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 대의 트랙터가 컨테이너를 분주히 나른다. 그리고 저 멀리 선적을 기다리는 수백 대의 차량이 보인다. 이곳은 광양항이다.
광양항 안쪽으로 들어가니 ‘광양항서부컨테이너터미널’이 보인다. 이곳에 도착하니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가 맞이한다. 그를 따라 터미널 건물을 통과한 후 이동하니 창고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국내 최초로 연료전지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이 개발된 곳이다.
지난달 12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국내 최초로 연료전지 탄소포집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한수원은 연료전지 발전사업에 적용할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기로 하고 지난 2023년 9월에 본격 착수했다. 이 사업엔 두산퓨얼셀(연료전지), 에어레인(탄소포집설비), 한국종합기술(설치공사)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사업기간은 내달까지 총 20개월 동안 진행되며 사업비는 47억 원이다.
해당 사업은 광양항 해양산업클러스터부두에서 진행됐다. 한수원은 지난 2023년 3월 여수광양항만공사, 광양시와 ‘광양시 수소도시 조성 및 여수광양항 탄소중립항만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 협약에 따라 한수원은 해양산업클러스터 부두에서 연료전지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등 다양한 수소기술을 개발해 광양시 수소사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그 일환으로 해당 사업을 광양항에서 진행한 것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연료전지의 설계를 변경해 이산화탄소 포집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한수원의 과제책임자는 “연료전지 설계변경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높이면 포집 효율이 향상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고 다양한 포집 기술과 결합할 수 있어 연료전지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할 때 가장 경제적인 포집 기술을 선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설계변경이 가능한 연료전지를 물색하다 두산퓨얼셀의 인산형 연료전지(이하 PAFC)를 선택했다. PAFC는 액체 인산을 전해질로 이용하는 연료전지로, 높은 내구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료를 이용할 수 있고 실시간 부하변동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는 빠른 응답성을 보인다.
책임자는 “PAFC는 이산화탄소를 분리하기가 쉬운 데다 현장에서 많이 활용될 정도로 검증된 기술”이라며 “이번 과제를 기획할 때 두산퓨얼셀에서 설계변경을 통해 탄소포집이 가능하다고 밝혀 PAFC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두산퓨얼셀은 PAFC에서 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5개 포인트를 검토, 그 중 배가스의 온도 및 압력, 배가스 내 기체 조성 등을 고려해 연료 측 배가스와 공기 측 배가스가 혼합되지 않도록 연료 측 배가스 라인과 공기 측 배가스 라인을 분리했다.

천연가스를 주입하면 스팀 개질기를 통해 이산화탄소와 수소가 혼합된 기체가 만들어진다. 이 혼합기체는 셀스택에 들어가서 산소와 반응해 전기와 열을 만든다. 반응하지 않은 수소와 이산화탄소는 개질기에서 연소된다.
이를 통해 스팀 개질기에서 스팀을 만들기 위한 열이 공급된다. 이때 공기와 혼합돼 이산화탄소 농도가 20% 이상이 된다. 이후 응축기에서 배가스의 열을 회수하면서 공기 측 공기와 다시 혼합돼 연료전지 밖으로 배출되면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5% 정도 된다.
두산퓨얼셀은 연료전지 응축기에서 연료 측 라인과 공기 측 라인을 분리하고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때 연료 측 라인의 배가스만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로 넘겨주도록 배관을 연결했다. 이를 통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기존 5%에서 20%로 확대됐다.

탄소 포집 설비는 에어레인이 설치했다. 에어레인이 설치한 분리막 포집 설비는 여러 종류의 기체 혼합물이 통과할 수 있는 미세한 중공사 형태의 기체 분리막으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이산화탄소 농도 10% 이상을 포함하는 배기가스로부터 80~95% 순도의 이산화탄소를 80~95% 포집할 수 있다. 이는 습식, 건식 등 다른 포집 방식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충섭 에어레인 시스템사업본부장은 “분리막은 1단 공정과 2단 공정으로 나뉜다. 1단 공정엔 2세트(1세트당 모듈 5개), 2단 공정엔 1세트(모듈 4개)가 설치됐다. 각 세트는 시간당 500루베의 이산화탄소를 처리할 수 있다”며 “1단 공정의 경우 2세트 중 1세트만 사용되고 나머지 1세트는 대기한다. 2단 공정은 4개 모듈 중 3개만 사용하고 나머지 1개는 대기한다. 유량은 컨트롤 밸브로 끝단이나 공급관에서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분리막만 사용하기 때문에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고 분리막 모듈 형태로 제작돼 다른 포집 방식보다 6분의 1 정도 적은 면적에도 설치할 수 있다. 이번 실증 현장에 설치된 분리막 포집 설비의 크기는 PAFC와 비슷하다. 이충섭 본부장은 “보통 컨테이너 1개 형태로 설치하는데 이번 현장은 공간이 협소해 컨테이너 2개로 나눠 설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상상태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 운전 및 정지가 용이하고 배가스 유량이나 농도변화에도 성능을 유지할 수 있으며 소모품이나 화학물질이 없어 실증하는데 제약이 없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실증 현장에 연료전지와 분리막 포집 설비를 설치했다. 이후 시운전을 거쳐 지난 2월부터 440kW급 PAFC를 출력 100%까지 운전하면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분리막 포집 설비로 포집하는 실증을 진행했다. 특히 3월 말에는 72시간 연속운전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를 90% 이상 포집한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실례로 72시간 연속운전 때 시간당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180kg 이상이었으며 이 중 162kg 이상을 포집했다. 다만 도시가스 성분, 연료전지 효율 등에 따라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포집되는 양이 달라진다.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배관을 따라 실증 현장 외부로 배출됐다. 또 연료전지가 생산한 전력 중 약 30%는 실증 현장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항만으로 보냈다.
한수원은 이번에 개발한 기술을 향후 구축할 신규 연료전지 발전소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와 액화 설비를 구축할 수 있는 부지와 이산화탄소 수요처를 확보해야 한다.
기존 연료전지 발전소의 경우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와 액화 설비를 구축할 수 있는 여유부지를 확보한 곳에만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