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토 사이트 성재경 기자] “창업 후 150년이 넘었으니 역사가 있는 기업이죠. 프랑스가 수소사업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붐이 확 일었다 다소 차분해진 국내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아파브(Apave)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오른다. 2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67년에 프랑스 뮐루즈 산업회사의 부사장이었던 에르네스트 쥐베르(Ernest Zuber)가 근로자 안전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세운 ‘증기동력기계 소유자의 알자스협회(Association Alsacienne des Propriétaires d’Appareils à Vapeur)’에서 출발했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모습을 드러낸 에펠탑 공사에 아파브의 기술진이 참여했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이 건축물은 지금도 여전히 파리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남아 있다.
아파브의 해외 사업 강화 전략
아파브 그룹이 ABS 그룹의 한국지사인 ABS 컨설팅의 ‘검사·검증 사업부(TIV)’를 인수하면서 올해 6월 1일 아파브 코리아가 출범했다. 아파브가 ‘검사·검증 사업부’를 콕 찍어 인수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100% 고용 승계가 이뤄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직원도 바뀌지 않았고 사무실 공간도 그대로 쓰고 있죠. 아파브는 기술, 환경, 인재, 디지털 위험 관리의 글로벌 리더로 전 세계에 1만4,000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어요. 이번 인수합병은 유럽, 아프리카 중심에서 아시아·중동 시장으로 사업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아파브 코리아 최세용 대표의 말이다.

ABS 컨설팅이 한국지사를 설립해서 사업을 시작한 해가 1971년이다. 50년간 정유, 화학, 발전, 건물, 인프라 부문 등에 위험성평가, 검사·인증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국내 1위 ASME(The American Society of Mechanical Engineers, 미국기계학회) 인증기관이기도 하다.
“세계 유력 선급회사로 보통 DNV(노르웨이 선급), LR(로이드선급), ABS(미국선급) 등을 들어요. 영국의 로이드처럼 ABS도 조선·해양 관련 선급 업무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있죠. 아파브는 2021년 2월에 발표한 그룹사 전략에 따라 인수합병을 지속하면서 해외 사업을 강화해왔어요. 양사의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미국선급협회와 아파브 그룹의 협상 소식이 흘러나온 게 지난해 11월이다. 이후 여섯 달 만에 인수합병 절차가 마무리됐다.
아파브 그룹을 이끌고 있는 필립 마이야르(Philippe Maillard) CEO는 이번 인수를 두고 “당사의 지리적 입지를 확장하고 아파브 그룹의 전문 지식을 강화하는 동시에,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위험관리 솔루션으로 고객의 새로운 요구 사항을 충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파브 그룹의 연매출은 10억 유로(1조4,000억 원)로, 이중 25%는 해외에서 매출이 발생한다. 해외 지사만 63곳이 넘고 4,800여 명의 임직원이 속해 있다.
아파브 그룹의 업무 영역은 의외로 폭이 넓다. 석유·가스 에너지,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원자력 분야에 높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또 항공, 철도, 친환경 모빌리티 부문에 강점을 보유하고 있고 산업용 장비 테스트, 사이버 보안, 자산관리 등 다방면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 그룹의 전략에 따라 지금도 인수합병을 이어가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법인은 ‘아파브 인터내셔널’ 내 에너지사업부에 속해 있어요. 지난 9월 북마케도니아에서 열린 에너지사업부 연례행사에 다녀왔죠. 그룹에서는 한국을 수소 선도시장으로 보고 큰 기대를 걸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수소산업이 크게 부상하고 있고, 차분해진 국내 분위기와 달리 유럽과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는 그 열기가 아주 뜨겁다고 할 수 있죠.”

