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소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특히 청정수소는 더 그렇다. 투자와 기술 개발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수익모델이 명확히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상업화를 준비하고 있는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이 속출하고 있다.
경제성이 나오지 않음에도 수소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수소가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핵심 에너지원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재생에너지 믹스에 수소를 추가하고 있다.
수소산업을 가장 활발하게 지원하고 있는 미국은 대표적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수소산업의 근간인 ‘청정수소’ 생산을 위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 kg당 최대 6달러 수준인 청정수소의 생산 단가를 보조금을 통해 0.6~3달러로 맞추고 있다. 2026년 kg당 2달러, 2030년 kg당 1달러까지 낮출 계획이다.

그러나 아직은 먼 미래라는 의견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수소의 한계와 해결 과제를 풀고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그린수소 상업화, ‘전기요금’ 절감뿐
ITIF는 수소가 시멘트·철강·해운·항공 등 탄소감축이 어려운 산업분야 탈탄소화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활발하게 적용되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강산업을 예로 들어보면 직접환원철을 사용한 철강 공정은 약 4%에 불과하다.
이는 생산·운송·시장 측면에서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단계에서나 비용이 가장 큰 문제다. 보조금이 없으면 그린수소 가격은 그레이수소 대비 6~8배 높아져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가 청정수소 생산에 보조금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보조금 상향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 재정도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청정수소 생산에 전기요금이 많이 들어가 보조금을 무작정 높이기 어렵다. 막대한 전기를 쓰는 다른 산업군의 반발로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린수소 생산 비용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전기요금이다. 일례로 미국에서 PEM 수전해를 통해 수소를 생산할 때 1kg당 생산 비용이 4.82달러인데, 이중 전기료가 4.18달러로 조사된 바 있다. 수소생산 비용은 사실상 전기요금에 좌지우지된다는 말이다. ITIF는 청정수소 상업화를 위해선 전기요금이 kWh당 7.3센트에서 1.5센트까지 떨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되면 그린수소 1kg 생산에 1.7달러가 든다.

ITIF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그린수소 가격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오직 전기요금 절감만이 그린수소 상업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피력한다. 수소 생산량이 늘어나면 수전해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되나 이 비용이 30% 감소하더라도 전체 생산공정에서 가격 절감 효과는 2%에 불과할 것이라는 미 에너지부의 견해가 이를 뒷받침한다. ITIF는 “수전해의 원산지나 가격에 상관없이 생산 비용 중 전기료의 점유율이 지배적”이라며 “이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생산·운송과정서 경제성 갖춰야
각국 정부는 현재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청정수소 사업 활성화를 권장하고 있다. 다만 미국, 유럽 등 일명 수소선진국은 보조금 체계가 비교적 잘 정립돼 있으나 개발도상국은 이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도화하기조차 여의치 않다. 또 보조금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정권 교체 등 외부요인으로 고가의 사업자산이 순식간에 좌초될 위험도 있다.
이를 반영해 ITIF는 경제 개발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국가가 보조금을 배제하고 ‘가격·성능 동등성(이하 P3)’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P3는 청정에너지의 가격·성능이 기타 에너지와 동등한 수준에 도달할 때에만 에너지믹스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아울러 P3 달성을 위한 연구·정책 방향을 제안했다.
먼저 생산과정에서는 기술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태까지는 보급에 초점을 맞췄으나 P3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규모만 확대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수전해의 전기효율을 높이는 게 첫 번째 방법이다. 멤브레인 개선 연구 등을 통해 수전해 효율을 향상시키는 것들이 포함된다. 수전해의 전기효율을 10% 높이면 그린수소 생산 비용이 8.5%까지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모듈 크기, 스택 밀도, 스택 수명 증대를 통해 설비투자비용을 절감하는 법도 있다. 수전해 촉매에 사용되는 백금과 같은 비싼 부품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개발·실증도 필요하다.
운송과정은 수요처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과 연관이 커 생산과정만큼 중요하다. 파이프라인, 트럭, 선박 등으로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파이프라인은 대부분 원료산업 운반용으로 석유화학 플랜트 내부 및 플랜트 간 중거리용으로 사용된다. 최근에는 수소차 충전용, 발전용 연료전지의 수소공급, 수소 운송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미국은 현재까지 1,600마일(약 2,574km)에 이르는 수소공급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이 파이프라인은 석유·화학 공장 인근에 깔려 있어 수소 수요처로 이동하기 용이하다.

대부분 기업은 기존 파이프라인의 용도를 변경해 사용하길 희망한다. 비용이 신규 파이프라인 건설비용의 10~1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향후 수소 파이프라인의 50% 이상은 용도가 변경된 파이프라인일 것으로 예상된다.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잘 구축된 국가의 경우 이 비율이 80%까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단, 파이프라인의 용도를 변경해 사용할 경우 제3자 검토 등 용도 변경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
파이프라인을 새로 구축하길 원한다면 다양한 신규 파이프라인 기술과 구축 프로세스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문제는 가격인데 섬유 강화 폴리머 소재가 부담을 덜어준다. 철강 파이프라인 대비 20% 저렴하며 더 길게 제작할 수 있다. 인허가도 쉽지 않다. ITIF는 신규 파이프라인 구축 시 인허가 문제 완화를 위해 파이프라인 관련 국가 표준을 형성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미국은 파이프라인 제조에 사용되는 강철 및 용접부와 수소의 화학반응을 최소화하고 수소 누출을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파이프라인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트럭을 수소 운송수단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프라 구축 비용을 줄일 수 있으나 고압의 수소를 트럭으로 운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100km 이동 시 kg당 평균 1달러가 소요된다. 트럭 운송은 수소 수요처가 분산되어 있을 때 적합하다. 하지만 산업공정에 사용될 경우 트럭 운송으로는 수소량을 충당할 수 없다.

해상운송 방식도 있으나 효율적이진 않다. 250바로 수소를 압축해 운송하는데 이는 LNG 부피 대비 7분의 1 수준이다. 동일 양을 운송하려면 운송 횟수를 7배로 늘려야 하는 셈이다. 비교적 부피가 작은 액화수소도 LNG 대비 2배 이상의 적재 공간이 필요한데 운하를 통과하고 항구에 정착해야 해 선박 부피를 키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보일오프 가스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ITIF는 “트럭은 운송비용이 비싸고 파이프라인은 수소를 대량 공급해야 효율성이 올라가는 등 수소 운송 방식 모두 단점이 있다”라며 “P3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운송 자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아울러 P3로 향하고 있는 기술이 자립할 수 있도록 △신기술의 예산 내 대규모 보급 가능성 △총생산 목표 달성 가능성 △비용 기준 충족 또는 초과 달성 가능성 △예상 비용 내 시장 수송수단 마련 및 효율성 목표 달성 가능성 △각 허브에서 생산되는 수소의 판매 시장의 존재 여부 등을 입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