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이 격변하고 있다. 엔진, 변속기 같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디스플레이, 자율주행 등을 앞세운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oftware Defined Vehicle, SDV)’으로 빠르게 진화 중이다.
그 배경에는 전동화가 있다. 아이폰이 휴대용 모바일기기 분야에서 이룬 혁신이 자동차 시장에서 구현되고 있다. 선도기업은 역시 테슬라다. OS(운영체제)와 반도체, AI(인공지능)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스마트폰이 일상을 바꿨듯 전기차로 대표되는 혁신이 자동차산업을 새로운 단계로 이끌고 있다.
1990년 9월 민간 생산기술연구소로 설립된 한국자동차연구원은 한때 ‘자동차부품연구원’으로 불렸다. 내연기관 차량을 위한 부품 연구와 테스트, 연비 개선에 집중하던 때였다. 그러다 2019년 11월 ‘부품’이란 말을 떼어내면서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수소차를 아우르는 자동차연구원으로 거듭났다.
국내 수소모빌리티 연구개발에 참여
영하 10℃의 칼바람이 볼을 스친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KATECH(한국자동차연구원) 간판 맞은편에 낯익은 차량이 주차해 있다. 뒤태가 파란 수소택시 수만 해도 열 대가 넘는다. 4년 전 여름 서울 은평구 삼환운수 차고지에서 본 택시도 끼어 있다.
“16만km를 뛴 것도 있고 30만km를 훌쩍 넘긴 것도 있어요. 서울에 있는 4개 운수업체에 20대의 수소택시를 보급해서 실증을 진행했죠. 현대차 넥쏘의 보증기간이 10년 16만km입니다. 16만km를 기점으로 주행거리 순으로 차량을 회수해서 테어다운(Teardown, 해체)을 한 다음 스택을 포함한 요소 부품에 대한 내구성 검증을 진행했죠.”
수소택시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이곳은 ‘한국자동차연구원 수소연료전지기술부문(창원)’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하 ‘한자연’) 본원이 있는 천안을 지나 창원까지 내려온 데는 이유가 있다.
한자연은 수소택시 실증사업뿐 아니라 수소트램·수소청소차 개발, 수소버스용 충전소 실증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연료전지시스템, 수소전기차 부품 등 국내 수소모빌리티 연구의 최전선에 있다.
김명환 수소연료전지기술부문장은 “원천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정부 출연 기관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애초에 민간 생산기술연구소로 설립되어 기업 지원을 최우선으로 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 부품사의 요청에 따라 기업의 생산성과 직결되는 연구와 실증에 집중한다.
“2019년에 처음 이야기가 나왔어요. 내연기관에서 전기·수소차로 넘어가면서 미래차전환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클 때였죠. 창원시가 미래 자동차산업 육성전략 차원에서 한자연과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2021년부터 센터 착공에 들어가서 본관인 부문동을 짓고 지난해 상반기에 입주를 했죠.”
이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경남도, 창원시가 2024년까지 총 61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미래차전환 종합지원센터’ 구축사업을 말한다. 5층짜리 부문동에는 현대차,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상아프론테크, 삼보모터스, 코하이젠, 창원산업진흥원 등 9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부문동 앞에 연구용 수소충전소, 가스반복시험동, 수압반복시험동을 갖추고 있어요. ‘수소 전주기 내구시험동’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죠. 내년 3월에 완공 예정입니다.”
조감도가 담긴 공사 안내판에 ‘수소전기차 부품 내구성 전주기 지원센터’라고 적혀 있다. 골조공사를 마친 3층 건물이 번듯하다. 각종 기자재, 내구성 검사장비를 내부에 설치해서 실제 운영에 들어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연료전지시스템의 핵심은 물·열 관리
한자연에는 산업정책연구소, 자율주행기술연구소, 친환경기술연구소, 섀시·소재기술연구소, 신뢰성·인증기술연구소 등 총 5개 연구소가 있다. 수소연료전지기술부문은 이 중 친환경기술연구소에 속해 있다.
