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CBAM 도입을 확정하자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EU가 CBAM 도입을 확정하자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026년 1월 1일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이하 CBAM)를 시행한다.

CBAM는 환경규제가 약한 EU 역외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EU 역내로 수입되면 탄소 함유량에 따라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 기반해 탄소가격을 부과·징수하는 제도로, 2021년 7월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입법안 패키지인 ‘Fit for 55’에 포함된 핵심법안 중 하나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019년 12월에 발표한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에 따라 탄소배출을 감소시키고자 역내 환경규제를 강화했다. 

그러자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들은 환경규제가 취약한 지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했다. 이는 강화된 규제를 준수하고자 저탄소 제품 생산을 위한 투자를 단행할 경우 생산원가가 높아져 EU 내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탄소누출(Carbon Leakage)’이라고 한다. 탄소누출은 각국의 탄소가격 및 규제 수준이 다르므로 생산비용이 낮은 타국으로 생산설비 및 관련 탄소배출이 이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로 인해 EU 역내 기업들이 역외국보다 불공정한 상황에 노출됐다.

EU 집행위원회는 또 배출권거래시스템(ETS)이 배출권 무상할당의 차등배당을 통해 탄소누출 위험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있지만 탄소배출규제 목표인 Fit for 55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ETS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파리협정 등 국제기후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역외국 제품을 대상으로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탄소집약적 수입품으로 대체될 가능성을 방지하며 높은 탄소비용을 부담하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자 CBAM을 도입한 것이다.

적용 대상 품목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수소 등 총 6개다. EU는 CBAM 시범운영 기간 중 유기화학물질, 플라스틱, 암모니아 등을 추가할지 검토할 예정이다. 시범운영이 끝나는 2030년부터는 적용 대상을 산업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EU는 2023년 10월부터 적용 대상 품목을 생산하는 기업으로부터 탄소배출량을 보고 받고 있다. 이는 오는 2025년 12월 31일까지 진행된다. 2026년 1월 1일부터는 탄소배출인증서를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EU가 CBAM을 도입하자 영국, 호주, 캐나다, 미국도 CBAM 도입에 나섰다.

 

영국

지난 10월 30일 영국 정부는 CBAM 도입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오는 2027년 1월부터 탄소집약적 수입품에 탄소세를 부과한다.

대상품목은 수소,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등 총 5개이며 후보에 올랐던 유리와 세라믹은 실행가능성과 타당성이 제기됨에 따라 제외됐다. 다만 추가여부를 계속 검토하기로 했다. 

대상업체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 사전 정의된 기본값을 활용해 내재배출량을 보고하거나 제품 생산 과정에서 실제로 발생한 내재배출량을 계산해 보고하면 된다. 내재배출량은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의 총량으로, 직접 배출량과 간접 배출량을 모두 포함한다. 직접 배출량과 간접 배출량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와 기준은 추후에 발표될 예정이다.

탄소세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지만 ETS에서 정한 탄소가격을 참고해 세액을 산정해 품목별로 다르게 책정될 예정이며 2028년부턴 분기마다 금액이 조정될 계획이다.

중소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과세대상 최소 수입기준을 계획했던 연간 1만 파운드(상품의 최종 가치)에서 5만 파운드로 인상했다. 

아울러 영국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탄소배출권 허가증 수량과 탄소배출권 무상 할당량을 줄이고 탄소누출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ETS와 CBAM을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영국이 CBAM을 도입하는 것은 EU처럼 탄소누출을 막으면서 탄소집약적 수입품을 ETS보다 더 강하게 규제하기 위함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21년 5월 전력, 항공 등 에너지가 대량 투입되는 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총량을 제한하는 ETS를 도입했다. 2023년 7월엔 적용 대상에 해운업과 폐기물 산업을 포함하는 대신 탄소배출량 상한성을 낮추고 탄소배출권 무상 할당량을 2027년까지 연장했다.

그러나 탄소누출 위험이 두드러지자 영국 정부는 2023년 3월 ‘탈탄소화를 위한 탄소누출 위험의 해결’이라는 문건을 공개하며 CBAM과 MPS(필수제품표준) 도입을 시사했다. 지난해 3월 CBAM 설계안을 공개하고 12주 동안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 협의를 거쳐 세부사항을 도출하며 CBAM 도입을 확정했다.

 

호주

호주 크리스마스 크릭의 태양광 발전시설.(사진=Fortescue)
호주 크리스마스 크릭의 태양광 발전시설.(사진=Fortescue)

호주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연간 10만 톤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시설을 대상으로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한도를 적용하는 ‘세이프가드 메커니즘’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량 한도가 기업의 실제 배출량보다 많게 설정돼 큰 제약이 되지 않는 데다 감축을 유인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 유명무실한 제도로 평가받아왔다. 호주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대상 시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4% 이상 증가했으며 2030년까지 연간 0.7%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호주 정부는 2023년 7월 세이프가드 메커니즘을 개정해 온실가스 배출 한도를 강화하고 감축을 유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적용 대상 시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매년 4.9% 감축해야 하며 배출량이 기준치 이하일 경우 ‘세이프가드 메커니즘 크레딧’을 획득할 수 있다. 크레딧은 기준선 이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 또는 시설과 거래하거나 기준선을 초과할 때 사용할 수 있다.

