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증기를 활용한 고온수전해(SOEC) 셀 개발이 한창인 에너지연 수소융복합소재연구실을 찾았다.
수증기를 활용한 고온수전해(SOEC) 셀 개발이 한창인 에너지연 수소융복합소재연구실을 찾았다.

2023년 10월 23일 제주에서 그린수소를 넣은 수소버스의 정식 운행이 시작됐다. 버스 운행을 위한 수소는 제주 행원리에 있는 3.3MW급 그린수소 생산시설에서 공급받는다. 행원리의 수전해 설비는 알칼라인, PEM(고분자전해질) 수전해로 구성돼 있다. 

둘 다 100℃ 이하에서 물을 전기분해하는 기술이다. 그에 반해 고체산화물을 적용한 고온수전해(Solid Oxide Electrolysis Cell, SOEC)는 아직 상용화가 안 됐다. 국내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국책 과제로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다. 

국내 SOEC 기술개발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하 ‘에너지연’) 수소에너지연구소 수소융복합소재연구실을 찾았다. 김선동 책임연구원이 최근에 개발한 따끈따끈한 SOEC 스택을 보여준다. 10개의 셀을 적층해 만든 테스트용 제품이다.

10개의 셀을 적층해 만든 테스트용 SOEC 스택.

650℃ 중저온에서 작동하는 SOEC

“시험 평가용으로 제작해서 이렇게 배관이 옆에 나와 있어요. 실제로 스택을 만들 땐 완벽한 큐빅 형태로 매끈하게 가야죠. 나중에 스택을 핫박스 안에 장착하게 되는데, 이때 열 손실을 없애려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형태로 설계가 돼야 합니다.”

고온수전해는 높은 온도에서 수증기 형태로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식이라 수소생산 효율이 높다. 실제로 수증기를 활용하면 저온수전해 방식보다 최소 20% 이상 효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SOEC 기술을 선도하는 회사로 미국 블룸에너지와 독일의 선파이어를 들 수 있죠. 블룸에너지의 경우 국내에서 130kW급 실증을 마치고 제주도에서 이제 1.5MW급 실증을 준비 중인 걸로 알아요.”

블룸에너지는 SK에코플랜트와 손을 잡고 국내에서 고온수전해 사업화를 준비하고 있다. 선파이어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 인근에 2.6MW 규모로 시간당 60kg의 수소를 생산하는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또 독일 RWE의 가스화력발전소 현장에도 250kW 전해조 9개를 설치해 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블룸에너지와 선파이어의 SOEC는 모두 850℃에 이르는 고온에서 작동한다. 하지만 에너지연은 최종 650℃에서 작동하는 중저온 셀을 개발 중이다. 

‘650℃ 중저온 작동형 SOEC 국산화를 위한 소재, 셀 및 0.4N㎥/h급 스택 원천기술 개발’이 이번 과제명이다. 산업부 과제로 2022년 4월부터 2026년 3월 말까지 48개월간 진행된다. 눈앞에 놓인 스택은 2년차에 공개하는 첫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고체산화물 셀은 크게 전해질지지형(ESC), 전극지지형(CSC)으로 나뉜다. 흰색이 ESC, 녹색이 CSC다. 블룸에너지의 경우 ESC형으로 850℃ 고온에서 운전이 된다. 수소융복합소재연구실에서 개발 중인 SOEC 셀은 전극지지형으로 겉모양은 맨 오른쪽과 유사하다.

“고온수전해를 염두에 두고 수증기를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SOEC 셀과 전극 소재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물론 테스트를 위해서는 셀 스택이 필요하죠. 스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스의 유동 패턴에 맞게 금속분리판 유로를 새로 디자인했어요. 포스코에서 고온수전해용으로 개발한 Poss460FC 소재를 써서 만들었죠.”

포스코는 2006년부터 연료전지 금속분리판 개발에 착수해 고내식 스테인리스스틸 분리판 소재인 Poss470FC를 개발했다. 이 분리판은 2018년에 출시된 수소전기차 넥쏘에 처음 적용됐다. 그러나 100°C 이하의 환경에서 구동되는 PEM 연료전지용 분리판을 고온수전해 스택에 그대로 쓸 순 없다. Poss460FC는 스테인리스에 희토류를 첨가해 내산화성과 전도성을 크게 높인 별도 제품이다.

이번 과제에는 한국세라믹기술원, 포스코홀딩스 외에도 한수원, 경남테크노파크 같은 수요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케이세라셀, 비에이치아이, 지필로스, 에이프로 같은 기업도 보인다. 모두 수전해 기술에 관심이 큰 업체들이다. 

