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넷이 운영 중인 정부세종청사 수소충전소.
하이넷이 운영 중인 정부세종청사 수소충전소.

지난 2019년 3월 한국가스공사, 현대차 등 11개 기업이 의기투합해 공식 출범한 수소충전소 구축·운영 특수목적법인 수소에너지네트워크(Hydrogen energy Network; HyNet, 이하 ‘하이넷’)가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하이넷 출범은 그간 지자체 중심의 수소충전소 구축·운영이 민간 중심으로 변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실제 국내 수소충전소 확산의 기폭제 역할을 해왔다. 

현재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소충전소를 운영 중인 하이넷이 끝내 도산하게 되면 수소전기차 충전 대란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수소차 보급 정책에도 큰 치명타를 안길 것으로 보인다.   

하이넷 출범 당시 정부는 2022년까지 국내 수소전기차 누적 6만7,000대(수소전기버스 2,000대 포함)를 보급하고, 전국에 총 310개소의 수소충전소를 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하이넷은 정부의 수소차 확산목표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해 2022년까지 정부의 수소충전소 목표(310개소)의 30%를 넘어서는 100개소를 구축·운영한다는 계획으로 출범했다. 

1대 주주는 한국가스공사, 2대 주주는 현대차로, 2022년까지 단계별로 설립 자본금을 포함해 총 1,052억 원의 출자가 완료됐다.    

참여기업 간의 협력을 통해 시장 초기의 투자 위험을 분산·감소하는 게 하이넷 설립의 현실적인 취지다. 이미 미국(H2USA), 일본(JHyM), 독일(H2 Mobility)이 여러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수소충전소 확산을 추진해오던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하이넷 적자 운영 심각

하이넷은 설립 이후 두 달 만에 처음으로 환경부의 수소충전소 설치 민간자본보조사업을 통해 10기를 수주한 이후 지자체 보급사업, 국토부의 고속도로 수소충전소 구축사업 등에도 참여해 2022년까지 총 66개소(84기)의 수소충전소를 수주했다. 현재 44개소(51기)를 운영 중이고, 나머지는 구축 중이다. 이를 통해 도심, 공공시설, 공항, 고속도로 등 다방면에 수소충전소를 구축·운영하면서 한국형 수소충전소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 민간 주도의 수소충전소 확산에 기여해 왔다.   

특히 수소충전소 구축·운영비용을 낮추고 단독 부지 확보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에 운영 중인 LPG·CNG충전소 부지에 복합으로 수소충전소를 구축해 이들 LPG·CNG충전사업자에게 위탁 운영토록 하는 사업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하이넷 당진 수소출하센터 전경.
하이넷 당진 수소출하센터 전경.

사업 초기 적자 운영이 불가피한 하이넷은 수소 구매가격을 낮추는 등 최대한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게 최대 과제다. 우선 수소 구매가격을 낮추기 위해 당진에 60억 원을 투입해 ‘부생수소 출하센터’를 구축해 운영 중이다. 

정부가 수소충전소 구축비용 지원 외에도 지난 2021년부터 적자가 발생한 수소충전소의 수소연료구입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하이넷의 적자 해소에는 역부족이다. 

하이넷의 적자 규모는 상당히 심각하다. 한무경 전 국회의원(제21대)의 국정감사 자료(2023년 10월 24일)에 따르면 하이넷의 최근 4년간 적자가 166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1억4,000만 원에서 2020년 22억5,800만 원, 2021년 58억8,200만 원으로 해마다 적자 규모가 늘어났다. 2022년의 적자 규모는 84억5,000만 원으로 4년 새 639%나 급증했다. 

지난해는 132억 원의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부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이렇게 재정 상황이 악화하면서 2023년부터 현재까지 추가로 수주(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정부 지원 강화 목소리 커져 

하이넷 등 수소충전소 사업자들이 생존하기 위해선 당연한 얘기지만 우선 수소차가 많이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목표한 만큼 늘어나지 않고 있다. 하이넷 출범 당시 정부는 2022년까지 국내 수소전기차 누적 6만7,000대를 보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4월 30일 기준 수소전기차 등록 대수는 3만5,162대에 불과하다.  

정부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해 탄소감축 효과가 크고 대량의 수소 수요 창출이 가능한 상용차 중심으로 2030년까지 수소차 30만 대(누적)를 보급한다는 목표다. 2030년 보급목표(30만 대)에는 수소버스 2만1,200대가 포함되어 있다. 나머지 28만 여대는 승용차, 화물차 등으로 보급한다는 얘기다. 

하이넷이 운영 중인 인천공항T1 수소충전소.(사진=인천시)
하이넷이 운영 중인 인천공항T1 수소충전소.(사진=인천시)

정부가 버스·트럭 등의 수소 상용차를 보급하기 위해 상용차 전용 수소충전소 구축을 확대하고 있지만 향후 늘어나는 수소 승용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반 수소충전소를 운영 중인 하이넷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수소충전소는 승용차, 버스 모두 충전이 가능하지만 상용차 전용 충전소의 경우 충전 우선 순위에서 승용차가 상용차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통해 수소 승용차에 대해 2025년까지 상업적 양산 수준인 연 10만 대 생산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25년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수소차 보급은 거북이 걸음을 면치 못하고 았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1분기에 수소 승용차 ‘넥쏘’와 수소버스 ‘일렉시티’를 691대 판매하며 전년 동기 대비 66.2% 감소했다. 현대차의 급격한 판매량 감소는 국내 시장에서 넥쏘의 판매량 하락이 주원인으로 분석됐다.

