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소 전시회인 ‘H2 MEET 2024’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도 국제컨퍼런스와 포럼을 아우르는 전시회 본행사를 비롯해 리더스 서밋, 컨트리 데이, 테크 토크 등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다.
오는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최첨단 기술을 통한 수소경제 활성화’라는 주제로 수소 산업과 정책, 기술 분야의 다양한 컨퍼런스가 열릴 예정이다.
혁신에 대한 도전
이번 전시를 앞두고 서울 서초동 자동차회관에 있는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를 찾았다. H2 MEET 조직위에는 KAMA 외에도 한국수소연합, 수소에너지네트워크, 한국에너지공단, 한국산업연합포럼이 속해 있지만, 전시회 실무를 맡아 살림을 꾸려온 기관은 KAMA라 할 수 있다.
KAMA 전시사업실의 박영균 수석위원은 “올해는 현대차 정도를 빼면 대기업의 참여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중소·중견 기업의 참여가 활발하고, 특히 한국의 수소산업에 대한 외국 기업의 참여가 꾸준히 늘고 있어 국내 수소시장에 대한 글로벌 업계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고 전했다.
안타깝게도 올해 전시에는 SK, 포스코, 한화, 효성, 두산(두산퓨얼셀) 등 대기업이 많이 빠졌다. SK그룹만 해도 에너지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건으로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포스코도 올해 그룹의 수장이 장인화 신임회장으로 바뀌면서 한 템포 쉬어가는 분위기다.

“조직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봅니다. 수전해 시장은 아직 기술이 여물지 않았고, 연료전지 쪽은 정책 지원이 줄면서 시장이 포화 상태인 데다 해외 진출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죠. 숨 고르기를 하면서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청정수소 인증제,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 등 새로운 제도가 시행됐지만, 업계의 기대와 현실의 격차가 크고, 지원과 규제 등 불확실성이 여전해 기업들은 주저하는 모양새다. CO2 포집·저장을 기반으로 하는 블루수소에 여전히 비판적인 시각이 많고, 그린수소만 해도 해외 수전해 업체가 강세를 띠고 있다.
수소산업은 끈기와 도전을 요구한다. 올해 수소산업 관련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협의체인 수소위원회에서 공동의장을 맡은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이 지난 8월 16일 수소위원회 공식 SNS를 통해 처음으로 밝힌 메시지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는 “혁신은 종종 지표면 아래에서 일어나다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진다. 수소도 이와 비슷하다”라며 “수소기술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 기세를 부인할 수 없다. 수소사업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장재훈 사장은 “나의 열정은 수소가 우리 사회와 다음 세대에 도움이 될 에너지 전환의 핵심 요소라는 깊은 신념에서 나온다”라며 “수소산업은 확실히 새로운 개척지이며, 여기에 큰 도전이 따른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현대차는 지난 1998년에 수소 관련 연구개발(R&D) 전담 조직을 만들어 30년 가까이 수소 연구를 해왔다. 2004년 연료전지 핵심 부품인 스택을 독자 개발했고, 2013년에는 수소전기차인 투싼 ix35를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이후 2018년 수소전기차 전용 모델인 넥쏘를 내놨고, 2020년에는 수소전기트럭 엑시언트를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2.5세대 연료전지를 장착한 넥쏘 후속 모델이 출시되면 시장의 분위기 달라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차는 H2 MEET의 전신인 ‘수소모빌리티+쇼’ 때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전시회에 참가해왔다. 올해도 가장 큰 규모로 전시 부스를 마련할 예정이다.
수소산업이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끈기 있게 버티며 혁신 기술에 도전하지 않으면 어떤 성취도 얻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마련돼야 한다.
고려아연, HD현대인프라코어, 보쉬
‘수소모빌리티+쇼’의 정식 명칭이 ‘H2 MOBILITY+ENERGY SHOW’였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박영균 수석은 “영문명에 ‘에너지’가 들어 있었다”고 강조한다. 국문으로 발음할 때 너무 길어 전략적으로 한 글자를 뺀 것이다.
2022년에 ‘H2 MEET’로 이름을 바꾸면서 모빌리티(Mobility), 에너지(Energy), 탄소중립(Environment), 기술(Technology)을 아우르는 통합 전시회로 거듭났지만, 수소모빌리티와 수소에너지를 근간으로 하는 전시회의 정체성만큼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수소에너지 전환에 관심이 큰 기업으로 고려아연을 들 수 있다. 비철금속 제련 회사로 50년간 축적해온 원료 추출·가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트로이카 드라이브(Troika Drive)’라는 3대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신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이차전지 소재 산업 △리사이클링을 통한 자원순환 사업을 가리킨다.

