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소산업은 유럽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수의 수소프로젝트를 추진할 뿐만 아니라 수소인프라에 투자하는 기업에 세금 감면 혜택 등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있는 사실로부터 이를 알 수 있다. 유럽연합은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하에 선제적으로 2030년까지 최소 40GW의 재생 수소 전기분해기를 설치하고 재생수소 1,000만 톤을 생산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국가가 있다. 바로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북해의 풍부한 해상풍력을 등에 업고 있어 그린수소 생산에 적합하며 유럽 최대 항구인 로테르담 항구를 보유해 수소공급 환경도 갖췄다.
네덜란드 정부도 이를 인지해 수소로드맵을 수립, 2030년까지 재생가능한 수소 생산 목표를 최소 80PJ(페타줄)로 설정했다. 참고로 1PJ은 1J에 10을 15번 곱한 값으로 80PJ은 8,000MW 수준의 엄청난 양이다. 유럽연합은 유럽 공동이익 프로젝트(IPCEI)를 통해 네덜란드 수소프로젝트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 중이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도 지난 7월 ‘네덜란드 수소 전략과 프로젝트 동향’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네덜란드에 수소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네덜란드 정부의 주요 목표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다. △주요 산업 클러스터와 주변 국가 간 수소 인프라 개발 △수소 인프라 투자금 15억 유로 중 50% 지원 △소금동굴 활용 3~4개의 지하 수소저장시설 건설 △3~4GW 용량의 전해조 용량 확보 △21GW의 해상 풍력 발전 용량 및 35TWh의 육상 재생에너지 발전 등이 해당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네덜란드는 자금, 인센티브를 최전선에 내세운다. 수소산업이 위축되는 대표적인 원인이 경제성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기술개발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나 이를 회수할 비즈니스 모델도 구축되지 않았다. 즉, 기업의 부담을 줄여 수소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조치인 셈이다.
수소 관련 사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먼저 네덜란드 국가성장기금, 정의로운 전환기금, 기후기금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다. 네덜란드 국가성장기금인 ‘녹색자금NL’은 그린수소와 산업용 수소의 확대에, ‘녹색자금Ⅱ’는 그린수소와 친환경 화학 생태계 조성에 사용된다.
인센티브를 받는 방법도 있다. 수전해를 통한 수소 생산 보조금 제도(OWE)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수립된 이 제도는 전기분해를 통한 친환경 수소 생산 관련 투자를 지원한다. 약 2억5,000만 유로(약 3,700억 원)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100MW의 전기분해 용량을 제공할 전망이다. 그린수소 생산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전기분해 설비가 50MW 규모 이상이면 지원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다만 결과를 빠르게 얻기 위해 4년 이내에 프로젝트를 끝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4월 기준 7개 프로젝트가 할당됐으며 101MW의 전기분해 용량을 제공한다.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거나 이산화탄소를 대규모로 줄이는 기업, 단체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산 및 기후 전환 인센티브 제도(SDE++)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네덜란드 경제기후부가 지급하며 지난해 7월 친환경 수소 및 기타 재생 가능 연료에 최소 7억5,000만 유로(약 1조1,139억 원)를 할당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에너지 및 기후 혁신 제도(DEI+)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기술개발을 하는 기업에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2024년 예산은 4,000만 유로(약 594억 원) 수준이다.
밸류체인 개발로 수소허브 노린다
네덜란드는 궁극적으로 유럽의 수소허브로 거듭나고자 한다. 정부 차원에서 수소산업 지원 정책을 활발하게 펼치는 이유다. 네덜란드는 얕은 바다를 끼고 있어 풍력 터빈을 설치하기 유리하고 운송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 수소허브로 변신할 여력이 충분하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소 밸류체인 개발에 한창이다.

