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에너지고등학교로 전환되는 '전북하이텍고등학교' 본관.
수소에너지고등학교로 전환되는 '전북하이텍고등학교' 본관.

수소에 진심인 여러 지자체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완주군’이다.

완주군은 수소산업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는 지역적 여건과 특성을 갖추었다. 

전북 최대 산업단지인 ‘완주일반산업단지’엔 현대차(중대형 수소상용차), 일진하이솔루스, 오피모빌리티, 덕산에테르씨티(이상 수소저장용기), 비나텍(연료전지 및 소재) 등 국내 수소산업을 이끄는 앵커기업과 전후방 기업들이 입주한 데다 수소용품검사인증센터, 수소상용차 신뢰성 검증센터, 차량용 폐연료전지 시험인증센터 등 법정검사 및 시험평가·인증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이를 통해 완주군은 지난해 최초로 ‘수소특화 국가산업단지’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는 예타조사 이후 산업단지계획 수립, 관계기관 협의, 환경영향평가 등 후속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해 2026년에 완주를 수소특화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할 계획이다. 또 산단 조성에 2030년까지 2,5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완주군은 수소전문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우석대학교를 보유하고 있다. 

우석대는 지난 2008년부터 ‘수소연료전지 지역혁신센터(RIC)’를 운영하고 있다. RIC는 인력양성, 연구개발, 기술이전, 창업 등을 통해 국내 연료전지 기반 조성과 중소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우석대는 RIC를 통해 축적해온 역량과 자산을 바탕으로 ‘수소분야 글로컬 선도대학’으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다. 학교는 정부의 비수도권 대학 활성화 사업인 ‘글로컬대학30’을 통해 지원을 받아 기존 46개 학과를 수소테크와 휴먼테크로 나눠 개편하고 교내 부지에 입주기업 전용 복합시설, 창업비즈센터, 산업체 위주 오픈랩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같이 수소산업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완주군에 희소식이 도착했다. 지역 유일 공업계 고등학교가 국내 최초로 수소분야 특성화고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완주교육지원청에서 ‘전북하이텍고 협약형 특성화고 육성 거버넌스 협의회’가 열렸다.(사진=전북도교육청)
지난 3월 완주교육지원청에서 ‘전북하이텍고 협약형 특성화고 육성 거버넌스 협의회’가 열렸다.(사진=전북도교육청)

국내 첫 수소분야 특성화고
완주군 삼례읍엔 무려 110년째 운영되고 있는 철도역이 있다. 바로 ‘삼례역’이다. 이 역은 여객수송과 미곡수송을 위해 지난 1914년 11월에 운영을 개시했으며 현재는 ITX새마을열차가 왕복 1회 정차한다.

삼례역 인근엔 무려 72년째 운영되고 있는 고등학교가 있다. 바로 ‘전북하이텍고등학교’다. 이 학교는 지난 1952년에 개교한 공립 특성화고등학교로, 개교 초기엔 ‘사립 삼례고등학교’로 운영되다 1961년 공립으로 바뀌고 1977년 삼례공업고등학교로 개편됐다. 2009년 ‘특성화 전문계고’로 지정되면서 특성화고로 개편됐으며 2020년 학과를 개편하면서 교명을 지금의 ‘전북하이텍고등학교’로 변경했다.

이 학교가 국내 최초로 수소분야 특성화고로 개편된다. 교명도 ‘전북하이텍고등학교’에서 ‘수소에너지고등학교’로 변경한다.

2023년 8월 초 전북도교육청은 도내 특성화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전북글로컬특성화고’ 육성 사업 대상학교에 전북하이텍고 등 총 10곳을 선정했다.

전북글로컬특성화고는 기존 특성화고를 △신산업·신기술 융합형 △지역 전략산업 연계형 △학교 자체 발전형 △일반고 직업교육 위탁교육형 등으로 재구조화하고 학교별로 신산업·신기술 테마가 담길 수 있도록 학교명과 학과명을 변경하는 것이다.

전북하이텍고는 마이스터고 수준으로 학교를 지원하는 테마 1유형(신산업·신기술 융합형)에 선정됐다. 이에 학교는 교명을 ‘전북스마트팩토리고등학교’로 변경하고 기존 3개과(도제기계과, 부사관전기과, 드론항공과)를 에너지공정과와 반도체공정과로 개편해 스마트팩토리 분야 인재를 육성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약 2주 뒤인 2023년 8월 말 교육부는 ‘중등직업교육 발전방안’에 따라 오는 2027년까지 ‘협약형 특성화고’ 35곳을 선정해 육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협약형 특성화고 사업은 지자체, 교육청, 기업, 학교 등이 연계해 지역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특성화고를 육성하는 것으로, 지정된 학교들은 지역의 전략산업과 연계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한다.

