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동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 세계 각국은 신재생에너지를 탄소중립 등 기후변화 대응과 경기부양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규정하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확대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상향을 추진해 오는 2034년경부터 주 에너지원으로 본격 활용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상향을 기후변화뿐 아니라 RE100 등에 대응하는 수출 기업의 지원 방안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미 국내 제조업 분야의 수출 기업은 제품의 생산에 사용한 신재생에너지 사용 증명을 요구받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지 못할 때는 수출이 점점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수소에너지를 비롯한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과 같은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위해서는 기존의 화석 연료나 원자력 기반 전력 계통에 대한 변동성과 출력 간헐성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연성 자원 확보, 출력 예측·제어, 실시간·보조 서비스 시장 강화, 점진적인 전환 및 송전망 확대 등에 대한 장기 에너지 전환 정책이 필요하다.
인구가 많은 산업 국가 중에서 독일과 같이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1990년부터 지속적으로 높여서 2023년에 50%를 달성하고 탈원전의 길을 마무리한 국가는 아직 없다. 독일은 에너지 전환을 탈원전과 서로 긴밀하게 연결해 25~30년 이상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독일 정부가 2000년에 제정한 ‘재생에너지 확대법(EEG)’이 에너지 전환의 기반이 되었다.
EEG는 14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법 조항에서 재생에너지를 풍력(육상, 해상)과 태양광뿐만 아니라 바이오매스, 바이오 가스, 수력(해양에너지), 지열, 수소에너지로 정의하고 있다. 2024년까지 5차에 걸쳐 정책과 개정 시기의 상황에 맞게 2030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목표를 규정한 제1조 2항을 2014년 개정에서 40%, 2023년 개정에서 80%로 상향했다.
또 2023년부터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원별 신규 설치 용량과 발전량을 단기는 2년, 중장기는 5년 간격의 수치로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제4조에는 단기(2024년~2030년)는 2년, 장기(2030년~2040년)는 5년 간격으로 풍력과 태양광의 신규 설치 용량, 제28a조에는 연도별(2023년~2028년) 수소 기반 설비 설치 용량, 제4a조에는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연도별(2023년~2030년) 수치로 각각 규정했다.
아울러 지난 2016년에 제정한 ‘해상풍력에너지 개발촉진법(WindSeeG)’에서도 설비 용량을 연도별(2023년~2027년) 수치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017년 32.5%, 2021년 35%, 2023년에 57.7%에 도달했고, 현재는 2030년 목표인 80%에 도전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신재생에너지법)’ 제5조에 근거해 지난 2020년 12월 ‘제5차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및 이용·보급 기본계획(이하 신재생 기본계획)’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4년까지 25.8%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또 2023년 1월에는 ‘전기사업법’ 제25조와 시행령 제15조에 근거한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1.6%, 2036년 30.6%로 확정했다. 올해 5월 공개한 ‘제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실무안’에서는 2030년 21.6%, 2038년 32.9%로 수립했다. ‘신재생 기본계획’과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설비 용량과 발전량 등에 대한 계획과 목표를 수립하기 위해 소위원회와 정책심의회에서 계획을 수립·심의하고 공개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이나 발전량 비중 등의 달성 목표를 법제화해 법안 제정과 개정으로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독일의 EEG와 WindSeeG와 같이 연도별로 실행 달성 목표를 구체적으로 법제화한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신재생 및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현재부터 2030년과 2036년(혹은 2038년)에 달성할 목표를 제시해 현재부터 6년과 12년(혹은 14년) 기간 중간에 단계별 혹은 연차별로 진행 과정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또 ‘제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실무안’에서는 제10차에서 어렵게 확정한 2036년 목표에 대한 언급 없이 2030년과 새로운 2038년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독일의 EEG와 WindSeeG 같이 2030년까지의 장기 계획수립 시작 연도부터 2029년까지는 적어도 1~2년, 2030년부터는 5년 간격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제안한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은 기존 전력 계통의 안정성 유지와 확대를 위해 장기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지속적인 확대를 보장해야 가능하다. 특히 EEG와 같이 달성 목표를 법제화해 법 개정으로 설비 용량이나 발전량 비중 등의 달성 목표를 변경하거나 상향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10~15년 이상이 필요한 신재생에너지 장기 추진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
정부·민간의 위원회나 심의회에서 단기간에 쉽게 장기 기본계획을 변경하기 어려우므로 EEG와 WindSeeG와 같이 보급 목표의 법제화 사례를 참고해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EEG에는 ‘공동체 에너지(시민 에너지)’도 정의되어 있는데, 지자체·기업·시민·농부 등이 재생에너지 설비를 직접 소유하거나 에너지협동조합(2015년 기준 812개)을 설립해 에너지 생산과 소비, 비용과 편익을 공유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지역주민의 갈등(민원)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분산에너지의 공급 안정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도 적극적으로 수용해 활용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의 상향을 위해 막대한 인적·물적 투자, 에너지 공급 인프라 혁신 등에 노력한 독일은 수출량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고, 세계 500대 기업 중 29개 기업 본사를 소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에 따른 에너지 공급망 위기와 코로나19 위기에도 불구하고 2021년 대비 2022년 경제 성장률 1.9%, 2022년 전체 물가 상승률 약 7.9%로 한 자릿수 유지, 2024년 현재 2021년 수준의 전기요금 유지 등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2023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4조4,298억 달러를 기록해 일본(4조2,309억 달러)을 추월하며 세계 3위로 등극했다.
이러한 경제 규모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에 따른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량 전력을 사용하는 산업체 생태나 규모는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월등하게 높은 국가(2022년 기준)는 80% 이상인 덴마크,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60% 이상인 포르투갈, 스웨덴 그리고 40~50%인 핀란드,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 있고, 최근 영국도 40%에 도달했다. 이들 국가는 이미 재생에너지에 막대한 투자를 해 단점이던 효율이나 단가 등의 많은 부분을 개선해 재생에너지가 2030년 이후에 세계의 주 에너지원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직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10%를 넘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독일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높은 국가가 도전해 힘겹게 일구어 다져 놓은 길을 나침반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