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한다는 게 언감생심이었는데 조금씩 욕심이 생기네요. 초저온·LNG 분야 기술과 사업경험을 바탕으로 액화수소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해 미국 차트인더스트리, 독일 린데엔지니어링 등 글로벌 초저온 액화가스 저장·운송 설비 제조사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회사를 성장시켜 나갈 겁니다.”
임근영 디앨 대표(한국특장차산업협회 회장)의 각오다. 올해로 창립 31주년을 맞은 디앨은 특장차, 초저온·LNG·LPG 등의 탱크로리, 탱크트레일러, 저장탱크 등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기업으로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제 제품군에 LH2(액화수소)를 추가해 지속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인천·울산·창원 등 3개소에서 액체수소가 본격 생산될 예정인데, 생산된 액체수소를 수소차 충전소 등의 수요처로 보내기 위해서는 운송 트레일러가 필요하다. 디앨은 한국가스기술공사와 함께 약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국내 최초·최대용량의 ‘3톤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해 지난해 12월 품평회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한 바 있다.
3톤 액화수소 탱크 트레일러 개발
“국내 수소 시장은 기체수소로 시작해 고압의 수소 운송 튜브트레일러, 저장탱크 등의 제품이 보급되고 있는데, 당사는 LNG 등 액화가스 운송 트레일러·저장탱크를 생산하는 기업이라 기체수소 시장에 진입하지 않았습니다. 매년 일본에서 개최되는 ‘H2&FC EXPO’ 등을 통해 일본이 기체수소에서 액화수소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국내에도 액화수소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해왔죠. 특히 SK, 효성, 두산 등의 기업들이 수소 액화 플랜트를 건설한다고 하고 수소 버스도 보급되고 하니 정말 액화수소 시장이 열리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겨 본격적으로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 개발에 나서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 개발에 신중한 생각이었다. LNG 자동차 보급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공을 들여 개발했던 LNG 탱크트레일러, LNG 연료 탱크·공급장치 등의 제품 판매 확대에 실패한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CNG(압축천연가스) 버스를 보급한 이후 화물차 등을 LNG 자동차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타당성 부족으로 CNG 버스 보급에 그친 바 있다. 14~15년 전의 일이다. 당시 경유 화물차를 LNG 화물차로 개조하고 한국가스공사가 LNG 충전소를 구축하는 등 LNG 자동차 바람이 불었는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없다 보니 시장이 형성되지 못해 임 대표에게는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임 대표는 우선 액화수소에 진심인 강원도와 손을 잡고 1톤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개발했다. 강원(삼척) 액화수소 사업 실증특례를 통해 지난해 1월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설계검토를 완료했다. 현재 1톤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제작 중으로 오는 9월경에 공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음으로 두산에너빌리티와 창원산업진흥원,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하이창원이 추진 중인 창원 액화수소 사업의 실증특례를 통해 3톤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개발했다. 창원에 공급할 1대를 제작해 지난 2월 말 한국가스안전공사의 모든 검사를 완료하고, 3월 초에는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으로부터 자동차 안전검사에도 합격해 정식 운행이 가능하게 됐다. 현재 시험 가동 중인 창원 수소액화플랜트에 배치되어 처음으로 액체수소를 수요처로 운송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디앨은 삼척과 창원에 각각 1대씩 총 2대의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공급함으로써 액화수소 트레일러 시장을 선점하게 됐다.
임 대표는 “원래 창원에 공급할 트레일러는 2.5톤급으로 개발하려고 했는데, 미국 차트인더스트리 등 해외 몇 개 기업이 3톤급을 개발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3톤으로 변경한 것”이라며 “인천에 수소액화플랜트(연간 3만 톤)를 구축한 SK E&S도 3톤급 트레일러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앨이 개발한 3톤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에는 수소의 기화를 막기 위한 고진공 단열기술이 핵심기술로 사용되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진공 작업에 필요한 단열재 자동작업 및 열처리 기술을 보유한 디앨은 트레일러의 몸체 부분을 다중 탱크로 제작해 열전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탱크에 초진공 단열(Shield Tank, Shield Metal, Super Insulation) 기술을 적용해 진공상태를 유지했다.
또한 HDM(High Dual Membrane) 방식으로 내·외조 탱크를 체결해 액화수소의 냉열(-253℃)에 의한 수축팽창, 차량 진동, 외부 열 차단을 최적화했다.
아울러 안전관리시스템인 ‘TongsoriH(통소리H)’를 적용해 차량의 탱크 잔량, 탱크압력, 가스누출 여부, GPS를 실시간으로 핸드폰 앱(app)과 컴퓨터 웹(web)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가스누출, 탱크압력 급증 등 비상상황 발생 시 관리자에게 카카오 알림톡을 전송해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도록 했다. 전복방지장치(RSS)와 안전밸브를 추가해 주행 중 안전성도 높였다.
