조달(Procurement) 부문을 재수주받아 기자재를 납품하고 있다.

케이아이비플러그에너지의 울산 1공장 내부.

“제품의 90% 이상을 해외 플랜트 시장에 수출하고 있어요. 글로벌 EPC 기업이 수주한 프로젝트에 단발성 계약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 변동에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이죠. 다행인 건 코로나가 끝나고 2022년 말부터 수주가 늘었어요. 업황이 회복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죠.”

KIB는 열교환기, 반응기, 압력용기, 저장용 탱크 같은 화공장치 외에도 이와 유사한 설비 기술이 적용된 보일러, HRSG(Heat Recovery Steam Generator, 배열회수보일러), 조선기기 등의 사업을 병행해왔다. 그러다 2018년 이후로 열교환기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이곳 울산에 1공장이 있고,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울주군 온산국가산단에 2공장과 3공장이 있어요. 1, 2공장이 5,000평 정도 되고, 3공장이 1만5,000평으로 가장 크죠. 우리가 가진 제한된 인프라 안에서 가장 잘하는 일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어요. 톤당 부가가치를 따져보면 열교환기가 가장 높거든요. 국내 경쟁사, 해외 후발 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교환기에 집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탄소강 소재 다관형 열교환기의 용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KIB는 수십 년간 열교환기 사업을 벌인 경험이 있고, 글로벌 기업의 벤더사로 제품을 오랫동안 납품한 이력이 있다. 이호철 영업팀장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열교환기는 정유, 석유화학, LNG, 암모니아 등 관련 플랜트에 꼭 필요한 설비죠. 프로젝트의 특성상 엔드유저(End User, 최종사용자)의 벤더사 등록 여부나 공사 실적이 매우 중요해요. 실적이 없으면 입찰 참여가 힘든 보수적인 시장이죠. 향후 수소는 암모니아로 전환해서 유통하게 돼요. 중동, 북아프리카가 속한 메나(MENA) 지역만 해도 2030년까지 청정수소, 암모니아 부문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이어질 걸로 기대하고 있죠.”

이호철 팀장은 암모니아 플랜트를 예로 든다. 2022년 80억 원이었던 수주실적은 2023년 154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 텍사스에 들어서는 OCI의 청정암모니아 플랜트에 린데(Linde)가 수소를 공급해요. 바로 이 린데의 블루수소 플랜트에 들어가는 열교환기를 우리가 제작합니다. 수주 금액으로 보면 110억 원이죠. 인근에 있는 OCI의 암모니아 플랜트 같은 경우 KBR을 라이센서로 해서 이탈리아 테크니몽(Tecnimont)이 EPC를 수행하고 있어요. 이곳 현장에 들어가는 고압용 열교환기도 우리가 수주했습니다(한화 40억 원 규모).”

텍사스주 보몬트에 들어서게 될 린데의 블루수소 공장은 2025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여기서 생산된 수소를 네덜란드 비료 제조업체인 OCI 글로벌에 공급해 연간 110만 톤의 암모니아를 생산하게 된다. 

허성호 대표는 “전적으로 해외 수주에 의존하다 보니 환율 등 외부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다”라며 “애초에 화공기기라는 ‘본업’에 충실하면서 현재 트렌드에 맞는 ‘신사업’을 추진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성을 잡았다”고 한다. 

다관형 열교환기의 채널 안을 살펴보고 있다.

본업의 관점에서 보면 암모니아 플랜트가 수소와 깊은 관련이 있다. KIB는 글로벌 암모니아 라이센서인 KBR, 할도톱소(Haldor topsoe), 티센크루프, 카살레(Casale)의 공정이 적용된 실적을 다수 보유하고 있고, 그동안 글로벌 EPC인 테크니몽, 사이펨(Saipem), 도요엔지니어링, DL E&C 등과 함께 공사를 수행해왔다. 

“수소는 암모니아로 전환해서 운송하는 게 훨씬 유리하죠. 중동에서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수소를 수출하려면 암모니아 전환 공정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어요. 다만, 해외 수주에만 의존하기에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경영 차원에서 국내 신사업이 필요한 것이죠.”

