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승두 SK증권 연구위원 |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햇수로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고조된 중동 지역의 갈등은 지리적·종교적 갈등이 더해지며 확전을 막기 위한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아직 종전을 선언하지 않은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 홍해 물류 길을 가로막는 예멘의 후티 반군 세력까지 고려한다면, 이렇게 넓은 전선(戰線)이 펼쳐진 것은 아마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 아닐지 싶다.
사실 이러한 물리적 갈등과 충돌이 발생할 수 있음은 충분히 예견되었던 사실이다. 중동 지역의 뿌리 깊은 종교적 갈등은 차치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한국과 일본의 수출규제 다툼 등은 분명 탈세계화의 전조증상이었다. 그리고 탈세계화가 새로운 기준(New Normal)으로 자리 잡은 오늘, 세계 각국에는 ‘자주 국방력의 강화’, ‘에너지 안보의 확립’, ‘식량 안보의 확립’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었다.
세계적인 자주 국방력 강화, 노후화된 군 현대화 추진 움직임은 ‘K-방산’이라는 새로운 열풍을 일으키면서 한국의 국방 산업에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대규모의 수출 계약이 이뤄졌고, 한국의 기술을 도입하거나 공동 연구개발을 요청하는 국가도 증가하는 추세다.
물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강하고, 무기 기술이 가장 뛰어난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휴전 국가라는 특성으로 인해 틈새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국방예산을 늘려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 못지않게 세계 각국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에너지 안보의 확립이다.
미국은 중동 원유 시장 불안이 자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했던 무리한 확장 정책의 후유증을 극복 중인 미국은 중동 원유 시장에 너무 과도하게 흔들리는 경우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당면 과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공급되는 천연가스관 밸브가 잠기면 어떤 위기에 직면하는지 경험 중이다.
더불어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만년설의 위치에너지 소실 위기를 함께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기존 화석연료 생태계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중요한데, 원자력 발전이 또 다른 헤게모니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재생에너지의 확충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유럽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신재생에너지가 갖는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를 비롯해 히트펌프, 심지어 콘크리트 배터리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잉여 에너지를 저장해 보관하고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들이 개발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위 면적당 에너지 저장량, 에너지의 소실 등을 고려한 ‘Power to Gas’의 경쟁력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이는 결국 우리가 흔히 아는 그린수소(Green Hydrogen)가 경제성을 갖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그린수소의 가격 경쟁력은 설비 규모보다 가동률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음이 증명되기 시작했고, 다양한 에너지 저장 수단과 맞물려 수전해 설비의 가동률이 관리된다면 그린수소도 보조금 없이 충분히 경제성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수소에너지가 단순히 여러 대체 에너지원 중 하나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 확립을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지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