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는 전 세계 에너지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단 5초 만에 전체 전력의 약 60%가 중단되면서 병원, 지하철, 통신망까지 마비됐다. 일부 지역은 24시간 이상 복구되지 않았고, 사회 전반의 혼란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설비 사고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급격히 증가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와 그 간헐성으로 인해 전력 계통의 불안정이 높아진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시스템이 저장 및 예비 전력이 없으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스페인은 이미 전체 전력의 약 70% 이상을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수요 변동이나 송전망 이상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전력망과 백업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빠른 에너지 전환을 추구는 과정에서 ‘안정성’이라는 핵심 요소가 간과된 것이다.

이 사례를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역시 ‘2050 탄소중립’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으며, 태양광·풍력 보급 확대, 수소경제 활성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재생에너지 특성인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설비를 동시에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예기치 못한 정전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력망의 유연성 확보다. 지금처럼 중앙집중형 발전 구조에 의존하면 특정 지점의 문제가 전국적 정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 마이크로그리드, 분산형 발전, 지역별 에너지 자립 시스템이 함께 구축되어야 하며, 특히 수소연료전지는 단순한 산업용 연료를 넘어 장기 저장 및 비상 전력 공급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둘째, 수소에너지와 전력망을 통합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수소 정책은 아직 산업·수송 부문에 집중돼 있지만 이제는 전력 안정화의 핵심축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예기치 못한 공급 쇼크에 대비하기 위해 수소 기반 백업 전력 시스템과 전력 피크 대응형 연료전지인프라를 적극 구축해야 한다.

셋째,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전력 관리 시스템도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 실시간 수요 예측, 자동 차단·복구 체계, 지역별 공급 조절 기능은 미래형 전력망의 필수 조건이다. 아울러 주파수 변동성을 안정화하는 데 필요한 동기발전기(Synchronous generator)도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 증가에 비례해 조속히 구축돼야 한다.

이번 스페인의 정전 사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기후 위기에 대비한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 역시 유사한 사태에 언제든 직면할 수 있다. 국가 전력망의 취약성을 점검하고, 에너지 저장 인프라 확대와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설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에너지 전환 시대의 책임 있는 준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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