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주차장 뒷쪽에 송전선로가 보인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주차장 뒷쪽에 송전선로가 보인다.

지난 5월 정부는 공급이 확대되는 수소, 재생에너지, 원전 등 무탄소에너지를 전력시장에서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전력시장 제도개선 방향을 설정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2001년 한국전력 분할에 따라 전력거래시장이 개설된 후 올해 6월 기준 전력거래량은 2.7배, 설비용량은 3배가량 늘었다. 또 발전사업자 등 시장참여자는 19곳에서 6,558곳으로 대폭 늘었다. 이와 함께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CHPS),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등 새로운 제도가 잇따라 도입되면서 전력시장 관련 제도가 더욱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무탄소전원 비중을 크게 늘릴 계획이다. 지난 5월에 공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이하 전기본)의 핵심은 2038년까지 무탄소전원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10차 전기본에서 확정된 노후 석탄발전의 LNG발전 전환을 유지하면서 2037~2038년에 설계수명 30년이 도래하는 석탄발전 12기를 수소발전, 양수발전 등 무탄소전원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반영했다.

만약 불가피하게 LNG 발전 등으로 전환하더라도 열공급 등 공익적 사유가 명확한 경우에 수소혼소발전으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LNG로 제한해 화력발전의 총용량이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무탄소전원의 기술개발 속도를 고려해 2034년까지 LNG를 활용한 열병합발전으로 필요한 설비를 충당하고 그중 일부를 ‘수소혼소 전환 조건부 열병합발전’ 또는 ‘무탄소발전’ 물량으로 두고 차기 12차 전기본에서 결정할 것을 권고했다. 2035년부터 2036년까지 신규설비 1.5GW는 수소전소 등 다양한 무탄소전원 간의 경쟁이 가능한 무탄소 입찰시장을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정부는 기존 중앙집중형 전력시장을 분산형으로 개편하기 위해 전력시장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송전제약발생지역 전기공급사업’이다.

신한울 원전 1호기 전경.(사진=한국수력원자력)
신한울 원전 1호기 전경.(사진=한국수력원자력)

손실 키우는 송전제약 해결
산업부는 지난 8월 7일부터 ‘송전제약발생지역 전기공급사업’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송전제약에 걸려 발전하지 못하는 사업자가 인근 지역 신규 부하에 직접 전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력생산처가 동해안 등 해안 지역에, 소비처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그런데 수도권 연계선로 부족, 재생에너지 발전원 밀집 및 수요 부족 등으로 송전제약이 발생해 생산되는 전력 중 일부는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23년 11월에 공개한 ‘2023 중기 에너지 수요전망(2022~2027)’에서 “앞으로 5년 동안 발전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송전선로 제약”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동해안 지역에 원자력, 석탄 등 대규모 발전설비가 들어서면서 발전설비용량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나 송전 설비는 주민수용성 등의 문제로 준공이 지연되면서 수도권-동해안 송전제약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2022년 강릉안인1호기(석탄, 1,040MW)와 신한울1호기(원자력, 1,400MW)가 신규 진입한 데다 신한울2호기(원자력, 1,400MW)와 삼척화력1·2호기(석탄, 2,100MW)가 곧 신규 진입할 예정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정부는 8차 전기본에 2021년과 2022년에 송전선로를 준공한다는 계획을 포함시켰으나 주민수용성 문제로 건설이 지연됨에 따라 제9차 전기본과 제10차 전기본에서는 송전선로 준공시기가 2025년과 2026년으로 연기됐다.

그 결과 총 발전설비용량은 2006년 65GW에서 2020년 130GW로 2배가량 늘어난 반면 송전에 필요한 회선 길이는 2만9,276c-㎞(서킷 킬로미터)에서 3만5,184c-㎞로 20.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로 인해 발전사들의 손해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동해안 발전설비용량은 총 17.6GW이나 송전량은 11.6GW에 불과하다. 그런데 원전(8.7GW)과 신재생에너지(1.9GW)에 송전용량을 우선 할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석탄발전소의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 동해안권 석탄발전설비용량은 7.4GW(8기)다.

이런 이유로 전럭거래소는 동해안 석탄화력발전소에 3월 말부터 7월까지 최대 가동률을 30%로 제한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5월에는 석탄발전소 4곳 모두(GS동해전력, 강릉에코파워, 삼척블루파워, 삼척빛드림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같이 가동률이 낮아 발전사들의 손실이 커지고 있다. 일부 발전사는 올해 연간 손실이 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정부는 이같이 송전제약 문제로 인한 발전사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전기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송전제약발생지역 전기공급사업’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해당 제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송전제약발생지역 전기공급사업’은 발전용량과 송전용량의 불일치(송전제약)로 인해 전력시장을 통해 전기판매사업자에게 공급하지 못하게 된 전기를 발전설비의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 전기사용자의 신규 시설에 공급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일컫는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송전제약발생지역’을 지정하면 전기신사업 규정에 따라 사업자로 등록한 송전제약발생지역 전기공급사업자는 지역 내 발전설비를 이용해 생산한 전기를 인접지역 신규시설에 공급할 수 있다.

삼척 교동 수소충전복합스테이션에 있는 SMR.
삼척 교동 수소충전복합스테이션에 있는 SMR.

수소업계는 미지근
수소업계는 송전제약발생지역 전기공급사업 제도가 수소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소제품을 생산하는 곳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수소저장용기를 생산할 때 금속을 열처리하는 과정에서 전기를 많이 쓴다”며 “전기를 직접 저렴하게 공급하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특화단지 등에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정책 제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제도가 수소생산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해당 제도가 아무래도 동해안 지역에 있는 석탄발전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수소를 생산하는 입장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도시가스로 수소 1kg을 만들 때 8~9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그런데 석탄발전소 전력으로 수소를 만들면 1kg당 40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수소생산 관련 전력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수소를 만들 때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간헐성으로 인해 전기 공급이 되지 않아 스택을 끄면 역전류가 생겨 사고가 난다”며 “그런 이유로 전력이 공급되지 않을 때는 최소한의 가동을 위한 기본 전력을 그리드에서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 100% 그린수소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수소생산 관련 전력제도의 설계 디자인을 정책적으로 잘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풍력발전이 3GW라고 해서 3GW에 맞춰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송전제약지역 전기공급사업 제도뿐만 아니라 분산에너지법, 제주시범사업 등을 도입하며 전력시장 대변화를 예고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7월 25일 전력거래소, 한국전력공사, 에너지공단,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전력시장 제도 개편 협의회’를 발족했다.

정부는 협의회를 통해 다양한 정책‧제도 간의 정합성을 확보하고 이해관계를 반영한 합리적 조정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한국에너지공단이 참여해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화 요인들을 자세히 분석하고 반영할 계획이다.

수소는 전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때문에 수소업계는 전력시장이 어떻게 변화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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