배출량 기준을 이행하지 못하는 시설은 다른 시설로부터 크레딧을 구매하거나 ‘호주 탄소 크레딧 유닛’을 구매해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감축량을 만족하지 못하면 초과일수와 배출량에 따라 벌금이 부과된다.

호주 정부는 세이프가드 메커니즘 강화 여파로 역내 기업들이 역외국보다 불공정한 상황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CBAM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다.

호주 정부는 업계, 환경단체, 학계, 무역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지난해 7월부터 CBAM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협의체는 두 번의 협의 끝에 도출한 최종 의견을 2024년 12월 말 호주 정부에 제출했다. 

호주 정부는 협의체의 최종 의견을 바탕으로 CBAM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사진=캐나다총리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사진=캐나다총리실)

지난 2016년 12월 캐나다 정부는 국가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 2018년까지 모든 주(州)와 준주(準州)가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범캐나다 녹색성장 및 기후변화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 정부는 2019년부터 탄소세를 걷고 있으며 매년 탄소세를 인상하고 있다. 도입 첫해인 2019년 탄소세는 이산화탄소 1톤당 20캐나다달러였다. 이후 매년 톤당 10캐나다달러씩 인상하다 2020년에 발표한 새로운 환경규제에 따라 2022년부터 매년 15캐나다달러씩 인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탄소세가 2030년엔 톤당 170캐나다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환경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탄소누출 문제 심화와 국내 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 캐나다 정부는 지난 2020년 CBAM 도입 여부를 검토할 의향이 있다고 발표하고 2023년 6월부터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하며 CBAM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도입 여부를 언제 결정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미국 택사스에 위치한 에어프로덕츠의 탄소포집 시설.(사진=Air Products)
미국 택사스에 위치한 에어프로덕츠의 탄소포집 시설.(사진=Air Products)

미국은 CBAM과 유사한 CCA(청정경쟁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가 간 탄소집약도 차이로 인한 생산비용 격차와 가격경쟁력 약화로 자국 산업이 불공정하게 경쟁할 것을 우려하며 지난 2022년 6월 CCA 도입을 골자로 하는 내국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CCA는 에너지 집약적 수입품에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CCA가 본격 시행되면 미 정부는 2025년부터 에너지 집약적 수입품에 온실가스 배출량 1톤당 55달러의 탄소세를 부과한다. 탄소세는 향후 물가상승 등을 감안해 2030년 톤당 90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시행 초기 대상품목은 수소, 화석연료, 석유화학, 철강, 유리 등 12개이며 2026년엔 CCA 대상 소재가 최소 500파운드(약 226kg) 이상 포함된 제품으로, 2028년엔 최소 100파운드(약 45kg) 이상 포함된 제품으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대상 기업은 미국과 원산지의 탄소집약도 격차, 탄소가격, 적용비율을 수출 중량에 곱해 탄소세를 납부한다. 이를 위해 매년 1월부터 12월까지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서를 다음해 6월 30일까지 당국에 신고하고 9월 30일까지 납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친환경 정책에 부정적인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설 예정이나 공화당이 CCA 도입에 지지를 보내고 있어 내국세법 개정안이 무난히 미국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CBAM 적용 대표 품목인 철강.
CBAM 적용 대표 품목인 철강.

발등에 불 떨어져

정부는 기업들이 CBAM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정부는 EU가 CBAM을 도입하려 하자 범부처 대응 작업반(TF), 비상경제장관회의 등을 통해 CBAM 준비현황 및 대응방안을 범부처적으로 점검해왔으며 정부의견서 제출, 고위급 면담 등을 통해 EU집행위원회와 긴밀히 협의해왔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4월부터 격월로 정부합동 설명회와 권역별 순회 설명회를 개최하며 CBAM 대응 관련 기업 지원방안 등을 소개하고 있다.

각 부서의 CBAM 상담창구를 정부 합동 탄소국경조정제도 상담창구로 일원화해 사용자 편의성을 개선하고 탄소배출량 산정 경험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에 탄소배출량 산정 등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CBAM 시행 국가에 대상 품목을 수출하면 관세청 수출입기업지원센터에서 전화·문자·메일로 기업 연락 및 제도 안내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EU와의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탄소배출량 산정방식 변경 등 국내 업계 요구사항이 CBAM 설계에 일부 반영된 점을 감안해 CBAM 하위법령에도 우리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제기한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 6월 심진수 산업부 신통상전략지원관이 이끄는 대표단이 EU 집행위원회를 방문해 ‘CBAM이 역외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며 우려사항을 전달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적극적인 소통이 효과적인 제도 운영에 기여하고 있다’며 제도를 개선할 때 한국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영 경제금융대화에서 영국의 CBAM 계획과 한국의 탄소가격제도 현황을 공유하고 공급망법 소개 등 공급망 정책을 비롯한 경제안보 분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심진수 산업부 신통상전략지원관은 “2025년 EU CBAM 하위법령 발표 예정 등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업계와 공동 대응해나갈 것”이라며 “우리 기업의 탄소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사업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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