고려아연의 재생에너지·그린수소 사업은 썬메탈홀딩스(호주 자회사)가 있는 호주를 거점으로 한다. 그린수소와 그린암모니아 생산과 공급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 친환경 에너지 개발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호주에서 생산한 그린수소를 국내로 들여와 활용하기 위한 준비도 착실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22년에는 한화임팩트, SK가스 등과 ‘한국-호주 수소 컨소시엄’을 결성했고, 지난해에는 암모니아 기반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기업인 아모지(Amogy)와 전략적 제휴도 맺었다.
HD현대인프라코어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발주한 첫 번째 수소전소엔진 발전기 국산화 실증 과제를 수주했다. 오는 2027년 6월까지 140억 원을 투입해 수소전소엔진을 활용한 500kWe급 청정수소 및 분산발전용 고효율 발전기를 국산화하는 것이 목표다.
수소엔진은 발전기뿐 아니라 차량에도 들어간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자체 개발한 11리터급 HX12 엔진을 타타대우상용차의 맥쎈 카고트럭에 장착해 주행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이 엔진을 발전기로 전환해서 200kWe급 수소엔진 발전기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9월 25일에 열리는 H2 MEET 전시회에서 차량용 수소엔진과 수소발전기 세트를 만나볼 수 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보쉬는 차량용 연료전지와 수소엔진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보쉬의 연료전지 시스템이 니콜라의 수소트럭에 들어가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포트 연료 분사(PFI), 저압 직분사(LPDI) 방식의 수소엔진 개발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올해 인도 시장에서 수소엔진 출시도 예정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로버트보쉬코리아가 참여한다.
또 효성과 함께 액화수소플랜트, 액화수소충전소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린데(린데하이드로젠퓨얼테크)도 만나볼 수 있다.
중소·중견 기업 신기술 주목
산정을 향해 오르는 등산도 매력적이지만, 완만한 구릉을 이룬 해발 200~300미터 고지대를 걷는 일도 즐겁다. 제주만 해도 억새와 오름이 있는 중산간의 매력이 크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부스의 규모는 작아도 중소·중견 기업의 신기술을 전시회 현장에서 접하는 즐거움이 있다. HD현대나 HD한국조선해양은 이번에 참가하지 않지만, HD현대가 투자를 진행한 에스토니아의 연료전지 기업인 엘코젠(Elcogen)은 참여한다. SOFC(고체산화물 연료전지) 기술을 보유한 업체로 수소 외에도 천연가스, 암모니아 등을 연료로 전기를 생산한다.

국내 1위 수소냉각기 공급업체로 전국 217여 곳의 수소충전소 구축에 참여한 삼정이엔씨를 비롯해 어프로티엄, 광신기계공업, 비나텍, 파나시아 같은 낯익은 기업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하이리움차트를 통해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공급하고 있는 하이리움산업, 3톤급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개발한 디앨도 참가한다.
동화엔텍은 자회사인 동화하이텍을 통해 개발한 시간당 150kg급 아이오닉 압축기를 이번 전시회에 출품할 예정이다. 피스톤 압축기를 점도가 있는 습식 환경에서 구동하기 때문에 저항이 거의 없어 전력소비가 적고 발열도 낮다.
또 연료전지용 가습막과 고분자전해질막을 개발한 시노펙스, 중공사 기술을 활용한 기체분리막 전문기업인 에어레인도 참가한다. 단일환원로로 열분해·가스화반응을 유도해 폐플라스틱으로 합성연료를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한 우석이엔씨, 모듈형 플라즈마 기술을 적용해 매립지가스로 수소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 인투코어테크놀로지도 눈여겨볼 기업이다.