전북도교육청은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협약형 특성화고 선정이 절실하다고 판단, 지난 1월 전북하이텍고, 완주군, 완주국가산업단지 입주기업 등과 ‘협약형 특성화고’ 추진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3월 전북도와 컨소시엄을 꾸려 도전했다. 그러나 학교는 지난 5월 교육부가 선정한 ‘협약형 특성화고 10개교’에 선정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학교와 완주군은 내년에 ‘협약형 특성화고’에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여러 차례 협의한 끝에 수소분야 특성화고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송현진 교장은 “완주군과 여러 차례 협의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완주군이 수소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수소분야 특성화고로 전환하기로 했다”며 “학과의 경우 스마트팩토리를 기반으로 ‘수소융합과’와 ‘에너지융합과’를 신설하고 교명을 ‘수소에너지고등학교’로 명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로봇실습실.
공정로봇실습실.

수소산업역군 육성
학교는 기존 도제기계과, 부사관전기과, 드론항공과를 폐과하고 수소융합과와 에너지융합과를 신설한다. 학급수는 학과당 2개, 총 4개이며 정원은 학급당 18명, 총 72명이다.

수소융합과는 △자동화 공정 △연료전지 시험·연구 △산업플랜트 유지보수 등 연료전지 산업군 맞춤형 인재를, 에너지융합과는 △자동화 공정 △배터리셀 제조 △에너지 생산설비 유지보수 등 이차전지 산업군 맞춤형 인재를 양성한다. 

학생들은 입학 후 에너지공통과정(전기전자일반, 기계일반, 에너지공업기초 등)을 배우다 2학년 때 ‘수소융합과’와 ‘에너지융합과’를 선택해 학과의 기본과목을 배운다. 3학년 땐 ‘직업계고 학점제’에 따라 수소융합과는 ‘연료전지 코스’와 ‘모빌리티공정 코스’를, 에너지공정과는 ‘이차전지 코스’와 ‘수소생산공정 코스’를 선택해 배운다.

직업계고 학점제는 학생들이 진로 희망에 따라 다양한 코스를 선택·이수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이를 통해 졸업 시기 산업계 채용 수요에 따라 인력양성을 유연화할 수 있다.

연료전지 코스는 스택, 전극 연료전지 분야 직업을 배우는 것으로, △연료전지스택제조원 △표준화 및 시험원 △공정 운용원을 양성한다. 수소상용차, 수소차부품, 저장용기, 튜브트레일러 등 모빌리티 분야 직업을 배우는 모빌리티공정 코스에선 △완성차 조립원 △공정 운용원 △유지보수원을 길러낸다.

이차전지 코스는 이차전지, ESS, 리사이클링 등 이차전지 분야 직업을 배워 △이차전지 소재 제조원 △표준화 및 시험원 △ESS 관리원 등으로 취업할 수 있다. 수소생산공정 코스는 수전해, 수소추출, 수소용품제작 등 수소생산공정 분야 직업을 배워 △공정 관리원 및 운용원 △부품 제작원 등을 양성한다.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학교는 22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으며 이 중 약 90억 원은 기숙사를 짓는 데 사용한다. 송현진 교장은 “올해 설계를 완료해 내년에 착공할 계획”이며 “내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완공될 때까지 우석대 기숙사에서 지내는데 생활비, 식비 등 관련 비용은 완주군에서 지원해준다”고 밝혔다.

또 기존 실습실을 ‘기업현장 미러형 실습실’로 리모델링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수소융합과로 바뀔 도제기계과.
수소융합과로 바뀔 도제기계과.

기업현장 미러형 실습실은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업무수행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실제 산업 현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실습교육을 할 수 있도록 산업체가 사용하는 인프라를 똑같이 구현한 실습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수소융합과 실습동으로 바뀔 도제기계과 실습동의 경우 1층에 있는 실습실들은 △연료전지스택 제조실 △수전해·수소추출실 △수소공급설비실 △기계조립실 등으로, 2층에 있는 실습실들은 △연료전지 시험·평가실 △특수용접실 △공유압실 등으로 바뀐다.

