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수소, 액화수소 하지만 정작 액화수소를 직접 다뤄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딱 3년 전 이야기다. 창원에 있는 한국전기연구원(KERI) 전기모빌리티연구단 수소전기연구팀을 이끄는 고락길 팀장의 말이다.
수소기체는 영하 253℃에서 액체로 변한다. 20K의 낮은 온도를 상온에서 구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터보팽창기를 써서 온도를 천천히 내리는데 린데, 에어리퀴드 같은 몇몇 업체만이 대용량 수소액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3년 전에 제로보일오프(Zero Boil-off) 기술이 적용된 시간당 3.7리터짜리 수소액화기를 개발했다면, 이번에는 액체수소 생산부터 안전밸브 성능 평가까지 한 번에 수행하는 액체수소용 안전밸브 성능평가장치를 개발했어요. 10월 10일에 광주 분원에서 2차 테스트도 성공적으로 완료했죠.”
핸드폰 수화기로 들리는 고락길 팀장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다.
수소는 액체일 때 오히려 안전하다. 상압에서 저장할 수 있고 폭발 위험도 적다. 하지만 액화 온도가 너무 낮아 진공단열 탱크 안으로 열이 침입해 기화(Boil-off)되는 현상을 막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로보일오프 기술은 액화수소 보관용기 안에서 기화된 수소를 자동 극저온 냉각시스템으로 재응축해 다시 액체로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한국전기연구원은 3년 전에 이 기술을 내재화했고,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액체수소의 기화량을 조절해 안전밸브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장비를 개발한 것이다.
“엠티에이치콘트롤밸브에서 만든 안전밸브를 현장에서 테스트했어요. 국내에서 몇몇 극저온 밸브 업체들이 액체수소용 안전밸브를 개발했지만, 실제로 액체수소 환경에서 평가한 적은 없어요. 이번이 국내 최초라 할 수 있죠.”
안전밸브는 탱크 내부의 압이 일정 수치 이상으로 오르면 고압의 수소를 기체 형태로 자동 방출해 압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밸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엠티에이치콘트롤밸브의 안전밸브는 크리오스가 개발 중인 3톤급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에 들어갈 예정이죠. 액화수소 플랜트나 충전소가 활발히 구축되고 있지만, 자사 제품을 액체수소 환경에서 테스트하거나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요. 이번에 개발한 성능평가장치가 그 기반을 닦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전화 통화로는 부족했다. 고락길 팀장에게 질문을 정리해서 보냈고, 일주일 만에 긴 답변서가 도착했다.
Q. 기술개발 배경이 궁금하다.
수소경제 확산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수소 관련 부품을 개발 중이지만, 실제 액체수소를 이용한 성능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주로 비용이 높은 액체헬륨(-269℃)이나 액체수소보다 액화 온도가 높은 액체질소(-196℃)를 대신 사용해 테스트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 물질은 실제 액체수소와 동일하지 않아 부품 성능을 정확히 검증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액체수소 부품의 성능을 평가하는 국내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실제 액체수소를 이용한 부품평가장치를 개발하게 됐다.
Q. 수소전기연구팀이 개발한 안전밸브 성능평가장치는 어떻게 작동하나?
수소는 영하 253℃라는 극저온에서 액체가 되는데, 탱크 내 압력이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할 경우 이를 자동으로 방출해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안전밸브는 그 핵심 장치라 할 수 있다.
수소전기연구팀이 이번에 개발한 장비는 고압의 기화된 수소를 발생시켜 액체수소 탱크 내에서 안전밸브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액체수소를 이용한 평가장치로는 국내 최초라 할 수 있다.
Q. ‘제로보일오프’ 기술을 적용한 2021년의 수소액화기와 다른 점은 뭔가?
3년 전에 개발한 수소액화 장비는 수소를 효율적으로 액화해서 장기간 저장하는 데 초점을 뒀다. 기체수소를 빠르고 간편하게 액체수소로 변환하고, 시간이 지나 자연적으로 기화된 수소를 다시 액체 상태로 재응축해서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다시 말해 액체수소의 생산과 장기 저장에 중점을 둔 장비였다.