코렌스그룹의 계열사인 케이퓨얼셀은 올해 건물용 연료전지시스템을 선보인다. 쉘과 손을 잡고 싱가포르의 로로선인 펭귄 터내서티 호에 60kW급 연료전지 시스템을 탑재해 프랑스선급의 안전·성능 시험을 통과한 빈센도 참여한다.
‘H2 이노베이션 어워드’ 본선에 진출한 10개 기업의 제품과 기술도 만나볼 수 있다. 올해는 테크로스, 일진하이솔루스, 에너진 같은 업체들이 이름을 올렸다. 8월 말에 수소전문위원 심사를 거쳐 대상(1개사), 부문별 최우수상(3개사), 우수상(3개사)을 선정했다.
박영균 수석은 “조직위가 지난 7월 1일부터 참가기업의 공모를 받아 예선 심사를 진행했다. 전문위원들이 혁신성, 기술성, 상품성, 발전성을 중점으로 평가한 걸로 안다”고 밝혔다. 최종 결과는 9월 25일 전시회 당일에 발표된다. 작년에는 미코파워가 고효율 8kW SOFC 시스템으로 대상을 받았다.

강원, 전북, 충남, 포항 등 지역 테크노파크가 대부분 참여한다. 또 경상남도를 비롯해 울진군청, 울산경제자유구역청 등 지자체의 참여도 돋보인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자동차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도 이름을 올렸다.
“올해도 지역의 스타트업, 중소기업과 함께 부스를 꾸리는 곳이 많아요. 수소클러스터, 수소특화단지, 수소도시처럼 수소와 관련된 지역 사업 비중이 크기 때문에 지자체의 참여도가 높다고 할 수 있죠.”
박 수석은 ‘H2 이노베이션 어워드’ 외에도 국내 기자단의 현장 투표로 진행되는 ‘베스트 프로덕트 미디어 어워드(Best Product Media Award)’, 외신 기자단의 현장 투표로 진행되는 ‘글로벌 미디어 픽(Global Media Pick)’도 주목해 달라고 했다.
리더스 서밋, 컨트리 데이, 테크 토크
올해 컨퍼런스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먼저 ‘리더스 서밋(Leaders Summit)’은 글로벌 수소업계 리더, 정책 입안자, 전문가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각 정부나 기업의 수소사업 방향성, 수소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의 컨설턴트는 ‘암모니아 미드스트림 인프라, 암모니아 비용 및 암모니아 배출 문제’를 주제로 연단에 오른다. 포테스큐(Fortescue)의 글로벌 에너지 마케팅 책임자는 ‘녹색 혁명: 탈탄소화의 최전선을 향하여’를 주제로 꼽았고, 에머슨의 아시아태평양 담당자는 ‘자동화 솔루션과 함께하는 수소사업의 미래’를 주제로 정했다.
에너지 시장 조사업체인 아거스(Argus Media)도 암모니아에 초점을 맞춰 ‘일본과 한국의 저탄소 암모니아 벤치마크 소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다. 이 외에도 bp, RWE, 아람코,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의 담당자가 연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컨트리 데이(Country Day)’는 수소업계 선도국가들이 모여 각국의 수소 정책과 이니셔티브를 소개하고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는 장이다. 호주, 캐나다를 비롯해 노르웨이, 핀란드, 칠레, 미국이 참가국으로 나선다.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그린수소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칠레, 청정수소 전략과 로드맵을 들고 나온 미국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은 초당적 인프라법(BIL)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기반으로 청정수소 허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에너지부(DOE)와 청정수소에너지 시스템연합(ARCHES) 주도로 미국 내 7개의 수소허브 중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수소허브가 공식 출범하기도 했다. 11월에 치를 대선 결과와 관련해서도 관심이 집중되는 나라다.

‘테크 토크(Tech Talk)’는 수소 전부문의 기술과 관련이 있다. 업계 최고 전문가와 현장을 누비는 엔지니어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 인기가 많다. 티센크루프의 대규모 수전해 기술, 보쉬의 연료전지 시스템과 수소엔진 애플리케이션, HD현대인프라코어 수소엔진 기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 파트너 프로그램으로 코트라가 직접 진행하는 가와사키중공업 핀포인트 상담회(9월 25일 오전 10~12시)도 기대가 된다. 코트라는 올해도 전시회장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수출상담회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