“내부에 총 4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연구 주제는 논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죠. 현재 수소연료전지스택연구실, 수소연료전지시스템연구실, 수소저장충전연구실, 미래차전환지원 이렇게 네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료전지 스택 테스트는 본관 건물에서 이뤄지고, 연료전지시스템 테스트는 외부에 ‘큐브’라고 부르는 컨테이너박스를 따로 설치해서 진행하고 있다. 모빌리티에 들어가는 연료전지시스템의 성능, 내구 평가가 이뤄진다.
본관 로비에는 기아에서 개발한 소형전술차량이 전시되어 있다. 2021년 수소모빌리티+쇼 현장에서 본 기억이 난다. 기존 내연기관 픽업트럭에 현대차의 HTWO 수소연료전지(50kW)와 수소탱크를 올렸다. 전장에서 전기를 공급하는 용도로 개발됐다.
“기본적으로 자동차뿐 아니라 육상, 해상, 항공을 아우르는 수소모빌리티 전반에 대한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있어요. 국방 수소모빌리티 쪽이 요즘 이슈입니다. 디젤엔진보다는 수소연료전지가 훨씬 조용하고 열감지에도 강점이 있죠. 현대로템과 차륜형 수소장갑차를 개발 중이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는 궤도형 수소장갑차를 개발하게 됩니다.”
한자연 수소연료전지기술부문은 연료전지 스택보다 시스템 연구에 강점이 있다. 김명환 본부장은 울산에서 실증 중인 현대로템의 수소전기트램을 예로 든다.
“현대차 넥쏘에 들어가는 연료전지시스템 2개를 철도 차량에 올리려면 높이를 낮추기 위한 리패키징 작업이 필요해요. 스택은 그대로 두고 가습기나 공기공급장치를 옆으로 빼서 돌리거나 위치를 바꿔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성능 문제가 생깁니다. 가습기만 해도 위치를 바꾸면 수위가 달라지면서 물 배출이 잘 안 되죠. 이 부분을 최적화하기 위한 레이아웃 설계기술을 개발한 다음 제작까지 해서 현대로템에 보냈죠.”
스택을 제외하고 운전장치로만 보면 물관리, 열관리가 수소연료전지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하다. 스택 내부에서 화학반응을 통해 생성되는 물을 잘 배출하기 위해서는 금속분리판의 유로(流路) 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한자연은 이 분야에 뛰어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승용에서 상용으로 넘어가면 차체가 커진 만큼 고출력이 필요하죠. 스택의 물 배출량이 늘고 열도 많이 날 수밖에 없어요. 가만히 두면 스택 온도가 금방 200℃까지 오르죠. 이걸 85℃ 아래로 낮춰야 하니까 라디에이터가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이를 감안하면 상용차 공간이 넓다고 보기가 어렵죠.”
수소연료전지 스택 기술은 부피와 무게를 줄이면서 내구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냉각기(열교환기)에 해당하는 라디에이터도 다르지 않다. 성능을 유지하거나 높이면서 크기를 줄여야 한다.
현대차는 내년 출시 예정인 넥쏘 후속 모델에 2.5세대 연료전지를 장착하기로 했다. 3세대 수소연료전지의 경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양산 시점을 당초 2023년에서 2027년 이후로 4년이나 늦췄다.
현대차는 3세대 수소연료전지를 승용차, 상용차뿐 아니라 철도·트램, 선박, 미래항공모빌리티(Advanced Air Mobility, AAM)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같은 수소연료전지라도 애플리케이션, 그러니까 모빌리티별로 운행 특성이 다 달라요. 시스템을 제어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 다르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에 맞는 연료전지시스템 개발이 필요하죠. 스택뿐 아니라 주변장치, 요소 부품 등을 시스템 단에서 잡아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힘든 점이 많습니다.”
