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본밸류의 ‘RPB 기반 CO2 포집 시스템’이 있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을 찾았다.
카본밸류의 ‘RPB 기반 CO2 포집 시스템’이 있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을 찾았다.

유니스트(UNIST), 이곳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이산화탄소가 포집되고 있다. 현시점 가장 상용화된 탄소포집 기술은 타워형 탄소 포집 시스템이다. 

대게 ‘스크러버’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부피가 매우 커 산업부문의 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포집 장치 크기 절감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추세와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컴팩트한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 최전선에 있는 기업이 카본밸류다. 카본밸류는 ‘원천설계 역량’ 확보의 갈증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빠른 사업화를 위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등으로 외국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도입해 활용해왔다. 이로 인해 납기 품질 원가의 제조 역량은 뛰어나나 원천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다.

카본밸류는 유니스트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UNIST) 
카본밸류는 유니스트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UNIST) 

반면 해외의 경우 원천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린데다. 현재 린데는 수소, 탄소 등 에너지 분야에서 광범위한 연구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카본밸류의 창립 멤버인 유니스트 임한권 탄소중립실증화연구센터장도 프락스에어(현 린데)에서 약 6년간 디벨롭먼트 스페셜리스트로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교수 부임 이후 국내에서도 원천공정설계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프락스에어의 디벨롭먼트 스페셜리스트와 같은 팀을 꾸린다는 청사진 아래 카본밸류가 탄생하게 된것이다.

유니스트는 연구와 프로젝트를, 카본밸류는 이를 기반으로 관련 원천기술을, 부산의 조선해양기자재 업체인 선보공업은 이를 스케일업하는 데 집중한다.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인 만큼 전문성이 중요해 유니스트 내 학부생이 아닌 석박사 출신 20명으로 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원천설계 기반의 이산화탄소 포집 장치 개발을 진행 중이며 외국 기술을 단순히 사서 쓰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반의 공정 시뮬레이션→랩 스케일 설비 제작및 실험을 통한 검증→스케일업 설계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탕으로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유니스트 임한권 탄소중립실증화연구센터 센터장. 
유니스트 임한권 탄소중립실증화연구센터 센터장. 

임 센터장은 “덴마크에 리포머를 만드는 할도톱소라는 회사가 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기업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입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 연결성이 생겨 기업이나 개인에게나 큰 이점이 있다. 유니스트와 카본밸류, 선보공업도 이런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RPB 기반 이산화탄소 포집 

유니스트-카본밸류 루트를 밟은 1호 인재는 변만희 박사다. 현재 카본밸류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근무 중이다.

변 박사는 “학교 차원에서 발굴한 원천기술들을 스케일업하는 게 카본밸류의 역할이다. 산업계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제품화하는 브리지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임한권 교수님이 공동연구실에서 원천기술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여기서 잘 다듬어진 기술들을 제품화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의 기술 테마는 현재는 이산화탄소 포집,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이산화탄소의 활용에 있다”고 한다.

임한권 유니스트 탄소중립실증화연구센터 센터장과 변만희 CTO(오른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한권 유니스트 탄소중립실증화연구센터 센터장과 변만희 CTO(오른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카본밸류는 현재 ‘Rotating Packed-Bed(이하 RPB) 타입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에 주력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포집은 ‘흡수제’라는 소재와 ‘Packing Material’이라는 핵심부품 등 세부 기술에 달려 있다. RPB 시스템은 쉽게 말해 Packing Material에 적은 에너지의 회전력을 적용해 전체적인 반응기 크기를 대폭 줄이고 이산화탄소 포집 효율은 극대화하는 기술로 이해할 수 있다.

공장 형태의 기존 대형 발전원은 물론 에너지 생산 섹터에서 대두되고 있는 연료전지 발전원, 분산형 수소생산 기술 등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선박과 같이 공간 제약이 심한 환경에 최적화돼 선주 입장에서 기회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친환경 선박 운영이 가능해진다.

RPB 타입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사진=카본밸류) 
RPB 타입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사진=카본밸류) 

“여기 보이는 게 흡수탑입니다. 배가스가 이쪽으로 들어오면 흡수제가 뿌려지죠. RPB의 회전 때문에 배가스에 포함된 이산화탄소가 액체 흡수제에 더효율적으로 포집되는 반응이 진행됩니다. 이 액체 상태의 흡수제가 이산화탄소를 머금게 된다고 할 수 있죠.”