수소 관련 세 가지 신사업

KIB는 허성호 대표의 취임과 동시에 △수소생산시설 및 연료의 생산·공급·판매 사업 △폐기물 수집·처리·이용업 △연료전지 및 신재생에너지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KIB의 주 종목인 에너지 장치기술에 ‘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사용’이라는 두 부문을 새롭게 추가해 경영의 폭을 넓혔다.

KIB가 추진 중인 수소 신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가 수소연료전지 발전, 두 번째가 폐플라스틱 열분해를 통한 수소생산, 세 번째가 수소버스 개발이다. 

허성호  케이아이비플러그에너지 대표이사.

먼저 발전용 연료전지 시장이다. 2025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20MW 규모의 발전용 연료전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MW급 발전단지를 5개로 늘려 향후 100MW 규모로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20MW의 경우 우선 울산에 부지를 마련해서 추진할 예정입니다. 건설 기간은 시운전을 포함해 16~18개월이 소요되고, 총사업비로 1,100억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죠. SPC(특수목적법인)를 통해 계약을 진행하게 되는데, 플레이어가 정해지고 세부 내용이 정리되는 대로 사업에 나설 생각입니다.”

두 번째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수소생산 프로젝트는 우석이엔씨와 관련이 있다. 우석이엔씨는 수소생산을 위한 단일환원로 열분해 가스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500℃ 고온의 증기에 산소를 혼합해 공급한 뒤 환원로를 1,600℃ 이상으로 가열해 합성가스를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PP(폴리프로필렌)나 PE(폴리에틸렌)를 플레이크나 펠릿 형태로 공급받아 합성가스 생산 원료로 사용하게 된다. 1,400℃를 훌쩍 넘는 고온열분해 방식이라 타르, 다이옥신 같은 대기오염물질이 생성되지 않는다. 플라스틱을 태워서 얻은 합성가스를 PSA(압력변환흡착) 설비로 정제해서 수소(H2)와 일산화탄소(CO)를 생산하게 된다. 

KIB는 2023년 9월 19일 우석이엔씨, 한국전력기술, 고등기술연구원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KIB는 합성가스를 이용해 수소, 일산화탄소 등 합성가스 목적 사업의 제품 생산을 위한 업무 전반을 맡는다. 새만금에서 진행한 우석이엔씨의 실증사업을 기반으로 상업용 플랜트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서 사업을 확장하는 일을 추진한다. 

“경기도 화성에 9천 평이 조금 넘는 부지를 마련해서 현재 중도금을 지불한 상태입니다. 나머지 인허가 관련 문제가 남아 있죠. 일부 자본금에 현물출자 형태로 참여하고 있는데, 늦어도 올해 6월까지 토목공사를 완료하고 현장에 설비를 들일 계획입니다. 내년 초에는 설치를 완료하고 2025년 상반기에는 수소생산에 나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죠.”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에 있는 울산 3공장.

세 번째는 수소버스 개발과 관련이 있다. KIB는 지난해 8월 전기버스를 생산하는 범한자동차의 지분 50%(800만 주)를 168억 원에 인수했다. 이는 공시를 통해 밝힌 ‘친환경에너지 밸류체인 관련사업 및 경영계획’의 일환으로 전기·수소버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다.

“전기버스 시장도 현대차가 주도하고 있고, 나머지 시장을 놓고 KGM커머셜(구 에디슨모터스), 우진산전, 범한자동차가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죠. 우선은 원가절감, 수익성 개선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어요.”

범한자동차는 경상남도 함안군에 전기버스, 수소버스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인수에 맞춰 기존 SKD(부분조립생산) 방식의 생산공정을 CKD(완전조립생산) 방식으로 변경해 경쟁력을 제고하고, 어린이 통학버스 개발을 진행 중에 있다. 

수소버스의 경우 수소연료전지, 수소엔진 차량 개발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다. 연료전지 시스템의 경우 글로벌 제조사 제품을 비롯해 국내 안전기준에 맞는 부품 공급업체를 선별해 공급망을 꾸릴 계획이다. 수소엔진의 경우에는 독일 기업과 실무적인 논의를 진행 중이다.

“시간을 두고 국내 버스업계의 움직임에 맞춰 전략을 수정해가면서 대응할 생각입니다. 아직은 회사 인수 초기인 데다, 스텝 바이 스텝으로 하나씩 가는 게 아니라 동시에 추진하는 사업들이라 세부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요. 앞선 세 가지 사업 중에서는 폐플라스틱 수소화 사업이 가장 빠르게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죠. 부지를 화성으로 잡은 것도 평택에 폐기물 관련 시설이 많이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PP나 PE 재생 펠릿 공급업체와 장기계약을 맺고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죠.”