모든 과정을 거쳐 졸업하는 학생은 기업에 취업하거나 대학교로 진학한다. 송현진 교장은 “졸업생 중 70%를 기업, 나머지 30%는 대학으로 보낼 계획”이라며 “기업들이 군필이 아니면 채용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취업을 확정하고 우석대, 군산대 등 4년제 대학이나 기업과 협력하는 2년제 대학을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학교는 완주군, 새만금개발청, 완주산단 입주기업협의회,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한국수소연합,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등과 협력해 여러 기업과 학생을 채용하는 약정을 맺었다. 이 중 한 기업은 1학년 성적을 바탕으로 2학년 1학기에 ‘장학생(채용예정자)’을 선발해 장학금, 현장실습, 등록금 등을 지원하는 ‘상위 10% 우수학생 장학추천채용 제도’를 제안하기도 했다. 즉 우수학생을 앞서서 채용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송현진 교장은 “지금까지 총 연 181명을 채용할 수 있는 약정을 체결했다”며 “이 중 40~50명에 대한 채용을 명문화해 확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완주군,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등과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학교는 우석대(수소), 군산대(이차전지) 등 여러 대학과 교육과정 개발, 실험실습실 기준안 마련, 진학 솔루션 설계 등을 진행했다. 특히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취업을 보장할 수 있도록 채용연계형 계약학과 및 P-Tech(고숙련 일학습병행)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수소업계의 관심과 지원이다.

송현진 교장은 “채용약정, 기술 및 기자재 지원, 산업체 우수강사 지원 등 적극적인 산학협력을 통해 내실을 잘 다진다면 마이스터고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수소에너지고로 올 것”이라며 “지원해주면 열심히 지도해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지난 5월 전북하이텍고 학생들이 완주국가산단에 있는 기업을 방문한 모습.(사진=전북도교육청)
지난 5월 전북하이텍고 학생들이 완주국가산단에 있는 기업을 방문한 모습.(사진=전북도교육청)

촉매제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월에 발표한 ‘2023년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산업기술인력 부족 인원은 전년 대비 2.1% 증가한 3만8,476명으로 집계됐다.

산업기술인력 부족 인원이 발생하는 주된 이유로 ‘직무수행을 위한 자질 및 근로조건에 맞는 인력 부족(24.1%)’이 뽑혔으며 △인력의 잦은 이직이나 퇴직(23.4%) △사업체의 사업 확대로 인한 인력수요 증가(20.1%)가 뒤를 이었다. 

이는 직원의 이직 또는 퇴직으로 인한 빈자리를 메꾸거나 인원을 확대하기 위해 채용하고 있음에도 숙련·경험을 갖춘 인력이 부족해 인력난을 호소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현상은 수소업계에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에 공개된 ‘2023년 수소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2월 말 기준 수소산업 종사자 3만4,381명 중 2만4,704명(71.9%)이 기술기능직으로 나타났다. 또 신규채용 인원 중 신입직이 1만101명(69.4%)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은 향후 5년간 매년 약 700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세부적으로 △2024년 663명 △2025년 667명 △2026년 705명 △2027년 786명 △2028년 770명이다. 이는 구인인원보다 적은 것으로, 조사에 참여한 기업 중 12.2%가 ‘학력/자격을 갖춘 지원자가 없어서’ 채용인원이 많지 않다고 응답했다.

아울러 신입직 신규채용 시 선발기준별 중요도에서 ‘현장실무경험’과 ‘전공지식 및 보유 자격증’이 각각 3.6점과 3.5점으로, 1순위인 ‘태도 및 성격(3.9점)’에 이어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즉 수소업계는 기술기능직 위주로 신입직을 많이 채용하다 보니 실무경험, 지식, 자격증 등 직무수행을 위한 자질을 갖춘 인력을 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부는 △산업혁신인재성장지원사업 △에너지인력양성사업 △지역연계형 수소사업 혁신인재 양성사업 등 다양한 인력양성 사업을 펼치고 있으나 모두 대학교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수소기업들은 수소전문인력 확충방안으로 ‘특성화고, 환경 관련 학과, 교육과정 등 신설 및 개편(26.0%)’을 1순위로 꼽았다. 이어 △대졸자 취업연계 프로그램 강화(20.3%) △기능대학 설립 및 공공직업 훈련시설 설치·운영(20.1%) △중소기업 현장기술 인력에 대한 교육·훈련 지원(18.3%) 순이었다.

이 때문에 수소분야 인력양성 사업을 대학교에 국한하지 말고 고등학교까지 저변을 넓혀 수소경제 활성화에 필요한 인재들이 꾸준히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최초의 수소분야 특성화고인 ‘수소에너지고등학교’가 수소분야 인력양성 저변을 확대하는 데 좋은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북하이텍고등학교 창조관.
전북하이텍고등학교 창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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