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은 공정사회실천연대 사무총장 | 우리나라의 올해 수출액은 일본을 따돌리고 세계 5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기존 발전소와 송전선은 거의 포화 상태인 데다가 지금 시작해도 약 10년이 걸리는 신규 발전소나 송전선 건설을 위한 마땅한 부지도 없고, 주민 반대로 송전설비는 건설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게다가 2026년부터 모든 수출기업에 국경탄소세가 적용되는 한편 이제 필수가 되어 버린 AI 시대 전 산업의 폭발적인 전력수요 증가로 최소 연 10% 수요증가를 가정해도 향후 7년 내 현 전력설비만큼의 전력설비 증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력공급을 늘릴 현실적인 방안이 없다. 그 결과 제한 송전이 이루어지면 국내에 투자한 해외기업은 물론 국내 기업조차 더 좋은 사업 환경을 찾아 해외로 떠날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효자였던 전력공급이 이제 그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정부는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과 신규 원전건설, SMR(소형모듈원전)을 통한 전력공급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2050년까지 약 2,700만 톤의 청정수소를 청정화력발전, 연료전지(분산형 발전), 모빌리티, 환원제철, 첨단산업 등의 용도로 공급해 국제 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동시에 탄소중립을 100%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발전소를 건설한다 해도 송전선 부족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16조 원을 투자해 최근 준공한 동해안의 대규모 신규 발전소들은 송전선이 없어 모두 멈춰 섰고, 밀양 송전선은 60km 건설에 9년이 걸렸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전력공급 문제로 6년이 지체됐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지리적 특성상 효율이 낮아 막대한 보조금이 없으면 추진할 수 없고 간헐성 문제, 좁은 국토 등으로 주력 전력공급원이 될 수 없다.
신규원전 건설은 지난 4개 정권조차 손도 못 댄 고준위 방폐장 건설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사실상 추진 자체가 어렵다. SMR은 아직 규모가 작지도 않고 안전성, 주민 수용성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아 2050년 상업화도 불투명하다.
200조 원 부채를 안고 있는 한전이 설사 70조 원을 간신히 조달해 남쪽의 남아도는 전력을 해저케이블로 인천 앞바다까지 끌고 온들 어떻게 수도권을 관통해 수요처에 공급할 것인지 의문이고, 그 공급량도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국가 수소조달 계획(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 전력수급 기본계획)상 어디에도 정부가 2050년에 필요한 연간 2,700만 톤의 수소를 확보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은 없다. 분야별 정부 계획대로라면 수년 내 연간 2,000만 톤의 수소가 필요한 데, 장기계획에는 25년 후인 2050년까지 700만 톤만 국내 생산하고 나머지 2,000만 톤은 해외에서 들여오겠다고 한다. 장단기 계획상 괴리가 3배를 초과하며 25년 후 2,000만 톤의 수소를 해외에서 확보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국가 중요에너지(수소)의 70%를 수입하려는 데, 조달이 안 되면 대한민국 경제는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당장 기업 간 세계 시장선점 경쟁이 치열한 데, 앞서 언급한 재생에너지 발전, 신규원전, SMR 등의 기술들은 앞으로 20년간 국내 심각한 전력 부족 공백을 메꿀 ‘중간 대안기술(Bridge Technology)’이 될 수 없다. 즉, 정부가 현실적으로나 시간적 문제가 다분한 기술들은 보조 방안으로 고려해야지 국가 주력 방안으로 추진한다면 한국경제는 자칫 물속 빙하를 향해 돌진하는 타이타닉호가 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연일 국내외 전문가들이 이런 심각성을 경고하고 신속한 대안 마련의 필요성을 시사해도 용산 대통령실과 관련 정부 부처는 아직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어떻게든 더 많은 발전소를 건설해야 하고, 대규모 신규전력을 가능한 송전선 없이 공급해야 하며, 이들 전력은 최대한 저렴한 무탄소 청정전원으로 공급해 전력 생산자와 사용자 모두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용산 대통령실과 정부 관계부처에 바란다. 수명이 종료되면 폐지될 국가 소유 58기의 석탄발전소(2036년까지 28기)를 그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적은 투자비로 단기간 내에 수소융복합발전단지로 전환해야 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상업화된 CCS(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통해 저렴한 대량의 청정수소를 생산할 수 있고, 이를 청정발전에 활용하면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
또 전국 석탄발전소마다 보유한 수만 평의 회사장(석탄재 매립장)에 대규모 발전소를 증설하고, 지역별 데이터센터, 삼성전자·하이닉스 등의 국내 첨단기업과 구글·엔디비아·메타 등의 해외 빅테크 같은 대규모 신규송전 요청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청정발전 후에도 남는 수소는 전국 도시가스망을 통해(정부는 2026년까지 20% 수소 혼입 실증 추진 중) 전국 전력공급 수요처(연료전지발전소)까지 공급해 ‘송전선 없는 대규모 전력공급’을 실현할 수 있다. 국내 CO2 저장소는 태부족이기에 해외로 눈을 돌려 대통령과 정부 관계부처, 국내 4개 정유사 등이 해외 이산화탄소 저장소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
지금 제시한 방안을 바로 착수한다 해도 빠르면 5∼10년이 걸려야 효과가 나올 것이다. 국내 전 산업이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받아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대통령실과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침묵하고 방치한다면 분명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