이번에 개발된 성능평가장치는 기존 응축형 수소액화 기술로 생산된 액체수소를 이용해 안전밸브의 성능을 평가하도록 추가 기능을 더했다. 단순히 수소를 액화해서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저온 상태에서 고압의 기화 수소를 안전하게 발생시키고 이를 제어하는 기술이 들어갔다. 이렇게 가야 실제 액체수소 환경에서 안전밸브의 성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액체수소를 활용한 부품의 성능 평가가 가능해졌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Q. 창원 본원이 아닌 광주 분원에서 테스트를 진행한 이유가 있나?
영하 253℃라는 극저온 환경에서 기화된 수소는 매우 높은 압력을 가지게 된다. 이번 실험에서는 10바(bar) 이상의 고압 수소를 다뤄야 해서 안전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고압과 극저온, 폭발성이 있는 수소기체를 다루는 과정에 안전한 실험 환경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전기연구원 광주 분원은 방폭시험장을 갖추고 있다. 폭발 가능성이 있는 고압가스를 다루는 실험을 안전하게 수행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시설이다. 이곳에서 지난 8월에 1차 테스트가 이뤄졌고, 이번에 2차 테스트를 한 것이다.
Q. 두 차례의 테스트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지난 6월 창원 본원에 있는 수소전기실험실에서 실험 장비의 기본 테스트를 완료했다. 안전밸브를 장착한 후 진공단열 성능과 극저온 냉각 성능을 점검했고, 액체수소가 정상적으로 생산되는지 확인했다. 액체수소에 열원을 공급해 기화된 수소의 양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안전밸브 평가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본원에서 후속 실험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에 설치되는 안전밸브의 동작 압력이 12바로 설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10바 이상의 고압가스를 저장하거나 사용하는 시설은 주변 건물로부터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창원의 수소전기실험실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실험 장비를 이동형 프레임에 고정하는 개조 작업에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
장비를 광주 분원의 방폭시험장으로 옮겨 8월 중순에 1차 안전밸브 실험을 수행했다. 기화된 수소는 약 28분 후에 탱크 내부 압력을 12바까지 상승시켰고, 이때 안전밸브가 자동으로 개방되어 압력을 낮춘 후 11바에서 다시 닫혔다. 이후 약 1분 간격으로 안전밸브가 성공적으로 개폐되는 것을 확인했다. 기화된 수소로 인해 안전밸브 전단 가스 라인에 하얗게 서리가 낀 현상도 관찰됐다.
10월에 진행된 2차 실험은 국책 과제(액체수소 운송을 위한 3톤급 탱크트레일러 개발 및 실증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자와 액화수소 부품업체 관계자 10여 명이 참관하는 공개 실험으로 진행했다. 과제 주관사인 크리오스를 비롯해 엠티에이치콘트롤밸브, 동아대학교,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LT정밀, 호그린에어, 대양전기공업 등 7개 기관에서 참여했다. 2차 테스트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평소 궁금했던 액체수소 생산 과정과 이를 활용한 부품평가 실험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말을 들었다.
Q. 액화수소 부품이나 장비 개발, 인증을 위한 테스트에 유용해 보인다.
국내에 액화수소 플랜트와 충전소가 구축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핵심 장비와 부품의 상당 부분은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 액체수소 관련 인증을 위한 테스트 설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액체수소는 극저온에서 다뤄야 하고, 고압의 기화된 수소를 제어하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능 평가를 위한 전문 설비가 꼭 필요하다.
이번에 개발한 액체수소 안전밸브 평가장치는 이러한 국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기술이 된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사 제품을 테스트하고 인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수소 기술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Q.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액체수소용 안전밸브는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전수검사가 꼭 필요하다. 또 기업들은 개발 단계에서 공인 인증을 받기 위해 실제 액체수소를 이용한 성능 평가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기업과 인증기관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평가장치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과제를 통해 국내에서 개발된 액체수소용 안전밸브의 평가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추가 실험을 통해 기술을 보완하고, 고압에서 일정한 압력을 유지하는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또한 이 장비가 공인 인증기관에서 실제 인증 평가에 활용될 수 있도록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관련 기술을 액체수소 부품 또는 평가장치 제조업체로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