수소충전소 부품국산화, 미래차전환 고민
부문동 앞에는 수소충전소가 있다. 겉보기에는 여느 충전소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곳은 연구용이라 일반 운전자는 이용할 수 없다.
지난해 4월에 출시한 고속형 수소전기버스(유니버스)에 들어가는 수소탱크가 충전기 옆에 놓여 있다. 일진하이솔루스에서 만든 타입4 수소탱크 5개가 한 묶음이다. 차량에서 떼어낸 수소저장용기 모듈 위에 수소충방전 테스트를 위한 모사장치를 따로 제작해서 붙였다.
“광역버스, 고속버스 같은 경우 장거리 운행을 위해 탱크 용량을 키우게 되죠. 이렇게 되면 충방전 특성이 달라집니다. 현재 이 부분을 검증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죠.”
수소저장충전연구실 박장훈 실장의 말이다.
바로 앞 제어동에서 연구진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산 압축기 테스트도 동시에 이뤄진다. 한자연은 수소압축기 부품 국산화 과제에도 참여하고 있다. 광신기계공업, 지티씨, 범한산업 등 국산 압축기를 대상으로 한다.
“수소시내버스 전용으로 구축한 창원 가포수소충전소 실증도 같은 과제 안에 묶여 있어요. 수소버스, 수소버스 모사장치를 활용해서 충전 운영기술을 확보하고 부품국산화 비율을 높이기 위한 실증이죠. 비교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외산 압축기도 함께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충전소 확대는 수소차 보급과 직결된다. 수소충전소 구축에 드는 비용, 유지보수에 따른 운영비를 낮추기 위해서는 부품국산화가 꼭 필요하다. 국산 압축기 대부분이 창원 일대에서 제작되는 만큼 지역의 관심도도 높다.
수소충전소 옆에는 수소저장용기 가스반복시험동이 있다. 챔버 안에 수소용기를 두고 저온, 고온으로 온도 변화를 주면서 용기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검사하게 된다. 뒤쪽에 붙어 있는 압축기도 국산 제품이다.
미래차전환은 자동차 업계의 화두다. 지난 2015년에 터진 폭스바겐의 디젤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 이른바 ‘디젤게이트’가 전환점이었다. ‘클린디젤’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면서 세계적으로 전기차 붐이 일었다. 완성차 업계가 전동화에 뛰어들면서 중소 부품업체에 해당하는 벤더사의 고민이 커졌다.
김명환 부문장은 “이는 제 사견일 수 있다”며 “수소전기차도 그렇고 저장용기나 충전소 부품도 그렇고 현재까지 이슈화를 위해 너무 빨리 달려온 감이 있다”고 한다.
“절차에 따라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기술개발이 이뤄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예산을 받고 투자를 받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부풀려서 가다 보면 산업 자체가 더 어려워질 수 있어요. 속도 조절이라는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죠.”
한자연의 업무는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지역의 장치·부품 제조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김 부문장은 미래차전환을 고민하는 부품업계 관계자에게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먼저 조언하고 있다.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행정 사이클을 기반으로 하는 내연기관 엔진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보다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수소전기차 기술의 완성도를 잡아가는 과정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하늘로 사람을 실어나르는 UAM(도심항공교통)만 해도 현 수준의 배터리 무게로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어요. 결국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적용해야 하는데, 시스템 개발이 2025년에 이뤄진다 하더라도 공기공급장치, 가습장치, 열관리 장치 같은 핵심 부품의 부피와 무게를 줄여서 탑재해야 하죠. 실제로 사람을 태우고 날려면 신뢰성 평가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용화 시기는 2030년 이후로 늦어질 수 있어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책과제로 ‘항공용 모빌리티 연료전지 경량화 기술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한자연은 지난해 10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UAM 분야에 적용할 수소연료전지와 자율주행 기술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원칙에 따라 절차를 밟으며 기술의 신뢰도를 높여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멀리 보면서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 기둥이 흔들리지 않는다. 수소연료전지 기술에 왕도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