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수소시장이 부침을 거듭하는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 솔루션 전문 기업 비나텍은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1년 수소연료전지 소재·부품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확대를 위한 시설투자(97억 원)를 결정한 데 이어 2023년 11월 말 신규시장 대응을 위한 생산시설 확보를 위해 9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이같은 비나텍의 행보는 ‘위기에 투자한다’는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넘어 에너지 산업의 대전환기 속에서 사업 성공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1999년에 설립된 비나텍은 미래 성장 가능성을 꾸준히 인정받아 왔다. 2013년 코넥스(KONEX, 초기 중소기업을 위한 전용 주식시장)에 상장했으며, 2020년 코넥스에서 코스닥(KOSDAQ)으로 이전 상장했다.

비나텍의 양대 축은 슈퍼커패시터(Super-capacitor)와 수소연료전지다. 슈퍼커패시터는 에너지를 저장한 후 필요시 순간적으로 고출력 에너지를 방출하는 에너지 저장소자다. 주 전원이 끊어졌을 때 보조로 전력을 공급하는 보조전원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2차전지의 보완재로 알려진다. 비나텍은 2005년 슈퍼커패시터의 양산을 개시했다.
비나텍의 제24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소용량 제품은 주로 메모리 백업용으로 사용된다. 중·대용량 제품은 회생전차, 복사기, 무정전 전원장치(UPS, Uninterruptible Power System), 분산발전 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변동성과 간헐성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인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차세대 에너지 저장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비나텍의 슈퍼커패시터 글로벌 시장 매출액은 대체로 성장세다. 비나텍은 2023년 3분기 IR 자료를 통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지난 2022년 시장별 매출액은 △미국 시장 124억 원 △유럽 시장 123억 원 △아시아 시장 189억 원 △국내 262억 원이라고 밝혔다. 각각 전년 대비 △175.6% 증가 △18.3% 증가 △19.2% 감소 △523.8% 증가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2022년 글로벌 시장 2017년~2022년 매출액 연평균성장률(CAGR)은 △미국 시장 48.8% △유럽 시장 31.7% △아시아 시장 9.0% △국내 51.3%라고 밝혔다.
비나텍은 수소연료전지 스택의 핵심 부품인 막전극접합체(MEA)와 이를 구성하는 주요 소재 촉매, 촉매의 핵심 소재 지지체를 일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도 보유하고 있다. MEA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의 전기화학 반응과 출력을 담당하는 핵심 부품이다. 비나텍의 MEA는 PEMFC(고분자전해질막수소연료전지)용, DMFC(직접메탄올수소연료전지)용이 있다. 이 중 PEMFC는 자동차 등 수송용, 건물 등의 정치(定置)용, 드론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또한 탄소나노섬유(CNF, Carbon NanoFiber)에 대한 원천기술도 확보하고 있다. 카본활성화 기술, 형상제어 복합화 기술, 금속촉매 첨착(添着) 기술 등 다양한 카본 솔루션도 갖고 있다. 기술 초격차 전략을 통해 유럽, 북미 등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다는 게 비나텍의 구상이다. 수소연료전지 사업 확대와 고도화를 위한 인력 채용도 계획하고 있다.
정한기 비나텍 수소연료전지 사업부 사장은 “2024년 2월 말에서 3월 초에는 2공장, 품질평가센터를 완공하고 3월쯤 3공장을 착공할 계획”이라면서 “공장을 계속 짓는다는 것은 수요가 있다는 반증”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해외 시장 중심으로 대규모 매출 현실화
“지난 1991년 소니가 상업용 리튬이온배터리를 세상에 등장시켰을 때부터 카본에 대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CNF 개발 후 용도를 찾다보니 연료전지의 촉매지지체로써 좋은 특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죠. 20여 년 전엔 ‘촉매지지체는 사다 쓰면 되는 것이지, 뭘 그런 걸 연구하느냐’는 분위기였습니다. 오늘날에 와선 지지체의 기술적 가치는 어마어마하죠. 우리는 지지체에 이어 촉매 그리고 MEA까지 만들게 됐고, 세계 최초로 ‘지지체-촉매-MEA’로 이뤄진 밸류체인을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지지체가 차지하고 있는 기술적 가치의 비중이 큽니다.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촉매와 MEA 단계의 성능을 좌지우지하게 되죠. 지금은 지지체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있어요. 우리는 지난 20여년 간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특화 전략을 마련하게 된거죠.”