RPB 시스템 공정에 대한 변 박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RPB 반응기 내부에서 Packing Material이 계속 회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흡수제는 열교환기를 거친 뒤 재생탑으로 향해요. 재생탑에서도 마찬가지로 RPB 반응기에 의해 이산화탄소가 탈착됩니다.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가스 상태로 다시 바뀌면서 빠지게 되고 흡수제는 재생이 돼요. 흡수제는 다시 흡수탑으로 이동해 뿌려지는 순환 사이클을 통해 장치 안에서 계속 돌게 되죠.”

RPB 시스템의 흡수탑.(사진=UNIST) 
RPB 시스템의 흡수탑.(사진=UNIST) 

변 박사는 장치 내 설비마다 운전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공정 운전을 위한 열교환기가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재생탑의 경우 80~110℃에서 운전이 되는 반면 흡수탑의 온도는 40℃ 정도라서 열을 회수해서 데우는 과정 등에 사용하는 것이다. 

RPB 시스템의 재생탑. 
RPB 시스템의 재생탑. 

흡수탑과 재생탑 중간에는 흡수제 탱크가 있다. 흡수제가 중간에서 막히지 않게 펌핑 강도를 조절하는 용도다. 흡수제가 공급되지 않으면 효율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약 0.5m 높이의 이 소형 RPB 타입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은 매일 약 200~300kg를 포집한다고 한다.

부산 소재 공장에서는 10배 이상의 용량을 처리할 수 있도록 스케일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 안으로 파일럿 규모의 실증이 진행될 예정이다. 

솔벤트 탱크. 
솔벤트 탱크. 

직접 주무른다 

RPB 시스템은 카본밸류뿐만 아니라 영국의 카본클린, 베이커휴즈 등 세계적으로 몇 군데 기업이 발을 담그고 있다. 하지만 카본밸류가 이들 기업과 다른 점은 학계와 공동연구실을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학교 랩에서 연구하는 기술들을 산업계로 가져와 적용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 포집용 흡수제 개발, 최적화된 디자인, 공정 설계 등 원천설계 기술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뜻이다. 

“저는 주무를 수 있다는 표현을 써요. 장비가 옆에 있기 때문에 바로 와서 수정하고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얻는 노하우가 쌓이다 보면더 큰 장비를 만들 때 기초가 돼요. 이런 것들이 다 자산이 되고 설계 요소에 반영이 되는 거죠.”

공동연구실을 총괄하고 있는 임 센터장의 말이다.

변 박사도 이에 동의했다. RPB 시스템의 성능을 결정하는 공정 인자가 매우 많은데 한 가지만 변해도 밸런스, 성능이 변하고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공동연구실에는 기존 타워형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도 있다. 기존에 많이 쓰는 수직으로 긴 형태의 반응기를 사용하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로 실증 완료 후 운전 중인 곳도 있다. 문제는 부피가 크다는 점이다. 이는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의 간소화를 원하는 수요와 맞지 않는다. 실제 최근 부상하고 있는 연료전지를 통한 발전이나 선박과 같이 공간이 수익과 직결되는 운전 환경에서는 시스템 부피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추세다.

“RPB 시스템의 퍼포먼스가 기존 타워형 시스템보다 좋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중에 나와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교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죠. 그러나 어떤 조건에서 나온 데이터인지 알 수 없어 동일한 조건에서 성능을 비교하기 위해 직접 2개의 장치를 만들었어요.”

변만희 CTO가 약 2m 높이의 칼럼 타입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변만희 CTO가 약 2m 높이의 칼럼 타입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타워형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을 연구실에 들여놓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구실에 구비된 약 2m 높이의 타워형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의 경우 하루에 20kg을 포집한다. 옆에 놓인 0.5m 높이의 RPB 타입 대비 포집량이 10분의 1에 불과하다. 즉, 타워형이 RPB와 포집량이 같아지기 위해선 부피가 10배는 커져야 한다.

RPB 타입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 부피 축소의 일등공신이 바로 RPB 반응기다. 타워형의 경우 흡수제가 유동하면서 중력만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잡는 형태인 반면 RPB는 내부 핵심부품이 계속 돌아가면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기에 반응기 크기 자체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카본밸류는 이렇게 크기를 줄인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을 선박에 도입하고자 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타워형은 중력을 활용하는데 그러다 보니 고정된 높이가 요구된다. 쉽게 말해 포집기가 선박 공간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말이다. 대게 화물을 나르는 선박의 특성상 이런 대형 장비를 반기지 않는다.