임 대표는 “당사가 액화질소 탱크를 오랫동안 만들어왔지만 액화수소는 비점(끓는점)이 액화질소(영하 196℃)보다 낮은 영하 253℃이기에 액화질소와는 다른 초진공 단열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라며 “용량을 2.5톤에서 3톤으로 변경하다 보니 국내 자동차안전기준(길이 13m 이하, 너비 2.5m 이하, 높이 4m 이하)을 준수하면서 3톤 용량을 확보하고 액화수소 환경에 맞는 초진공 단열 방법을 찾는 게 최대 관건이었는데, 어떻게 선진사 제품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 만들 것이냐가 가장 어려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3톤으로 하자니 열전도를 최소화하기 위한 충분한 에어 스페이스(단열·방습을 위한 벽 사이의 공기층)를 확보하는 게 힘들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해외의 자료 및 논문, 특허 등을 찾아보며 오래 고민한 끝에 내조 탱크와 외조 탱크 사이의 적절한 에어 스페이스를 확보하기 위해 환형(고리 모양의)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 게터(Getter; 진공 장치 안의 기체 분자를 흡착해 진공의 정도가 높은 상태로 만드는 물질)를 삽입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Low out gas’를 최소화했다.
임 대표는 “3톤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는 세계 최대급의 용량인 4만7,000L로 제작되어 기존 외산 제품을 웃도는 규모로, 기존 기체수소 운반용 튜브트레일러의 운송량(250kg)보다 무려 12배 이상 높아 운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라며 “기체수소 튜브트레일러의 운송압력이 대기압의 200배 수준이지만 액체수소 트레일러는 2~3bar 정도의 대기압 수준이어서 운송·하역 등의 설비 안전성도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액체수소충전소 국산화 개발 중
디앨은 한국가스기술공사와 함께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에 대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 한국가스기술공사와 액체수소 보급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공동 기술개발과 판매망 구축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산화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으로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SK E&S와 효성중공업이 주요 고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한국가스기술공사가 30년간 축적해온 초저온설비 정비 기술력을 기반으로 SK E&S의 인천 액화수소플랜트의 PMC(건설사업관리)부터 시험운전과 O&M(운영·유지보수)까지 프로젝트 라이프사이클 전반에 걸쳐 기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크다.
SK E&S는 인천에 세계 최대인 연간 3만 톤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를 구축했다. 생산한 액화수소를 유통하기 위한 인프라인 액체수소충전소도 약 40개소 구축을 추진 중이며, 올해 20개소를 개장할 예정이다.
효성중공업도 울산 효성화학 용연3공장에 연간 5,200톤 규모의 액화수소플랜트를 구축해 상업가동을 앞두고 있고, 광양 초남 등 8개소의 액체수소충전소를 구축 중이다.

SK E&S, 효성중공업, 디앨, 크리오스, 광신기계공업은 지난해 12월 ‘제6차 수소경제위원회’의 사전행사로 ‘액화수소 충전소 국산화 달성 및 공동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SK E&S와 효성중공업은 기술 지원과 국산 설비 활용에 나선다. 디앨, 크리오스, 광신기계공업은 액체수소충전소의 핵심 설비인 액체수소 저장탱크, 탱크트레일러, 펌프, 밸브와 기화기, 압축기 등의 기술개발과 제품 생산에 주력한다.
환경부는 내년까지 40기, 2030년까지 누적 280기 이상의 액화수소 충전소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임 대표는 “이미 기체수소충전소에서 경험한 것처럼 액화수소 사업 현장에 외산 제품이 설치되면 부품 조달도 힘들뿐더러 A/S나 유지관리 비용이 많이 상승할 것이고, 개소 당 70억~100억 원 정도 드는 액체수소충전소 구축에 수천억 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국산 제품 개발과 활용을 활성화해 국내 액화수소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 개발을 계기로 액체수소 저장탱크·충전소도 개발해 액체수소충전소 신규 구축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물론 기존 기체수소충전소를 액체수소충전소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액체수소 공급시스템을 패키지 형태로 개발해 기체수소충전소의 고압 수소 튜브트레일러 공간에 설치토록 하면 액체수소충전소 구축비용과 설비 설치시간을 줄일 수 있고, 기존보다 충전용량을 3배 이상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 대표는 “이미 4톤 액화수소 저장탱크 설계를 마친 상태로 한국가스안전공사의 기술검토를 받은 후 제작할 예정이고, 기존 LNG 이동식·패키지 충전소 제작기술과 통소리(Tongsori) 관제 기술을 활용해 액체수소충전소의 국산화 개발을 한창 진행 중”이라며 “올해 안으로 1호 액체수소충전소를 수주해 디앨 손으로 직접 구축해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새만금에 액화수소 전용 공장 짓는다
디앨은 본사(경기도 화성)와 충북 제천, 베트남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추가로 새만금 국가산단(전북 군산) 1공구 내 모빌리티 클러스터(이동수단 협력지구) 3만4,000㎡ 용지에 액화수소 및 초저온 제품 전용 공장을 지어 해외 진출 전진기지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지난 1월 새만금개발청으로부터 사용승인허가와 건축허가를 받았다.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올해 가을이나 내년 봄에 착공할 예정이다.


현재 동남아시아(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에는 특장차, 일본에는 소형 LPG 저장탱크, 캐나다에는 LNG 탱크 컨테이너를 각각 수출하고 있다.
임 대표는 국내외에서 개발 중인 수소엔진 차량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LNG 자동차에 장착하는 LNG 저장탱크와 LNG 연료공급장치를 개발한 경험을 살려 수소엔진 차량용 액화수소 연료공급장치 개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임 대표는 “당사는 기본적으로 특장차를 다루고 있고 직원 중 완성차 회사 출신들도 많아 자동차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라며 “특히 LNG 분야에서 20년 이상 쌓아온 경험이 있기에 액화수소 분야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끝으로 새만금 국가산단에 짓는 공장을 통해 글로벌 초저온 액화가스 저장·운송 설비 제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