플랜트 기술 부분은 우석이엔씨, 한국전력기술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KIB는 이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에 주목한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를 통한 비즈니스 모델로 사업의 지속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공장 직원들이 열교환기 조립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수소사업에서 찾는 돌파구

울주군 온산에 있는 울산 3공장을 돌아본다. 열교환기 소재는 크게 탄소강(Carbon steel), 스테인리스스틸(STS)로 나뉜다. 가격은 스테인리스스틸이 훨씬 비싸다. 

KIB에서 제작 중인 ‘원통 다관형 열교환기’의 구조는 간단하다. 케이스에 해당하는 원통 셸에 금속 튜브 다발이 들어 있다. 또 한쪽에 튜브 안을 흐르는 유체를 넣고 빼는 채널(Channel)이 붙게 된다.

허성호 대표는 “열교환기를 만드는 현업으로는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없다”고 한다. 큰 성과를 내는 ‘미래지향적’인 사업이라기보다는 직장인 월급 같은 ‘캐시카우’의 성격이 강하다.

스테인리스스틸 소재 튜브 다발 옆에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본업을 기반으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해외 수주가 늘어난 게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인건비, 재료비 상승으로 실질적인 원가율은 계속 오르고 있고, 환율에 따라서 회사 수익이 크게 달라질 수 있죠. 이런 외부 요인을 줄이려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국내 사업처를 확보해야 합니다. 화공기기를 만드는 회사가 손댈 수 있는 분야가 그리 많지 않죠.”

비단 KIB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곳 울산만 해도 기존 사업을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꾀하려는 업계의 갈망이 높다. 다만 그러기에는 몸집이 너무 크다. 온산로를 타고 달리는 길에 본 육중한 설비가 플랜트 산업의 무게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 화공장치 제조기업도 조선, 중공업처럼 부침을 겪었다. 2000년대 초반 고유가로 사업 환경이 좋아지자 설비 투자 규모를 늘렸다. 이게 화근이 될 줄 몰랐다. 2008년 금융위기, 키코(KIKO) 사태 등을 겪으며 중소·중견 기업이 도산하거나 구조조정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화공 업체가 대기업 계열사에 편입되기도 했다. 

대경기계기술은 2007년 큐캐피탈에 인수되면서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지만, 큐로라는 이름을 달고 기지개를 켜지 못했다. 업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가 끝나고 그동안 보류되거나 지연됐던 발주가 재개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2023년 상반기에만 전년 대비 매출액 51%, 영업이익 50%의 상승을 이끌어냈다. 2023년 3분기 누적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4.56%가 늘어난 964억 원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3억 원, 순이익은 154억 원을 달성했다.

이 같은 실적 개선이 회사 인수에 호재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이제 선장은 KIB로 바뀌었고, 신사업의 돌파구를 수소사업에서 찾고 있다.

“처음부터 크게 갈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일부는 CB(전환사채)를 발행한다거나 조인트벤처 형태로 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구성해서 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죠. 코스피 상장사로서 자본시장 접근성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어요. 리스크를 낮추려면 서로 나눠서 가는 형태로 역량을 키워가야 합니다.”

허성호 대표는 솔직하게 말했다. 시장에서 차입금이라는 지렛대 없이 자기자본만으로 이익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평을 맞춰 튜브 절단 작업을 하고 있다.

“글로벌에서 수소사업에 걸고 있는 기대감이랄까, 비전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다만 국내 사업만 해도 정책이나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아요. 전기버스든 수소버스든 다 보조금으로 돌아가잖아요. 수소사업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사업 환경이 더 좋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 또한 바람이라고 할 수 있죠.”

직장인이 월급만 보고 살지는 않는다.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 레버리지를 일으키고 싶어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KIB는 화공기기라는 ‘본업’에 수소라는 ‘신사업’을 더했다.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심한 시간이 엿보인다. 아직 그 결과물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용기를 부려야 응당 그에 걸맞은 과실을 얻게 된다. 

세상에 리스크 없는 투자는 없다. 투자를 결심했다면 리스크를 잘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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