이에 카본밸류는 RPB 시스템을 선박 내 컨테이너 내부에 배치해 낭비되는 공간을 줄인다는 목표를 정한 것이다. 여기에 들어갈 RPB 시스템은 일 2~10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한다. 컨테이너 여러 개를 적층하는 방식으로 선박에 깔면 약 10~50톤을 감축할 수 있는 셈이다. 기술성숙도는 6으로 평가된다. 상업화 첫 단계가 7이니 머지않아 시장에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RPB 반응기도 중요하지만 이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한다. 배관 두께, 탱크 크기, 압력 게이지, 펌프 종류, 이산화탄소 계측기 등을 하나하나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RPB 시스템 구축의 핵심 인물인 변만희 최고기술책임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고려사항이 너무 많아서 회사 차원에서는 힘들죠. 기업이 상업화 프로젝트를 제쳐둘 수 없잖아요. 저희는 공동연구실을 통해 자체적으로 장비를 핸들링할 수 있어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압력 등 세부적인 공정 인자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떠한 설계를 가져가야 하는지 이러한 사안들을 공동연구실과 함께 소통하고 있어요.” 

흡수제도 중요 

RPB 기술과 더불어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이산화탄소 포집용 흡수제다. 어떤 흡수제를 쓰냐에 따라 RPB 성능이 달라진다. 상용화된 흡수제가 있긴 하나 단점이 있어 흡수제 개발도 빼놓지 않고 있다.

기존 흡수제는 재생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많이 투입되며 부수적으로 유발되는 기타 유해물 배출에 대한 문제가 있다. 아울러 흡수제 성상이 유발하는 산화·열화·부식으로 장치의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에 사용할 흡수제가 개발되고 있다. 
이산화탄소 포집 시스템에 사용할 흡수제가 개발되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흡수제 중 하나가 1차 아민 계열입니다. 그러나 금속으로 이루어진 반응기에 아민을 사용하면 산화·열화·부식 등으로 1년에 몇 mm씩 닳아 없어져요. 큰돈을 투자한 사업자 입장에서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죠.”

변 박사는 이 때문에 흡수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카본밸류는 산화·열화·부식 등 기술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 완전체 형태의 흡수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이산화탄소 포집 성능은 개선하고 투입되는 에너지는 줄일 방침이다.

현재 ‘CV-S3’이라는 흡수제를 이미 개발했는데 기존 흡수제 대비 이산화탄소 포집 효율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재생에 필요한 에너지 투입량도 약 73% 줄었다. 부식성도 10배 이상 개선됐다. 카본밸류는이 흡수제를 올 4분기 덴마크 소재 파일럿 테스트 기관에 보낼 예정이다. 더 큰 규모로 운전한 후 성능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덴마크 내 시험 규모는 현재 랩 스케일의 10배 수준이다.

변 박사는 “흡수제는 적용되는 산업군에 따라 최적화 제품이 다르다”라며 “카본밸류는 다양한 산업군에 RPB 시스템과 흡수제를 토탈 솔루션으로 공급하기 위해 흡수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제작 중인 파일럿 규모 RPB 타입 이산화탄소 포집 반응기로 왼쪽이 흡수탑, 오른쪽이 재생탑이다.(사진=카본밸류)
현재 제작 중인 파일럿 규모 RPB 타입 이산화탄소 포집 반응기로 왼쪽이 흡수탑, 오른쪽이 재생탑이다.(사진=카본밸류)

산학연 협력의 산실 

지금의 RPB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오랜 시행착오를 겪었다. 리비전(revision)만 100번 이상은 족히 된다. 운전 과정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모두 뽑으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RPB를 제작하는 기업이 국내에 없다 보니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변박사는 말한다. 시스템을 컴퓨터에서 설계하고 유동해석을 하고 공정 설계를 했을 때 결과물이 실물로 나와야 하는데, 국내의 경우 원천설계부터 시작해 제품을 만들어본 곳이 거의 없다 보니 이를 구현하기가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업계의 도움으로 보완해 나갔다. 특히 선보공업은 조선기자재 업체로 모듈, 유닛 등 제품을 컴팩트하게 만드는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또 SK에코플랜트, 남부발전, 선보유니텍과 함께 연료전지 배가스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실증 프로젝트를 통해 스케일업을 진행 중이다.

변 박사는 “신기술 개발이 원천설계부터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정말 어려운 점이 많은데 도움을 준 기업에 감사하다”라며 “유니스트, 공동연구실, 선보공업을 비롯한 기존 산업의 3박자가 잘 맞아서 지금의 RPB 시스템이 개발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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