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초당적인프라법(BIL)’이 미국의 탄소배출량 감소 속도를 높였지만, 송전망 인프라 확대 지연 등으로 수소, CCUS, 배터리 등 청정에너지 분야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정부가 IRA과 BIL을 통해 청정에너지 분야에 지급한 금액은 2,390억 달러(약 323조3,909억 원)로, 2022년보다 38% 증가했다. 그 결과 미국의 탄소배출량 감소 속도가 법 시행 전 2%보다 2배 늘어난 4%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각 주의 규정으로 인해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 중인 송전망 인프라 확대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아 수소, 배터리, CCUS, 원자력 등 청정에너지 산업 발전이 더디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송전망 확대 및 현대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송전망으론 청정에너지 보급률을 확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 에너지 정보관리국(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고전압 24만 회선과 약 70만 회로 마일(Circuit mile)의 송전선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송전망이 1950~1960년에 건설됐다. 노후화된 송전 인프라는 고장률 증가, 광범위한 정전, 복구 시간 연장의 원인이 될 수 있어 현대화가 시급하다.
이에 미 정부는 신규 송전선로를 구축하고 있으나 긴 환경 검토 과정, 주정부간 분쟁, 지역 사회 또는 토지 소유자의 반대 등으로 인해 2022년 기준 지난 10년간 매년 1.0%의 낮은 건설 증가율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IRA과 BIL이 시행되자 미 정부는 송전망 확대 및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2022년 11월 ‘더 나은 그리드 건설(Buildng a Better Grid) 이니셔티브’를 출범하고 신규 그리드 배치 사무소(Grid Deployment Office)를 설립했다.
미국 중부지역 송전시스템 운영업체인 PJM은 “청정에너지 보급률을 30%까지 확대하려면 2023년 기준 최대 3,000마일의 추가 송전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는 “송전망 건설 속도를 현재의 2.3배로 높여야 새로운 청정 전력을 수용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IRA 시행으로 인한 청정에너지 산업 발전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각 주정부의 규정으로 인해 송전망 확대 및 현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다 대부분의 전력 소매 판매의 5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주정부 차원에서의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내세우고 있어 관련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수소생산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선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송전망으론 수소생산에 필요한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지 못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엑슨모빌은 미국 텍사스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수소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런 우즈 엑슨모빌 CEO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IRA의 혜택을 받기 위해선 천연가스보다는 재생에너지로 가동되는 발전소의 전력으로 만든 수소를 생산해야 한다”며 “IRA의 이같은 규제를 뚫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즉 송전망이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만 사용해야 한다는 IRA의 규정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체들이 청정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 계획을 망설이고 있다.
컬럼비아대학교 글로벌 에너지 정책센터 관계자는 “기업들이 IRA 세제혜택을 적용하는 데 있어 수많은 실질적인 장벽을 발견하고 있다”며 “대표적으로 새로운 청정에너지 프로젝트를 그리드에 연결할 송전망 부족과 혜택을 받기 위한 요구 사항”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을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IRA의 실질적인 효과가 늦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S&P 글로벌 플래츠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금조달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이 더욱 명확해질 때 투자 계획이 실현될 것”이라며 “그 때 청정에너지 분야가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