수소 밸류체인은 생산, 저장, 수송, 충전, 활용 등 5단계로 나뉜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연간 약 100억m³(180PJ)의 수소가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80%가 그레이수소라는 사실이다. 이에 네덜란드는 그린수소 생산비율을 높이고자 한다. 정부는 2025년까지 5PJ(500MW), 2030년까지 30~40PJ(3,000~4,000MW)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지리적 이점을 활용, 해상풍력으로 그린수소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북부 해안의 해상풍력단지가 해상 수소생산지로 지정됐다. 최대 500MW의 전기분해 용량을 제공할 예정으로 세계 최대 해상 수소생산지가 탄생하는 것이다.
다음은 저장이다. 네덜란드는 지하저장 방식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상저장 방식 대비 저장 용량이 크고 누출 위험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금동굴에 진심이다.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대량의 수소를 주입·추출해야 하는데 소금동굴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높은 기술력과 초기 비용으로 도입이 쉽지 않다. 이밖에 폐가스 저장소, 지하수층에 수소를 저장하기 위한 연구도 지속되고 있다.
이제 수소를 수요처로 옮겨야 한다. 이때 네덜란드가 채택한 방법은 파이프라인이다. 현지에 이미 1,000km가 넘는 수소 파이프라인이 깔려 있다. 대규모 천연가스 네트워크도 있는데 추후 수소네트워크로 전활될 여지가 있다.

네덜란드가 유럽의 수소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운송 인프라가 중요하다. 이를 통해 모든 산업 지역에 수소를 유통하기 위함이다. 네덜란드 기업 가스니는 하이네트워크라는 자회사를 세워 수소 네트워크 형성에 나서고 있다. 자국 산업 클러스터를 수소 저장소와 연결할 뿐만 아니라 주변국인 독일, 벨기에의 주요 산업지역까지 닿고자 한다. 현재 로테르담에서 30km 길이의 수소파이프라인을 설치하고 있다.
이렇게 운송된 수소는 충전 후 사용되는데 충전의 경우 다른 국가와 유사하다. 대게 350바, 700바의 압력으로 수소를 충전한다. 올 5월 기준 네덜란드에는 26개의 충전소가 있다. 지난해 3월 유럽의회와 회원국은 2030년까지 200km당 한 개의 상용차용 수소충전소를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 네덜란드도 이를 따른다.

마지막은 활용이다. 보고서는 운송수단, 난방·온수, 전력망용, 모빌리티, 화학, 건축 등 분야에서 수소를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MIEK’ 필두로, 수소 프로젝트 활기
이렇듯 네덜란드는 수소 밸류체인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미래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실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대표적인 게 바로 ‘MIEK’다. 인프라 에너지와 기후프로그램을 뜻하는 네덜란드의 주요 프로젝트다. MIEK에는 총 14개의 프로젝트가 있으며 이들 모두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먼저 블루수소 프로젝트, ‘H-vision Rotterdam’이다. 저탄소 수소를 생산하고 운송하는 플랜트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프로젝트 구현을 통해 이산화탄소 대량 감축이 빠르게 달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유공장의 잔여 가스로부터 블루수소를 생산,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에어리퀴드, 엑손모빌, 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 블루수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선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가스전으로 운송하기 위한 항만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MIEK 중 하나인 ‘포르토스’ 프로젝트와 연계된다. 포르토스 프로젝트는 이산화탄소를 수송해 가스전에 저장하기 위한 주요 인프라를 건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로테르담 시설에서 발생하는 연간 2.5톤의 이산화탄소를 20km 거리의 고갈 가스전으로 이송, 해저 3~4km 깊이에 저장하게 된다. 로테르만 항만청, 가스니, EBN 등이 협력 중이다.

다음은 ‘아라미스(Aramis)’ 프로젝트다. 이산화탄소를 북해의 고갈된 해상 가스전에 저장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EBN, 가스니, 토탈에너지, 쉘 등이 참여한다. 2030년 이후 연간 5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으며, 이후 매년 2,200만 톤씩 규모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위원회는 아라미스 프로젝트에 1억2,400만 유로(약 1,846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로테르담-무르다이크 지역에서는 수소, 이산화탄소 운송을 위한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델타 코리도(Delta Corridor Connecting Industries)’를 비롯해 H-vision, 포르토스 등 다양한 MIEK가 진행 중이다. 이밖에 수소 관련 MIEK 프로젝트로는 ‘국가 수소 인프라(National Hydrogen Infrastructure)’, ‘NSCA 북해 운하 수소 터미널(Hydrogen Terminal North Sea Canal Area)’ 등이 있다.