정한기 사장은 자체 기술력 확보를 주력 사업 성공의 핵심으로 꼽는다. 비나텍은 CNF 표면에 고온 열처리를 통한 결정성 향상기술, 형상 제어기술, 복합화 기술 등 CNF복합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고효율 고내구성 연료전지 촉매 제조 기반 기술을 확보한 원천이기도 하다. 이를 바탕으로 슈퍼커패시터, 수소연료전지 핵심 소재·부품 등과 같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현재 비나텍의 수소연료전지 사업의 핵심 무대는 유럽이다. 비나텍은 비교적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정한기 사장은 “과거 현대차와 5년 여간 지지체를 공동 개발했지만, 이는 엔진에 해당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현대차 계열사가 아닌 우리가 공급사로 선정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그때 유럽 진출을 생각했고, 그 결과로 2023년에 상당히 많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나텍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수소 관련 기업과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2023년 3분기 IR 자료에 따르면 독일 P사와 2023년 11월 건물용 PEMFC 양산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가 있다. 또 독일 M사와는 오는 2028년 2월 항공용 PEMFC를 양산한다는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 I사와는 2024년 10월 고중량 차량용 PEMFC 양산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23년 12월 중순을 기준으로 유럽 메이저 기업 3곳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들과는 전략적 관계로 발전했고, 관련된 LOI(사업협력의향서, letter of intent) 등을 체결했어요. 고정형 연료전지부터 자동차, 트럭, 드론, 비행기, 잠수함, 선박 등 전 영역에 걸쳐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죠. 앞으로 유럽 진출 전담 조직을 꾸릴 계획입니다.”
비나텍은 2024년을 시작으로 수소연료전지 사업 분야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2024년 약 150억 원에서 2030년 약 4,000~5,000억 원의 매출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해외 생산기지 다변화를 꾀해 2030년 1억 장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2030년 1조 매출 달성’이라는 회사의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이 중 수소연료전지 사업부 매출은 4,000~5,00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2024년 매출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150억 원 정도 될 것으로 봅니다. 요즘 현대모비스를 제외하고 생산규모가 가장 큰 곳은 아마 우리일 겁니다. 생산규모를 늘리기 위한 투자도 계속하고 있고요. 외부의 요구가 없다면 이렇게 지속적으로 늘릴 순 없겠죠. 특히 한 번 결정된 연료전지 시스템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전까진 어렵지만, 일단 진입하면 그 다음부터는 궤도에 오른다고 볼 수 있죠. 우리는 이런 기회들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비약적인 성장의 기반이죠. 앞으로 수소연료전지 사업 분야는 유럽에 이어 미주, 중국 등 해외 진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유럽 현지 공장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1등’으로 만들어줄 특화된 전략 중요
비나텍은 ‘2030년 1조 원 매출’이라는 목표뿐만 아니라 사업 부문별 분명한 전략도 갖고 있다.
수소연료전지 사업 부문의 경우 향후 MEA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선 원가절감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수소산업의 글로벌 게임체인저를 위한 전략으로 △다공성 카본, 세라믹 지지체 등을 통한 ‘지지체 초고내구성’ △전계 스프레이, 코어쉘(Core-shell)과 카본쉘(Carbon-shell)을 적용한 ‘촉매 초저백금’ △직접 코팅, 차세대 생산기술을 기반으로 한 ‘MEA 원가혁신 공정’ 등을 제시했다.