수소차 시장 점유율 선두였던 국내 시장은 2022년 판매량을 정점으로 저조한 판매량이 이어지고 있어 전체 시장 규모 또한 축소됐다.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지가 2018년에 출시한 넥쏘가 유일하지만 차세대 모델 출시마저 계속 미뤄져 왔고, 소비자들이 우려하는 수소차의 연료전지 내구성 문제, 수소 충전 인프라 부족, 불량 수소 사고, 충전 비용 상승 등의 악재가 겹쳐 수소차가 외면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이넷이 현재 운영 중인 전체 수소충전소의 가동률은 20~25% 정도로 수익을 내기 힘든 상황이다. 수소차 보급 확대는 하이넷이 직접 나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정부와 현대차의 책임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수소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수소차 구입비용, 수소충전소의 구축비용과 수소연료구입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수소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수소차와 충전소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하이넷에 추가 출자 가능성 

하이넷이 수소차 보급 확대만 마냥 기다리다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긴급하게 수혈하는 방안이 필요한 데, 바로 출자사의 추가 출자가 있다. 1대 주주인 한국가스공사는 도시가스 요금 미수금 증가 등으로 재정 상태가 악화되어 추가 출자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2대 주주인 현대차가 최근의 행보로 볼 때 하이넷에 대한 추가 출자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초 열린 ‘CES 2024’에서 기존 연료전지 브랜드인 ‘HTWO’를 현대자동차그룹의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로 확장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수소 사회로의 전환을 앞당길 HTWO Grid 솔루션을 발표했다. 

하이넷 속리산휴게소(청주방향) 수소충전소.(사진=하이넷)
하이넷 속리산휴게소(청주방향) 수소충전소.(사진=하이넷)

또 최근 현대모비스로부터 국내 수소연료전지사업 인수를 최종 완료했다.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은 수소전기차의 차량 가격, 연비 등 시장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부품이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의 수소연료전지사업과 관련된 설비, 자산뿐 아니라 R&D 및 생산 품질 인력 등 기술력과 자원을 한 곳으로 모아 기술 혁신과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현대차는 수소전기차 시장에서 리더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넥쏘 후속 모델을 2025년까지 출시할 예정이다. 특히 승합차인 기아 ‘카니발’과 현대차 ‘스타리아’를 다음 수소차 모델로 정하고 연구개발을 본격화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용차 중심으로 수소차 개발을 확대하겠다던 현대차가 상용차 이하의 승합차까지 수소차종을 더욱 다양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본 도요타의 수소 승용차 ‘미라이’가 올해 1분기에 글로벌 판매량 1위로 올라온 동시에 수소 승용차 생산을 중단했던 일본 혼다가 3년만에 CR-V 수소차 생산을 시작하는 한편 독일 BMW가 내년에 수소차 ‘iX5 하이드로젠’을 출시할 예정이고, 상용차 중심으로 수소차를 보급해오던 중국도 이제 수소 승용차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글로벌 수소차 시장 경쟁이 본격 점화됐다는 점이 현대차를 크게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2025년에 넥쏘 후속 모델이 출시되고 향후 베스트셀링카인 카니발과 스타리아까지 수소차로 개발되어 출시되면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넓어져 수소차 보급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승용차와 승합차가 늘어나면 일반 수소충전소를 많이 운영하는 하이넷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이넷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추가 출자를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현대차에 관련 자료를 계속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넷 자구 노력도 시급

이밖에 비용 절감을 위한 자구 노력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현 철 하이넷 대표는 지난해 9월 <토토 사이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비용 절감과 수익 모델 창출을 위해 셀프 충전기 도입 확대, 충전소 의무운전시간 완화, 기존 기체충전소의 액체수소충전소 전환, 실증용 그린수소 활용, 수소 택시 등의 신규 수요처 발굴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하이넷 경주 충효 수소충전소.(사진=하이넷)

하이넷은 또 수소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450bar 수소 튜브트레일러를 활용할 계획이다. 정부가 수송용 수소유통전담기관인 한국석유관리원을 통해 수소 튜브트레일러 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까지는 임대 지원 방식이었는 데, 올해부터는 구입비용도 지원할 예정이다. 지원대상에 기존 250bar 외에 450bar 수소 튜브트레일러도 포함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하이넷은 수소 승용차와 기체수소충전소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버스·트럭 등의 상용차 충전도 가능한 대용량 수소충전소 구축으로 사업 영역을 재편할 계획이다.  


수소충전소 판매가격 현실화 필요성

수소충전소의 수소 판매가격 현실화도 필요한 상황이지만 하이넷으로서는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하이넷을 포함한 수소충전소들은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의 상승,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인한 환율상승,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수소 운송비 상등 등을 감안해 수소 판매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이처럼 외부 요인으로 인한 판매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수소차 운전자들의 불만이 있었고, 수소차 보급이 더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수소판매가격에 대한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원욱 전 국회의원(제21대)이 지난해 8월 수소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버스, 트럭뿐 아니라 일반 수소차에도 충전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제21대 국회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FCEV) 충전용 수소 시장 조성을 위한 정책연구’ 보고서를 통해 “민간 수소충전소 운영사업자가 ‘죽음의 계곡’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수익 창출을 통한 현금 흐름 확보가 필요하다”라며 “충전소의 운영손실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공적 재원을 활용해 수소전기차 이용자에게 수소차 충전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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