프랑스만 해도 수소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액화수소 플랜트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가스공급업체 에어리퀴드가 대표적이다. 또 수소연료탱크와 모듈을 생산하는 플라스틱옴니엄(Plastic Omnium)은 현대차에 납품하기 위한 수소연료탱크 제조시설을 전북 완주에 구축할 예정이다.
타이어 대기업 미쉐린과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포레시아(Faurecia)의 합작 투자사로 알려진 심비오(Symbio)는 프랑스에 연료전지모듈 생산을 위한 기가팩토리를 구축하고 있고, 르노그룹은 ‘마스터 밴 수소전기차’를 지난해 여름에 출시한 바 있다. 마스터 밴에 들어가는 연료전지는 르노와 미 플러그파워의 합작사인 하이비아(Hyvia)에서 공급한다. 또 글로벌 자동차 회사인 스텔란티스의 수소전기차 양산 라인도 프랑스 오르댕에 있다.
유럽 내 수소배관 인프라 구축도 눈여겨봐야 한다.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는 지난해 12월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수소를 이송하기 위한 해저가스관 설치에 합의했다. ‘H2Med’로 불리는 이 사업은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프랑스 마르세유를 잇는 해저가스관 건설에 드는 돈만 25억 유로(약 3조5,000억 원)에 이른다.
가스관이 완공되면 EU가 2030년에 필요로 하는 수소의 10%에 해당하는 연 200만 톤을 이송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수소배관은 스페인 남단의 아프리카 모로코로 이어지면서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그린수소의 생산과 유통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인증·안전관리·위험성평가 진행
아파브 코리아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가 인증(Certification), 두 번째가 안전관리(Safety Control), 세 번째가 위험성평가(Risk Assessment)다.
첫 번째 ‘인증’과 관련해서 국내 150개 이상 제작사에 기술 컨설팅·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1위 ASME 공인검사기관(Authorized Inspection Agency, AIA)으로 통한다. ASME AI(공인검사원)가 지금도 전국을 돌며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수소압력용기를 위한 ASME 인증이 대표적이죠. 수소충전소용 타입1 탄소강 압력용기는 ASME 섹션 8에서 관리가 되고, 넥쏘에 들어가는 일진하이솔루스의 타입4 용기는 ASME 섹션 10의 복합소재 용기 인증과 관련이 있어요. 탱크압력시험, 수소누출시험 같은 인증에 필요한 테스트 정보를 많이 확보하고 있죠.”
국내 시장에 수소 제품을 판매하거나 미국, 유럽 등 해당 국가로 수출하려면 국가별 필수 인증 요건을 갖춰야 한다. 국내 제품에 한국가스안전공사의 KGS 인증이 필요하듯 미국은 ASME/DOT, 유럽은 PED, 일본은 MHLW, 말레이시아는 DOSH, 싱가포르는 MoM 등이 필요하다. 아파브 코리아는 이를 위한 기술 컨설팅, 검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두 번째 ‘안전관리’는 건축물이나 설비 자산, 현물을 보면서 진행하는 기술실사를 의미해요.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정비센터에 대한 기술자문, 현대차 공장의 전기차·수소차 관련 화재 안전진단을 수행한 적이 있죠. 폭발이나 화재 위험성에 대한 평가를 통해 소방안전에 필요한 조치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제주 행원리의 ‘3.3MW 그린수소 실증단지’에 SK플러그하이버스가 도입하기로 한 플러그파워의 1MW급 PEM 수전해 설비는 조금 특별한 사례에 든다. 애초에 문제가 된 것은 ‘인증’이었다.
“PEM 수전해 설비의 스택이 고압가스법상 압력용기로 분류가 되면서 문제가 됐어요. 통상 파열시험을 통해 설계 적정성을 확인해야 하지만, 구조적 특성상 시험이 곤란하고 스택의 가격이 너무 비싸 업체의 부담이 컸죠. 이에 규제샌드박스를 적용해서 수소법에 따라 ‘수전해 설비의 부품’으로 안전관리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어요.”
업계, 학계, 가스안전공사 전문가로 구성된 자체 안전위원회에 아파브의 ASME AI가 함께 참여해 수전해 설비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갔다. KGS가 ASME AIA를 대체 공인기관으로 인정해서 유연하게 대처한 덕분에 제주 현장 설치가 가능해진 셈이다.

“세 번째 ‘위험성평가’는 설계상에서 이뤄지는 평가로 볼 수 있어요. 사고 피해의 심각도, 사고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정량·정성 분석이 핵심이죠.”
QRA(Quantitative Risk Analysis, 정량적 위험성분석), BRA(Building Risk Analysis, 빌딩 위험성분석)은 정량평가에 든다. QRA는 설비에서 누출된 화학물질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화재, 폭발, 독성물질 누출 사고로 작업자가 노출될 수 있는 위험성을 수치화해서 평가한다. 그에 반해 BRA은 화학물질 누출이나 폭발 사고가 건물에 미치는 위험성을 평가한다.
HAZID(위험요인식별), HAZOP(위험과 운전분석)은 정성평가에 든다. 공정 프로세스 자체와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요인을 식별해 추가 안전대책을 검토하거나(HAZID), 운전분석을 통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공정 설비의 위험성과 안전문제를 도출해 대책을 마련하게 된다(HAZOP).
“위험성평가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개선 권고사항을 마련해 설계나 로직 등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죠. 위험 요인을 찾아내서 인적, 물적, 환경 피해를 수반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평가 조치로 보면 됩니다.”
SK E&S가 인천에 구축 중인 연 3만 톤급 액화수소 플랜트, 니키소 씨이앤드아이지 코리아가 구축 중인 액체수소충전소,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의 암모니아 생산을 위한 해상플랫폼, 선보유니텍의 50kW PEM 수전해 설비 등에 대한 위험성평가가 여기에 든다.
아파브 코리아의 업무는 수소충전소, 액화수소, 암모니아, 수전해 등 수소사업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전면에 잘 드러나진 않지만, 그동안 수소업계의 동반자로 기업들과 함께하며 국내 수소산업의 기틀을 닦는 데 일조한 셈이다.
수소업체 해외 진출 위한 조력자
아파브 그룹은 근 3년 동안 인수합병을 통해 ‘외연 확장’에 집중해왔다. 이번 ABS 컨설팅 인수는 그 목표에 가장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아파브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 인도, 베트남 등 45국을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해왔다. 그러다 올해 ABS 컨설팅 TIV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70개국 이상으로 사업망을 확대했다.