특히 연료전지 촉매에서 백금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정한기 사장은 “MEA 관련 업체 간 마지막 승부는 가격경쟁력에서 판가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30년에 시장이 요구하는 가격은 지금의 절반이 아닌 3분의 1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현재 원가 기준 재료비가 60% 수준이에요. 아무 이익을 취하지 않아도 적자인 이 산업구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죠. 우리는 오래전부터 고민했습니다. 모든 R&D(연구개발) 로드맵을 원가절감형에 초점을 맞춰 짰습니다. 이렇게 해야 고객사의 요구를 맞출 수 있어요. 혹은 우리만 살아남을 수 있겠죠.”
다음 사업 아이템으로는 연료전지 기술을 활용한 수전해를 고려하고 있다고 정 사장은 설명했다. 그는 “유럽에서 수전해 관련 사업을 같이 하자는 요구가 많다”며 “오히려 우리 고객사의 사업 영역인 스택보다는 수전해 쪽이 훨씬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슈퍼커패시터 사업은 매출구조의 변화를 꾀할 계획이다.
“슈퍼커패시터의 미래 시장 가능성은 큽니다. 이젠 배터리와 슈퍼커패시터의 중간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슈퍼커패시터’라고 하는 LIC(리튬이온커패시터) 영역도 있습니다. 여태 극단적인 출력 디바이스로만 존재했다면 요즘은 배터리에 근접한 영역까지 가능할 정도의 단계로 왔다고 볼 수 있죠. 앞으로 우리의 슈퍼커패시터 사업 전략은 셀(cell) 중심에서 모듈(module) 중심으로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모듈화한다는 건 기존 소형·중형·대형의 개념이 깨지면서 고객의 요구 사양과 응용 분야에 따른 최적화 설계를 통해 모든 영역을 우리가 다 한다는 말입니다.”
정한기 사장은 수소연료전지 사업의 성장 배경엔 비나텍의 주력 제품인 슈퍼커패시터가 있다고 본다. 그는 “슈퍼커패시터가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해 수소연료전지 사업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며 “우리는 중형 슈퍼커패시터에선 세계 1위로, 연료전지 사업 부문의 해외 진출 시 기존 사업부문인 슈퍼커패시터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장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보여줄 비나텍의 성장 열쇠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지목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석학들을 매주 초빙해 세미나를 열고, 혁신적인 기술 사업화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는 어떤 사업의 시장은 늘 있다고 봅니다. ‘내가 먹고살 수 있는가’, ‘수익을 내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이 나에게 있는가’ 등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시장은 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 1등이 되기 위한 모든 전략은 ‘우리는 아직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수소연료전지 사업의 경우 우리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수많은 연구의 흔적을 찾아 모았습니다. 매주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기술·과제 도입, 컨설팅 등 가치 있는 아이디어에 비싼 돈을 기꺼이 지불했죠. 이것은 우리 회사의 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1등일 필요는 없어요. 시장이 보인다면, ‘1등이 아닌 내가 1등이 되는 방법’을 찾아내 추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 사장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부의 수소산업 정책을 바라봤다. 수소경제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선 지역별 특성과 여건을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나텍은 전라북도에 소재한 대표적인 수소연료전지 기업이다. 그는 “전라북도만큼은 타 지자체에 비해 여러 여건이 어려운 수소의 생산·저장 측면보다 수소의 활용이라는 산업을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지난 2021년 10월 4대 추진전략, 25개 세부과제 이행방안을 담은 ‘전라북도 수소산업 육성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그린수소 연간 10만 톤 생산 △수소 저장 및 중대형 수소모빌리티 선도지역 도약 △수소차 2만 대 및 수소충전소 50개소 이상 공급 등을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정 사장은 대부분의 지자체가 비슷한 방향의 수소산업 정책을 수립하고, 수소산업 도시를 표방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모두가 수소 만들기에만 열중하는 건 국가 차원의 수소산업 균형 발전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지역의 수소산업단지마다 효율성을 고려하고, 해외 진출과 고용 창출을 도모할 수 있는 특화된 ‘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