“운전 온도가 낮으면 금속 소재의 부식이나 산화에 큰 강점이 있어요. 대신 온도가 낮으면 수소생산 효율이 떨어지게 되죠. 기술개발의 목표가 이렇게 상충하는 요건을 맞춰야 해서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도 목표를 높게 잡고 도전하다 보면 한계치에 최대한 근접한 지점에서 기술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SOFC(고체산화물 연료전지) 셀은 SOEC 셀과 호환이 된다. 김선동 책임연구원은 “고온수전해의 효율이 100이라고 가정할 때 SOFC 스택을 그대로 써서 수전해를 하면 70~80%의 효율을 낼 수 있다”고 한다. 

“SOFC용 스택을 그대로 써서 수전해를 할 수도 있지만, 수전해에 최적화된 셀로 보기가 어려워요. 20~30%의 효율을 포기하고 간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죠. 억지로 100에 맞추려고 하다 보면 제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SOEC 전용 셀을 애초에 따로 개발하는 게 맞아요.”

국내외 SOFC 제조사들의 시스템 운전 온도는 통상 750℃다. SOEC라고 다를 건 없다. 운전 온도를 650℃에 맞추려면 이보다 100℃나 낮춰서 운전해야 한다. 이 조건에서 동등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수소생산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기공 키우면서 셀 강성 높여”

수소융복합소재연구실 실험실에서 SOEC 테스트 장비를 운전 중이다. 액체 상태의 물이 아닌 증류수를 기화해서 만든 수증기를 넣어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SOEC 테스트 장비.

“액상을 기화할 때 에너지가 많이 들어요. 수증기로 수전해를 하면 그만큼 에너지가 덜 들죠. 산업체에서 증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원전도 그 중 한 곳이고요. 이런 곳에 SOEC 모듈을 붙여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죠.”

고체산화물 셀은 슬라이스 치즈 크기로 얇게 구운 도자기에 비유할 수 있다. 제조 공정이 매우 까다롭고 성능, 내구 검증 과정이 지난하다. 그래서 도공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셀은 통상 100㎠(제곱센티미터) 사이즈로 만들어요. 블룸에너지의 셀도 이 크기죠. 여러 곳에서 크게도 만들어보고 작게도 만들어봤는데, 세라믹 크기를 키우면 작동 중에 온도 구배가 생기고 열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쉽게 깨지게 돼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표준화된 최적 사이즈가 100㎠라고 보시면 됩니다.”

선파이어의 셀은 126㎠로 직사각형을 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크기라 할 수 있다. 통상 100㎠ 크기의 단위셀을 층층이 쌓아 스택을 완성한다.

“수증기를 전기분해할 때 이제 일정 전압이 넘어가면 저항 때문에 발열로 전환되는 구간이 나와요. 그래서 적정한 전압을 걸게 되는데, 보통 셀당 1.25에서 1.3V(볼트) 정도, 그러니까 5셀을 테스트한다고 보면 6.5V를 인가하게 되죠. 연구 초창기에는 30에서 40A(암페어) 정도 운전을 했어요. 지금은 100A를 넘어 상용화 수준의 고전류 운전을 진행하고 있죠. 140A까지 운전을 해봤습니다.”

새로 개발한 SOEC 셀을 시험장비에 넣어 운전하는 중이다.

셀의 크기는 규격화되어 있지만, 스택은 소모전력에 따라 설계가 달라진다. 5kW급으로 셀당 1.3V로 운전한다고 가정할 경우 서른 장 이상의 셀을 쌓게 된다. 물론 이런 고민은 셀의 완성도를 높이고 나서 이후에 해야 할 일이다.

“과제 2년차에 비교적 빨리 성과물을 냈지만, 이 셀의 성능이 동등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죠. 아직 검증을 제대로 완료하지 않았으니까요. 셀이란 게 겉보기엔 비슷할지 몰라도 소재단에 상당한 변화를 줘서 개발하게 돼요.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죠.”

셀의 전극 소재는 크게 두 가지로 이뤄진다. 이트리아 안정화 지르코니아(Y2O3 stabilized ZrO2)와 니켈이다. 그런데 실제 운전을 해보니 니켈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흔히 ‘니켈 디플리션(Nickel Depletion)’으로 부른다.

“수증기와 수소의 분자량 차이가 매우 커서 밀도와 점성유동 차이가 클 수밖에 없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극의 기공률을 크게 키웠는데, 그러다 보면 강도가 크게 떨어지는 문제가 생겨서 이를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소재를 추가했죠. 그렇게 만든 셀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에너지연 수소융복합소재연구실은 세계에서 가장 얇은 셀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엘코젠이라는 회사가 440μm(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셀을 공급하고 있다. 300μm급 모델도 보유하고 있지만, 시중에서 많이 쓰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번 과제 목표가 셀 두께를 250μm까지 낮추게 돼 있어요. 현재 300μm급 제품을 만들고 있죠. 셀이 얇으면 수증기 확산이 잘 일어나고 저항도 작아서 수소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어요. 기공을 키우면서 셀의 강성을 높이는 게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박훈민 선임연구원이 SOEC 테스트 장비의 운전 현황을 모니터로 확인하고 있다.