약 15개국에서 아파브에 합류한 700여 명의 ABS 컨설팅 전문가가 지닌 경험과 영업망은 그 자체로 큰 자산이다. 중동, 아시아 지역 진출에 속도를 낼 수 있고, 미국과 영국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또 자국의 수소사업 역량 확보에도 보탬이 된다.
“기존의 해양·화공(화학공업) 분야 기술 서비스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파브 그룹의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죠. 시장 확대를 통해 고객 서비스 범위를 더 넓게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국내가 수소활용 쪽에 강점이 있다면, 유럽은 수소생산 쪽에 강점이 있어요. 유럽의 수소 프로젝트 경험에 한국의 기술력이 더해진다면, 전통적인 에너지 산업뿐 아니라 수소를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생태계 전반에 서비스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죠.”
최세용 대표는 그동안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내 수소산업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는 “3년 전 국내에서 느꼈던 수소사업의 열기를 유럽에서 실감했다”고 한다.
“그룹사가 있는 프랑스만 해도 수전해 설비 인증이 늘었고 수소 프로젝트도 많이 생겼어요. 사우디로 대표되는 중동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도 그린수소 사업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죠. 앞으로 에너지 부문에서 수소가 헤게모니를 잡을 수밖에 없어요. 오일 메이저만 해도 무탄소 연료 쪽으로 손댈 수 있는 분야가 수소에 한정돼 있으니까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도 수소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죠. 국내기업의 화공 플랜트가 많이 들어가 있는 나라를 중심으로 수소저장용기 수출 문의가 꾸준히 늘고 있어요.”

그 기세를 국내기업이 체감할 정도는 아니지만, 화석연료에 기반한 기존 에너지 산업을 ‘현상 유지’ 틀 안에 붙잡아두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단계로 나아간 것만은 분명하다. 그 변화의 중심에 수소가 있다.
“일반 전기는 에너지 캐리어(운반체)가 될 수 없지만, 수소는 저장과 운송에 강점이 있고 암모니아나 메탄올, 이퓨얼로 전환할 수 있죠.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인식이 커질수록 수소가 빛을 볼 겁니다.”
물론 ‘명분’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수소 기술의 안전 확보를 위한 규제와 제도의 틀 안에서 기업들은 현실적인 고민을 마주하게 된다. 인증만 해도 그렇다.
“화공 쪽만 해도 표준화된 인증이 존재해요. 여권처럼 어느 나라나 통용되는 그런 인증서가 있어서 하나만 받아두면 유용하게 쓸 수 있죠. 하지만 수소는 신규 시장이라 합의된 글로벌 표준이라는 게 없어요. 시장 선점을 두고 기술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보니 ‘표준’에 이르는 합의가 어려운 게 사실이죠. 그래서 기업들이 힘들어해요. 수출을 하고 싶어도 나라별로 받아야 하는 인증이 다 다르니까요.”
이럴 때 밑그림을 그려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전문가가 있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파브 코리아는 바로 그 조언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국내기업은 수출로 먹고 산다. 작은 시장을 두고 아웅다웅해서는 생존이 어렵다는 걸 안다. 대부분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기술개발과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수출을 염두에 둔 이들 제조사가 아파브 코리아의 가장 큰 고객이라 할 수 있어요. 해외 수소시장이 활성화되면 미국 인증도 필요하고 유럽 인증도 필요하게 되겠죠. 지금은 해외 진출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수소사업에 대한 해외 투자가 크게 늘고 있고, 수소사업이 궤도에 오르는 시점이 되면 그동안 고군분투해온 국내기업에 기회의 장이 열릴 겁니다. 우리도 그 때를 기다리고 있죠.”
정권이 바뀌면 수소산업에 대한 정책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유효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다르다. 세부 정책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무탄소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본류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수소사업에 더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아파브의 한국 시장 진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소사업에 대한 투자가 계속 이어져서, 한국이 수소 선두국가의 지위를 이어갔으면 한다”는 최세용 대표의 바람으로 마지막 말을 대신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