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치훈 현대건설 책임연구원 | 세계 주요국 정부는 청정수소 보급과 시장 형성을 위해 청정수소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한 청정수소 생산세액공제가 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올해부터 시행될 청정수소인증제를 통한 인센티브 제공을 예로 들 수 있다.
청정수소, 특히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수소는 물의 전기분해(수전해) 방식을 활용해 생산한다. 이때 그린수소 가격의 대부분을 전기가격이 차지한다. 대표적인 수전해 기술인 알칼라인(Alkaline) 방식과 PEM 방식이 1kg 수소생산 시 현 기술 수준으로 약 50~60kWh의 전기를 소모하므로 (수소의 고위발열량 값이 약 39.4kWh/kg인 점을 고려하면) 향후 기술개발을 통한 효율의 향상과 규모의 경제 실현을 가정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그린수소의 가격경쟁력은 그 원료라 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가격에 종속될 것이 자명하다.
지난 1월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수소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다소 냉소적인 리포트인 ‘A Realist Approach to Hydrogen(수소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을 발간했다. 요약하자면 그린수소의 도입이 시장 논리에 의해 이루어져야 에너지 믹스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그린수소가 화석연료 등 기존 에너지와 대비해 P3(가격-Price, 성능-Performance, 동등성-Parity)를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즉 보조금에 의한 그린수소 보급은 한계가 있고, P3 도달을 통해 그린수소가 저소득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에 보급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린수소의 P3는 결국 재생에너지의 P3라고도 볼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가격은 기술적 요소뿐만 아니라 전력시장의 구조 등 정책적인 영향이 상당하기에 이를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의 경우 시설 가동률(Load factor)이 국내의 경우 10~20% 내외로, 기성 발전원과 대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참고로 2023년 수소위원회(Hydrogen Council)에서는 재생에너지 가격을 0.03달러/kWh로 가정 시 시설 가동률 10~50% 범위에서 1kg당 그린수소 가격을 7.1~2.5달러로 예측한 바 있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지속될 전망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망 믹스(Grid Mix) 구성을 위해선 재생에너지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2023년 1월에 발표되었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3년 약 30GW인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2036년에는 약 100GW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비중의 확대가 예상되는 재생에너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취지로 올해 6월부터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시행된다. 이는 재생에너지의 본격적인 사용을 위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실현된다면 출력제한(Curtailment)에 따른 잉여전력의 활용을 위해 ESS뿐만 아니라 그린수소 생산에 대한 니즈(Needs)가 커질 것이다.
다만 재생에너지의 발전효율(경제성)이 걸림돌이다. 국내의 경우 2023년 전력통계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태양광의 가동률은 12.6~14.7% 수준이며, 풍력의 경우 8.7~22.9%에 머물고 있어 기존 석탄 화력, LNG·원자력발전과 비교해 실질적으로 국내 발전량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 수 있을 지는 지켜볼 일이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제도와 규제의 개선을 이루고 분산 전력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전문가 양성과 시스템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좁은 국토 면적과 인구밀도로 인한 주민 수용성 또한 분산 발전의 확대에 따라 재생에너지가 직면하게 될 숙제라고 본다. 현재 편중된 재생에너지원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정책적 고민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고무적인 것은 정책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단순한 ESG를 넘어 기업생존을 위한 재생에너지의 사용 유인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2월 네덜란드의 글로벌 반도체 장비 제조회사인 ASML은 2040년까지 고객 업체들을 포함한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재생에너지를 100% 활용한 넷 제로(Net Zero)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국내 반도체 생산시설의 낮은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사용의 확대는 불가피할 것이며, 분산에너지법 시행에 따라 민간분야의 투자도 본격적으로 따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갈 길이 먼 그린수소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의 날개를 달고 향후 에너지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 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