수소융복합소재연구실은 5개의 셀을 적층한 SOEC 스택으로 750℃에서 운전을 진행한 성능 분석 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스택이 750℃에서 작동할 경우 하나의 셀로부터 저위발열량(Lower Heating Value, LHV) 기준 100%에 달하는 전기 효율로 시간당 약 32L의 수소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셀, 금속분리판, 밀봉재 등 모든 소재를 국내에서 조달해서 자체 설계·제조 기술로 구현했어요. 이 점에 큰 의미가 있죠.”

밀봉재의 경우 글라스-세라믹 분말을 분쇄해서 테이프 또는 페이스트 형태로 만들어 쓰게 된다. 국내 업체인 써모텍이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시스템 상용화를 위한 과제

SOEC 개발 과제로 하나 더 주목할 게 있다. 바로 케이세라셀이 주관하는 ‘대면적 고효율 SOEC 평판형 셀, 20kW급 스택 모듈 및 시스템 개발’ 사업이다. 이 또한 산업부 과제로 2021년 5월에 시작됐다. 에너지연을 비롯해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한국기계연구원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필로스와 비에이치아이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에너지연이 주관하는 과제가 SOEC 소재·부품단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과제는 20kW급 스택 모듈·시스템 개발에 집중한다. 5kW 스택 4개를 병렬로 연결해 핫박스에 넣으면 20kW급 스택 모듈이 완성된다.

김선동  에너지연 수소융복합소재연구실 책임연구원.

“스택의 기본단위를 정하는 게 참 어려워요. 스케일업이라는 게 셀을 단순히 많이 쌓아서 될 일이 아니라 핫박스 개발을 염두에 둬야 하니까요. 단열구조로 운전이 되기 때문에 유체나 전기를 적절히 분산시키면서 내부의 열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장치를 따로 개발해야 하죠. 넘어야 할 고비가 많습니다.” 

다행히 올해 100kW급 SOEC 시스템 개발 과제가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100kW급 10개를 붙이면 1MW가 된다. 메가와트 규모로 운용되는 상용시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확장이 된다. 따라서 기본단위가 되는 스택의 완성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랫동안 SOFC 개발을 진행한 적이 있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의 참여도 주목할 만하다. 포스코에너지의 전신인 포스코파워 시절부터 SOFC 원천기술 개발에 힘써왔고, 1,000㎠급 셀 양산 기술을 확보한 바 있다. 

이 기술은 IP 특허를 통해 대전에 본사가 있는 에프씨아이(FCI)에 넘어가 있다. FCI는 한국 기술에 사우디 자본을 더한 합작회사로 SOC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또 포항산업과학연구원 고온수전해 관련 연구 인력, 설비 등은 현재 포스코홀딩스로 기능 이전이 된 상태다.

“SOFC 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고온수전해 기술개발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은 해외 선진사와 기술 차이가 꽤 나지만, 100kW급 시스템이 3년 안에 제작이 되면 그 격차를 2년 내로 좁힐 수 있게 되죠. 산학연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 소통하면서 기술개발에 매진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가와트급 상용 전해조의 경우 알칼라인과 PEM 수전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선파이어만 해도 스위스의 가압 알칼라인 전해조 회사를 인수해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장은 저온수전해가 시장을 주도하겠지만, 향후 수소생산 효율이 높은 SOEC가 그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MCFC(용융탄산염), PAFC(인산형)가 주도해온 발전용 연료전지 시장에서 3세대 연료전지인 SOFC가 일군 성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시장은 경제성을 쫓아 움직이게 마련이다. 알칼라인, PEM 수전해 시장에서 중국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시점에 SOEC 기술의 경쟁력을 살려가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최윤석 선임연구원이 테스트 운전을 마친 셀의 시험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다.

최근 지필로스가 겪은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용인 본사 옆 2공장에 알칼라인 수전해 생산라인을 구축하려다 포기했다. 본사 부지가 자연녹지지역에 묶여 있어 ‘첨단업종’만 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소용품 제조사업이 ‘첨단업종’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원산업단지에 공장을 임대해 1MW급 생산설비를 우선 구축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구소나 업계가 기술개발 노력을 이어가는 동시에 이런 제도적인 기반이 유연하게 뒷받침되어야 ‘첨단 수전해’ 기술이 좀 더 빨리 시장에 녹아들 수 있다.  

“우리가 SOEC 기술을 개발하는 목적은 기술이전을 통해 상업화로 나아가는 데 있어요. 그래서 많은 수요 기업이 SOEC 과제에 참여하고 있죠. 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글로벌에서 진행되는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메가와트급 상용화에 나서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선진사의 기술 수준이 이미 높기 때문에 서둘러야 하죠.”

사람들에게 불리지 않을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는 없다. 실제로 쓰임이 있는 제품을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수소업계에서 수전해보다 ‘핫’한 기술은 없다. 기술 확보가 어려운 만큼 독려하고 응원해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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