MIEK 이외 수소 프로젝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Holland Hydrogen 1’이 있다. 주요 기업 쉘을 포함해 참여 기업만 150여 사가 넘는 유럽 최대 규모의 재생수소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네덜란드서 가장 큰 용량인 200MW 수전해가 들어온다.
자우드벤딩(Zuidwending)에서는 수소, 천연가스를 지하에 저장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전개 중이다. 가스니 프로젝트인 ‘하이스톡’은 이 지역에 수소 저장을 위한 소금동굴을 개발했으며 지난해 첫번째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2026년까지 필요 허가를 취득 후 수소 저장이 시작될 것으로 점쳐진다. 보고서에 따르면 첫 동굴은 2028년부터 본격 가동될 것이며 나머지 세 개의 동굴은 2030년 이후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해상 플랫폼에서 세계 최초로 그린수소가 생산될 수 있을 전망이다. ‘포스하이돈’ 프로젝트가 그 주인공이다. 북해에서 해상풍력, 해상가스, 그린수소 등 3가지 에너지 시스템을 통합하는 게 골자다. 이는 넵튠에너지의 Q13a-A 플랫폼에서 탈염수화된 바닷물을 통해 그린수소를 생산함으로써 이뤄진다.
이밖에 LOHC 기반 수소 공급망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퍼핀(Project Puffin)’,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에서 생산된 전기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NortH2’, 생산·유통·저장 등 필수 요소를 모아 완전한 수소경제를 구현하는 대규모 시범사업 ‘HEAVENN’ 등의 프로젝트가 네덜란드에서 벌어지고 있다.
산업계, 수소사업에 ‘풍덩’
네덜란드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는 이유는 비단 정부에만 있지 않다. 정부가 인센티브 지급, 법제화 등 수소산업 고도화를 위해 애쓰고 있으나 산업계의 참여 없이는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가스니(Gasunie)다. 앞서 봤듯이 산업계, 수소저장시설, 생산현장, 주변국을 연결하는 공공 수소 네트워크를 개발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를 통해 활동이 집중된 산업부지에 수소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천연가스 인프라를 활용 수소 파이프라인 구축을 연구하고 있다. 수소를 소금동굴에 저장하기 위해 하이스톡 프로젝트를 출범했으며 4개의 동굴을 개발해 2만 톤을 저장할 목표를 세웠다.

다음은 네덜란드의 전기·가스 공급업체 에네코(Eneco)다. 현재 최대 800MW 용량의 대형 수소 공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지난해 6월 설립한 자회사 에네코 다이아몬드 하이드로젠을 통해 그린수소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수소 생산·저장 기술을 개발하는 네덜란드 화학업체 노리온(Nouryon)은 1,100만 유로(약 162억 원) 보조금을 받아 20MW급 그린수소 공장을 건설 중이다. 가스니도 함께한다. 생산된 수소는 친환경 메탄올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네덜란드 국영 기업 EBN은 포스하이돈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며 가스 저류층 수소 저장 기술적 타당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보팍(Royal Vopak)은 화학물질, 가스, 석유 등 저장 및 취급 사업을 영위 중이다. 가스니와 협력해 수소 수입터미널을 개발하고 있다. 그린 암모니아 수입터미널도 고안 중이다. 지금은 수소 파이프라인 건설에도 발을 들였다.
네덜란드 그린수소 인프라 개발업체 VoltH2는 젤란드(Zeeland)주에 2개의 수소공장을 건설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공장은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가동되며 2026년부터 각각 매년 2,000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한다. 이는 연간 1만7,000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초기 설비 량은 25MW이며 추후 125MW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전력도 충분히 끌어올 수 있어 그린수소 생산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영국의 정유사 쉘, 프랑스 산업용 가스기업 에어리퀴드, 독일의 린데와 RWE, 벨기에 가스 인프라회사 프럭시스 등 다양한 유럽연합의 기업이 네덜란드에서 수소사업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